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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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병, 전염병은 인간 관계의 역학마저 변질시킨다. 사소한 접촉, 마스크의 착용 여부, 모임의 취소, 강행을 둘러싸고 코로나는 사람 간의 교류의 성격까지 변화시키기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이제는 민폐이자 나라의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풍경으로 비친다. 몇 개월 안이면 바이러스가 사라지거나 적어도 치료약이나 백신의 개발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될 거라 여겼던 기대들은 이제 벌써 육개월이 훌쩍 넘어가 학습된 무기력으로 치닫고 있다. 사람을 믿고 사람과 접촉하고 맛있는 것들을 나누던 시간들이 점점 낯설게 멀게 느껴진다.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는 코로나 이전에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를 마치 예고하는 것 같은 소설이다. 피부가 하얗게 말라붙는 '다기조'라는 전염병에 점령된 L시의 공무원 이동휘의 이야기는 이 전염병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유린하는지에 대한 탐사다. 아이를 잃고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고 사람 간의 접촉과 애정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병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 시대가 출현했다는 것과 한 뜻이요."

-p.36


카뮈의 <페스트>에서 봉쇄되었던 도시 오랑의 시민들이 느꼈던 절망은 L시의 그것과도 닮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이나 기대를 잃어버리고 전염병으로 무너지는 삶에 적응하게 된다.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진다. 그 병에 싸워 이겨보려는 의지조차 없다. 그런 의지는 반역적이고 반동으로 치부되어 모래마을이라는 대치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동휘는 그 두 공간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도시의 운명과는 별개의 고유한 개인이 존재한다-바로 나 이동휘 말이다!-는 허황된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L시야 어떻게 되든 내가 지킬 수 있는 고유의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p.112


<흰 도시 이야기>는 이동휘가 이러한 개인의 고유성을 도시의 운명에 맞서 과연 지켜낼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그는 L시에서 나와 모래마을로 가고 모래마을에서는 또  L시를 그리워하는 그 복잡한 모순 안에서 방황하지만 끝내 패배하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아이와 잃어버린 기억들을 들쑤시는 그 고통과 연약함을 회복하려 애쓴다. 고통스러운 진실보다는 편안한 거짓과 허구를 택하는 다수 가운데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동인을 아이로 잡고 있지만 과연 이동휘라는 인물의 성향과 일관성이 있는지가 좀 모호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싸우고 어떤 사람들은 굴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견디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삶을 견디지 못하는가. -p.245


우리가 잘 견뎌내고 다시 예전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책에도 그러한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고 희망할 수 없는 나날들을 일상으로 꾸역꾸역 이어나가는야  하는 것이 모두에게 힘겹다. 우리는 견뎌야 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KF94를 끼고 언덕을 오르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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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9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는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것.
말하자면 우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거지요.
다시는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살까 봐 진지하게 생각하면 심각해져요.
모든 걸 잊는 잠 자는 밤이 요즘은 좋으네요. ^^

blanca 2020-08-30 09:00   좋아요 1 | URL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결국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올 거라는 걸 믿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통과해나가야겠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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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은 그 이전으로 건너갈 수 없다. 잠시 입원했던 병동에서 한 경험,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 앞에서 내는 소리, 무너지는 존엄을 목격한 이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나와 다른 종족처럼 보였다. 저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다 알면서 견디어낸 걸까. 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그것이 명분도 대의도 부족한 그래서 내가 기꺼이 머리로 정제된 말로 반대했던 전쟁이었다면. 그리고 그 전쟁에서 내 옆의 동료가 죽어나가고 때로 무고한 사람을 내 손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일이었다면.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난 후에 그건 잘못된 것이었다고 우리가 구태여 참가해서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었던 거라고 확인사살까지 시켜준다면. 게다가 하필 나는 글을 쓰는, 그래서 나의 그 무참한 기억들을 목격자로서 다시 복기해 내며 경험해야 한다면. 죄책감과 패배감과 부끄러움과 수치를 한데 그러모아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다고 딸에게 차마 고백할 수 없는 작가라면. 그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팀 오브라이언은 실제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전쟁에 참전한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함께 한 전우들, 전장에서 사라져간 그들, 돌아온 그들, 그곳에 오기 전의 팀 오브라이언, 그리고 지금 그렇게 다시 글을 쓰며 그들을 소환해 내는 작가의 시점, 시차가 스물두 편의 이야기에 혼재되어 있다. 너무 사실 같아서 이것은 흡사 소설이 아니라 그냥 팀 오브라이언의 자전적 경험의 치열한 기록물 같기도 하고 때로 너무 거짓 같아서 다 꾸며낸 팀 오브라이언의 전쟁 연작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혼란과 애매모호함에 독자를 던져놓고 그는 자신이 처했던 괴로운 딜레마들과 갈등들을 우리도 함께 경험하고 성찰하고 고찰하고 마침내 우리의 삶에 통합하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전쟁은 순전히 자세와 운반의 문제였고, 그 혹 같은 등짐이, 일종의 타성이, 일종의 공허함이, 욕구와 지성과 양심과 희망과 인간미의 그 무디어짐이 전부를 차지했다. 그들의 원칙은 발에 있었다. 그들의 계산은 생물학적이었다. 그들은 전략이나 작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p.31

이것은 전쟁에 대한 대단히 직관적인 이해다. "그들은 전략이나 작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문장의 진동이 전해져 온다. 전쟁은 우리가 머리로 그럴듯한 언어로 정당화하는 명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육과 폭력과 무모함과 비이성과 광기와 하루 하루의 생존에 더 가닿아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늙은 가진 자들의 탁상공론하에 전장에 내몰린 어린 청년들의 발이 있다. 모든 더럽고 직시하기 힘든 것들을 우리는 그들에게 밀어버린다. 팀 오브라이언 자신도 있었던 곳이다. "용감함은 목적이 아니었다. 그보다, 그들은 너무 겁나서 겁쟁이가 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사실적이고 진실을 품고 있다. 용감한 군인, 승전 퍼레이드, 정의 수호, 약자 보호와 전쟁은 멀다. 


<레이니강에서>는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달아날까? 를 고민했던 스물한 살의 팀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도망자를 묵묵히 지켜보고 다시 현실로 돌려보낸 놀라운 목격자이자 진짜 어른인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이 소년티를 채 벗지 못한 어린 청년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 그 어떤 조언도 경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곁에서 침묵하고 그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지지해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를 전장에 돌려보낸다. "그 남자는 알았던 것이다."는 이십 년 뒤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그 작가로서의 자아의 초자아다. 그것은 가상의 노인이었을 수도 있고 그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그는 전장에 들어가서 마침내 이 글의 소재를, 주제를 몸소 살아낸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결코 교훈적이지 않다. 그것은 가르침을 주지도, 선을 고양하지도, 인간 행동의 모범을 제시하지도, 인간이 지금껏 해오던 일들을 하지 않도록 말리지도 못한다. -p.89


이 이야기들의 가치는 이 이야기들이 순진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데에 있다. 명분도 합리성도 이성도 논리도 실종된 곳에서 이십 대의 청춘들은 하루하루 견뎌 나간다. 때로는 자신의 내부에서 악을 발견하고 처절한 잔인함을 목도하고 소스라치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의 축이 되어나간다. 청춘은 너무 이르게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고 예상하고 옆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며 때로 아직 남아 있는 생에 전율하고 그것에 경도되기도 하고 삼자오 압도당하여 스스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게 내가 전우의 죽음을 야기하기도 하고 그것은 평생에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남는다. 팀 오브라이언은 그러한 죽어간 전우들을 이야기로써 다시 부활시키며 죽음에 맞선다. 그는 사라졌는가 싶으면 다시 돌아와 자신이 하는 얘기의 진실성의 근간을 흔들고 독자를 깨우고 때로는 그 행위 자체로 이 이야기 모두가 소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임을 방증하는 교묘하고 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진실한 전쟁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며 그렇다면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지점에서 그는 유유히 빠져나간다. 


나는 내가 느꼈던 걸 당신이 느꼈으면 좋겠다. 이야기의 진실이 왜 때로 실제의 진실보다 더 진실한지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

-p.210


팀 오브라이언이 바란 바다. <죽은 이들의 삶>이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기민한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다. 그럼에도 그렇지만 그러나 "이 또한 진실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그가 서두에 밝힌 것은 지당하다. 그의 잃어버린 그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의 평행우주적 결론은 이야기의 힘을 설파한다. 모든 사라져간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그 사랑을 다시 그러모을 수 있도록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편한 그의 마침표는 너무 울림이 커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 모두에게는 상실이 있고 그것을 팀 오브라이언의 방식처럼 다시 그러모아 부활시키고픈 소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그의 결론은 언제나 옳다. 그가 작가로서 그 죽어버린 어린 소녀를 구원했듯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 모두의 슬픔과 상실과 고통을 구원하는 상상을 해본다. 경이로운 이야기다. 


나는 어리고 행복하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p.282


죽음 앞에서 죽음을 부정하고 생 앞에서 생을 부정하고 지금 여기에서 생을 긍정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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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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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번역 출간되기 이전 이미 몇몇 기사에서는 40년 전 이미 신종 코로나를 예견한 추리 소설이라는 얘기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일치하거나 노스트라다무스적 예언은 아니라는 갑론을박도 함께였다. 딘 쿤츠는 비교적 우리나라에서는 지명도가 낮지만 전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을 판매한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티븐 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라는데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원서는 절판되었고 번역본도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금세 번역되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이 작품은 전직 무용수이자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쇼의 제작자인 티나라는 젊은 여성이 아들 대니를 잃고 그 상실을 딛고 자신의 삶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의 도정에서 출발한다. 서스펜스 작가는 자신의 플롯을 밀고 나가려는 성급한 욕망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단순화하려 하지 않는다. 성공한 제작자로서의 커리어에 매진하려는 아내를 못마땅해하는 남편의 저열한 마음의 묘사도 사실적이다. 티나는 남편을 잃고 다음으로 아들을 잃는다. 떠나간 아들은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듯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그녀는 마침내 변호사인 연인 마이클과 함께 그 메시지의 성격과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상정된 악은 놀랍게도 국가다.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강대국들은 생화학 무기개발 경쟁에 물러나지 않으려 각축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등판한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실수로 유출되는 과정에 티나의 아들이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참가한 캠프의 사고가 연결된다. 국가의 거대하고 은밀한 프로젝트에 개인의 삶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것은 더 큰 비극으로 연결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극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는 일어나는 일들에 마치 하나의 평행우주를 예견한 것같다.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은 어머니의 눈빛과 만나는 아이의 눈빛은 그 전의 해맑고 순진한 빛을 잃었다. 삶의 어두운 이면을 보아버린 아이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딘 쿤츠의 예지력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빛난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어쩌면 그 진실은 끝내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추정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각종 불투명한 상황은 그것만으로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러번의 예견과 그 예견에 제대로 대응하고 준비하지 못한 모습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 파괴하기 위해서 과학과 의학의 진보를 이용한다. 그것은 애국심도 대의도 아니다. 단지 파괴다. 딘 쿤츠는 거기에 바로 이 깊은 어둠의 심연이 있다고 봤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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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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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년의 내가 인정하기에는 조금 안타깝지만 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느끼는 감성이, 쓸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어딘가 한 구석은 열려 있고, 날것의 경험은 겉돌지 않고, 소통과 교감에 대한 기대를 속단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타는 간절함이 서려 있는 이야기가 있다. 김연수가 그랬던 시간에 만든 이야기들을 신형철 평론가가 갈무리하던 시간을 기억한다. 쓰고 해석하고 느끼고 마무리하는 둘의 궁합은 정말이지 최고여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가 너무 좋은데 그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며 내가 놓친 것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평론가의 마무리까지가 소설가의 작품의 연장선상인듯한 느낌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상기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잊어버린 감각이 되돌아오고 이젠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느낌들을 다시 맛보았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일곱 작품과 짝꿍처럼 곁들여 있는 신진 평론가들의 평론도 다 함께 마저 읽어버렸다. 물론 내가 충분히 젊었을 때 한창 젊었던 소설가와 비슷한 평론가의 평론을 읽으며 느꼈던 그 시간의 감동의 진폭과 결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감동을 충분히 기억해 낼 만큼 좋았다. 


강화길의 <음복>은 아직 제사문화가 남아 있고 곧 화자 같은 올케를 맞이하게 될 지 모를 지금 나의 상황을 곱씹어보게 했다. 비판없이 전승되는 가부장 제도의 집약인 '제사'에서 그것을 주도하는 남성들의 역할과 그들을 보조하고도 자신이 한번도 본 적조차 없는 상대 배우자의 조상에게 절조차 나가서 할 수 없는 여성들의 희생과 그 틈의 긴장, 감정의 소진이 신세대 며느리의 시선 앞에 생생하게 정경화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고 골치아픈 모든 문제들로부터 보호되는 남편을 사랑하는 '나'의 모순은 결국 이 젠더의 구조화가 미치는 여성들 간의 갈등, 암투로 교묘히 왜곡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대목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고 비판 없이 그러한 가족적 전통 서사를 받아들였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은행의 계약직이었다 늦깍이 대학생이 된 화자가 여성 강사와 만나 교감하고 오해하고 어긋나며 역설적로 그녀가 걸어간 길을 답습하게 되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최은영 특유의 큰 서사 없이도 삶의 어떤 그리운 정경을 불어내는 재주와 그것에서 확장되는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만나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화자의 자문에 깊이 공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똑똑하고 당차던 그녀들이 사라져간 길을 다시 꾹꾹 눌러 밟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의 질량감을 길어올리는 작품이었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허구의 소설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커밍아웃과 애인과의 동거 생활에 대한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에세이 같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으면서 삶의 행간의 의미를 끌어올리는 작가의 능력은 그의 성정체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나 화자의 책을 읽고 난 어머니가 사투리로 "니 진짜로 그애랑 그런 생활을 했나?"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막상 심각한 장면인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에 찍힌 방점은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기대치와는 완전히 대치되는 '그런'이 비극적인 신파로 전락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 김봉곤 작가의 생에 대한 활달한 긍정과 씩씩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자체의 생동감이 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타협, 수긍인데 이야기는 침잠하지 않고 왜 이리 유쾌하게 역동적인지 나도 그의 '그런 생활'을 어느새 인정하고 이해해버린 듯한 느낌.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어느 구석인가 테드창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있다. 우리의 집단화된 구조화된 사고체계를 격자로 실체화하고 그 안팎을 넘나드는 화자와 이단아 같은 친구의 관계망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어느새 우리 안에 고착화된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고정 관념, 계승되는 각종 제도와 교육에 관련한 그 경직된 틀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여지없이 상큼하고 창의적이었다. 결이 아직 촘촘하지 못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시간과 함께 충분히 숙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작품.


장류진의 <연수>는 내가 삼십 대 중반이 넘어 중년의 여성 강사에게 받았던 운전연수를 떠올리게 해서 반가웠다. 모든 것에서 엄친딸인 화자가 운전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그녀를 교묘하게 자극하고 결국 독립시키려는 강사의 모습이 유사 모녀 관계를 연상시키며 어떤 현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는 아들을 키워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평범한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실감감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가 살아오며 체득한 사회적 제도망에서 자신들이 낳고 키워낸 자식이 일탈할 때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삶에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참신한 작품이라 읽고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반적으로 모두의 작품이 건드리는 사회적 통념과 경직화된 구조의 공고함은 어떤 유연함을 사고의 전환을, 도약을 향해 약진하는 느낌이다. 서사는 참신하고 문장은 구어적이고 결론은 열려 있다는 공통점에 기대어 오랜만에 모든 단편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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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해 최근에 다들 좋다고 하던데 블랑카님도 별다섯을 주셨네요. 거침없이 저도 지르겠습니다.

blanca 2020-04-10 14:39   좋아요 0 | URL
일단 다락방님, 재미있어요. 보통 단편들은 인내심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하나 같이 그냥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또 가볍지도 않고요. 그저 ‘인정‘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책값도 착하고요. 표지도 예쁘고 이러고 보니 완전 영업 중이네요. ^^

moonnight 2020-04-10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저도 헐레벌떡;; 보관함에 던져넣습니다. 일단 재미있다니♡ 얼른 읽고 싶어요. blanca님^^

blanca 2020-04-11 13:2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공감하는 대목이 분명 있어요. 제 기억에 사변적이고 추상적이고 한창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난무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어요. 심지어 소설을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요. 그런데 이제 뭔가 꿈틀꿈틀 이야기들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정도의 작가들이 계속 나와준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 너무 극찬을 하고 나니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괜히 부담스러워지네요. ^^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감은빛 2020-04-10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 읽으며 저도 안타깝단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 찜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20-04-11 13:2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중년은 정말 영 나와는 먼 친정 엄마한테나 쓰는 용어인 줄. 하지만 현실은 이젠 완연한 중년이죠. 후회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추천합니다.

유부만두 2020-04-2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 중이에요. 실은 블랑카 님께서 빼놓으신 단편에 분노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읽고 있는데 줄어드는 남은 쪽들이 아쉽네요. 블랑카 님 감상이 어떤 면에선 더 제 맘에 가깝고요. ^^

blanca 2020-04-21 20:40   좋아요 1 | URL
혹시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좀 잘 안 읽히긴 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야기였어요. 전반적으로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은 없었고 너무 무겁고자 했던 이야기도 없어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아요.
 
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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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다. 암울한 시대에 홀로 빛나는 삶은 없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어느 정도의 기만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IMF가 오기 전 청춘을 경험한 90년대 학번이 90년새들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얘기에는 설득력이 있다. 경제적 부흥과 청춘이 만나 만들어지는 서사는 빛난다. 


미국의 대공황기가 끝난 1930년대 후반의 부유한 청춘들에 대한 얘기는 그래서 유독 눈길을 끈다. 이미 피츠제럴드가 기민하고 화려하게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직 투자전문가인 에이모 토울스가 데뷔작으로 비슷한 주인공들을 불어내어 그럼에도 전혀 식상하지 않은 <우아한 연인>을 썼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시대의 흥청대는 분위기와 통통 튀는 젊고 아름다운 인물들의 욕망,좌절, 사랑, 배신에 대한 묘사가 놀랍도록 섬세하고 생생해서 마치 그 시대 안으로 저도 모르게 초대된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케이티 콘텐트는 그 자신이 물론 서사의 한가운데에 있긴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닉 캐러웨이 같은 명민한 시대의 관찰자이자 증언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그녀의 시선을 통과한 그 시대는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고 그 자본주의와 온갖 겉치레의 사다리에 기어올라가려는 적나라한 욕망의 오점들로 오염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나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마치 개츠비의 형제처럼 보이는 팅커 그레이라는 인물을 통해 극적으로 형상화된다. 케이티와 룸메이트 이브는 팅커 그레이와 우연히 만나 친구이자 묘한 삼각 관계에 얽혀들며 이 수수께끼 같은 청년이 속한 맨하튼 상류 사회의 화려한 사교계와 그 안의 내밀한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시종일관 결국 이 팅커 그레이라는 인물이 구현해 낸 그 복합적인 삶의 기만을 통해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종종 혼동하는 과정에서 놓치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느낌이다.  계층의 사다리의 상부에 비교적 쉽게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타인의 필요와 맞아 떨어질 때 어떤 비극을 연출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에이모 토울스의 미덕은 그 골조를 통해 완성해 낸 건물 자체의 수려한 경관일 것이다. 진부할 수 있는 테마가 전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그의 이러한 능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사십 대 후반의 남성 작가가 20대 중반의 여성의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우연히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파티에 참가했을 때의 케이티의 그 시린 마음을 여러 다양한 경로로 경험한 기억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어리석은 치기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은 남은 중년의 삶에 유일한 위로가 될까? 에이모 토울스는 그 어리석지만 찬란한 아둔함의 정서가 반드시 청춘과 만나야 함을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남용했던 시간들은 반드시 그때였기에 가능한 지점이 있다. 망각했던 시간은 진저리나는 그리움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중년의 끝자락'에 무사히 안착한 케이티가 회고하는 이십 대의 느낌은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십 대에서 사십 대로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이야기가 가지지 못하는 어떤 회고적 시선은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을 것이다.


눈물겹도록 무의미하지만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 특히 케이티의 남자친구가 이웃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신청곡을 적어 끊임없이 종이 비행기를 그쪽으로 날려 보내려는 무용한 시도에 대한 장면, 셋이 본격적인 삼각 관계에 돌입하기 전 연말을 마무리하고 나란히 새해를 맞이하며 함께 노래 부르고 눈싸움을 하는 정경이 참 예뻐서 기억해 두고 싶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읽고 나면 왠지 마음이 저릿해지는 청춘의 이야기다. 뒤돌아보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찰나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처럼 공명한다.  


금박의 제목이 빛나는 우아한 분홍색의 표지와 핑크빛 가름끈은 책의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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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16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블랑카님, 이 좋은 소설을 이제야!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는 케이티를 우연히 만난 팅커가 케이티에게 ‘그래, 여기에요?‘ 라고 묻는 장면을 너무 좋아해요. 케이티가 찾아가는 비밀 장소가 있다는 말을 일전에 했던 걸 기억하고 말이지요.

에이모 토울스는 이 작품 후의 작품 [모스크바의 신사]도 매우 좋아요, 블랑카님. 이 책을 이렇게나 좋게 읽으셨다면, 모스크바의 신사도 매우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blanca 2020-03-16 17:02   좋아요 0 | URL
아, 안 그래도 냉큼 샀어요. 이 작가 대체 뭐죠? 사십 대 후반에 이런 작품을 데뷔작으로 쓸 수 있다니... 안 그래도 <모스크바의 신사>도 냉큼 샀어요. 이 작가 대체 뭐죠? 사십 대 후반에 이런 작품을 데뷔작으로 쓸 수 있다니... 그리고 왜 이렇게 전형적으로 멋있는 남자들이 많이 나오고 또 다 여주인공 좋아하고. 이렇게 쓰면 되게 유치한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분위기도 안 풍기고. 좋은 작가는 정말 차고 넘치는군요.

비연 2020-03-16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이 책을 냉큼 주문했었는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 다들 호평이신데.. 얼른 읽어야겠다는.
에이모 토울스의 글은, 우아하면서도 두리뭉실하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아름답지만 슬픔이 담겨 있는 장면들을 우아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랄까. 아 읽을 책이 너무 많습니다.. 흐미.

blanca 2020-03-16 17:03   좋아요 0 | URL
아. 비연님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먼저 읽으셨군요! 저는 지금 받아서 며칠 후에 시작하려 해요. 이 책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됩니다. 진짜 정확한 표현입니다. 우아하면서도 섬세하죠.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