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이 구성된 방식, 물려받은 유산과 비유산, 움직이는 정체성, 내밀한 브리콜라주를 조정해 나가며 살아간다."
-클레르 마랭 <제자리에 있다는 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엔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적 계보 역할을 하게 된 경이로운 작품이다. 중년의 남자가 어린 소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는 사회적 금기, 금제, 윤리적 논란의 지점과 예술적 성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이쯤 되면 다들 나보코프의 삶 그 자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혹시 어두운, 감춰진 자전적 역사나 욕망이 투영된 건 아닐까? 하는. 그러나 그런 질문에 나보코프는 삶으로 답한다. 그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의 조각들인 언어의 정묘함과 아름다움은 물론 그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비윤리적 도착의 세계는 그의 삶과 애정관과는 턱없이 멀다. 이제 이 자서전에서 그는 러시아어로 아로새겨진 기억을 영어로 서술했다, 다시 러시아어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영어로 바꿔 <결정적 증거>로 만들어 낸다.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우리의 존재는 두 영원의 어둠 사이 갈라진 틈으로 잠시 새어나온 빛에 불과하다."는 첫문장은 그의 네 살 세례식의 출발을 알린다. 19세기 말, 러시아 상테르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소년 시절의 기억의 워터마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생생하다. 언어에서 색감을 보는 독특한 공감각적 인식의 재능을 가진 조숙한 소년은 여러 가정교사들을 거치며 광활한 극지의 자연과 아름다운 소녀들과 "경이로운 내일"을 기다리며 자신의 기억이 태피스트리를 찬란한 언어로 직조해낸다.
타마라, 러시아. 오래된 정원과 서서히 섞여들던 야생의 숲. 북쪽의 자작나무와 전나무, 여름이 되어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올 때면 매번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산과 커다란 떡갈나무-운명은 어느 날 이 모든 것을 허둥지둥 묶어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버렸고, 나는 어린 시절과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하라, 기억이여>
1919년 나보코프 일가는 이 모든 찬란했던 과거를 러시아에 남겨두고 서유럽으로 기나긴 망명길에 오르며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다. 아버지는 암살당하고 어머니는 머나먼 이국에서 죽고 동생은 수용소에서 아사한다. 나보코프는 유럽을 떠돌며 테니스 교습, 번역 등의 일을 하는 와중에 수신자의 반응이 없는 글들을 쓰고 또 쓴다. 하지만 지금 이 과거 또한 "작은 유리공 안에 담긴 색색의 나선"으로서의 나보코프의 삶이다. 후일 자신의 반세기를 넘는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내는 <롤리타>의 위대한 작가는 이 기억으로 재구성된 삶을 조망하며 "지나간다, 급행으로, 급행으로, 흘러가는 세월들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시어를 선창한다. 모든 과거가 복선으로 작용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우리는 또 완성되고 고정된 작가의 그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시간도 빠르게 급행으로 지나간다.
이제 비로소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관능의 핵심을 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한다. 그것은 "나머지 것들의 성장이 잠시 관능적으로 멈춰 있는 상태"에 대한 그 자신의 처절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으로 출발했던 그가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우주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표현하려는 충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