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구름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1
쇼노 준조 지음, 오하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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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힘든 일을 겪게 되면, 평온한 일상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반문하게 된다. 그 일상을 영원히 누릴 수가 없는데? 어쩌면 지금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과한 욕심 아닐까?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초라해도 그 현실마저 누릴 수 없는 끝이 온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특히나 빛나는 것일수록 더 빨리.


<저녁 구름>은 1960년대의 일본 도쿄 남서부의 농촌 마을 다마 언덕에 집을 지어 이사 온 한 가족의 잔잔한 일상적 이야기다. 대단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사건, 사고도 없다. 십대의 남매, 소학교를 다니는 막내 아들을 키우는 오우라 부부가 바람을 막아줄 나무를 심고, 길거리 행상에서 배를 사먹고, 음식에 넣을 마를 갈고, 느닷없이 덮친 벼락을 피하는 이야기다. 느릿느릿 가는 시간의 결에 실린 보통의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단조롭고 고요한 리듬에는 미묘한 매력과 위안이 있다. 속깊은 누나 하루코, 시험 시간표도 모르는 중학생 야스오의 엉뚱함, 마냥 아이일 것만 같은데 어머니 요리를 위해 은행을 주워오는 막내 쇼지로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생생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넘어가는 책장이 아쉬울 정도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저녁 구름처럼 이내 사라지는 이들의 나날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는 작가가 대단한 플롯을 짜지 않아도 독자들에게 소구력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감기를 심하게 앓고 회복한 쇼지로가 형 야스오와 함께 새로운 '활과 화살'을 만들기 위해 뛰어간 산속에서 발견한 '춘란'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은 것은 못내 아쉽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그 착시 속 갱신되는 생의 약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영원할 것만 같지만 다음 순간에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에 대해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작가 쇼노 준조는 성공적으로 그 일을 마무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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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키럽 - 인간이라는 동물을 이해하기 위한 18가지 질문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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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폴스키의 벽돌책에 진입장벽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 책부터 시작하시길. 인간이라는 동물을 이해하는 데 이 위트 넘치는 과학자의 이야기보다 더 쉽게 제대로 접근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가장 섹시한 행동이 친절함이라는 정보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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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ㅣ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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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솔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에세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느 누가 읽어도 맞닿아 있는 공감의 지대에서 위로 받는다. 그가 쓴 모든 논픽션을 따라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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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이시다 센 지음, 서하나 옮김 / 1984Books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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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다양한 시점으로 묘사한 에세이집인데 마치 단편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책속 "오늘이 일생이야!"라는 문구처럼 이 평일의 풍경은 아름다운 일생의 농축된 버전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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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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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사이 료는 <정욕>으로 처음 만났다. 도발적인 제목, 제목 만큼이나 욕망의 다양성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게 관용적인 시선으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던 소설이다. 비범할 정도로 잘 쓴 이야기이긴 했지만, 작가의 가치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나오키상을 받은 <누구>는 취업 준비 대학생들의 SNS를 통한 내밀한 심리 싸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가차 없이 그려낸 작품으로 역시 이 작가의 필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다 싶었다. <인 더 메가처치>는 2026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한 작품이라고 해서 번역을 기다렸다. 가독성 좋은 단문으로 쓰인 소설인데도 휘리릭 한 자리에서 읽을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며칠에 걸쳐 되도록 천천히 읽으려 속도를 조절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수많은 질문들이 몰아쳤다. 의심 없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오랜만에 묵직한 감동도 느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십 대 후반의 음반 회사 재무회계팀에 근무하는 이혼남 구보타, 구보타의 딸로 유학 준비 중인 대학생 스미카, 최저 시급 파견직으로 그날그날의 고단한 노동으로 미래의 희망까지 저당잡힌 30대 여성 아야코의 세 사람 시점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된다. 


회사에서도 재무회계 한직에서 별 볼 일 없던 취급을 받던 구보타는 어느날 잘 나가는 프로듀서 동기의 제안으로 오디션 출신 아이돌 그룹의 특별홍보 업무를 맡게 되며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그에게 떨어진 요구는 바로 '서사'다. 나날의 전투 같은 희망 없는 삶에 지친 이들을 이 '서사'로 끌어들여 쓸모 없는 구즈를 사게 하고, 팬미팅 티켓을 사게 하고, 듣지도 않을 수백장의 CD를 사게 하는 과정은 미국의 메가 처치에서 신도를 유인하기 동원하는 전략과도 닮았다. 


"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을 조종하려면 '서사'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아요."


구보타가 홍보 전략을 짜게 된 팀은 공교롭게도 방황하던 딸 스미카의 덕질 상대가 된다. 아버지가 유학 준비를 한다고 믿고 지원해 준 용돈은 그 아버지가 속한 팀이 소위 팬덤에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설계한 루프로 빨려들어간다. 그러나 아사이 료의 서사는 물론 이 한 겹이 아니다. 그래서 그 둘은 파멸했는가? 불행해졌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의 흔들림에 이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 


구보타는 홍보를 맡았던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다.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권하는 화장품도 산다. 연락이 되지 않자 그의 숙소로 먹을 것을 사들고 무작정 돌진하기도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은 40대의 중년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구보타는 바로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잠시 잠깐 되찾는다. 사람 간에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것, 내 약한 모습을 노출하는 것, 사회에서 그 연령대에 기대되는 굳어버린 선입견을 부수는 것. 그건 딸 스미카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고 친구들의 비위를 거슬릴까 전전긍긍했던 그녀는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하며 연대하며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만끽한다. 분명 다시 한직으로 밀려난 아버지와 유학 준비도 어그러진 딸은 겉으로만 보면 추락한 것인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반전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층적인 메시지의 숙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추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야코다. 좋아했던 배우가 자살한 후 함께 뭉치게 된 사람들과 함께 결국 사기꾼에게 걸려 돈을 날리고 이 모든 팬덤 문화가 결국 진짜를 보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대 세력의 음모라는 믿음으로 가두 연설까지 하며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날의 청춘들이 때로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좋다고 옳다고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을 붙들고 그 편견 안에 가둔 세상은 얼마나 빈약한가. 그 틀을 깨고 나가고 직면해야 하는 우리 인간의 민낯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것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때로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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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03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욕] 을 읽고 이 작가에게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 리뷰를 읽고보니 이 책은 한 번 읽어볼까 싶네요. 블랑카 님과 정욕에 대한 감상이 비슷했으니, 저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blanca 2026-08-03 21:15   좋아요 0 | URL
<정욕>은 너무 나갔죠. 저도 후반부는 도무지 이해가... 그런데 <누구> 읽고 어, 좋다, 했거든요. <인더메가처치>는 더 좋더라고요. 삼십대 작가가 쓴 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십대 후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더라고요. 남자 작가가 쓰는 여성 캐릭터나 젊은 사람이 쓰는 나이 든 사람 심리 이런 거 허술하면 바로 공감 안되잖아요. 여튼 이 작가 책은 다시 한번 따라 읽어볼 예정입니다. 유튜브로 인터뷰도 찾아 봤네요. ㅋㅋㅋ 오랜만에 아주 흠뻑 빠져 읽었어요. 그래도 뭔가 소설을 밀고 나가는데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긴 해요. 보통 사람은 아닌 듯요.

잠자냥 2026-08-03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지금 265쪽까지 읽었어요. 저는 제목만 보고 교회나 믿음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이돌/팬덤 이야기 나와서 약간 당황….하다가 종교나 정치랑 엮는 부분 보면서 어쩌면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중독을 양산하고 거기에 매달려 살아가게끔 하는 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음식이나 한국 아이돌(기획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해서 좀 신기하기도 한….

blanca 2026-08-04 08:53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도 읽고 계시는군요. 아사이 료가 결국 이 시스템이 현대 사회 맘 붙일 곳 없는 개인의 결핍을 이용하여 목적을 이룬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치, 팬덤도 다르지 않다고 보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절대악이냐? 하면 또 그런 건 아니라는 시각을 보태고요.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6-08-03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들은 왠만하면 다 좋았어요. 이 작가는 저는 처음인데 읽고싶은 마음이 막 드네요. 요거 읽고 좋으면 블랑카님이 말한 누구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26-08-04 08:55   좋아요 1 | URL
아, 안 그래도 일본 서점대상이 좋다고 저도 그래서 기대 가득이었답니다. 바람돌이님 읽으신 것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 추천해주시면 읽어보고 싶네요. 아사이 료는 작품 편차가 좀 있긴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입니다.(제가 주목한다고 뭐 권위도 없고 별 수는 없지만요 ㅋㅋㅋ)

잠자냥 2026-08-04 09:5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 <정욕> 금지! ㅋㅋㅋㅋ

잠자냥 2026-08-05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거 다 읽고 이 대사 생각났어요.
아임유어 파더! (다스베이더 목소리로) ㅋㅋㅋㅋㅋㅋㅋㅋ
참이슬이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6-08-05 09:5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참이슬이가!

다락방 2026-10-05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는 중인데 너무 재미 없어서 포기할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 미치겠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

blanca 2026-10-05 14:53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재미없다 생각하면 참지 않고 그만 덮어요.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