고독의 우물 1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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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가 출간되었다. 같은 해에 평생 남장을 하고 다녔던 작가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출간 즉시 여성들의 동성애를 그렸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을 받는다. 2022년에 1928년에 출간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우리 사회가 당시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던 편견의 시선에서 얼마만큼 더 자유로워지고 진보했나를 자문하게 했다. 


그리고 비단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로서만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세상이 부여하는 관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것은 때로 엄청난 소외감과 고독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근원적 고독, 소외감, 상실에 대한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애가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레드클리프 홀의 문장은 각별히 아름답다. 특히 주인공 스티븐이 태어나 자라는 고든 가의 시골 영지 모턴의 자연 풍광의 묘사는 절창이다. 스티븐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과 분리가 되지 않는 슬픔은 자신의 몸이 자신이 지향하는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간극과 모순에서 느끼는 혼란과 닿아 있다.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 필립 경과 어머니 애너에게서 태어난 이 엉뚱한 아이는 결국 자신이 지향하는 남성성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한다. 여성의 몸을 한 남성은 여성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번번이 어긋나고 매번 실패한다. 무엇보다 세상에 떳떳하게 인정받을 수 없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준거틀에 부합할 수 없었다. 세상이 누리는 양지에서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안에 시체를 짊어지고 다녔다. 안젤라에 대한 사랑의 시체였던가?


무엇보다 미망인이 된 어머니의 반응은 충격적이다. 평범한 여성으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던 애너는 딸이 남성의 옷을 입고 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그 이유로 딸을 사랑할 수 없었고 거부감을 느꼈다. 스티븐이 결국 목숨보다 사랑했던 유년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어머니의 단죄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스티븐은 사랑하는 제인을 그곳에 데려갈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내도록 괴롭혔다. 



영문학사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문구는 <고독의 우물>을 반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 말이다.  그 틀 안에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여러 한계가 보인다. 무엇보다 주인공 스티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성이 되고 싶어했으며 여성과 사람에 빠질 때마다 자신을 남성적 위치에 상정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여성과 사랑하지 않는다. 당시 이성애적 사랑에 빠질 때 남성이 점유하는 위계에 집착한다. 연인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생활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 이야기 안에서 남성성은 때로 폭력적이고 위압적이지만 강력하고 우월한 것으로 그려진다. 즉 레즈비언의 이야기이면서 여성과 여성성을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한 성적 소수자들의 아픔과 소외감에 집중하면서 정작 흑인들을 검둥이라고 부르고 하대하는 장면들을 그린 것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작가가 실제 귀족주의자였고 파시즘을 지원한 경력 등으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여러 소수자적 집단에 속할 수 있다. 남성이자 백인인 성소수자가 될 수도 있고 흑인 이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분류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우위를 점하거나 어떤 곳에서는 약자적 소외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말이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가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이 대목은 이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볼 때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고독의 우물>은 인간이 사회적 정상성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고독을 처절할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스티븐이 끝내 극복해내지 못하고 만 것들의 잔향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심연을 드리운다. 대다수가 정상이라고 상정하고 만들어 놓은 틀 바깥으로 내쳐지는 수많은 주변인들의 고독과 그 소외감을 상상해 본다. 사랑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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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4-08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의 사랑을 그린 모리스, 를 읽은 적이 있어요. 포스터의 작품 같아요. 장편소설.
뒤에 반전이 있어 멋진 작품으로 기억하게 됐어요.
요즘 드라마에도 동성애 사랑을 그린 거 예고편인가 본 것 같아요. 세상이 진보하고 있는 중이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blanca 2022-04-08 12:34   좋아요 2 | URL
페크님, 저도 <모리스> 정말 좋아해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2-05-07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으려고 계속 꺼내놨는데 아직 못읽었네요 ㅜㅜ 이번달에는 읽어봐야 겠습니다 ^^

blanca 2022-05-07 09:10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 덕분에 알았네요.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22-05-08 08: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산소리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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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애정에는 사회적으로 합의한 금기와 금제가 있다. 그것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가능하지만 대단히 예민하고 어려운 과정이라 자칫 발을 헛디디면 저속한 배설,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산소리>에서 어려운 지점을 여러 번 통과한다. 그가 통과하며 말한 언어들은 전락하지 않으려 분투하지만 그 노력은 섬세하게 감추어져 있다. 우리는 그저 세련되게 정제된, 정화한 인간의 근원적 흔들림에 대해서만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역시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말이 나오는 작품이다.


주인공 신고는 육십 대의 할아버지다. 기실은 사랑했던 여자의 동생과 결혼했고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 슈이치는 아름다운 아내 기쿠코를 두고 끊임없이 외도를 하고 마약 중독에 빠진 남편과 불화하여 친정에 돌아온 딸 후사코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가정 문제에 개입하여 해결해 주지 않는 아버지 신고를 원망한다. 여기에서 신고가 가장 안쓰러움을 느끼고 애정과 때로 욕망을 느끼는 대상은 며느리인 기쿠코다. 이 욕망은 저급하거나 화급하지 않고 대단히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남편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사물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 풍광에 대한 공통의 공감을 기반에 둔 동지애적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서 신고의 꿈을 통해 신고가 욕망하는 것들이 시시각각 드러난다. 


그는 며느리를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남녀의 그것과 동일하냐는 의문에 대한 답은 애매하다. 그 지점을 대단히 정묘하게 감침질함으로써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신고가 그렇고 그런 욕망에 이끌리는 노인으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한다. 전후 조금씩 추락하고 붕괴되는 개인 군상이 가족의 틀 안에 모여 어떻게 나날을 영위해 나가는지를 그 사소하지만 귀한 일상성을 통해 그려내는 작가의 노련한 언어들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우리들도 지하에 천 년이나 이천 년 정도 묻혀서 죽지 않고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기쿠코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땅속에 묻혀 있다니."

"무덤이 아니고 말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쉬는 거야. 정말로 땅속에라도 묻혀서 쉴 수 없는 것일까. 오만 년이나 지나서 일어나면 자신의 고민도 사회적 난제도 완전히 해결되고 세계는 낙원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pp.379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이런 대화가 일어나는 관계다. 그것은 시종일관 생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이고도 근본적인 의문과 심오한 성찰과 맞닿아 있다. 신고는 끊임없이 아들 슈이치의 외도로 인해 파생되는 일들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 애쓴다. 그는 아들 대신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에게는 없는 젊음과 삶의 시간들이 쌓여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아들을 대신해서 그가 느끼는 생의 비의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신비로움들은 며느리와의 대화들로 표출된다. 


마치 죽음을 예고하는 것 같았던 "산소리"의 결말은 그러나 죽음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신고는 계속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다. 그가 바랐던 것처럼 그가 비록 죽어서도 쉬는 것처럼 오만 년이 지나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깨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고민과 상처와 상실이 깨끗하게 잊히고 풀려 있을지도. 그러나 산다는 일은 또다른 종류의 고뇌와 고민을 또 품고 올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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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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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베르틴 양이 떠났어요!"로 출발하는 이야기. <사라진 알베르틴>은 사람이 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망각의 작업을 완성하는 이야기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의 본질적 특색이 가장 잘 구현된 부분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상실의 이야기는 그것이 체념이나 애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삶에 서사로서 통합되는 과정으로 승화된다.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가진 동성애 성향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했다. 심지어 그녀의 죽음 이후로도 친구 생루를 알베르틴이 묵던 봉탕가에 보내 그녀의 뒷조사를 시킬 정도다. 소녀의 죽음 이후에도 생전에 구성하지 못한 그녀의 삶의 여백을 채우기 위해 염탐도 서슴지 않는 화자의 모습은 편집증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은 알베르틴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알베르틴을 사랑했던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복원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닐까. 


모든 계절과 연결된 알베르틴의 추억을 지우려면, 마치 편측마비에 걸린 노인이 다시 읽고 쓰기를 배우듯, 비록 그 계절을 다시 알게 된다 해도 온 계절을 망각해야 했다. 온우주를 단념해야 했다. 오로지 나 자신의 진정한 죽음만이(그러나 불가능한 일인)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pp.120


알베르틴이 화자를 사랑했느냐, 아니면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교환할 수 있는 상대로 이용했느냐는 어쩌면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닌지도 모른다. 알베르틴과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이 부재하는 여인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그 과정을 복기하는 여로에 독자들을 초대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느냐, 아니면 영원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을 것이냐는 이 이야기의 핵심적 가치가 아닌 셈이다. 설사 그것이 기만일지라도 그렇다. 


마르셀은 알베르틴 때문에 유예했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침내 어머니와 함께 가게 된다. 그가 어머니를 홀로 보내고 석양이 지는 테라스에 앉아 한 가수가 부르는 '오 솔레 미오'를 들으며 어머니와의 이별을 예감하는 장면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 이별은 비단 이번 행로에서 그칠 일이 아니라 결국 영구적인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마침내 죽음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다. 그 숙명적인 단절의 예감이 자아내는 애조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이것은 프루스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시간이 결국 파괴하는 것들에 대하여 인간은 알지만 여전히 거기에 온몸을 담그고 분투하며 살아야 한다. 그 낙차 앞에서 아연해지는 모습.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혀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슬픔이다. 

-pp.471


시간 앞에서 파괴되는 슬픔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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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4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하는데 blanca님 리뷰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앗! 했습니다. 저도 읽고 난 다음에 리뷰를 봐야겠네요~! 별 다섯 기대가 됩니다 ^^

blanca 2022-03-05 08:28   좋아요 3 | URL
헉, 죄송요. 제가 매너가 부족했네요.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할게요.

새파랑 2022-03-05 08:32   좋아요 2 | URL
아니 그런건 아니구요 ㅋ 실눈뜨고 읽었어요 ^^ 저도 11권 빨리 읽고 싶네요. 우선 담주에 10권을 읽어야 겠습니다~!!

scott 2022-03-06 18: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 앞에서 파괴되는 슬픔의 이야기]
11권 사라진 알베르틴은
잃시찾의 가장 마지막
<되찾은 시간>의 해설 같은 작품입니다.



------------------------이상 , 스포일러 담은 댓글 씀 ^ㅅ^

blanca 2022-03-06 18:22   좋아요 3 | URL
어? 그게 무슨 뜻이죠? 그렇다면 이 이후는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결론인 건가요?

scott 2022-03-06 18:29   좋아요 2 | URL
11권을 읽지 않으면
맨 마지막 되찾은 시간에서
프루스트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의 정확한 뜻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이 댓글도 스포! 🖐^^

blanca 2022-03-06 18:30   좋아요 3 | URL
아리송하네요.^^;; 혹시 12,13권 출간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긁적긁적.

blanca 2022-03-06 18:31   좋아요 3 | URL
제 기억력으로 지금 이어 읽지 않으면 11권 의미는 잃어버린 기억이 될 것이 확실해서요 ㅋㅋ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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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두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몇 주를 고생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찾아간 신경외과에서는 별일이야 없겠지만 이제 뇌 MRII를 한번쯤 찍어둘 나이가 됐다고 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건가? 이후에 나의 짱구 머리 사진을 판독해 준 나보다 젊은 의사는 아직 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나이에 대한 이 상반된 해석은 결국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이야기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 준 셈이다. 언제나 많을 줄 알았던 머리숱의 급감과 노안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차곡차곡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내 삶 전반에 끼친다. 아무리 영혼과 내면과 의지의 이야기를 해도 결국 나는 내 몸 안에 갇혀 존재의 환각을 느끼는 존재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몸을 넘어서거나 이길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


이 소설은 192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화자가 딸에게 유산으로 남긴, 자신이 열두 살 때부터 여든여뎗 살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 쓴 일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연령에 따른 몸의 미묘한 변화와 성장, 각종 성가신 질환들, 노화,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적 형식의 보고서는 어떤 세대의 독자가 읽어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육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한층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 나이 즈음의 일기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세상은 원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면 피로 속에 불안이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나 자신, 무능하고 헛되고 거짓된 내가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친 내 의식의 귀에다 대고 불안이 속삭이는 말들이다.

-pp.238

암울한 전망이다. 노안의 이야기도 있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치에 관한 이야기도 심지어 갑자기 출몰하는 이명에 대한 충격도 있다. 얼마 전 나보다 두 살 어린 지인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예고 없이 나타난 그 육체적 쇠락의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놀라워했다. 거기에 이명도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알고 보면 오십, 육십, 심지어 팔십에 이르기까지 아직 본격적인 노화의 관문에는 다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더 많은 더 어려운 성가신 것들의 전시가 주르륵 펼쳐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 애송이다. 결국 "왕관들을 빼앗기는 거다." 이미 쓴 적도 없다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지만.


몸이라는 극지에서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굉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늙는다는 건 이 해빙을 겪어내는 것이다.

pp.362


"늙는다는 건 이 해빙을 겪어내는 것이다." 절묘한 문장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요새는 노인들이 다르게 보인다. 시간과 세월은 그저 지나가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몸은 늙고 그 안의 존재는 그 미미한 껍질을 붙잡고 분투하며 마지막까지 견뎌내야 하는 과업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승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을 나날이 견디는 중이니까. <몸의 일기>는 그러한 과정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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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18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페낙을 좋아하게 됐어요
~♡

blanca 2022-02-18 20:18   좋아요 0 | URL
<학교의 슬픔>도 참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다른 책들도 찾아 보려고요.

stella.K 2022-02-18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렇게 노화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또 장수하며 지탱하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지금 내 몸을 생각하면 내가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싶은데 그분들을 보면 나도 버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늙으면 어떻게 살까 싶은데도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blanca 2022-02-18 20:18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저도 그렇게 느껴요.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어요.

coolcat329 2022-02-18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화 죽음...저도 거의 매일 생각하는 단어입니다.
두통이 얼마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저도 제 가족의 고통을 곁에서 봤었기에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가슴이 덜컥합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22-02-18 20:19   좋아요 1 | URL
저는 사실 두통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니 너무 두렵더라고요. 통증이라는 게 한번 몸을 점령하면 그게 전부가 되어 버리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라로 2022-02-1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네요,,, 그나저나 노년은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겐 두려움 그 자체인 것 같아요. 하아~

blanca 2022-02-18 20:21   좋아요 1 | URL
아, 그 책도 너무 좋죠. 신체가 차차 기능이 떨어지고 다들 나를 할머니로 생각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요. 사실 지금의 제 모습도 낯설어요. 누가 아줌마, 그러면 ㅋㅋ 아줌마 맞는데 기분은 별로라니까요. ㅋ

기억의집 2022-02-18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통은 더 이상 없는 거죠!! 저도 두통이 있는 사람이라.. 어떨 땐 게보린 세개도 먹고 그랬거든요. 저도 검사해서크게 이상은 없다고 하니 한편으론 맘이 놓이는데… 블랑카님도 다행이예요 나이 들면… 그렇죠 저는 제 손을 볼 때마다 속상해요. 너무 쭈글쭈글해서… 다 노화의 과정이겠지만,, 이제 더하면 더 할테니 맘을 부여잡아야겠어요

blanca 2022-02-19 09:58   좋아요 1 | URL
지금은 괜찮은데 저는 두통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여튼 앞으로 건강하게 잘 늙고 싶은데 늙는다는 것 자체가 몸이 허약해지는 거라 심란합니다.
 
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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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시 윌리엄 트레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산하고 아름답다. 사십대, 오십대, 십대의 주인공들의 내면의 풍경이 다른 시공간을 넘어 읽는 이들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원형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쉽게 쓰여지지 않은 작품인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휘리릭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하고 이제는 망자가 된 남편의 시신이 아직 집에 있는 상태에서 방문객을 맞은 아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슬퍼하고 애도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그 수녀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유한 집을 보고 선택한 전력을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면. <고인 곁에 앉다>는 그런 이야기다. 사랑했던 남편과의 작별을 슬퍼하는 아내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자주 욱했던 고인의 곁에 앉은 담담한 아내. 그 아내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수녀자매. 


중년의 남녀가 일종의 소개 업체에서 만나 소개팅을 하는데 서로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데 그 점을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대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저녁 외출>은 엉뚱한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나는 꼭 차 있는 여자와 만나야 한다는 그 내밀하고 언뜻 저급해 보이는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여자와의 만남은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구태여 애프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렇게 헤어져도 괜찮은 그런 만남에 대한 이야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난 남녀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소통하게 되는 흩어지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기록.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며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며 맺게 되는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어떤 죄책감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는 작품이 <그라일리스의 유산>이다. 남자가 먼저 죽은 여자의 그녀의 유산을 거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윤리적 자긍심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로즈 울다>는 늙은 과외 선생에게서 수업을 받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 시간을 활용한 젊은 아내의 외도를 돕게 되는 소녀가 느끼는 비애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외도를 스승과 제자는 알아차리고 그 패배감, 배신감, 비애를 공유한다. 소녀는 그 사연을 친구들과의 가십거리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아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트레버는 소녀가 나이 든 남자의 무력함을 알아차리며 느끼게 되는 고통을 그녀의 성장통과 기민하게 연결시킨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느끼게 되는 슬픔의 지점은 각기 달랐지만 그것이 향해가는 것은 인간이 타인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그 거리감에 대한 통찰에서 만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결국 기만당하고 현재는 언제나 과거를 좀먹는다. 그렇다고 거기 있었던 찬란했던 순간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트레버식의 의미 부여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우리가 원하거나 예상했던 대로 나아가지 않는 인생의 흐름이 무의미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이 거장이 언제나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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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1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에서 저도 <로즈 울다> 여러번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순간 그 장면을 음미 했습니다 트레버의 문장은 단 한문장이라도 지나칠 수 없죠.^^

blanca 2021-12-21 21:55   좋아요 1 | URL
스캇님, 이미 읽으셨군요! <로즈 울다> 참 좋죠. 이런 건 트레버밖에 못 쓸듯...트레버는 소녀, 중년 여자의 심리 묘사에 가장 탁월한 남자 작가인 듯해요. 보통 뛰어난 작가라도 이성의 묘사는 단편적이거나 단순한데 트레버는 그런 면에서 정말 놀라운 작가 같아요.

나뭇잎처럼 2021-12-23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윌리엄 트레버 신간인가요? 저 진짜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는데. 넘 좋아서 낭독해서 읽기도 하고, 필사도 하고. 국내에 나온 건 다 읽고, 원서도 많이 찾아 읽었죠.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시는 분 만나니 넘 반가운데요? 파리 리뷰에 나왔던 윌리엄 트레버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좋은데 우리나라엔 많이 안 알려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왜 좋냐고 물으면... 음. 참 딱 말하기 어렵지만. 깨닫지 않고서는 저런 글을 쓸 수 없다, 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날씨가 아주 침착한 날, 다시 꺼내들어야겠어요. ^^

blanca 2021-12-23 11:10   좋아요 2 | URL
나뭇잎처럼님 반갑습니다. 저도 엄청난 팬입니다. 윌리엄 트레버는 대가죠. 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강력한 울림과 깊이를 지니고 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가 중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펠리시아의 여정> 같은 작품은 정말 살떨릴 정도로 좋았어요. 서구 사회의 백인 나이든 남자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절하고 아름답게 이름 없이 죽어간 소녀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하나의 애도를 이야기로 할 수 있을까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신간 단편집인데 사실 번역이 늦은 거고 시기상으로는 이미 읽으셨을 가능성도 높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