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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평점 :
나이가 드는 일은 내가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 내가 차곡차곡 쌓았던 것들을 허무는 일이다. 아직 나에게는 시험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교보문고를 가던 중고등학생의 내 모습이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데 어느덧 그 나이 또래의 딸아이가 나를 기성세대라 지칭하는 걸 경험하는 일이다. 매일매일이 낯선 지대로의 탐험이다. 이런 중년의 모습을 나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미래로 타임슬립이라도 한 느낌이다. 늙는다는 일은 생각보다 더 훨씬 품이 드는 일이다. 난데없는 비보들을 견디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이라는 테마로 "인생의 기나긴 시간"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영화 <비터문>의 원작자이기도 한 저자의 문장이 대단히 아름답고 가독성이 좋다. 딱딱한 철학적 성찰이라기보다는 저자 자신이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소회, 단상을 철학적 사유와 잘 접목시킨 에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여느 철학서 못지 않게 심오해서 그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경이로울 정도다. 노화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책이다.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삶과 우리가 맺는 관계가 달라졌다는 통찰로 출발하는 책은 모호하게만 느꼈던 나이듦으로 느꼈던 우울감을 잘 제련하여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조심스럽게 제언해 준다. 저자는 오십 이후의 이야기를 한다고는 하지만 삼사십대가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는 시간부터 우리 자신을 잃어간다는 그 놀라운 비애를 지적한 대목에서 비로소 중년의 우울함의 근원을 확인했다. 더 이상 세상 바깥으로 보이는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점부터 우리는 노화의 늪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시간의 무자비함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저자는 경계한다. 우리가 생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통찰의 핵심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행복한 인생이었든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의 크기가 가늠된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함을 얻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참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올리지도 않았던 기도가 100배로 성취되기도 했다. 우리는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
-pp.304
정말 그렇다. 내가 했던 응답 받지 못한 기도들, 성취하지 못했던 소망들에 강렬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라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는데 이루어진 일에는 미처 시선을 주지 못했다. 악몽을 관통한 그 사실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로 받은 것들을 헤아려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생을 받았다기보다는 잠시 빌려 사는 사람들"이라는 통찰은 수시로 잊었다.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에만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어떤 연결자, 관통자, 임시 거주자임을 잊었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세상에 태어나 엄청난 의미를 실현하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후손과 내가 떠나고 남을 이 지구에 남길 것들로 변환되어 보인다. 받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반드시 베풀어야 한다. "삶은 증여인 동시에 채무다."라는 문장의 울림이 크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지금 여기에서 나의 존재가 가지는 책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나를 주변부로 밀어놓은 채 나날이 재깍거리며 가는 시계의 초침 소리에 놀란 모두에게 권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