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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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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꿈꾸는가]라는 한글 제목과 표지가 개인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공지능 과학 분야 책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실제 듀크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임을 감안하면 AI의 법적 지위에 대해 고찰한 사회학 저서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자 제임스 보일은 다루어야 했던 주제의 방대함 때문에 거의 십 년에 걸쳐 이 책을 연구하고 집필했다고 한다. 법인격, 인공지능, 생명공학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시종일관 특유의 리듬감과 깊이, 넓이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AI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파급력 그 자체보다는 결국 우리 사회가 향후 정말 인간의 의식과 비슷한 범용 AI가 나왔을 때 과연 어떤 사회적, 법적 지위와 대우를 해줘야 할지에 대한 진지하고 심오한 공론화의 장을 열어준 책이다. 딱딱하고 어려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직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도 번역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를 예로 들어 설명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INE]이다. 그 경계는 바로 인간과 기계뿐 아니라 법인, 비인간 동물, 혼종 동물, 형질 전환 개체, 키메라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이 구분은 결국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인간만의 특수한 언어 능력이 챗봇의 등장으로 위협받게 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질문인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다다른다. 흔히 이 진단 기준으로 사용됐던 튜링 테스트를 AI가 간단히 통과할 수 있다는 데에서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가 생각했던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선이 조정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미국에서 법인의 인격 개념이 도입된 역사에 할애된 장은 결국 기업을 소송의 당사자로 취급하기 위한 편의에 의해 도입한 법인의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지점에서 왜곡되고 임의로 조정되었는지 그 취약점을 노출함으로써 결국 우리가 지금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또한 충분히 무너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 당장 AI는 의식이 없고 독립된 인격의 개념이나 법적 지위도 없지만 향후 그들의 법적 지위가 어떻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전공학의 기술로 서로 다른 두 종의 DNA를 재조합하거나 인간의 만능줄기세포, DNA를 포함한 동물들도 종을 구분하는 경계선에 혼란을 몰고 왔다.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에게 위험한 임상이나 각종 난치병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이 경계를 임의적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하는 것에 일말의 도덕적 가책을 면제하는 것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하나하나 묻고 있다. 


결국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유한 특성이라 믿었던 것들이 새로 등장한 기계나 유전자 조작 생명체로 무너질 때 우리는 과연 그 종을 가르는 경계선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인격권을 가진 존재로 존중하고 대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도발적인 물음은 쉽게 답하여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맺는다. 어쩌면 허무한 이야기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앎의 지평과 공감의 지대는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근미래에 정말 특이점이 와 출현한 범용 AI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인격권, 법적 지위를 주장할 때 과연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적절한 합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일이 SF적인 공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현실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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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9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아시모프의 sf소설을 읽으면 안든로이드나 로봇의 권리(일종의 인격권)을 다룬 작품들이 있었는데,그런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상상은 무궁무진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현재 AI개발속도를 보면 상상만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될카봐 무섭기도 합니다.

blanca 2025-10-30 10:16   좋아요 0 | URL
챗봇 발달 속도 보면 이제 sf가 그저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구나 싶어요. 순간순간 섬뜩하죠.

단발머리 2025-10-30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부분이 참 걱정스럽기는 하네요. 저는 워낙 기계치이고 문과이기도 해서 이쪽의 발전이 이렇게나 많이 이루어진걸 전혀 몰랐는데, 최근에는 좀 관심이 가더라구요.
이 책도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blanca님!

blanca 2025-10-31 09:31   좋아요 1 | URL
AI가 나와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은 것 같아요. AI가 가짜 정보를 진짜처럼 제공하는 환각 현상도 있는데 잘 걸러지지도 않고요. 세상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가끔은 참 숨이 가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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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과학 관련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가볍지 않고,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 없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권하겠다. 그는 주로 시간과 양자 이론에 관련한 책들을 집필했고 그의 저작 대부분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자기 연구에 소흘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지만 카를로 로벨리는 아마 양자역학 연구의 최전선에 서서 그것을 가장 깊이 넓게 이해한 학자가 아닌가 한다.


스물세 살, 하이델베르크의 새벽 세 시의 발견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에르빈 슈뢰딩거의 확률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세계의 입자성, 양자의 중첩을 지나 결국 불확정성으로 귀결된다. 관찰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실재는 결국 실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고전 물리학과 실재의 확실성은 해체되고 결국 우리 눈앞에 남는 것은 '관계의 맥락'이다. 의심하고 회의하고 삭제하고 다시 수정하고 재정립하고 또 해체하는 과정이 삶이듯이 카를로 로벨리의 양자론 또한 그러하다. 양자역학이 삶의 역학을 재현하는 듯한 환각이 드는 것은 결국 우리가 탐구하고 희구하는 그 어떤 결정적인 사물의 실재가 부재하는 그곳에 남는 나와 너의 관계의 매듭이 묶이고 풀어지는 현장이 생명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로벨리가 2,3 세기의 나가르주나를 데리고 오고 불교의 공사상을 대입한 것은 어쩌면 이런 양자역학의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얘야, 너 몹시 심란한 얼굴이구나,

당황했나 보구나. 자, 기울 차려라.

여흥은 이제 끝났어. 여기 있는 배우들은

이미 말했듯, 모두 요정이었고

공기 속으로, 옅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그리고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런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꿈을 만드는 재료, 우리 짧은 인생은

잠으로 끝맺는 것.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 4막 1장의 대사를 인용하며 카를로 로벨리의 양자역학의 대여정은 막을 내린다. 결국 실재를 찾아, 나를 찾아 헤매는 그 긴 여로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과 내가 그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나라는 존재가 홀로 고고하게 우뚝 설 수 있다는 오만의 벽을 해체하고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남는 것은 서로의 얽힘과 서로를 반영하며 확인했던 이미지의 환각일 뿐이다. 양자역학을 읽으며 무너지는 확신과 진리의 해체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런 서로의 관계의 맥락에 대한 재점화 때문일 것이다. 


허무하지만 그 허무로 뻗은 길에 기꺼이 오르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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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의 화살 - 작은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꿨는가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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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설날에 형제,자매, 조카들과 한데 모였다. 당시 우한이라는 생소한 중국의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봉쇄령이 내리고 며칠만에 대규모의 병상을 완공시킨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모두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때 이런 모두가 함께 모이는 가족 모임은 마지막이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에는 많은 나라들이 그랬다. 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하나의 아주 드문 운이 나쁜 경우로 봤고 국경을 그들에 닫음으로써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전염병 정도로 여겼다. 


2021년 11월 우리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지만 전세계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 팬데믹이 종식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내심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 누군가를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만나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됐다. 백신이 완료되어야 하고 큐알 코드를 찍어야 하고 막간에는 마스크를 올리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됐다. 어디에서 어떻게 걸린지 모르는 코로나로 나는 공공에 어떤 피해를 끼친 것처럼 때로 매도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들이 나의 동선을 따라오게 됐다. 그래서 사우나를 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티를 받고 싶은 마음을,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을 연기한다. 이것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다. 이제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이것이 미친 여파를 수습하는데 필요한 기간까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다. 


어떤 현상이 지나가고 그것의 영향을 분석하고 기원을 탐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을 통과하는 와중에 그것의 의미를 다각도로 점검하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미 그 여파의 당사자가 되어 있는 마당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식견을 가지는 일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 많은 미지수를 처리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시도한 책이 바로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의 <신의 화살>이다. 원제는  Apollo's Arrow다. <일리아스>에서 나오는 아폴로가 트로이에 퍼부은 그 화살로 코로나의 은유다. 우리는 아폴로가 화살을 마침내 거둔 것처럼 코로나의 종식을 염원하고 있다. 


사방의 만물이 무로 돌아가고 허물어지고 애달픔만 남았으니......매매가 그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세속적 부를 누리던 상점들과 사채업자의 거대한 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온 도시가 소멸하기라도 한 듯이 멎어버렸으니......그렇게 모든 것이 그치고 멈춰버렸다.

-pp.201


마치 2020년도의 락다운을 했던 도시들의 풍경들의 묘사 같다. 그러나 이 기록은 1500년 전 페스트가 유행할 때의 역사가 요한의 기록이라고 한다. 난생처음 맞이하는 재난 같았던 풍경이 사실 역사 속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되었던 고난의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류는 주기적으로 전쟁과 기아와 역병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 장구한 지난한 세월들의 기록이 이제는 그것을 직접 겪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이것을 통과하고도 여전히 번영하고 서로를 믿고 내일을 기대하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저자는 과학적 정보와 인문학적 지식의 통섭을 절묘하게 이뤄냈다. 각종 고대, 중세, 근대의 문헌 등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전염병의 기록과 문학적 자취를 시의적절하게 인용하고 우리가 현재 코로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과학적 발견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와 그것이 우리의 사회와 경제에 끼치는 영향과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그러나 결국 기본적으로 이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의 선의와 서로 연대하려는 노력, 과학적 진보의 결실을 통해 우리가 결국 이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전반적인 기조를 이룬다. 그것은 이 책의 긍정성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내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안이라는 것은 안도를 주지만 그것이 명쾌한 해답은 아니다. 


현대의 과학, 의학의 진보가 대재앙을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케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발견은 놀랍다. 실제 오늘날의 거리두기는 이미 과거의 전염병이 올 때마다 선조들이 나서서 했던 행위라고 한다. 인류는 이미 서로 병을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했을 때 거리를 두고 격리를 하는 일들을 반복해 왔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의료인과 종교인은 나서서 병자를 치료하고 간호했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것은 인간들 간의 연민과 선의다. 이것을 뛰어 넘을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코로나는 다시금 이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의 계획은 우리의 운명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모든 진보가 양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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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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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유한하고, 우리의 생에 일어나는 일들은 무작위적인 우연으로 인한 부조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창하고 대단하고 개별적인 의미를 지닌 삶이란 없다."는 자명하지만 암울한 명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차원에서 받아들일 방법이 있다. 그것은 더욱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별자의 이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신화가 될 수도 있고 우주가 될 수도 있다. 광대한 시간, 공간의 기원을 탐구하며 개개의 삶의 내면으로 돌아오는 여정의 안내자로 이 책의 저자로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그린을 강력 추천한다.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환원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생명과 마음을 탐구"하는 어렵지만 가치 있는 경로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여기 이 지상에서 지엽적인 문제들로 마음이 산란한 우리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위로하고 시의적절한 관점의 전환으로 유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책이다.


우주의 탄생과 별의 기원과 우주 공간으로 뿌려진 원소가 우리의 몸이 되기까지의 경로를 브라이언 그린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임을 하나로 통일하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해 온 터라 끊임없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그 진화와 엔트로피의 지침에 집중한다. 종교적인 서사나 신의 불가항력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형이 종교인이고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유대교적 의례가 위로를 주었다는 개인적인 고백이다. 이론 물리학자로서 환원론적 관점을 고수하며 모든 생명체를 입자의 배열로 설명하는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에피소드들의 틈새로 인간적인 모순을 고백하는 대목은 오히려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생명이 물리법칙에 의거하여 분자의 배열로 설명되지만 그 생명 중 우리 인간이 가지는 각자의 서사를 양립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결국 그가 약속했던 초반의 환원주의자적 관점을 고수하며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탐구하겠다던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맑게 하면서 가슴에 감동을 준다. 완전하고 완벽하고 딱 떨어지는 이론의 정립만을 향해 나아갔더라면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성취다.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빅뱅과 별, 행성의 탄생 과정, 마침내 인간의 출현까지로 이 장구한 이야기가 끝을 맺는 것은 아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비유를 통한 우주의 광대한 미래의 예견으로 마침내 '시간의 끝'으로 우주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머나먼 미래까지 브라이언 그린의 이야기는 확장된다. 영원의 시간에도 결국 마침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개별자적 한계 너머로 희구하는 영원의 끝에 방점을 찍으며 그는 이야기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바깥이 아닌 내면이다. 이미 제시된 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과학은 바깥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어둠을 뚫고 소리와 침묵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영혼을 자극할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흔히 과학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천상 스토리텔러인 과학자의 아름답고 평이하고 적확한 문장들이 그런 우려를 일거에 씻어버린다. 같은 물리학을 공부한 번역가의 번역도 훌륭하다. 양자역학이론을 비롯한 몇몇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들의 완급과 깊이 조절도 대중들의 이해도를 감안한 배려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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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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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 하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메디컬 드라마를 떠올리게 되지 사실 동명의 위대한 해부학의 고전을 쓰고 요절한 저자 헨리 그레이와 삽화를 그린 같은 이름의 헨리 카터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경학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만년을 함께 한 빌 헤이스 또한 자기만의 전문적인 관심사 분야를 파고들어 꾸준히 글쓰기를 한 작가로 이 <해부학자>를 통하여 그는 이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두 명의 발굴되지 않은 삶의 궤적을 자신이 직접 참가한 해부학 수업의 과정과 함께 엮어 그려 나간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는 문자로 된 사적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아 그의 삶을 직접 추적하는 데에는 적잖은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천재 해부학자 외과의사는 삼십 대에 천연두로 요절하여 자신의 책이 중쇄를 거듭하며 의대생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임을 예감하지 못한다. 그레이를 묵묵히 보좌하며 막대한 양의 정밀한 삽화를 그리며 책의 완성에 기여한 헨리 반 다이크 카터는 상대적으로 나름대로 성실하게 그날의 일상들을 기록한 일기를 남김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레이의 드러나지 않았던 그간의 행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카터는 그레이에게 어떤 경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그레이의 추진력과 카터의 무식할 만큼 집요한 성실성으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짝 천재성을 드러내었던 그레이의 삶이 전염병으로 일순간 너무가 허무하게 중단된 반면 카터는 비교적 노년까지 남아 자신들의 역작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모습과 또 그것에 따른 열매를 맛보게 된다. 


저자 빌 헤이스는 원래는 헨리 그레이의 전기를 쓰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젊은 학생들과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해부학 개론" 수업을 듣고 해부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두 헨리가 탐구하고 천착하며 써 낸 해부학 교과서 뿐만 아니라 그 둘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도 점점 더욱 깊어짐을 느끼며 이야기는 좀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되며 더욱 다채로워진다.  많지 않은 자료를 재구성하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두 젊은 해부학자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며 그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사랑과 작별, 상실의 이야기를 슬며시 끼워넣는 손길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그들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은 공백은 그래서 저자 빌 헤이스 자신의 삶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p.359



해부학자의 삶의 동행자였던 빌 헤이스의 연인은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게 헌정되고 이 책을 통하여 그는 다음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헨리 그레이와 헨리 카터는 나란히 저자의 삶에 나름의 힘을 행사한 셈이다. 사람의 몸을 해부하여 신체를 알고 거기에 생기는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그것의 올바른 가이드 라인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다시피 하여 만들어 낸 길이 남을 명저, 그것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결국 맞이하고야 마는 상실과 죽음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해부학 교과서를 남겨주고자 했던 어쩌면 그 평범했던 의도가 두 젊은이의 열정과 성실성과 만나 맺어낸 우연한 눈부신 성취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고 진실성 있게 복원하고자 했던 저자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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