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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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준 감동의 여운이 길었다. 지금도 작가가 묘사한 건축 사무소의 아침에 모두가 연필을 깎는 정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그가 그려낸 시간의 경과에 따른 한 사람의 성장과 노쇠의 여정은 마쓰이에 마사시만 표현할 수 있는 유려한 흐름으로 각인된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색깔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동안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제 인생의 능선을 하나 넘는 중년의 길에서 소에지마 하지메가 귀향하는 삶의 이야기에 날것의 감정이 덮쳐와 거리두기가 쉽지 않아 때로 멈추어야 했다. 특히 누나 아유미의 죽음의 대목에선 작년의 죽음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러나 삶처럼 읽는 일도 결국 그러한 것들을 경험하고 넘어서야 하는 과제다. 


이야기는 훗카이도 섬의 에다루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소에지마 가족의 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중심 화자는 하지메와 누나 아유미, 고모 가즈에, 도모요, 에미코, 할머니 요네 등 수시로 변동하며 똑같은 일도 각자의 시점에서 재해석되어 서술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의 반려견 에스, 지로, 하루의 이야기가 있다. 동물은 생과 사와 멸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곁에서 충직하게 그 순환의 주기에 복종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위로와 교감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깊다.


서두의 하지메를 따라다니는 '소실점'은 중요한 상징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 돌아가는 그 죽음의 은유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메는 누나 아유미와 소년 시절 친한 남매가 아니었다. 관심사도 성향도 판이하게 달라 공감대가 없었다. 그러나 천문학을 공부했던 누나가 삼십 대에 급작스럽게 암투병을 하게 되고 죽기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누나의 죽음으로 향한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그것은 하지메도 결국 따라갈 길이라는 강한 인식과 맞물려 있다. 


작가는 하지메의 할머니 요네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조산사로서 일했던 과거를 결말부에 배치함으로써 결국 우리 인간이 나이들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소실점으로 축소되는 여정을 또 다른 의미에서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차원에서의 순환이 아닐까. 누군가는 죽고 다시 누군가는 또 태어나며 다시 저마다의 소실점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각자 유한한 삶과 그 삶의 종결부를 함께 선사 받는다. 그것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결혼하지 않은 고모들, 그 시누이들과 옆집에 살며 개인적인 행복이라곤 누릴 수 없었던 어머니, 꿈을 펼치기도 전에 죽어버린 누나, 그 자신도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삶이다. 마침내 돌아온 고향에는 치매에 걸린 고모들, 그런 주변 상황에 무관심한 늙은 아버지, 무기력한 어머니만 남아 있다. 그러나 마쓰이에 마사시는 하지메가 절망하거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만의 미덕이 있다. 소에지마 가는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인 의미의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의 이야기다. 소에지마 가의 할머니 요네는 수많은 생의 탄생의 광장에서 잊지 못할 역할을 했다.


"자, 잘 왔어. 넌, 잘 온 거야. 봐, 자, 그래 편하게 있어. 자, 보라고. 봐, 태어난 거야. 여자아이구나, 축하해. 수고했어. 아주 잘 왔어."

-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이 얘기는 할머니 요네가 손수 받은 손녀 아유미가 태어나자 한 환영의 인사다. 아유미가 채 사십 년을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도 생이 세상으로 분출되는 것은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믿음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아유미의 죽음 전이 아니라 아유미의 죽음 뒤에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동생 하지메는 그것을 온몸으로 수긍한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에게서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생의 경로는 애닯도록 아름답다. 이제는 노년에 접어들었을 작가가 깨달은 삶의 비의는 소에지마의 이야기로 형형하게 형상화됐다. 그가 이야기하는 삶에 새기는 시간의 각인의 지형도는 여전히 이토록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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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2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드디어 이책 읽으셨군요, 책의 원제는 ‘태양의 개(光 の 犬)빛의 개)‘인데 한국어 제목이 훨씬 더 잘 와닿는것 갔습니다.

blanca 2021-04-12 11:02   좋아요 0 | URL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래도 원제목 일본어가 예뻐서 궁금했는데 그런 뜻이었군요!

2021-04-12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3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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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을 서사화하는 일은 도발적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명시적일 때 아이러니하게 실패한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욕이 이야기를 펼치는 일에 앞설 때 독자들은 물러선다. 제일 좋은 지점은 그 두 개가 우연인 것처럼 조우할 때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절로 다가갈 수 있을 때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런 면에서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비교적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는 공통적으로 주류 문화, 지배 담론에 저항한다. 거기에서 소외되고 배척된 여성 퀴어들, 장애인, 독립영화 종사자들,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리멸렬하지 않다. 어떤 예상이나 기대를 배반하는 지점에서 생동하는 결기가 빛난다. 


대상작인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첫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세상은 자명하게 반으로 나뉜다. 혼자 먹는 사람과 같이 먹는 사람.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혼자 먹는 둘은 만난다. 담배를 피면서. 연구소에서 나는 젊은 여자 사무보조 계약직이고 그는 연구자다. 그와 나의 계급은 분명하게 나뉘고 둘은 그것을 기민하게 인식하지면 교묘하게 서로에게 은폐한다. 언뜻 나와 그의 이야기로 전개될 것 같았던 예상은 그가 연상시키는 대학시절의 강사 장 피에르와 그가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나의 친구 연수의 그것으로 보기좋게 빗나간다. 장 피에르는 운동권이었지만 집안의 지원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학생들은 그를 숭배했다. 어리고 천진한 우리들은 그에게 보기좋게 이용당한다. 그것은 그립지만 역겨운 시절이었다. 이 시절의 기억의 포말은 모두를 뒤덮는다. 우리 모두 지금 돌이켜보면 도무지 아닌 것들을 동경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럴듯한 가짜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신분의 장점과 아우라를 영리하게 이용해서 그렇게나 스스로가 비판했던 기득권으로 들어가 연수 같은 수많은 젊은 여자들을 유혹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서른일곱의 나는 그의 서른일곱의 모습을 회고하며 그것이 유린한 스무 살들을 추억하며 그러나 그 환멸이 그저 무로 수렴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의식하는 행위를 다짐한다. 결말은 상투적일 수 있지만 여운은 길다.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놀라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체가 그랬다. 체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심지어 자음 발음이 뭉개져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금방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뒤틀리고 뭉개진 발음과 몸을 가진 체는 우리가 예상하는 수동성이나 주눅든 모습이 아니다. 학교에서 제안한 홍보모델 일에 대고 큰 소리로 "옹사오 영예고 옹짜오 우여역을 행악 하이 마고 제애오 온을 지불해어!"(봉사고 명예고 공짜로 우려먹을 생각 하지 말고 제대로 돈을 지불해요!")라고 외칠 수 있는 여성이다. 김멜라는 체의 대사를 발음이 뭉개지면 뭉개지는 대로 그대로 쓰는데 이게 또 묘한 게 점점 이야기에 몰입할 수록 마치 그 얘기들이 모두 정상인이 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장애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성정체성도 당당하게 오픈하는 체의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결국 우리가 우리와 서로 다르다고 의식하게 되는 성적 소수자들이나 장애인들과 소통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익숙해지는 것, 가치 판단이나 위계 판단이 개입하지 않는 것.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열두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당신'으로 하는 이야기는 게임을 잘 못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한 당신이 직접 게임 과외를 받아 아이에게 가르치려 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신이 아이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어쩌면 아이를 위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열두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지금 여기의 당신이 아니라, 타인에게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의식하며 아이를 사랑한다.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찔린다. 많이. 열다섯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것. 그것을 혹시 지금 여기 아이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박서련의 '당신'처럼 반드시 패배하는 게임이라는 깨달음은 거칠다. 아이들은 '엄마'를 욕처럼 금칙어로 사용한다. 나는 아이를 플레이어로 게임하지만 그 캐릭터마저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설정은 도발적이고 과감하게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놓치는 부분을 가격한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영화를 꿈꾸는 영화를 만드는 언젠가는 기어코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했던 지금은 사라져버린 수많은 시네필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송가다. 생존과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의 꿈을 유예하고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우리들이 노인이 되어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한 할머니의 모습과 만나 어떤 흐릿하지만 아름다운 전망을 만날 때 이야기의 마침표는 빛난다. 대단한 서사나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 이렇게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모든 이야기가 나름의 색깔과 결을 가지고 저마다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잘 읽히고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다만 남성 작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균형감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여성의 시선, 여성의 서사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한 결로 결속될 때 의도치 않게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우리의 세계는 반드시 남성, 여성으로 양분되어 이야기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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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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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광대하다. 다루는 시간은 사 세기 가량이고 공간은 지구와 우주를 넘나든다. 분량은 팔백 페이지를 넘는다. 저자 마리아 포포바는 "나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하네스 케플러,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브라우닝,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플레밍,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스, 레이첼 카슨의 "원자적 상호 관계의 일면"이 "교차점의 지도"를 이룬다. 포포바의 역할은 "광대한 규모의 사실주의"의 "의미의 해석자"로서 자리한다. 과학과 예술의 교차수분의 그림은 경이롭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이 사소한 모든 고민들이 결국 40억 년이 지나면 사라질 "창백한 푸른 별" 위의 지엽적인 드라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야기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깨닫고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가 지니는 의미와 무게를 고민하게 만드는 도발적인 책이다.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거대하고 무한한 책이다. 


이 경이로운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에게서 시작된다. 남성과 인습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녀들이 밟았던 새로 내었던 그 길은 남성들이 걸은 길과 어긋난 것이 아니다. 겹치고 만나고 때로 하나가 된다. 접점은 어쩌면 시대와의 불화일지도 모른다. 선견지명과 통찰은 항상 한 발짝 앞섰고 그것은 포용되거나 칭송되지 않고  기존의 기대와 통념과 반목했다. 그러니 남자 수학자 케플러의 어머니가 아들의 저작인 <꿈>에 대한 오해로 마녀 재판을 받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는 <진리의 발견>을 열기에 적합하다. 케플러가 자신의 <꿈>의 주석을 다는 일에 그토록 매달린 것은 그 이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함이었고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 시대에서 기초 교육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늙고 무고한 여자들에 대한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가 되는 열두 살의 마리아 미첼이 19세기 작고 고립된 고래잡이 마을에서 아버지가 사준 망원경으로 일식을 관찰하다 경이로움에 몸을 떨고  허먼 멜빌이 동경해 마지않던 나다니엘 호손을 비평하며 "모든 대상은 무한하다"고 감격하고 마거릿 풀러가 에머슨에게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넘긴 일, 에밀리 디킨슨이 오빠의 아내가 된 수전에게 끊임없이 연서를 쓴 일, 레이첼 카슨이 남편이 있는 도로시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일들은 개별적인 사실들이 아니다. 그것은 형태가 다른 사랑들이다. 그 사랑들은 완전한 귀결도 아니고 완벽한 응답도 받지 못한 채 때로 발신자들의 열정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도 있지만 그건 그 자체로도 어쩌면 충분한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특별했고 끈질겼고 자신들의 창조의 동력이 되기도 했고 묘한 형태로 사후에 응답받기도 했다. 저자 포포바는 이러한 그들의 삶을 끊임없이 교차시키고 병행시키며 하나의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짠다. 


우리의 개별의 삶은 각자에게 거대하고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영속적인 시간 차원에서 조망하면 때로 하찮고 허무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포포바가 이러한 이야기를 과학자들을 통해 반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우주의 때로 우리의 세포에 남아 불멸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라질 것이기에 하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으로 영원, 불멸에 합류하는 것이므로 존귀하다.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뿐이리라.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오늘 지금 여기에서 애타게 사는 당신과 나에게 새겨주고 싶은 이야기. 우리는 무한하다고 믿는 시간과 우주의 공간 안에서 유한하고  미소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그 무한조차 유한하다면 여기 이 지점은 얼마나 흔들리며 한정된 것인가. 그걸 깨달을 때 삶과 사랑과 생은 눈물날 정도로 가치롭고 허무하도록 아름답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일도 벌써 과거가 되어 간다. 우리는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존재들이다. 사랑하고 읽고 쓰는 일로도 찰나 같은 시간들이 앞에 있다. 존재는 하루하루 풀려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무로 돌아갈 그날을 상기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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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2-23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다 읽으셨어요! 전 사놓고 그냥 보관만...ㅎㅎ

blanca 2021-02-23 14:19   좋아요 1 | URL
번역이 좋아서 금방 읽혀요. 잠자냥님도 시작만 하시면 완독 금방 하실 겁니다.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이월 말까지 버티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음... 오늘이 23일이니까. 일주일을 ㅋ 제가 과연 책을 안 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유부만두 2021-03-07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다 읽었어요. 일주일 지났는데 아직 뭐라고 정리하기가 어렵네요. 태그는 잔뜩 붙여두었는데 그 구절들을 옮겨 써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아마 전 블랑카 님처럼 리뷰는 못 쓸 것 같아요. ㅜ ㅜ

찰라와 영원, 티끌과 전 우주를 오가는 위인들, 또 흔들리는 인간들을 교차해가며 만나고 오니 인간사 허망하지만 또 소중하게 보여요. 그래서 더 많이 많이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싶은데 ... 어쩌지요?

blanca 2021-03-07 18:05   좋아요 1 | URL
짝짝짝. 완독하셨군요. 그렇죠. 이 책 자체가 워낙 심오하고 거대해서 참 좋기도 했지만 그냥 흘려 보내기엔 뭔가 아직 다 읽은 듯한 느낌. 그래서 저 태그 붙인 부분을 필사했어요. 손은 아팠는데 이 과정에서 무언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구절들 옮겨 쓰는 것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그리고 쓰는 과정에서 내가 정말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대목도 정리가 되더라고요. 유부만두님 감상 저도 공감해요. 뭔가 정말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드는데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저도 혼란스럽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3-07 18:19   좋아요 1 | URL
저도 구절들을 따로 정리해 불게요. ^^ 이 책은 아직도 제가 읽는 (읽었던) 다른 책들 속에서 연결되고 있어요. 마치 이 책의 여러 위인들이 시간과 장소에서 교차하는 식으로요. 프루스트 3권에서 ‘친화력‘ 얘기가 나올 때 얼마나 반갑던지요.

참, 전 번역이 너무 엄격한 느낌이어서 영어책을 조금씩 읽어봤는데요. 영문이 더 리드미컬 하달까, 활기찹니다. 영어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려고요. (이런 계획 세운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습니까마는요;;;;)
 
나의 안토니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195
윌라 캐더 지음, 전경자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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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나날들이......가장 먼저 사라진다.-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의 노래>에서 인용한 제사는 <나의 안토니아>의 정서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응축해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중년의 화자가 밀과 옥수수의 거대한 평원으로 둘러싸인 네브래스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전형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자신이 유년 시절 간직한 자연과 생명의 불꽃의 현현 같았던 소녀 안토니아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대지와 자연, 삶의 실재,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형상화했다. 소년의 성장기는 사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유럽의 이민자 처녀들의 그 약동했던 혈기와 적극성, 생의 약동하는 의지를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다 읽고 나면 알아차리게 된다. 작가 윌라 캐더가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중년 남자 짐 버든의 시선을 통과한 그 인습과 전형성에 위배되는 처녀들의 모습이었다는 깨달음은 극적인 반전 이상이다.


부모를 잃고 조부모가 사는 네브래스카로 향하는 소년의 여정은 보헤미아 이민자 쉬메르다 가족의 그것과 겹친다. 가난하고 영어를 제대로 못 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찌든 그 가족은 소년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꾼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정착하게 되고 소년은 그 집의 딸 안토니아와 대지와 자연에 대한 공통의 정서로 교감하며 서로의 삶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무엇보다 윌라 캐더의 자연의 묘사가 절창이다.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의 향연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포섭한다. 


그 시절 늦가을의 오후란 모두 같은 것이었건만 나에게 똑같은 오후는 하나도 없었다. 붉은 구릿빛 풀이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햇빛에 젖은 채 우리 시야가 닿는 곳까지 수 킬로미터나 뻗어 있었다. 노란 옥수수밭은 석양 아래에서 붉은 황금빛을 띠었고 높이 쌓아 놓은 건초 더미들은 장밋빛을 발하면서 기다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넓고 넓은 초원 전체가 꺼지지 않으면서 계속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다. 

-p.48~49


안토니아의 아버지 쉬메르다의 죽음은 소년의 성장에 결정적인 전기가 된다. 짐은 안토니아의 아버지가 안토니아와 그를 한데 묶어 놓는 하나의 구심점이 될 것을 예견한 듯 그의 죽음이 그의 존재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대지를 떠나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귀향의 길에 짐의 집이 있었다. 


짐은 성장하여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젊은 클레릭 교수를 만나 새로운 사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어느 저녁 대학생이 된 짐이 자신의 하숙집에서 <아이네이스>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간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의 "시신"을 작은 시골 농가인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기를 바란 마음을 표현한 <전원의 노래>를 읽는 대목은 절묘하게 다시 이 책의 제사로 돌아간다. 죽음 앞에서 결국 자신의 미완성의 역작을 바라보며 위대한 로마의 시인이 시의 여신을 거창하고 화려한 곳이 아닌 아버지의 작은 밭으로 데리고 돌아가기를 바랐던 마음은 소설의 화자 짐이 나이가 들어 늙고 살이 찐 안토니아와 그녀의 아이들을 만나는 마지막 대목과 겹친다.


그녀 앞에서 "난 돌아올 거야"라고 했던 약속을 짐은 충실히 지킨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과거를 함께 소유한 어린 시절의 친구와 그 친구가 낳은 아이들에게 귀환한 짐 버든의 궤적은 결국 회귀하는 작은 원이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가장 나중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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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1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처에 나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했어도 역시 짐 버든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고향에서
보낸 추억의 순간들이었나 보네요.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리뷰도
기대해 봅니다.

blanca 2021-01-21 09:44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 이 작가 참 좋아서 <로스트 레이디> 대기 중입니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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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딸의 결혼식, 맹인의 전지전능한 시점, 절망 앞에서 꿈꾸는 희망, 끝이 보이는 시작, 이 온갖 대비를 하나의 정교한 태피스트리처럼 엮어낸 존 버거여서 가능한 이야기. 모든 예술, 시간의 경계를 과감하게 해체한 놀라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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