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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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꿈꾸는가]라는 한글 제목과 표지가 개인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공지능 과학 분야 책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실제 듀크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임을 감안하면 AI의 법적 지위에 대해 고찰한 사회학 저서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자 제임스 보일은 다루어야 했던 주제의 방대함 때문에 거의 십 년에 걸쳐 이 책을 연구하고 집필했다고 한다. 법인격, 인공지능, 생명공학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시종일관 특유의 리듬감과 깊이, 넓이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AI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파급력 그 자체보다는 결국 우리 사회가 향후 정말 인간의 의식과 비슷한 범용 AI가 나왔을 때 과연 어떤 사회적, 법적 지위와 대우를 해줘야 할지에 대한 진지하고 심오한 공론화의 장을 열어준 책이다. 딱딱하고 어려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직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도 번역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를 예로 들어 설명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INE]이다. 그 경계는 바로 인간과 기계뿐 아니라 법인, 비인간 동물, 혼종 동물, 형질 전환 개체, 키메라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이 구분은 결국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인간만의 특수한 언어 능력이 챗봇의 등장으로 위협받게 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질문인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다다른다. 흔히 이 진단 기준으로 사용됐던 튜링 테스트를 AI가 간단히 통과할 수 있다는 데에서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가 생각했던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선이 조정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미국에서 법인의 인격 개념이 도입된 역사에 할애된 장은 결국 기업을 소송의 당사자로 취급하기 위한 편의에 의해 도입한 법인의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지점에서 왜곡되고 임의로 조정되었는지 그 취약점을 노출함으로써 결국 우리가 지금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또한 충분히 무너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 당장 AI는 의식이 없고 독립된 인격의 개념이나 법적 지위도 없지만 향후 그들의 법적 지위가 어떻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전공학의 기술로 서로 다른 두 종의 DNA를 재조합하거나 인간의 만능줄기세포, DNA를 포함한 동물들도 종을 구분하는 경계선에 혼란을 몰고 왔다.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에게 위험한 임상이나 각종 난치병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이 경계를 임의적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하는 것에 일말의 도덕적 가책을 면제하는 것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하나하나 묻고 있다. 


결국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유한 특성이라 믿었던 것들이 새로 등장한 기계나 유전자 조작 생명체로 무너질 때 우리는 과연 그 종을 가르는 경계선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인격권을 가진 존재로 존중하고 대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도발적인 물음은 쉽게 답하여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맺는다. 어쩌면 허무한 이야기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앎의 지평과 공감의 지대는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근미래에 정말 특이점이 와 출현한 범용 AI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인격권, 법적 지위를 주장할 때 과연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적절한 합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일이 SF적인 공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현실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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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9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아시모프의 sf소설을 읽으면 안든로이드나 로봇의 권리(일종의 인격권)을 다룬 작품들이 있었는데,그런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상상은 무궁무진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현재 AI개발속도를 보면 상상만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될카봐 무섭기도 합니다.

blanca 2025-10-30 10:16   좋아요 0 | URL
챗봇 발달 속도 보면 이제 sf가 그저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구나 싶어요. 순간순간 섬뜩하죠.

단발머리 2025-10-30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부분이 참 걱정스럽기는 하네요. 저는 워낙 기계치이고 문과이기도 해서 이쪽의 발전이 이렇게나 많이 이루어진걸 전혀 몰랐는데, 최근에는 좀 관심이 가더라구요.
이 책도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blanca님!

blanca 2025-10-31 09:31   좋아요 1 | URL
AI가 나와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은 것 같아요. AI가 가짜 정보를 진짜처럼 제공하는 환각 현상도 있는데 잘 걸러지지도 않고요. 세상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가끔은 참 숨이 가쁘다는 생각도 듭니다.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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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I가 이제는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주변에 물어볼 일을 AI에게 물어보고, 상담가나 친구들과 나눌 사적인 일들까지 인공지능과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이 거대언어모델(LLM)이 끼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독자들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일을 인공지능에게 위임하고 심지어 글쓰기 공모전에는 뭔가 불쾌한 기시감이 드는 창작물들이 버젓이 개인의 이름을 달고 제출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문학을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니 그런 질문 자체가 유의미한가.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고, 다행히 과정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출구를 더듬을 수 있었다. 일곱 편의 수상작이 모두 작가들 고유의 리듬감으로 흥미롭게 읽혔고, 나름의 사유의 깊이로 오랜만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최은미ㅣ김춘영


탄광 마을에서 광부들에게 술을 팔았던 여성 노인 김춘영을 면담하는 여성 연구자가 화자다. 마지막 면담만을 남겨놓고 해발 천 미터의 험준한 산을 올라간 화자가 폭설을 만나 구술자의 집에 고립되며 우연히 만나게 되는 등산객 중년 부부와 젊은 군인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은 결국 한 인간이 타인의 고유한 경험을 간접경험함으로써 가닿게 되는 소통과 공감의 지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인다. 이 연결은 작가 최은미의 치열하게 조탁한 문장으로 이음매가 거의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아름답다. 이야기의 힘과 문장의 유려함이 만날 때 얼마나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



강화길 l 거푸집의 형태


여성 가족 서사의 서늘한 긴장감과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버젓이 이루어지는 착취와 폭력의 중층적인 구조를 이야기의 형태로 보여주는 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작가로 강화길을 빼놓을 수 없다. 친밀하다고 느꼈던 막내이모와 조카 사이에 끼어든 죽음이 가져온 파국의 내막은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김인숙 ㅣ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어느 순간 우리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호와 위계가 역전되는 기점을 맞게 된다. 경제, 건강, 노령화 등 그 시점은 가족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그 시간은 누구나에게 오고야 만다. 자식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며 이제 약해진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그건 비극일까, 자연스러운 섭리일까. 사랑해서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딸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는 딸에게 증오와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그 어머니에게서도 그 딸에게서도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굳이 답을 주지 않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런 공감을 자아내기는 쉽지 않은데 작가는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김혜진 ㅣ 빈티지 엽서


주인공 여성이 헬스장에서 고춧가루를 생각하는 도입부부터 읽기를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특히나 "삶에서 사소한 정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는 생각을 그녀는 자주 했다." 같은 문장을 맞닥뜨리고서는 더더욱. 그녀가 저지른 일은 불륜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륜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미묘한 지점들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사는 것들의 그 낙차에서 아찔해져 버리는 체험은 김혜진 작가 아니고서 누가 이렇게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배수아 ㅣ 눈먼 탐정


성경의 <누가복음>에서 죽은 예수가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배수아 작가의 인장이 군데군데 찍혀 있다. 초현실, 비현실, 이런 해석들로 이 중층적인 이야기를 감침질하는 건 실례가 될 것 같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이토록 현실 전체를 감싸안을 수 있다는 발견은 놀랍다. 삶, 죽음, 이별 등의 거대한 추상성이 구체화의 외피를 두르지 않고 현현하는 놀라운 체험이 가능한 이야기.



최진영 ㅣ 돌아오는 밤


내 친구의 죽음 대신 직장 상사 지인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무민의 나라 핀란드를 경유해 가 돌아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돌발적인 사고 앞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무얼까. 모든 경험, 모든 소통이 온라인화되는 이 세계에서 정작 내가 실제로 겪은 건 인간의 폭력이었다. 



황정은 ㅣ 문제없는, 하루


나는 현실적인 삶을 살고 동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들로 괴로워한다. 나는 그 동생이 현실에 닿아 있지 않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이 자매가 터널에서 만난 사고는 타인의 고통에 연루되지 않는 감각이 얼마나 큰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 '문제없는, 하루'라는 감각은 정작 '문제없는 하루'를 불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그 많은 폭력들은 결국 우리에게도 돌아올 테니까.



쉽고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여전히 작가들은 고심하고 쓴다. 그 노력과 그 노력이 가지는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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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문을 닫으려 할 때쯤, 살짝 술 냄새를 풍기며 알딸딸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손님이 가끔 있다. 대부분 남자인데, 시집을 사는 사람이 많다. 근처에 술집이나 바가 많아서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 불빛에 이끌려 무심코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다.

-<술김에 시를 사다>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술에 조금 취한 남자 손님이 불빛에 이끌려 이 작은 서점 문을 밀고 들어와 시집을 사가는 정경을 상상해 본다. 그는 평소엔 서점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를 쓰거나 읽는 일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사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그 사이로 동네 작은 서점을 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도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 사이로 동네에서 책을 팔던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제 어린 아이가 책 살 돈 없이 그저 책을 둘러보고 가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며 작은 의자를 내어 주는 그런 서점 주인이 자생해 나갈 길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은 전투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타령만으로 살아나갈 길은 요원하다. 그래도 이따금은 그래도 이런 글들을 읽고 안식을 얻고 싶다. 여전히 그 틈새에서 고군분투하며 지켜나가는 그 무엇들에 대한 희망과 신뢰와 기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 


"작가님, 작가님의 단편 <뉴욕제과점>을 낭독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번 해볼게요."

<중략>

그와 함께 만든 세계가 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문학은 재미있다'는 세계. 이 세계를 가장 먼저 함께 만들어준 김연수 작가가 항상 고맙고 자랑스럽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김승복>




도쿄의 진보초 거리. 고서점 150여 곳이 모여 있는 책의 거리에 유일한 한국어 책방 <책거리>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는 놀랍게도 '책거리'를 운영하는 저자와 김연수 작가와의 사연이 나온다. 책방 주인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을 읽히게 하기까지 그 여정에 독자와의 소구 지점을 빚어내는 데 수많은 관계망이 있다. 작가들에 대한 제안들, 그 제안들은 제대로 그 속마음을 전달하고 취지를 공감하며 또 그 상대의 현실과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거의 처음부터 언제나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시원하게 상대의 제안에 따뜻하고 적극적으로 응해서 그의 기세를 꺾지 않고 결국 그 책방이 흥하게 하는데 일조한 작가가 김연수라니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쓴 작가가 이 한국어 책방의 세계 확장에 기여했다니 감동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모든 행위가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이 삭막한 세계에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동네 서점이 있다는 건 삶이 아무리 분주하고 소모적이어도 최후의 보루가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이 서점들이 버텨주기를, 흥하기를, 그리고 그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들이 그 위안과 안식처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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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31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 한잔 걸치고 가는 길에 시집 1권을 사는 아저씨라니 왠지 짠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이걸 보면 아 책방은 1층에 있어야겠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작은 책방이 따뜻한 온기를 부디 오래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좋아하는 김연스 작가의 에피소드도 좋네요

blanca 2025-07-31 11:42   좋아요 1 | URL
우연히도 이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게 됐어요. 언제든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동네서점 한 곳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따뜻한 스토리가 많더라고요.

moonnight 2025-07-3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따뜻합니다^^

blanca 2025-08-01 07:54   좋아요 0 | URL
서점 얘기는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 같아요. 동네 서점은 추억저장고죠.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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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국, 조국, 민족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슬로건이 되어 지나치게 화석화된 용어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개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혹은 기대보다 훨씬 자신이 속한 민족, 나라, 문화, 언어에 영향을 받는다. 


잠깐 미국에 거주한 경험으로 내가 이민자의 삶을 감히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스쳐가듯 만난 이민자 친구들이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겪고 소화하고 때로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다른 피부 색깔이나 식습관, 언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오랜 기간 그곳에서 살아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미국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도, 한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그들은 떠나온 나라를 "내 나라"라고 표현했다. 다시 돌아갈 일이 없어도 그랬다. 오래 전에 떠나왔어도 이민이라는 건 내가 떠나온 그곳을 녹여 융합하는 과정이 아닌 것 같았다. 



한때 트럼프의 심장 질환 주치의였던 아버지를 둔 2세대 이슬람께 이민자 극작가 아야드 악타르의 자전적 소설인 <홈랜드 엘레지>는 도발적이면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일단 픽션이라는 외피를 입은 자전적 요소의 과감한 표현이 강렬하고 생생하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들은 '그래, 이건 지어낸 소설이야.'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정도였다. 물론 그 경계가 어디인지는 작가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의사 이민자인 아버지가 만난 당시의 트럼프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병을 고치러 와준 무슬림 의사에게 보인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이후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고 아들과 이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낳고 키운 아들 앞에서 때로 자신이 떠나온 나라를 폄하하고 미국을 칭송한다. 기회의 땅, 준법의 땅, 성취의 땅. 이 판도가 바뀐 것은 911 이후였다. 사람들은 단지 무슬림의 겉모습을 지녔다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오래전 이미 떠나온 조국, 민족, 종교를 상기시키고 배척한다. 무슬림은 존재만으로 배척, 배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수시로 하게 되고 각종 민감한 사안에서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결정타가 된다. 911의 상흔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겼고 이것은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온한 일상이 외부인들의 테러에 의해 언제든 유린당할 수 있다는 학습은 모두의 미래를 불안 속에 잠식시켰다. 


작가의 아버지는 환자가 제기한 지난한 의료 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도망치듯 빚을 남기고 그렇게나 칭송하던 미국을 떠나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내 피의 모든 원자가 이 땅의 흙, 이 땅의 공기로 빚어졌다. 하지만 이 많은 것은 나의 것이 되지 않으리라."고 선포했던 아들의 마지막 문장은 결국 미국이 내 고향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의 설득력은 결국 작가의 필력에서 나온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렇게 이입해서 읽은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 <홈랜드 엘레지>는 그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낯선 이야기다. 낯선 이야기가 일깨우는 그 고유의 공감대는 인간이라면 결국 태어나 자란 한때 기억하는 내 고향에 대한 생래적 이끌림에 대한 엘레지, 고향을 떠나 순례하는 과정이 결국 삶이라는 자각, 언제나 우리의 타인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는 체념이 만나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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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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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이 제목만  놓고 보면, 쫄깃한 미스터리 소설을 연상시킨다. 굳이 이 인류학 책을 소설에 빗대자면, 주인공 카라마는 오히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인류학 보고서의 중심 캐릭터인 카라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한 이런 인류학 필드워크 책은 자칫 피상적이고 딱딱한 외부자적 시선이라는 한계를 갖기 쉬운데, 저자이자 조사자인 일본인 여성 오가와 사야카는 실제 그 집단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밀한 문화와 정서적 교감을 직접 경험한다. 


이 책은 홍콩중문대학의 객원교수로 가게 된 오가와 사야카가  홍콩 중심가인 네이선로드에 위치한 '청킹맨션'에 집단 거주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인들의 비공식적인 공유경제를 조사관찰한 보고서다. 아프리카 상인들의 교역을 연구하기 위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오고간 경험으로 스와힐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저자는 중고차 매매상인 중년의 남자 카라마와 친구가 되며 그들만의 독특한 "겸사겸사" 문화를 통해 구축된 생업의 현장을 파고들게 된다.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아프리카 천연석 매매, 중국,홍콩 아시아 등지의 자동차, 건축자재, 중고 물품 매매, 등은 놀랍게도 SNS를 통해 이루어진다. 평소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넓은 네트워크는 실제 서로의 생계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의 접점을 이루고 어떤 세련된 체계나 법규가 없어도 그럭저럭 원활하게 굴러가며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특유의 문화로 자리잡는다. 때로는 온갖 수상쩍은 거래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타고 이루어져 조사자를 어리둥절케 하지만, 일단 이 머나먼 타국에서 누군가가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일심단결하여 돕는 모습은 뭔가 숙연한 구석이 있다. 특히나 동족의 죽음 앞에서 그 시신을 고국 탄자니아로 수송하는 일에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금하고 번거로운 일을 떠맡는 모습은 일견 부럽기도 하다. 타인의 일에 얽히는 걸 극도로 기피하고 개인의 능력을 그 사람의 미덕이나 가치로 평가하는 현대 우리 사회의 풍조를 생각할 때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 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 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pp.259

 

뜨끔한다. 이건 지금 여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같다. 심지어 친한 친구 간에도 저번에 네가 밥을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야 한다, 같은 부책감을 가진다. 기브 앤 테이크. 이런 호혜성은 사실 무서운 논리를 밑에 깔고 있다. 더 이상 내가 그런 역학 관계에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그 관계는 무너진다는 호혜 등가성이다. 이 틈새에서 이 홍콩의 동아프리카의 중구난방 연대는 다른 시사점을 준다. 돈을 벌어 고국에서의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개선하기 위해 머나먼 아시아로 왔기에 이들에게도 상대가 자신의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들에게는 사람을 고정된 정체성으로 바라보거나 평가하는 대신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유연하게 본다. 자연스럽게 타인과유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때로 이해타산이 맞으면 서로 동시에 이익을 본다. 이 느슨하고 체계 없는 관계는 상대가 갑자기 가진 것을 잃거나 사회적 약자가 되어서도 유지된다. 아프거나 죽거나 다치면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낯선 상대의 도움을 믿고 기댄다. 비록 자기가 당장 그 도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어도 이 신뢰는 단단하다. 언젠가 자기나 자기와 연결된 이가 또 다양한 형태로 그 도움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돌려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약자가 되어도 여전히 그런 연대의 안전망에 기댈 수 있다는 인식은 든든한 안정감이 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 그것도 언어도 피부 색깔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방인의 삶에서 그런 안정감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의 의미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런 연대의 네트워크는 ICT, 인공지능 기반으로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는 미래지향적 공유경제에도 하나의 대안적 모델이 되어줄 수 있다.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한다. 즉 언제나 공통의 이해 관계를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연결된다. 이 연결은 고리타분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 이 부담없음이 연결을 더 활성화한다. 


엄청난 명분이나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은 얼마나 개인을 고독하고 불행하게 만드는가.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강박은 구조적 불행을 때로 개인의 것으로 치환하여 한 사람의 생을 짓밟는다. 우리는 실패하면 때로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죽인다. 내가 사회에 계량적인 숫자로 환원 가능한  기여를 할 수 없는 삶은 때로 가차없이 단죄당한다.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이 때로 민폐로 여겨지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나날이 희박해져 가는 차가운 사회에서 우리는 일상을 전투처럼 산다.


카라마는 자신을 주인공을 하여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낸 이 책의 출판을 알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자 그는 웃는다.


"괜찮아. 사야카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인류학 보고서가 어떻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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