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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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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망명지 브라질에서 1942년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은 언제나 내면의 자유를 중시했던 그가 히틀러에 의하여 자신의 저작들이 불태워지고 반유대정책으로 친구, 가족들이 죽어가고 모국인 오스트리아마저 붕괴되자 그 자신이 인용했던 셰익스피어의 "시간이 우리를 찾는 만큼 우리 시간을 맞이하리."를 그 자신의 해석대로 구현한 듯하다. 그의 발자크는 발자크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랬듯 완벽하게 완결되지 못한 채 그의 품 안에서 떠나 오히려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된다. "나는, 이 너무나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가겠습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고백은 운명에 의하여 패배 당하지만 도덕적 의미에서는 승리를 구가했던 그의 에라스무스, 카스텔리오의 그것이기도 했다. 이제 이 시대의 절망 속에서도 청년 시절의 마음의 별빛을 잃지 않았던 사내의 '한 세대 전체의 운명'과 만난 그의 '삶'을 감히 읽기 시작한다.

 

그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가 오스트리아인, 유태인, 작가, 휴머니스트이자 평화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1차 세계대전 전의 안정적인 시대는 이 배움을 향해 온몸을 던질 태세가 되어 있던 청년 작가에게 더없이 좋은 학교가 되어준다. 김나지움 시절에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빈 교향악단의 리허설에 숨어들고 골동품 가게를 더듬던 재기 발랄하던 아이는 모든 저속한 것을 못참아 했던 릴케에게 빌려준 책에 예쁜 리본이 묶여 되돌려 받는 빛나는 경험과 로뎅의 아틀리에에서 로뎅이 자신의 작품을 무아지경에 빠져 수정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생의 위대한 순간을 가지게 된다. 그 자신의 표현처럼 이러한 청춘은 "구애받지 않고 맛보고, 시도하고, 향유"하는 시간들로써 점차 이 세계를 향해 걸어나가는 지평을 확장하게 된다. 다채로운 경험들과 예술적 소양들을 쌓고 위대한 작가, 화가, 사상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가지며 내면을 확장하는 그의 청춘의 그 무한한 깊이와 넓이의 스펙트럼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많은 미사여구나 과장을 동원하지 않고도 그의 문장 하나 하나가 마치 스무 살의 그것들처럼 생기 넘치고 발랄하게 다가와 읽는 과정도 마치 다시 젊음들을 맛보게 되는 것 같아 참 즐거웠다.

 

빛나던 성장의 시간들이 지나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제 유명인이 되어버린 츠바이크가 쉰의 생일을 맞아 느낀 그 알 수 없는 불안과 안정의 파괴 위에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그 불온한 소망은 그의 남은 시간들의 복선 같아 섬뜩했다. 회고하는 시점에서 그가 기억해 내는 그 오십 세 생일의 생각, 느낌들은 오래도록 그림자로 남았다. 경제적 안정, 명성으로 단단해진 지반은 곧 서서히 붕괴해 그의 그 불온한 소망을 비극적으로 실현시키게 된다. 이것은 소망이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예감 같다.

 

1,2차 세계대전에 대한 츠바이크의 시선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2차 세계 대전이 비극의 극단으로 치닫는데에 일익을 담당한 히틀러의 잔학성은 그것을 묵인하고 동조한 거대한 무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데에 더한 비극성이 있다. 양차대전이 실제 발발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신호나 가능성에 대하여 무심하였고 어떤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이 거대한 살육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라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히틀러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 독일의 인플레로 인한 경제적인 불안정도 한몫을 했다는 대목도 기억할 만하다. 위기를 부추기고 전쟁을 선동하는 무리들에 대한 그의 경고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58세의 나이로 그는 국적을 상실한다. 이 문장 위로 지나가는 비애는 시간과 공간을 뚫고 들어와 아프게 박힌다. 그의 회고의 문장들은 스스로가 자랑한 그 템포를 잃기 시작한다. 대신 눈물이 흐른다. 모든 보고 듣는 것들 위에 청명한 언어로 차근 차근 영롱한 집을 짓던 사나이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차마 읽어나갈 수가 없을 만큼 그의 비애와 절망과 슬픔의 강은 범람한다. 조금만 더 참고 버텼더라면 그는 다시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대부분의 것들을 다시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가정은 어리석다. 이 도덕적으로 염결했던 사나이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가슴 아프지만 그의 삶은 그러한 종결로 향한 것이었고 그의 죽음이 그가 절대 히틀러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내면의 자유와 숱한 성취들을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킨 것은 아니라는 후세의 깨달음은 오늘날 이 멀리 떨어진 이 나라에서 그의 글을 읽고 뒤늦게 배우고 깨닫는 나 같은 사람과도 만난다.

 

그러나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552

 

그는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인간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가버렸다. 이것은 오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 전체로 말하고 있다. 시대의 증언과 만난 겸허하고 진지한 삶의 고백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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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6-02-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츠바이크를 읽을 때면 왠지 김소월이 떠오릅니다. 둘 다 암울한 시절 스스로 삶을 끝내버려서인지, 아니면 너무나 섬세해서 시대의 어두움을 견디지 못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요...

blanca 2016-02-21 15:2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공통점이 있네요. 그러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게 개인적인 삶으로 보면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또 전체 세대로 보면 시대를 통과하면서 남긴 글들이 많은 가르침을 주니 결국은 어떤 숙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비로그인 2016-02-2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멎있는 문장이네요. *^

blanca 2016-02-22 11:50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랍니다. 긴 여운이 남는... `나는 진정한 삶을 살았다.`가 아니라 이렇게 제3자로 지칭하고 객관화해 버리는 게 츠바이크인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6-02-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냄비속에 들어 서서히 삶겨지고 있다는 걸 아는 개구리, 지식인으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슬프네요.

blanca 2016-02-22 11:52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 읽으며 자꾸 우울해지는 게 과연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가? 라고 반문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전쟁을 선동하는 무리들이 히틀러 시대에만 있을까요. 정치 기사들은 마치 과거의 잘못된 행태들이 가져온 파국을 고스란히 잊고 다시 그 심연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아 때로 참 암울합니다.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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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출생연도는 1916년이고 생존해 있다. 이 책의 집필 당시는 아흔다섯이었다. 그러니 '세기의 기록'의 근거는 저자의 삶의 중량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런던태생의 그는 중동 역사에 대한 관심이 처음에는 취미에서 출발하였고 이윽고 집착을 거쳐 직업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었지만 홀로코스트도 부상도 전사도 그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스스로를 운 좋은 사내라고 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백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은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학자라는 찬사를 받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중동 정세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나 이해에도 차고 넘치는 그릇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 아랍권 국가들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이슬람교, 서양 국가들 특히 미국이 중동에 대하여 가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태도 등에 대하여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기에 그의 정제되고 간명한 언어, 직설적인 조언 등은 상당히 유용하고 귀에 잘 들어온다.

 

버나드 루이스의 학문적 성과와 그가 중동의 역사, 언어 등에 기울인 성실하고 겸허한 노력 그 자체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자문이 때로 실책을 낳은 비판 지점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신이 중동학 분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 추종자들 무리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발끈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러한 첨예한 논란의 가운데에서 나름 고통을 겪었는 지를 보여준다. 실제 현지 언어를 습득하고 현지를 방문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최대한 공감어린 자세로 중동의 역사를 연구하고 저술하여 세상에 내어놓으려 했던 자신의 노력들은 어떤 힘의 행사나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도 전락할 수도 없다,고 항변하는 그의 모습은 현실이 가지는 그 모호함, 불확실성,가변성 앞에서 역사학자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지난한 고민, 노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아랍인들의 자생 능력과 민주화,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언변은 때로 공격적이었다 관용적이었다 상충되는 부분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와 무게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분석, 설명, 급격한 서구화 이전의 아랍 세계의 협의 문화에 대한 애정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을 잘못 이해하고 읽고 있는 지 깨닫게 한다.

 

역사학자로서의 그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결혼 실패와 예루살렘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의 교유,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진 '그녀'와의 사연 등은 넘치지 않게 역사의 갈피마다 스며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제 그는 아흔다섯 살이다. 그리고 처음 스스로를 운이 좋았다,고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지금도 여전히 운이 좋다,고 마무리한다. 아랍의 시들을 자신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고 역사의 저술에도 우아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노학자의 삶, 그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 비판받을 지점이 있어도 그 성실하고 진지한 학문에의 천착과 삶에 대한 열정, 경탄, 사랑은 자연스럽게 감동을 자아낸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자신이 변주하는 것은 변호일 수도 있고 변명이 될 수도 있고 때로 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마침표가 가지는 중량감은 그 연주조차도 삶 그 자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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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7-1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소개로 생소한 책을 알게 되겠네요. 읽고싶어집니다. 성실하고 미려한 리뷰 고마워요. 아흔다섯에 쓴 저서라니‥학자다운 생의 무게를 미리 짐작해봅니다

blanca 2015-07-19 21:59   좋아요 0 | URL
한편으로 참 부럽더라고요.
자신의 분야에 일생을 매진해서 일가를 이룬 모습이 지나간 시간들에 가치와 무게를 더한 것 같아서요. 학자의 삶이 그런 면에서는 참 보람된 것 같아요.

라로 2015-07-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든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걸요~~~^^;;;; 리뷰에 대란 건 프야님과 같은 생각요~~~~^^*

blanca 2015-07-19 22:00   좋아요 0 | URL
저도요, 나비님. 여자친구도 비슷한 연배로 보였어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며 따뜻하게 노년을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cyrus 2015-07-1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학자의 사생활이 시시콜콜하게 느꼈어요.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부분이 젊은 시절, 학자가 정보병으로 참전했던 시절이랑 사이드가 자신을 비판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었어요.

blanca 2015-07-19 22:02   좋아요 0 | URL
에드워드 사이드에 아주 감정이 많더라고요. 학계에서는 상당히 반목하는 관계로 보였어요. 중간 중간 사생활이 좀 건조하게 덧붙어져 있어 숨고르기가 되는 면도 있고 부조화스런 부분도 있고 했던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5-07-1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라도 백 해를 살면 기나긴 이야기가 나올 테지요.
백 해를 살아온 동안 본 것을 쓸 테고
그동안 못 보고 지나친 것은 못 쓸 테고,
보고서 생각한 것은 쓸 테며
보고도 느끼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한 대목은 못 쓸 테고...

blanca 2015-07-19 22:0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랜 시간 삶을 누려도 세상만사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요. 곱씹어 보게 되는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07-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저자가 정보부대로 전출된 부분인데요, 공직자비밀엄수법 때문에 업무에 대해 자세히 말 할 수 없다고 하네요 ^^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어쨋든 나름 재밌게 보고 있어요^^

blanca 2015-07-19 22:05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읽고 계시군요!! 저도 이 대목은 좀 김 빠지더라고요. 언급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부분에서도 나와요. 궁금증만 자극하고 감질나게요^^;;

희선 2015-08-0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취미였다니... 그런 사람이 하나를 오랫동안 알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가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동의 역사와 자신의 삶을 함께 쓰다니, 어떨까 싶군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 역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하고 쓰는 건 더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흔다섯에 책을 썼다는 게 대단하게 보입니다


희선

blanca 2015-08-05 14: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 책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 중동 역사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자신의 삶과 그 삶을 관통해 온 중동 역사에 대한 애정, 관심, 흥미를 끌 만한 에피소드 들이 나옵니다. 네, 큰 풍파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룬 노학자가 부럽더라고요.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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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였던가. 백과사전을 사고 덤으로 기자들의 특종 사진집을 받았다. 격랑의 현대사는 정지된 흑백의 사진으로 파노라마처럼 압축되어 있었다. 한창 뉴키즈며 듀스에 열광했던 여학생이 처음부터 진지하게 접근했던 것은 아니고 한번씩 호기심으로 사진 정도를 들춰보는 식이었다. 잘 모르는 나에게도 시위현장에서 택시들이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동참하는 모습은 큰 울림이 있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대학교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최루탄의 위력을 실감했던 기억 때문에 택시기사들까지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가지고 나와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은 낯설기도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감히 그럴 수 있었던 상황과 그들의 용기가 흑백사진 전면을 뚫고 나와 짙은 호소를 하고 있었다. 그 현장은 광주항쟁이었다.

 

그곳에 전태일의 영정 사진을 껴안고 우는 그의 어머니 사진도 있었다. 아름답고 부유해 보였던 사회 선생님은 어느 날 전태일 열사 이야기로 눈빛을 빛냈다. 다 알아듣고 가슴으로 공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모두 상쇄할 만큼 전태일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울 수 있는 용기와 고결함은 낯설고 저릿했다.

 

나는 현대사에 무지하다. 고등학교 때 국사 교과서 말미에 첨언처럼 있었던 그 간략하고 죽어 있었던 연대기는 단지 헷갈리고 무용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각자의 정치적 호불호가 마구 재단해 내는 그 '사실'들이 부담스러웠다. 광주항쟁과 전태일과 박정희로부터 나의 삶은 얼마나 멀게 느껴졌던가. 나의 사적인 삶이 결국 공적인 것의 큰 범주 안에서 무기력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각성은 죄없이 죽은 아이들과 홀로코스트에서 돌아와 기억하기도 싫었을 사실들을 책임감 있게 증언한 프리모 레비 덕분이었다. 무지하고 무관심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당신과 나의 삶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좌초 당하고 결박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의 자각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독서는 어떤 의무감과 부책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스스로를 프티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 엘리트로서 정치에서 실패하고 문필업으로 돌아온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하는 유시민이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55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번민하는 당사자로서의 복기와 해석, 이해에 관한 것이다. 일단 그의 출발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이다. 5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한 적도, 경제 위기에 봉착한 때도 있었지만 분명 우리가 비교적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주의에 있어 진보를 이루었고 그것을 향유하고 있다고 판단한 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959년 역사교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가 이야기하는 현대사는 그의 개인적 삶, 다층적 이해,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어우러져 지루하거나 난삽하지 않게 다가온다. 현대사에 거부감이나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의 설명과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친절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든 유인이 '욕망'이었다고 판단하는 그의 시선은 위정자들의 권력욕과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지층을 가감없이 해부한다. 해방후 거대한 난민촌이었던 우리나라가 중앙집권적 경제개발을 통한 산업화의 '병영'을 통과하여 민주화 시대의 '광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유시민이 다시 읽고 주석을 달아 펼쳐내는 하나의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성장사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인물'에 대한 나름의 평가이다. 특히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장 한가운데 있었던 박정희에 대한 그의 시선은 그의 생애를 통해 각인됐던 하나의 인물에 대한 애증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그 어떤 주의도 그를 사로잡지 못했고 오로지 권력욕에 사로잡혔다고 이야기하는 박정희가 커다란 선과 지독한 악을 함께 이루었다는 그의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인격과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했던 시민 자신들의 열정, 성취, 인생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인제가 고용보험을 정착시킨 일,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짠 일 등에 대한 언급은 한 인간에 대한 단편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지양하고 복합적이고 다원적으로 정치인이나 행정가를 보는 새로운 좌표를 던져준다.

 

이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명명된다. 박정희 정권하에 산업화에 일익을 담당했던 경제관료들, 자신의 몸을 태워 오늘날의 민주화를 선물한 민주화투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읽어가다 보면 역사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절로 다가온다. '레드 콤플렉스'를 정신적 병리현상이지만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생존의 방편으로 이해한 대목도 설득력이 있다. 저마다 자신의 프리즘으로 간단하게 절단한 단면만을 부각시켰던 불구의 현대사가 그의 앞에서는 균형감과 설득력을 얻어 또렷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참신하고 역동적이고 생생하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문학적이다. 건조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사랑하고 이야기하는 공간을 짓기 위해 생명과 삶을 바친 이들에 대한 경의로 촉촉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p.417

 

현실이 아무리 비극적일지라도 그것을 뚫고 나오는 인간의 욕망은 더 나은 곳을 꿈꾼다. 그것에 대한 신뢰가 관통하는 지점에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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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7-1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리뷰입니다 땡스투 하고 구입하겠습니다

blanca 2014-07-18 10:47   좋아요 0 | URL
고마울 따름이지요. 무엇보다 재미있고 쉽고 똑똑한 책이어서 추천드리고 싶어요.

순오기 2014-07-18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은 정치인보다 글쟁이가 더 어울린다 생각해요.
거꾸로 보는 세계사처럼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 되었으면.... ^^

blanca 2014-07-18 10: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아직 위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어요. 차차 하나씩 읽어봐야겠어요. 유시민 스스로도 정치에서 실패했다고 돌아온 글쟁이로 자신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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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은 익명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누구나 살아 생전에는 더없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끄달리지만 '우리'는 결국 이름을, 지금의 이 절절한 순간들을, 잃을 것임을 가끔은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되고 결국 '그들' 속에 묻히고 만다.  

역사가 결국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그 기록의 뒤안길에 매몰된 무수한 익명의 '그들'을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음을 때로 상기한다. 하지만 결국 픽션은 삶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담보한다고 해도 팩트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그랬을 테고 그랬음직한 일들이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말 그랬었지만 감히 말하여질 수 없었던 것들, 언젠가는 꼭 말해져야 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질 때 삶은 참 남루하고 구차하고도 면면히 이어지는구나 싶다. 결국 또 묵묵히 살아나가겠지만 그래도 순간 또 정지하게 된다. 인간은 아름다운, 가치있는 존재일까? 생은 긍정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중략> 내 피부는 붉지만 심장은 백인과 똑같다. ...

인생이란 다만 잠시 동안만 자기 것일 뿐이다. 당신네 백인들은 나를 정복하지 못했다. 나를 꺾은 것은 내 부족민이다. -캡틴 잭(모도크족) 

 
   

 

1860년 이후 30년 간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역사는 굉장히 호기롭고 도전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것으로 그려진다. 웨스턴 무비들의 단골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그 시간들이 사실은 백인들이 정작 그 땅의 주인들이었던 인디언들을 마구잡이로 몰아내고 학살하고 문명과 문화를 짓밟았던 잔혹 행위들로 점철되었었다는 얘기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책이 썩 기분 좋은 책이 아니라는 저자 디 브라운의 고백은 끊임없이 조약과 약속을 남발하며 인디언들의 땅과 삶을 수탈했던 미국인들 자신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참회일지도 모른다. 디 브라운은 인디언들의 구전 역사의 자료를 가지고 최대한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디언들의 처연하고도 가슴 저미는 투쟁사와 멸족사를 일구어 냈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며 결국 모든 인디언들이 자멸하고 그들의 기름진 광활한 땅을 차지하기를 바랐던 그 탐욕스럽고 비열한 욕망 앞에서도 끊임없이 속아주고 믿어주고 화해하기를 바랐던 인디언들의 그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경이로운 신뢰들은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이 둘을 모두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인간들의 삶일 수도 있겠다. 인디언 멸망사는 우리 내면에 묻어버린 아름답고 투명한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지지의 추억들을 복원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대지와 공동의 척도를 지녔던 인디언들은 그저 자신들의 땅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일하고 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 그 자연스러운 본능과 소망을 억압하고 기만했던 백인 이주자들 앞에서 그들도 점차 낙망하고 불신하고 응전을 다짐하게 된다. 인디언령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아래 인디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가두려했던 저의는 점차 인디언을 동등한 인격체와 생명이 아닌 하나의 부속물이자 성가신 이방인 정도로 여기고 생사여탈권까지 틀어쥐었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군들은 그들이 정해 준 주거지역에서 이탈하는 경우 여자, 아이, 노인들을 가리지 않고 살상을 일삼았다. 나바호족, 샤이엔족, 아라파오족, 수우족, 크로우족, 유트족 등은 죽어 모두 좋은 인디언이 되었다. 멸족의 위기에 선 인디언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망령의 춤'을 추며 죽은 인디언들이 모두 돌아와 그 옛날의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주문은 눈물겹다.  

   
 

그 당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이 끝장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제 나이들어 높은 언덕에 올라 돌아보니 학살당한 여인네들과 아이들의 시체가 굽이도는 계곡을 따라 겹겹이 쌓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인다. 나는 또 한 가지, 그 피 묻은 눈보라 속에 죽어 묻혀 있는 걸 본다. 한 민족의 꿈이 거기 죽어 있다. 그건 아름다운 꿈이었다. <중략>
- 검은사슴 

 
   

모든 강하고 단단한 것들이 작고 여린 것들을 누를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결국 끝나고야 말 것이다. 내 안의 나마저도 그렇다. 아름다운 꿈은 결국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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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부터 한번쯤 꼭 정독하고 싶은, 제 마음 속의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책 중 하나예요. 사두고 분명히 안 읽은 채로 둘 것같아 미미적거리다가 보니 어느새 개정판이 나왔네요. 잘 읽었어요, blanca님.

blanca 2011-04-19 21:27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저도 분량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집어들었어요. 천천히 조금씩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참 처연한 책이랍니다.

비로그인 2011-04-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을 사고 파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디언.
백인이 어느날 들어와 마음대로 선을 긋고 그들의 그어 놓은 선 밖의 음지로, 음지로 흘러야 했던 그들의 역사가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나는 것은 땅에게 빌려 쓰고 다시 땅으로 되돌려 주는 그런 것들에서 왜 점점 멀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인데요. 이제는 산도, 강도, 땅도 삶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네요.

blanca 2011-04-19 21:2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는 그 순정함과 순진함이 참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 속고 또 속고 믿고 또 믿고. 인간이 자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어질 비극이 이미 현재진행형이잖아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부터도요.

양철나무꾼 2011-04-1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옛날에 한번 읽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같은 팩트를 바라보고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거 같아요.
무뎌지는 걸 테지만,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blanca 2011-04-19 21:30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이미 읽으셨군요. 저는 개정판이 나오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럼요. 어느 드라마에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있는 거라는 얘기가 정말 요새는 동감 가더라구요. 무뎌지는 것도 성숙의 일환인 것 같아요.

레와 2011-04-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탈자들이 붙여준 '인디언'이라는 이름말고, 그들은 자신들을 뭐라고 불렀을지 궁금해요.

더 늦기전에 읽어볼게요. :)

blanca 2011-04-19 21:31   좋아요 0 | URL
아, 레와님! 제가 그 얘기는 적지 않았는데 정말 이름들이 눈부시더라구요. 예전에 '늑대와 함께 춤을'처럼 정말 아름다운 자신들 만의 작명법으로 서로를 부르는 대목들이 참 인상적이랍니다.

북극곰 2011-04-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성각님 책에서 보고 읽으려고 적어뒀던 책리스트에 있던 책이에요. 절판이었던걸로 알고 있었는데 ^^ 잘읽고 갑니다.

blanca 2011-04-19 21:31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아기가 참 사랑스러워요. 예, 안그래도 개정판이 나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절판이었군요.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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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SS 대원들, 카포들, 정치범들, 범죄자들, 크고 작은 일을 맡은 특권층들,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노예와도 같은 해프틀링까지,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p.187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대신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작은 등롱을 발견한다. 같은 이탈리아 민간 노동자였던 로렌초는 아무 이해관계없는 그에게 여섯 달 동안 매일 빵 한 쪽과 먹다남은 배급을 제공해 준다. 로렌초는 인간이었다,고 회고하는 대목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회의적인 반문이 수용소의 경험 전체를 관통한다면 그가 인간이었다,는 깨달음은 미약하지만 그 기저에서 깜빡이는 하나의 전언 같다. 그럼에도 희망은 유효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그렇다,인가? 다 읽고 나서도 또 그의 삶 전체에 대한 간략한 얘기를 접하고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데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들을 통하여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에 대한 심리학적, 인문학적, 철학적 고찰은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그들의 증언을 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게 했다. 이 책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유대인으로 태어나 화학자이기도 했던 프레모 레비가 반파시즘 빨치산 부대에 가담했다 밀고를 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살아 나오기까지의 이야기의 장대한 증언록이다. 그의 얘기들은 후에 그 자신이 회고했듯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도 아니고, 복수심으로 날선 언어도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로 엮여 있다. 그는 단지 유대인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머리칼도 이름도 다 잃어버린 채 왼쪽 팔뚝에 수인번호를 새기고 강제노역수용소에서 부나(일종의 고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거기에서 목격하는  악에 타협하며 때로는 그것을 생존방식에 끼워 넣으며 살아나가는 수많은 사례들,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의 존재,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렌초 같은 어떤 가능성의 체현 같은 인간형의 목도와 이 참상을 증언하고자 하는 욕구 덕분이었다.  

화학자인 저자의 문체가 대단히 심미적이고 유려하여 놀랍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가는 대합실로 상상한 단테의 <신곡>이 군데군데 스며 들어오는 대목과 이 수용소가 단순히 우발적이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맹목적인 도그마의 귀결이자 나름 이방인에 대한 논리적인 존재방식의 구현이라는 그의 해석과 맞물려 우리가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례들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하여 미래를 설계해야 할 지에 대한 엄중한 성찰을 권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 수용소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한편 죽음으로 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준비하고 아이들을 씻겼다는 대목. 그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은 모습에 대한 회고. 그가 배급당번으로 지정되어 장이라는 젊은 청년과 유월의 맑은 하늘을 만끽하며 그 짧은 시간동안 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주려고 단테의 신곡의 구절들을 기억해 내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이 비애서린 증언록에 작고 아릿한 삽화를 그려준다.

이렇게 살아나온 그가 말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목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생존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훗날 그의 수용소에서의 고통의 기억들이 격렬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대신, 자신을 더 풍요롭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얘기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그 극단의 마지노선이 뚫리는 것을 체험하고 나왔음에도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얘기했다. 물론 엄중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그의 다음 얘기들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감동적인 전언이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은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에 만족하는 게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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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요즘 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저는 반성 중...
알라딘 블러그에 책 리뷰는 없고, 순 제 잡기만 올리고 있으니.. 아이고.
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려고 사놓고, 아직도 감감 무소식 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년에 생을 자살로 마무리 했다고 하던가요? 음.... 궁금해지네요.

blanca 2010-05-27 15:1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감기는 좀 괜찮으세요? 저는 죽음의 감기 속에 홀로코스트 관련 책을 읽는 실수를 범해서 너무 힘들어하다 오늘 급기야 병원까지 갔어요.--;; 대기실에서 아픈 사람들 보고 더 기분 우울해지고. 기침 심하게 하니 사람들 다 피하고---;; 그런데 집에 오니 갑자기 몸이 급 회복됐어요.

책은 비몽사몽 간에 너무 질러서 쌓여있구요 ㅋㅋㅋ 예, 나이 많이 들어서요. 대체 왜 그랬는지. 그런데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온 사람들이 많이들 그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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