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른 토너로 얼굴 전체에 트러블이 확 일어났다. 내 피부는 민감성도 아니고 그 토너는 처음으로 쓴 것도 아닌데.
저는 민감성이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죠?
원래 그런 거예요. 사람이 평생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기사, 그렇네요.
가슴 아픈 일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아름다움 또한 그렇다. 이야기에 질리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터다.
미시마 유키오의 유려한 문장은 서사를 압도한다. 아니, 서사를 구축한다는 말이 맞겠다. 문장 자체가 주인공의 성장, 주인공의 삶 그 자체를 닮아 아름답고 빛나고 허무하고 때론 폭력적이다. 이런 문장.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아버지의 유언대로 교토의 금각사의 도제가 된 소년은 절대적인 미의 상징과도 같은 금각사 앞에서 끊임없이 절망한다. 그건 닿을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실재의 현현으로 마치 약올리듯 가까워질듯 가까워지다가도 저만치 멀어져만 갔다. "한 손으로 영원을 만지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른의 문지방을 넘어가며 소년이 이루어 낸 성장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하나의 장례 절차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아름답고 허무하다. 그는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다. 다만 본인이 상정한 절대미에 근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뿐이다. 거기엔 커다란 맹점이 있다. 그에게는 윤리가 없다. 선이 빠져 있다. 아름다움을 위해 그는 그러한 가치들을 방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래서 혼란스럽다. 내가 이런 글에 감동해도 되는 걸까.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이라니.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반가운 해후 같은 작품집. 음악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뭉쳤다지만 역시나 고수들은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들로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을 기꺼이 만들어냈다. 원래는 어떤 테마로 청탁 받은 이야기들의 작위성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소설집>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좋았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화상 영어로 만나는 현업에서 은퇴한 원어민 교사와 중년 여성의 시간이 나온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잃고 삶의 전장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시간도 이미 지나온 그들의 외국어 수업이라는 체를 통과한 한계를 가진 미약한 소통은 그들의 상실의 시간들의 교감과 기대할 것이 많지 않은 남은 시간들에 대한 작은 기대들을 한데 불러온다.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여겼는데 여전히 잃을 게 남은 삶 속에서" 잠시잠깐 빛이 쨍하고 나는 그 시간의 마침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결말까지도 상세히 축조된 김애란 작가의 문장들이 참 좋았다.
김연수가 의도한 사나운 어머니의 모습이 <수면 위에서>는 여전히 잔잔하고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무조건 희생하고 감내하고 묵묵히 가족을 위한 시간을 통과하는 전형성을 탈피한 지점에는 삶이 있었다. 우리 여기 지금에서의 삶들이 가질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탐구는 여전히 울림이 크다. 나는 언제나 그의 이야기를 기대할 것이다.
윤성희의 <자장가>이 십대 여고생 화자의 이야기는 내도록 슬펐다. 과거의 어느 시점 내가 어딘가에 두고 온 내 여고생 시절의 모습을 환기하는 그 지점 때문일까.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거꾸로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내가 아직 덜 컸다는 사실을 항상 환기한다.
은희경의 <웨더링>은 궁금증을 남겼다. 기차의 서로 마주 보는 4인석에서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던 그 낯선 이들의 조합은 정말 처음이었을까. 옆자리의 노인이 주인공에게 양보한 우산이 가지는 여운이 길었다.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는 좀 의외였다.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작품을 편혜영 작가가 썼다고? 나는 그녀의 문장이 가지는 긴장감과 그 절제된 어두움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죽은 어머니의 친구들을 이모라 부르며 그녀들과 교감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기대보다 더 너무나 쉽게 빠져들었다. 받아야 할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아니 못하는 그 어처구니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얽히는 일은 수많은 결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적되는 일이니까. 깔끔하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우리의 역사를 압축하기는 어려우니까. 그 행간에서 작가는 독자와 소통한다.
얼굴의 피부염은 얼추 가라앉았다. 그런데 또 그럴까봐 무서워서 뭔가를 다시 얼굴에 얹는 일이 망설여진다. 마치 겁쟁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