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구 여행기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문경연 지음 / 뜨인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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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되면 교보문고 문구 코너 다이어리 판매대는 여전히 붐빈다. 내지를 그득 채우지 않더라도 새해에는 무언가 좀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일종의 의식처럼 종이 플래너를 사는 습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스마트폰을 껴안고 살아도 내가 새해에 가지는 비장한 결심에는 종이와 연필이 필요한 법이다. 그 틈에 중후한 노신사가 서서 다양한 다이어리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신에게 새해는 당신을 둘러싼 젊은이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겠지만 여전히 새로운 결심과 의지와 파이팅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날이 죽어간다고 이곳저곳에서 애도하는 활자의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문구 시장은 건재하다. 쓰지 않는 연필이라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연필들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종이 노트, 다이어리 꾸미기(일명 다꾸), 스티커, 스탬프, 엽서, 파일 등에 다양한 브랜드가 생겨나고 확장된다. 사람들은 꼭 그것들을 백프로 소비하지 않아도 소유하고자 수집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꺼이 굴복한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고 대단한 공간을 요구하지 않는 이 시장이 죽지 않는 것에 안도한다. 동네 문방구가 하나둘씩 문을 닫아도 그 안에서 고작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 지우개 한 개를 한 시간이 넘게 고르며 주인 아주머니와 근황을 주고 받던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 비단 책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문구에게까지 확장된다. 이 사랑은 그런데 왠지 떳떳하지가 않다. 그게 문제였다. 문구 사랑은 왠지 내밀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불러온다. 


'아날로그 키퍼'라는 범상치 않은 문구 브랜드를 운영하는 저자도 그러한 저어함을 고백한다. 이 책의 표지에는 심지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대신 문구덕후는 63일간의 문구 여행을 감행한다. 파리에서 베를린에서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에서 상하이에서 그녀가 찾아간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문구점이었다. 문을 열기 전 대기했다 주인이 장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설레어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구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다. 문방구에 찾아가고, 사진 찍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 멋진 문방구를 눈으로만 담으면 되지, 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배배 꼬인 마음을 이겨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잔뜩 흡수했다. 마음껏 호들갑을 떨었다. 

-p.180


그녀의 호들갑이 때로 생략했던 기록들이 쑥스러워했던 사랑이 열정이 이 책의 골조다. 그 여정에서 사회에서 주입한 것들이 아닌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세상을 향해 표현하는 일은 통속적이지 않다. '아날로그 키퍼'에서 구입한 소위 떡메모지의 그 평범하지 않은 격자무늬도 주인장의 마음을 알고 나니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를 목도하는 느낌이다. 그 사랑은 언뜻 가벼워보이지만 제대로 느끼면 묵직하다.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의 시연에 전염된다. 내가 제대로 미처 표현 못했던 사랑들에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은 이 아름다운 음각의 각인들이 남아 있는 하얀 책에 대한 되돌려 보내지 못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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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다층적이고 가변적이고 복합적이다. 한 마디로 단정짓기도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떤 역학 관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구태여 갑과 을이라는 구도를 떠올리지 않아도 그렇다. 힘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많이 가 있을수록 그 관계가 건강한 지속성을 가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쉽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지만 그것 또한 관계와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져 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관계로 상대를 포용하기로 설정한 불균형에 다름 아니다. 끊임없이 배신하는 연인을 언제나 받아주며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 자위하는 것은 그런 드라마에 중독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역할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가 이미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인에이블러(Enabler)'다. 
















표면적으로는 '조력자'인데 이러한 의존 관계가 결국 도움을 받는 사람의 성장과 삶까지 망친다는 통찰은 놀랍다. 저자 스스로를 '인에이블러'로 칭한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우울증을 가진 배우자의 아내로 그녀가 해왔던 역할은 그들의 우울감, 분노를 받아주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의사 결정을 대신해 주고 여러 부정적인 상황의 방패막이 역할까지 떠안는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역할이 사회적으로 결혼한 여자에게 기대하는 이상주의적 기대와 겹친다,는 지적은 기억할 만하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자질구레한 일상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 학원으로 실어나르고 교사에게 아이의 지각 이유까지 대신 변명하며 뒤치다꺼리를 하는 아내, 엄마의 모습은 여기에서 얘기하는 '인에이블러'의 초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력자의 역할이 결국 그 의존 관계에서의 상대가 실제 삶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며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성장의 저해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대목이다. 상대를 위해서 한 행동이 결국 상대에게 방해가 됐다는 자각은 저절로 오기 어렵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했는데 너는 더한 것을 요구하고 그간 내가 주었던 것들까지 부정한다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부부 관계, 부모자식 관계에서 이러한 비극적 역학이 발생한다. 그것은 삶 그자체가 문제가 없이 완벽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고 한다. 그러한 완벽한 삶을 선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고 그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팔을 걷어 부치고 해야 한다,는 믿음은 결국 나도 상대도 그리고 그 둘의 관계도 파괴하게 되는 맹신이다.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소재로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저자의 설득력은 기대 이상이다. 나도 나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저도 모르게 인에이블러가 되었던 적도 그 상대가 되었던 적도 있다는 깨달음은 명치를 가격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내가 속해 있는 원가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과 아직 단단하지 않은 내 자존감의 허약한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앎 또한 그랬다. 결국 내가 내 자신에게 가진 사랑의 양 만큼 상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된 관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삶이 그 어떤 고난, 상실, 고통 없이 완벽할 수 있다는 유아적 믿음에 매달리는 한 인간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잘 사는 삶은 삶 자체의 모순과 그 불완전함과 변화를 포용하려는 그 기꺼움에 기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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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blanca 2020-01-10 08: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2020년 되기를 바랍니다.
 
휘파람 부는 사람 - 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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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는 사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것같다. 여러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녀의 시가 낭송되고 각종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은둔에 가까운 삶을 그녀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시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느낌으로 응답한다. 그리고 그녀의 동반자를 묘사한 시 <휘파람 부는 사람>을 그래도 딴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 되었다.


<휘파람 부는 사람>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활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고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솔직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그녀를 대면하지 않아도 그녀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온한 삶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주에는 황금빛 작은 태양 같은 거북이알을 먹었고, 오늘은 주엽나무 꽃을 먹을 것이다."는 엉뚱한 고백. 관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손수 요리해 먹으며 살찌우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진다. 가식도 과장도 생략도 없다.


그녀 자신의 얘기뿐만 아니라 프로스트, 휘트먼, 포에 대한 이야기는 짧은 지면 안에 시인들의 전생애를 심도 있게 관찰하고 그들의 시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분석도 인상적이다. 막연하게 그들의 삶의 단편들을 접하고 그들의 시를 토막토막 끊어 읽는 우리들에게 진짜 시인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위대한 선구자들에 대한 분석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구나 싶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일례로 우리는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포가 왜 그렇게 음울하지만 아름다운 시들을 토해냈는지 그의 성장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게 된다. 시인들의 개인적 삶을 그들의 시와 분리해서 이해한다는 건 그들의 작품을 진정한 의미에서 해독하는 데에 한계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다가 가느다란 은빛 줄무늬가 들어간 검정 레이스를 흔들어 과시한다. 이따금 개들이 행복한 발로 모래밭을 질주하다 올아온다. 우리가 다시 방파제에 이르러 마당을 건너기 전에 밤은 지나가버린다. 우리는 집 문 옆에 서 있다. 우리는 날카롭고 흰 낮으로 이어지는 연푸른 반도에 서 있다. 작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장미 덤불 아래서 뛰어간다. 개들이 기분 좋게 짖어댄다. 

날마다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p.138


그의 전령인 말로 그려지는 그림 같은 풍경에 사람과 문명은 없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휘파람 부는 사람'이 든든하게 서 있다. "아름다운 걸 보고 가슴이 환호할 때마다 달려가 말해 주고 싶은" 사람이다. "사춘기가 다시 돌아온 기분"을 느꼈던 사람과 30여 년을 함께 살아왔다는 그녀의 고백은 감동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고 삶의 의미를 확신하는 시인의 희망어린 마무리에 2020년이 따스해져 온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그녀와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하다. 사족이 필요없는 얘기다. 간직하고 싶은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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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1-03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을 읽으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와 테이트를 떠올립니다. 아침부터 뭉클합니다 감동 감사드려요ㅜㅜ

blanca 2020-01-03 16:4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달밤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몇 번이나 읽을까 하나 지나갔는데 결국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하긴요, 시간 내서 글 읽어주시는 님이 고맙죠.

프레이야 2020-01-03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모닝 블랑카님
우리 모두는 서로 운명이다. ^^

blanca 2020-01-03 16:46   좋아요 1 | URL
벌써 오후가 되어버렸네요.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프레이야님. 많은 성취가 있었던 나날들 더 복된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라로 2020-01-03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름 알라딘에서 메리 올리버를 일찍 발견했다고 혼자 우쭈쭈하는 저는
이제 메리 올리버와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네요.
너무 책을 안 읽고 있는 저는 블랑카 님을 보며 반성은 안 하고 그냥 부러워 하는 걸로 만족.^^;;;

blanca 2020-01-03 16:48   좋아요 0 | URL
라로님은 지금 정말 바쁘고 보람된 나날들을 보내고 계시잖아요. 저는 라로님이 부럽습니다.^^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 테오리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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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며 의례와 의식이 단순히 허례허식이 아니라 생의 주기마다 일어나는 탄생, 성장, 진학, 결혼, 죽음 등의 외부 사건을 자신의 내면과 삶에 통합하는 데에 적잖은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간소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그 의식 자체가 가지는 무게는 폄하할 것이 아니다. 특히 장례식이 그러하다. 어쩌면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은 자, 우리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자를 보내고 기억하고 아쉬운 점, 죄의식을 절차에 의해 떠나 보내고 남은 역할을 추스르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살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매년 나는 우리 타운 사람들 이백 명을 묻는다. 거기에 추가로 서른 명 정도는 화장터로 데려가 불에 태운다. 나는 관, 지하 납골당, 유골함을 판다. 부업으로 묘석과 비석도 판매한다. 요청이 있으면 꽃도 취급한다.

-p.17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의 저자 토마스 린치의 직업이다. 그는 시인 장의사다.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 종사하는 일종의 가업이다. 그와 그의 형제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다. 친구, 이웃 주민, 동료의 죽음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시를 쓴다. 만가를 부른다. 


우리의 핵심-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은 늘 죽음과 죽어감과 슬픔과 사별이었다. 그러니까 생명, 자유 또......뭔가의 추구 같은 더 강건한 명사들의 취약한 하복부인 셈이었다. 우리는 작별, 안녕, 마지막 경의를 거래한다.-p.45


시인이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물려준 아버지는 언제 장례에 관한 책을 쓸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응답이다. 시인과 장례지도사를 오가며 그는 결국 어떤 노래든 죽은 자를 추모하는 만가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일랜드인 이민자로서의 성장과정, 숱하게 보고 듣고 경험한 불합리한 죽음들, 이혼하고 싱글파더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했던 나날들, 죽음을 거래해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 들은 그의 묵직한 때로 자조적인 어조에 실려 과연 우리가 죽음을 전제한 삶의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 반문하게 한다. 그가 결국 사랑과 믿음, 지금 이 순간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진부하지만 설득력 있는 진실이라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된다. 종착점과 마침표를 안다고 해서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그 균형의 지점에 어떻게든 폭력이 개입되기 마련이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의 얘기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그는 숱한 죽음을 목도하며 스스로 택하는 죽음에 찬성하거나 전염되지 않는다. 


이월이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게 나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세부적인 것들에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굳이 물어보니-이월이면 좋겠다. 내가 처음 아버지가 된 달, 내 아버지가 죽은 달, 그래. 심지어 십일월보다도 낫다.

-p.369


그 자신의 장례를 위한 지침이다. 그의 자녀들이 절대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말기를 바라는, 끝까지 아버지의 장례의식을 참관하고 참여하고 함께 하기를. 그래서 마침내 잘 떠나 보낼 수 있기를, 남은 죄책감마저 그대로 온저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별로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그 엄연한 종결들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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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9-12-3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은 죄책감마저 그대로 온전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는 글이 아프지만 깊은 느낌을 줍니다.
블랑카님은 아직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뤄본 적이 없을 것 같은데,,,책을 많이 읽으시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이시라
경험을 안해도 이런 문장이 나오나봐요.^^;
그나저나 언제 미국에 또 안 오세요? 보고싶네요.^^ 새해 인사도 전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9-12-31 09:55   좋아요 0 | URL
라로님, 흑, 그립네요. 프쉬케님도 함께 참 따뜻하게 맞아주셨는데... 아마 제가 미국 가는 것보다 라로님 한국 오시면 뵐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어요. 라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로님에게도 왠지 근사한 한 해가 될 듯합니다. 보지 않았는데도 왠지 친하게 느껴지는 해든군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
 
Olive, Again (Library Binding)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Center Point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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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이듦이란 참 묘하다. 그 사람이 가졌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욱 강조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중장년때 교육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억눌렀던 여러 고약한 기질이 노년에 드러나기도 한다. 자기다움은 이제 더 이상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지점으로부터 더욱 진하게 표출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것이 오히려 그래서 다행한 일이라 했다. 우리의 올리브 키터리지라면 애저녁에 그녀의 오지랖, 성마름, 고집불통의 성정으로 유명했으므로 그녀의 노년은 더욱 다채로울 것이라 짐작 가능하다. 


열세 편의 이야기는 그녀의 재혼 상대(그렇다, 그 유명한 약국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전남편 헨리의 죽음 후 올리브는 마을 주민 잭과 재혼에 성공한다) 잭의 "체포"로부터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잭이 우연히 교통 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에피소드에 그의 삶 전체를 농밀하게 압축시키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능력은 여전히 놀랍다. 그녀는 서너장의 짧은 이야기에 한 사람 전부의 인생을 밀어넣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짧은 이야기로 올리버의 재혼 상대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평범하지만 고지식하고 올리브 같이 세고 기이한 여자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품을 상상한다. 


십 대 소녀가 파트타임으로 청소일을 하며 경험하게 되는 묘한 이끌림을 다룬 이야기 <Cleaning>은 그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상실과 성장을 소화해내는지에 대한 과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이기도 하다. 소녀가 한 행동, 소녀가 느낀 감정은 올리브의 시선을 통과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갖는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때의 치기들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잊어버렸던 그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Motherless Child>는 올리브의 장성한 아들 가족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머무르며 일어나는 좌충우돌을 통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고 그 자녀를 독립시킨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톺아보게 한다. 성장한 아이들은 부모와 불화하고 부모의 마음에 차지 않는 배우자를 데리고 온다. 온화하고 따뜻한 정기적인 재회의 풍경은 올리브의 것이 아니다. 그녀가 종반부에 불현듯 비호감 며느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올리브 자기 자신을 빼닮았다는 것을 깨닫는 반전이 재미있다. 아들은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와 꼭 닮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아들은 바로 본인이 그렇게 키운 것이다,는 각성은 올리브를 전율케 한다.


죽음을 앞둔 예전의 제자를 찾아가는 올리브는 더 이상 훈계하거나 조언하려 들지 않고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을 가감없이 공유한다. 이러한 공명은 이 이야기들의 배경인 작은 해안 도시 코스비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대한 반짝반짝한 묘사와 어우러져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마지막 2월의 빛의 아름다움에 함께 감탄하는 대목은 근사한 마침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이야기는 마냥 동화스러운 것이 아니다. 경제적 격차, 지역색, 정치관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그 불화의 지점을 그녀는 잊지 않고 포착한다. 그 불통의 지점은 그러나 끝이 아니다. 그녀의 인물들은 그것이 몰고온 그 사소한 오해와 반목을 성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손을 잡고 서로의 고충, 상실을 나누려 노력한다. 그러한 성의와 노력은 우리가 아무리 살고 또 살아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신비를 공유한다는 더 높은 차원에서의 연대에서 가능할 것이다. 항상 정력적이고 에너지가 넘칠 것 같았던 올리브가 점점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길로 발을 딛는 여정에 대한 묘사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우리 모두가 걸어야 할 그 미래상을 우리의 올리브를 통해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올리브다운 올리브는 건재하는 것으로 작가는 아량을 발휘한다. 죽음에 대하여 삶이 남긴 그 숱한 부스러기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 그렇다고 삶 자체를 폄하하거나 무의미함으로 쓸어담지 않는다. 그것은 올리브의 힘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과 신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전히 올리브의 목소리는 귀에서 쟁쟁거린다. 그 다음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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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2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 다음의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 이렇게 있네요! 게다가 또다른 이야기들로 생생하게 말입니다. 저는 번역본 기다렸다가 읽을래요. 너무나 기다려지는 책입니다.

blanca 2019-12-12 17:12   좋아요 0 | URL
제가 아마 다락방님 덕분에 올리브 키터리지 읽었을 걸요? 아, 너무 좋고 너무 짠하고 막 그래요... 이제 오늘 부로 새 책을 살 명분이 생겼습니다. ㅋㅋ

2019-12-12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에 반해 이 작가의 책은 무조건 전작하겠다 마음먹었죠. 그리고 번역된 책들은 구입은 다 하고 두 권 정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데... 아~~ 이 책은 언제쯤 번역되어 나올지.... 기다림의 설렘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이렇게 미리 귀뜸해주셔서 감사해요 blanca님~ ^^ 기다리는 동안 읽지 못한 작가의 나머지 두 책도 읽으며 행복하게 기다려야겠어요. ^^

blanca 2019-12-12 17:14   좋아요 1 | URL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정말 작가인 것 같아요. 저도 전작을 해보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중간에 그만둬서 어떤 책을 읽고 안 읽었는지 감이 잘 안 온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드라마도 진짜 좋대요. 오, 그 기다리는 기분 알지요. 그런 작가가 있다는 건 큰 행복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