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내게 일어난 일들이 정말 일어난 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읽거나 본 것들이 더 진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젯밤 내가 꾼 꿈이 내게 일어났던 일들의 흐릿한 기억보다 더 와닿을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의 힘은 경이롭다.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고 간접 경험할 때 우리 대뇌에 켜지는 불은 내가 실제 경험한 것과 밝기에 큰 차이가 없다.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집 <레티파크>에는 화자가 친구와 공유했던 정신과 상담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가 투영된 작품의 뒷배경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에서 자세히 나온다. 실제로 유디트 헤르만이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정신과 의사와의 한때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개인적 스토리들은 태피스트리처럼 엮여 또 다른 차원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한다. 에세이집을 표방했지만, 우리는 그저 작가가 이름 붙인 장르 속으로 들어간 유디트 헤르만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된다. 이쯤 되면 사실과 진실과 허구는 한데 섞여 모호해진다. 그리고 굳이 확실하게 그것의 경계를 긋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무용한 것인지 설득당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고 굳게 믿는 것들이 사실은 그저 하나의 상상, 환상, 내 삶의 이야기에 통합해서 간직하고 있다 수시로 꺼내어 확인하고 싶은 하나의 거짓일 수도 있다.
라디오 피디인 정혜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내내 따라 읽어왔다. 텍스트를 향한 그녀의 사랑과 열정, 그 특유의 해석력에 때로 감탄한다. 그녀도 나이 들고 그녀를 따라 읽은 나도 나이 들며 그녀의 글도 이제는 희망과 내일과 꿈과 내일에 대한 전망보다는 상실과 어제와 그러나 더 엷고 넓게 퍼진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합의된 공명을 일으킨다. 이 세상을 채우는 건 인간 주도의 인간만의 독점적인 관계나 사랑이 아니라 그 모든 생명들의 상호 연결에서 비롯된 신비의 오라다.
작가가 잃은 사랑과 얻은 사랑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모비딕>을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이야기.
김연덕 시인을 만나게 된 건 지금도 젊지만 그녀가 정말 젊디젊었을 때 한 문예지에 기고한 에세이였다. 그 정갈한 문장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다 시인인 그녀가 쓴 에세이들을 모조리 찾아 읽겠다, 결심했었다.
시인이 찾아간 일본의 소도시, 아오모리에 대한 이야기와 시들이 여전히 정결하고 투명하고 아름답다. 노인들로 가득한 도시가 어떻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무기력하고 무력하고 쇠퇴한 지방처럼 보이지 않고 여전히 거기 그대로 놓여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그립게 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연덕 시인은 그 작업을 해낸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아주 많은 대화를 하고도 금세 다 잊어버려도 또 다시 그들과 만나 그 모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의 가치에 대하여 듣다 보면 아, 늙음이라는 게 이럴 수도 있구나. 젊음과 소통하는 지점을 이렇게 다시 낳을 수도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된다.
시인이 순전히 사과 때문에 떠났다던 '아오모리'에 그 사과가 아니어도 방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야기.
이야기는 이야기라고 믿고 불러오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