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딸 다섯 아래 아버지를 낳으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세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성취이자 또다른 삶이었던 것같다. 모자는 밀착되어 있었고 죽음으로 헤어질 때까지 서로를 애달파 했다.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만나면 아버지는 오열한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할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산고를 열번 가까이 외롭게 겪고 생떼 같은 자식들을 때로 앞세우기도 했던 당신의 삶. 시대는 변해도 어머니와 자식의 그 치밀하고 절절한 애착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언어로도 그것을 모두 주워담을 수 없다. 그저 느끼고 또 잊었다 뒤돌아 보고. 여기까지다.

 

스물다섯 살의 로렌스는 암으로 죽어가며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고통스런 삶을 보상해 주기 위한 시도였다.-켈렌 바론과 칼 바론 

 

 

 

 

 

 

 

 

 

 

 

 

 

 

 

 

 

 

D.H.로렌스 하면 흔히 떠올리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그는 흔히 에로티시즘과 연결된다. 그의 작품을 시작한다는 것은 왠지 그래서 불온해 보인다. 실제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20세기 당시 선정성으로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았다. <아들과 연인>도 상당부분 삭제된 판본으로 독자와 만나오다 드디어 무삭제 케임브리지 판본의 번역본으로 한국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평생 어머니와 밀착되어 있었던 로렌스의 자전적인 부분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광부의 아내였던 모렐 부인의 서른한 살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침내 그녀가 죽고 장성한 둘째 아들 폴이 세상으로 나가는 부분까지 장대한 가족 서사시다. 모렐 부인은 로렌스의 어머니 그 자체다. 풍광에 대한 묘파가 뛰어나고 사람의 내면 심리에 대한 간파가 놀랍다. 그에게 에로티시즘의 멍에가 씌어졌다면 그것은 모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에 로렌스가 얼마나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적시에 적절한 언어로 그것들을 포박했는 지에 대한 몰이해가 아닌가 싶다. 그의 앞에서 모든 사물은 농밀하게 그려진다. 생명력은 놀랍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에 다소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것같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 아이는 어머니에게 환멸의 쓰라림이 가장 견디기 어려울 때, 삶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흔들리고 그녀의 영혼이 황량하고 외로울 때 태어났다. 그녀는 아이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것을 질투했다.

-1권 p.40

 

모렐 부인은 상류층 귀부인 같은 우아함을 지녔지만 그의 남편은 술과 유흥에 탐닉하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던 그 활기 있고 매력적인 청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녀는 그를 점점 경멸하게 되었고 그 사이 사이 윌리엄, 애니, 폴, 애덤이 태어났다.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전장에 그녀의 총애의 표시를 달고 나간 기사와 같았던 장남 윌리엄은 폐렴으로 어이없이 죽어버린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다시 차남 폴에게 닻을 내린다. 폴은 로렌스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일을 어머니를 위해 했던 폴과 모렐 부인의 유대는 각별하다. 그가 두 여인 사이에서 갈팡질팔 할 때도 그의 지향은 정작 어머니였다.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렐 부인에 대한 묘사는 인간의 의지, 꿈, 소망이 그 잔인하고 초라한 종결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스러지는 지에 하나의 예시이자 전언이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어머니에게 모르핀을 과다 투여하는 그 남매 간의 암묵적인 합의 장면에서 가슴이 저릿했다. 사랑하는 나를 세상에 내어 놓았던 그 강한 어머니가 작게 오그라들며 고통에 허덕이는 장면. 우리는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그 명철했던 수전 손택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내고 그 장면을 또 복기하고 복기하며 대체 뭘 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자문하고 또 자문한다. 이런 장면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마침내 모렐 부인이 죽고 이제 자식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공적으로 전환해야 했다. 어머니가 죽고 난 세상. 폴이 느낀 것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는 진정으로 그의 삶을 지탱해 주었었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그들 모자는 실제로 함께 세상을 대면했었다. 이제 어머니가 없었으므로 그의 뒷전에서 삶은 영원히 갈라져서 틈새가 생겨낳고 베일이 찢어져서 마치 죽음을 향해 이끌리듯이 그의 삶은 천천히 표류하고 있었다.

-2권 p.383

 

<아들과 연인>을 읽고 나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진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가 그려낸 어머니와 자신의 삶과 작별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이라 읽는 이를 절로 괴롭게 만든다. 어린 아들 앞, 시장에서 막무가내로 값을 깎아서 산 자신의 형편에는 호사스럽게 느껴지는 접시를 자랑핬던 젊고 예쁜 엄마는 어느 날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그러한 우리를 낳는다. 그런 게 삶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뭉근하게 아파온다. 이 모든 것에 허무한 끝이 있다는 명제는 절망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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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5-0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이 책은 자전적 요소가 강한데,로렌스의 아버지는 광부,어머니는 교사여서 당시 영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게급이 틀린 이들끼리의 결혼이었다고 하더군요.이후 로렌스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실망해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았는데 특히 몸이 약한 로렌스를 더욱 사랑하고 아꼈다고 하더군요.

blanca 2013-05-09 10:06   좋아요 0 | URL
정말 책 내용이 비슷하군요! 이 책 읽다 보니 정말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로렌스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참 슬프고 뭉클한 이야기였어요. 어머니가 로렌스를 각별히 여겼군요.

세실 2013-05-0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다보면 자전적인 내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필 한편을 써도 내 삶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긴 긴 소설은........
요즘 아들에게 서운한 일 있는데 이 책 읽으면 더 서운하려나? ㅎㅎ

blanca 2013-05-10 08:58   좋아요 0 | URL
세실님 어떤 서운한 일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내리사랑이라는 말. 참 맞는 것 같아요. 여긴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 운치 있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이제 정말 하늘을 향해  튀긴 팝콘 같았던 벚꽃은 엔딩을 향해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그 어떤 인공 향수로도 흉내낼 수 없는 달콤하고 향그러운 라일락 꽃망울이 터진다. 시작과 끝은 항상 이렇게 맞물린다.

 

아름다운 계절.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책인 줄만 알았다.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의 캐너리 로는 시이고 악취이고, 삐걱거리는 소음이고, 독특한 빛이고, 색조이고 습관이고, 노스텔지어고 꿈이다. 캐너리 로는 모여 있는 동시에 흩어진 곳이고, 함석과 쇠와 녹과 쪼개진 나무이고, 잘게 부서진 보도와 잡초가 무성한 나대지와 고물 수집장이고, 골함석으로 지은 통조림 공장이고, 초라한 극장이고, 식당과 매음굴이고, 북적이고 작은 식료품점이고, 연구소와 싸구려 여인숙이다. -존 스타인백 <통조림공장 골목>

 

 

지금은 상류층 거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몬터레이. 존 스타인벡이 그려낸 과거의 그곳, 통조림공장 골목은 이 도입부의 환유법으로 대치된다. 소란 없이 조용히 타협하는 방법을 아는 중국인 이민자 리청이 운영하는 식료품점, 엄숙하고 당당한(?) 도라의 매음굴, 그레고리 성가를 듣는 닥의 해양 생물학 연구소, 그리고 이러한 닥의 잔심부름을 하기도 그를 성가시게 하는 사고뭉치들 맥 패거리. 이들의 좌충우둘 에피소드는 고상하지는 않지만 때로 웃음을 터뜨리게도 하고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하는 에너지로 부글부끌 끓는다. 작가 존 스타인벡은 살리나스 계속의 3대에 걸친 그 대서사시를 장중하게 완성했던 그 동일작가가 분명한데 여기에서는 계속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소재와 배경은 우울에 물들 만도 한데 그 안의 과육은 어찌나 달큰한지 다 먹기가 아까울 정도이다.

 

 

 

 

부랑자 맥 패거리가 식료품점 주인 리청이 외상 대신 받아낸 창고를 겁박으로 점령하다시피 하고 닥을 위한답시고 그의 생물학 연구소에 필요한 개구리를 잡고 어처구니 없는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장면은 시트콤보다 재미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울분은 맥 패거리를 깊이 잠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상업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기쁨을 팔린 물건으로 재지 않았고, 자존심을 은행 잔고로로 재지 않았고, 사랑을 그 값으로 재지 않았다.

-p.162

 

"캐너리 로에서 이른 아침은 마법의 시간이다." 이 시간 통조림 공장의 골함석은 진줏빛 광택을 발한다. 스타인 벡이 명명한 이 '진주의 시간' 에 대한 이야기. 결국 미워할 수 없는 이 구제불능의 맥 패거리들과 마을 주민들은 연합하여 마을의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다시피 한 닥을 위하여 성공적인 파티를 공모한다. 실수투성이, 결함투성이의 이들의 파티는 캐너리 로 주민 전체로 연결되고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파티를 끝으로 이제 해가 거의 중천을 넘어가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자, 이제 해가 막 떠오르는 진주의 시간이 품은 눈물과 그 눈물이 해를 받아 빛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라며, 저녁의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할 차례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된 일본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작품은 한번 읽고 말 이야기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저릿함, 아름다움, 감동은 <통조림공장골목>이 다루었던 하류층, 활기, 애환들과 상치되는 영국의 상류층을 지척에서 수행했던 노집사의 담담한 회고록 전체에서 배어 나온다. 평생 독신으로 오직 위대한 사람을 제대로 보필함으로써 그 위대함과 품위를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집사의 지난 인생에 대한 합리화는 이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역설을 힘겹게 서술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가 섬겼던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주인은 나치의 협력자로 판가름난다. 주인의 죽음 후 다른 미국인에게 저택과 함께 일괄 거래된 그의 인생은 잠깐 동안의 휴가로 이어지고 그 휴가의 갈피짬마다 노집사는 자신의 삶의 여러 편린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발버둥친다. 누구의 인생인들 이러한 모순과 자가당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도 결국 삶의 퇴로없는 저녁즈음에 '나의 삶'을 제대로 누군가에게 설명해 내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 집사가 전부로 알고 섬겼던 주인처럼 우리도 삶의 전체를 통하여 무언가에 끄달리고 지배당하고 좌우될 것이다. 남아 있는 나날 앞에서 돌아본 그것들이 너무나 빈약했음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면 얼마나 서글플까. 그 어떤 착각도 오해도 위선도 교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화법은 오히려 더 강력한 지향을 역설한다. 그 지향은 절대로 외부를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진주의 시간과 저녁의 시간. 이 두 책은 결국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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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5-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황의 위태로운 합리화와 의미 부여를 피하기란 어지간한 통찰력이 있지 않고서야 힘들 것 같아요. 가즈오 이시구로는 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한 장면을 보여주었어요. 적당한 서사, 맥을 관통하는 힘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었어요.

덧-저야말로 제가 좋아하던 작품을 블랑카님의 글로 다시 떠올려서 참 즐겁습니다.

blanca 2013-05-16 08:45   좋아요 0 | URL
아, 쟌느님도 이 작가 읽으셨군요! 정말 묘한 글솜씨의 작가였어요. 다른 책도 읽어 볼까 하고 있어요. <녹턴> 같은 거요.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 어떤 활자라도 읽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 읽을 책이 떨어졌을 때 느끼는 초조감은 말도 못한다.

인지기능과 생리기능의 반사적 연합이라고나 할까 ㅋㅋ 요새 사람들은 하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 오염도가 말도 못한다고 뉴스에서 나오기는 했다. 어느 날 책은 똑 떨어지고 할 수 없이 대형서점에서 매달 발행하는 무가지를 들고 들어갔다 이 책을 만났다.

 

 

나는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우면서 하도 고생을 해서 솔직히 프랑스에 대한 큰 호감은 없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이 서점에는 찾아가 보고 싶다. 미국인인 저자 실비아 비치는 파리에 1919년 11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을 개업한다. 벽에는 시인들의 사진,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걸고 그 안은 모두 골동품, 파리의 영어책 전문 헌책방에서 사모은 책들로 채웠다. 실비아는 프랑스 작가를 미국에 소개하고 영어권 작가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서점은 초창기 비싼 책가격 때문에 주로 도서 대여점의 구실을 하게 되며 유명 작가들의 아지트가 된다. 앙드레 지드, 제임스 조이스도 회원이었다. 특히나 조이스는 반납에 불성실했다고 한다.  1920년 여름 실비아와 제임스 조이스의 첫만남은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다. 이 아일랜드 출신의 경제관념 없는 괴짜 작가에 대한 회고는 참으로 흥미롭다

 

 

조이스로 말하자면, 그는 항상 남들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우했다. 상대방이 작가건, 어린애건, 웨이터건, 귀부인이건, 파출부건 간에 말이다. 그는 누구를 만나건 상대방이 하는 말에 흥미를 표했다. 자기는 어떤 사람을 만나서 한 번도 지루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끔은 서점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건물 관리인의 길고 긴 이야기를 경청하며 앉아 있기도 했다. 간혹 택시라도 타고 오는 날에는 택시기사가 하던 이야기를 마저 끝내기 전에는 결코 내리지 않았다. 누구나 조이스에게 매력을 느꼈다. 어느 누구도 그의 매력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p.67

 

세기의 이야기꾼은 무엇보다 세기의 경청자였다. 누구나 그 앞에서는 귀중한 연사 대접을 받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흡수하여 다시 세상에 흩뿌렸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마침내 실비아를 만나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율리시스>는 음란물 취급을 받아 세상에 정식으로 선을 보이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 미혼의 서점 여주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이 작품은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을 지도 모른다.

 

 

 

율리시스의 방대함과 난해함,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어 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평생 녹내장으로 고통받아 주변의 사물과 활자를 정확하게 제대로 편하게 관조할 수 없었던 이 아일랜드의 사내는 일상 생활과 경제 관념에서는 오히려 평균이하였다고 한다. 서점 주인이자 출판인이었던 실비아는 마침내 제임스 조이스의 가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 또한 경제적으로 허덕였고 대책없는 몽상가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다녀야 했지만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책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일에서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껴 그 고난의 과업을 자처했다.

 

 

 

 

 

 

 

우리가 무척 좋아했던, 그리고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았던 손님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한쪽 구석에서 잡지나 매리엇 대령의 소설 또는 다른 책을 읽었다. 이 사람이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내 기억이 맞다면 1921년 말에 파리에 처음 왔을 것이다.

-p.120

 

그녀의 헤밍웨이에 대한 호감과는 달리 각주는 냉정하다. 헤밍웨이의 허풍, 거짓말과 그것을 또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실비아에 대한 객관적인 해명.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숭앙했던 작가들을 지켜주고 싶어했다. 그녀의 회고록은 그래서 대체로 무덤덤하다. 작가와의 친분의 과시 대신 그 작가와의 교감이 태반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가들과의 만남,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장교가 진열장에 남아 있던 단 하나의 책,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달라고 위압적으로 이야기하자 그녀는 황급히 서점을 정리하고 숨어 지낸다. 수용소에서의 생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지켜낸 것이 그녀 자신의 고된 수용소 생활보다 더 그녀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헤밍웨이와의 재회. 담담한 회고록은 막을 내린다.

 

 

 

 

 

물론 그녀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녀의 뒤를 이어 조지 휘트먼이라는 사람이 이 서점의 명맥을 잇는다. 지금도 가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낭송회를 열고 책을 찍어내고 객쩍은 농담들을 교환했던 사라진 우리의 작가들은 이제 흔적 정도만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제 동네에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같은 서점이 설 곳이 없다. 도서대여점도 보기 힘들다. 아니 종이에 찍힌 활자로 교감하고 소통을 나누는 풍경 자체가 점차 화석화되어 가는 것같다. 그러니 이 책들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 그리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다시 돌아 다시 종이로 된 책, 그 책을 쓴 작가, 그 책을 읽는 이들의 아지트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곳이 다시 생긴다면 슬며시 들어가 가만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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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4-2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들 싸안고 계실 봄날의 블랑카님 생각도 나고, 한동안 잊었던 파리가 막 보물안고 달려오는 것 같아요. 파리보다 황금보물이 필요해요, 요즘. 저도 불어를 그렇게 배워서(억양,발음 다 너무 이상했어요! 부끄럽고, 몸도 베베 꼬이고) 프랑스 정말 관심도 없어요--; (그치만 이건 과거 얘기)

지금은, 아프리카 오지에 보내준다고 해도 가서 안올 것 같아요. 그치만 화장실에 들어갈 때 무가지를 들고가시는 블랑카님이라니.. @.@

blanca 2013-04-28 10:38   좋아요 0 | URL
ㅋㅋ 예전에 에리히 케스트너인가가 엄마가 시장에서 채소 사오면 그것을 싸온 포장 신문도 읽었다는 이야기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나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도 심한 활자 중독이라서요.ㅋㅋ

불어 묘한 매력이 있는 언어는 분명한데 참 어렵더라고요. 응용보다는 암기가 골격인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암기에 재능이 없어서 고등학교 때 별로 안 좋아했던 과목이랍니다.

세실 2013-04-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리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좌 하는데 주제가 고대 그리스 철학이고 율리시스가 필독도서네요. 두꺼움에 놀라고, 난해함에 놀라고....저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요^^
세계 고서점 탐방. 생각만해도 낭만이어라~~~~~

blanca 2013-04-28 10:39   좋아요 0 | URL
세실님 도서관 강좌 너무 알차네요. 그죠! 엄청 엄청 두껍죠. 아웅, 저도 언젠가 고서점 탐방 같은 것 해보고 싶긴 한데 언제가 될런지요.

프레이야 2013-04-2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런이런 사랑스런 페이퍼라뇨.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대한 이야기는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문학적인 블랑카님이 들려주시니 더 좋아요.
정말이지 꼭 가보고픈 곳 중의 하나랍니다. 파리의 고서점도 담아가요. 제가 요즘 부쩍 프랑스에 꽂혀서요.불어공부는 이제 두달했고 왕초보에 게으름뱅이지만 즐기면서 천천히 하려구요. 언젠간 갈 날이 있겠죠. 발원하면 이루어지리니^^ 행복한 봄날 누리시길~~♥

blanca 2013-04-28 10:40   좋아요 0 | URL
아, 맞다! 프레이야님 불어공부중이셨죠! 그럼 꼭 인연이 닿아 가실 일이 생길 거예요. 어제 날씨 너무 좋더라고요. 해바라기 하며 참 행복했답니다. 아, 아쉬운 봄이에요!

Jeanne_Hebuterne 2013-04-30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전산으로 이루어지는 첨단 작업이 활개를 쳐도 사람은 어느정도의 아날로그를 추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보니 저보다 한참 어린 십대 소년이 언젠가 '음반을 왜 사요?'라고 묻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겪은 것을 내칠 수 없고 어찌되었든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이끼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공간이 블로그, 서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저나 블랑카님이 저런 고서점에 가시면 정말 재미있는 순례기를 들려주실 것 같아요!

blanca 2013-04-30 10:42   좋아요 0 | URL
그래서 또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가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스마트폰이 또 미래에는 추억의 물품이 될 수도 있을까요? 음반도 음반점 풍경도 참 흐릿해졌지요. 이 서재들 만큼은 과거의 것이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쟌느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요^^;;

다크아이즈 2013-05-0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는 훌륭한 리액션을 지닌 작가였네요.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해야 잘 쓰는 작가...
율리시스 저 두꺼운 것, 무려 1300페이지 넘어요 ㅠ.
저것을 언젠가 반값할 때 사놓고 장식용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ㅠ

프레님이 열공해서 프랑스어 접수하고 프랑스 여행도 가면
우리 같이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후일담 들어보아요.
그러고 보니 여기 블랑카님 덧글에 제가 존경하는 분들 다 모였네요. ^^*

blanca 2013-05-03 11:37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저 책 사셨군요. 맞아요. 그때 세일하던 것 기억이 나는데. 저는 아예 시도조차 안 했답니다.^^;; 진짜 프레이야님 페이퍼 기다려야겠네요.
 

나무를 가지고 조각하는 나를 보고 자네는 말했지.

"내게도 뭘 좀 만들어 주게나."

나는 "뭘 만들어 줄까?" 하고 물었네.

자네는 "상자."라고 대답했지.

"뭐 하게?"

"물건 넣으려고."

"무슨 물건?"

"자네가 갖고 있는 건 뭐든지 다."

자, 여기 그 상자가 있네,

상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거의 다 넣었는데도 가득 차질 않는군.

이 속에는 고통과 흥분, 호감과 악감, 악의와 선의, 기쁨과 절망,

그리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창조와 환희가 들어 있다네.

게다가 그 맨 위에는 자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놓여 있지.

그런데도 상자는 도무지 가득 차질 않는군.

-존 스타인벡

 

 

존 스타인벡이 친구인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에게 만들어 준 온갖 것을 다 넣었으나, 차지 않았던 상자는

 

 

 

 

 

 

 

 

 

 

 

 

 

 

 

 

 

 

이것이었다. 천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 존 스타인벡이 친구에게 헌정하는 이 애정어린 제사는 그가 <에덴의 동쪽>에 쏟아부은 것들에 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요절한 제임스 딘의 강렬한 이미지. 동명의 스케일 큰 드라마. 정작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캘리포니아 북부 살리나스 계속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부터 펼쳐지는 이 장대한 이야기에 코를 박았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객관적 관찰자이기도 하고 작가 존 스타인벡의 대리 자아이기도 하다. 실제 그의 외가에 대한 자전적인 고백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고 한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인 외할아버지 새뮤얼 해밀턴이 살리나스 계곡에 도착하여 킹시티 동쪽의 척박한 언덕에 정착하는 과정은 존 스타인백 외가의 일대기에 끼워 넣을 만하다. 새뮤얼이라는 캐릭터는 더없이 복합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는 손재주가 많고 따스한 성격으로 각종 마을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지만 돈을 버는 재주는 없는 몽상가였다. 반면 아내 라이자는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고 메마르고 건조한 독실한 장로교도였다. 이 둘은 너무나 달랐지만 그래서 더 조화로웠다. 남편이 꿈을 꾸는 동안 아내는 묵묵히 아이를 아홉이나 낳고 길러냈다. 보수주의자,혁신주의자, 몽상가,현실주의자가 적절하게 섞인 더없이 균형감 있는 가족이었다. 9남매 중 딸 올리브가 존 스타인백의 어머니이다. 한편 동부에서는 제임스 딘이 연기했던 칼의 아버지가 될 애덤 트래스트가 배다른 동생 찰스의 반대를 묵과한 채 악마적인 데가 있는 여자 캐시를 데리고 살리나스 계속으로 이주해 온다. 캐시는 쌍둥이 형제를 낳고 남편을 총으로 쏜 채 도주해 유곽에 흘러들어간다. 실의에 빠져 쌍둥이 아들도 중국인 요리사 리에게 맡겨 버리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애덤은 부지런한 몽상가 새뮤얼에게서 아들들의 이름을 얻는다.

 

당신의 첫 아들을은 카인과 아벨인 셈이지.

-p.491

 

이름을 짓기 위하여 모인 새뮤얼, 애덤, 중국인 하인 리는 창세기 4장,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과 아벨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이 토론은 사변적이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위대하고 영원한 이야기는 만인에 관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라는 하인 리의 이야기처럼 야훼에게 바친 제물이 거부당하자 야훼를 흡족하게 한 아우를 죽이고 만 카인의 후예인 우리는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악행을 저지르고 방황하는 카인의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왜 야훼는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 표적을 찍어 죽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는 지에 대한 그들의 의문은 말씀히 해소되지 못한 채 성경에서 '약속된 땅'으로 돌아온 칼렙과 여호수아라는 이름를 쌍둥이 형제에게 붙여주려는 것으로 끝난다. 여호수아는 '약속된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론으로 변경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칼과 아론이라는 형제는 성경에서 이름을 얻는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름다운 외모의 형 아론, 타인을 두렵게 하는 동물적인 공격성이 있지만 형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하는 동생 칼. 이 형제는 마치 아버지와 삼촌, 카인과 아벨의 또다른 은유 같다.

 

절대 늙어 소멸할 것 같지 않던 새뮤얼은 딸 유나의 죽음으로 점차 노쇠해가고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간청을 못 이기는 척 그 척박한 땅을 떠나기 전 애덤과 하인 리를 다시 찾아와 아름답고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인종, 민족, 계층을 뛰어넘어 한 곳에 모여 인간의 원죄의식, 삶 전체에 대하여 아름다운 운율의 시를 읊듯 대화를 펼치는 그들 모습의 묘사가 눈부시다. 그 대화는 사변적이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은 영롱하고 생생한 음악 같다. 마지막으로 새뮤얼 덕택에 기운을 차리고 악마적인 여자 캐시에게서 해방되었다고 느낀 애덤이 새뮤얼에게 정원, 풍차 우물을 만들어 주고 서풍을 타고 장미향이 퍼지게 도와달라는 요청에 보인 새뮤얼의 반응은 너무나 아름답다.

 

"애덤, 고맙네. 자네의 향기로운 제안이 서풍을 타고 향기롭게 번지는군. "

p.54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 새뮤얼은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에 장미를 심으려 들 자신의 아들 톰을 대신 찾아보라고 완곡하게 거절한다. 새뮤얼은 죽고 그의 영혼은 하인 리의 표현처럼 애덤과 리 사이를 떠돌다 미처 마무리 되지 못했던 그들의 카인과 아벨에 대한 의문의 답을 가지고 온다. 야훼가 카인에게 이야기한 "팀셸"이라는 히브리어. 이것은 <에덴의 동쪽> 전부를 아우르는 핵심이기도 하다."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악도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으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 스타인벡 앞에서 인간은 신만큼 존귀하고 위대해질 수 있다. 칼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소외감으로 섬약한 형 아론에게 유곽에서 마담으로 일하는 생모의 모습을 노출하여 그를 전장으로 떠나게 만들고 끝내 전사하는 결과까지 낳게 했을 때에도 그들의 실질적인 양육자였던 하인 리가 아버지 앞에 아들을 세우고 그 입에서 끝내 용서를 의미하는 "팀셸"을 뱉게 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 전체를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위대하게 고양시키고 삶의 존귀함을 응축시킨 존 스타인벡의 저력을 그 자체로 형상화한다. 존 스타인벡이 그려낸 인간의 숱한 악한 기질들은 우리 외면에 존재하는 머나먼 것이 아니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때로 어리석은 충동에 지고 피를 나눈 혈족들에게  상처와 위해를 가하는 모습은 우리 내부 안에  떠돌아다니는 부스러기들이다. 이러한 악덕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은 미덕에 닿아 있다. 그러고 보면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결론이자 바람을 새뮤얼에게도 애덤에게도 하인 리에게도 골고루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아니, 찰스에게도 칼에게도 심지어 사악한 여자 캐시에게도 그의 모습은 투영되어 있다. 그가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모든 소설과 시는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끊임없는 대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만 <에덴의 동쪽>이 조금 더 밀고 나간 지점은 섣불리 미덕의 승리를 확정지은 것이 그 가능성의 도정에 인간의 선택과 의지를 조심스레 놓아 둔 것에 있다.

 

존 스타인벡의 모든 것이, 그리고 나머지는 읽는 자의 몫으로 남겨진 이 위대한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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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4-2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저 잘생긴 남자는 아마 제임스 딘이겠지요. 제임스 딘 정말 좋아해요.
동명의 한국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죄와 벌>을 언젠가 다 읽은 후에 읽어볼게요.
천천히, 천천히 열어볼게요.

blanca 2013-04-23 10:4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저는 아직 제임스딘의 <에덴의 동쪽>을 보지 못해 이번 기회에 보려고요. 아, 저 이 책 읽으며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이 생각났어요. <죄와 벌>을 읽고 비교해 보셔도 좋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3-04-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단에 자기 자식은 커녕 염소 한 마리 올리지도 못하여도, 씻겨줄 발이 없더라도, 마침내는 성 베드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하여도 끝내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할 용기가 인간에게 과연 있는 걸까요?

요즘은 점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지는 '그리하여'는 구약과 신약에만 존재하는 어구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 무섭게 궁금했어요.

blanca 2013-04-23 10:42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여러 번 성경 문구에 대한 토론이 나와요. 그런데 그 대목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여러 시각에서 토론을 벌이면서 결국 인간의 위대함, 선택의 자유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보면 신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인간으로 돌아가는 스타인벡의 의도가 보입니다. 반대의 것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재능이 부러웠어요.

성경은 언젠가는 학문적으로 정독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리시스 2013-04-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한번씩 보는데, 책은 못봤어요. 재밌겠다!

blanca 2013-05-16 08:46   좋아요 0 | URL
댓글 달린 줄도 몰랐어요. 아이리시스님. 아, 책 정말 좋아요. 진짜요! 강력추천합니다. 영화에서는 너무 생략된 대목이 많은데 그 생략된 대목 중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답니다. 좋아하실 거에요!
 

처음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책인줄 알았다. 너무 드라마틱하고 너무 뻔할 거라고.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

오히려 그런 소개팅은 결혼까지 가곤 한다. 이 책도 그랬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마이클 게이츠 길은 스타벅스의 종업원인 만큼 스타벅스에 대단히 호의적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스타벅스 예찬이 커피농사의 3세계 아이들의 노동력착취, 1회용 제품의 남용 등 다른 측면에서의 비판의식과 대척점에 놓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대기업 중역에서 종이나부랭이처럼 갑자기 추락하여 스타벅스에서 라떼 한 잔을 사먹는 비용에도 버거워하며 괴로워하다 우연히 브로드웨이의 그 매장의 종업원이 되어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의 삶에서 현재의 비참한 경제적 상황, 결혼실패, 건강악화를 어떻게 건강하게 극복해가는 지에 대한 솔직담백한 고백은 굉장한 진정성을 지닌다. 이 책은 스타벅스에 대한 홍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둘러싼 외부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나가고 균형감을 가지게 되는 지에 대한 감동적인 예시다.

 

 

 

 

 

 

 

 

이런 고백을 공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말할 수 있을 때 이미 우리는 극복의 지점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돈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또 성적 본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이 지경까지 왔다는 잔인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중략>일자리를 구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지금,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자기 몸 하나 부양할 능력도 없고, 그 어떤 회사에서도 반겨주지 않는 미국 노인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 바로 그것이었다. 불안하고 암담하고 창피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스타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p.60

 

그는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 지역의 최고급 주택에서 성장한다. 소위 상류층 자제로 예일대에 진학하여  굴지의 광고회사 JWT의 고위직까지 승진가도를 달린다. 단란하고 다복한 가정. 백인 중산층. 그곳에서의 추락은 예기치 않게 왔고 그런 만큼 더 뼈아픈 것이었다. 정리해고 후 그는 십년 동안 방황하다 혼외정사로 낳게 된 늦둥이 아들의 부양과 이혼, 사업 실패, 뇌종양 등 온갖 악재는 다 경험하게 된다. 행복하고 화려했던 유년의 회상, 언론인 아버지 덕에 숱한 명사들과의 교유 등을 경험했던 그를 이제는 전염병 환자나 되는 마냥 피하는 무리들이 생긴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 그는 검은 복장에 초록색 스타벅스 앞치마를 두른다. 화장실을 대걸레로 밀고 손님들에게 거스름돈을 내어 주며 그는 다시 태어난다. 불행했을까, 비참했을까.  우연히 마주치는 예일대의 동창들은 그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부끄럽지 않다. 특히나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다 폐장시간까지 나가기를 거부하며 그에게 칼까지 들이밀던 젊은이를 경험하며 그가 정작 자신의 분노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장면. 그는 그 젊은이에게 분노하는 대신, 늙고 오만하고 통제광이었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를 원했던 지난 시절의 잔재로 그는 그 젊은이와 상황을 통제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육십이 넘어서도 이렇게 스타벅스 매장에서 끊임없이 성장한다. 뭉클했다. 늙고 오만하고 독선적인 노인. 우리는 일부의 습성을 흡사 그 연령대의 본질적인 특질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지나 않은지. 지하철 경로석에서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이 벌이는 그 수많은 유쾌하지 않은 상황들을 이 마이크처럼 자신에게서 극단적으로 치솟는 부정적인 감정을 통하여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다 점점 더 성장할 것이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청소, 계산, 음료 만들기 등 한 단계 한 단계 일을 배워나가며 빛나는 마이클이 드디어 매장에 찾아온 전처 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과 행복하게 화해하고 서로를 토닥이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같다. 군데 군데 그의 유년, 청년기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커피에 얹은 토핑 크림처럼 달콤하고 아련하다.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며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매장에 도착하여 손님들 하나하나에게 덕담과 인사를 건네는 이 인상좋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낯선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재기'라는 그 진부한 용어에 의외로 너그럽지 않다. 추락은 쉽고 재기는 어렵고 낯선 것이다.

 

힘들 때에는 우울할 때에는 라떼를 마신다. 술과 담배를 하시지 않는 아버지도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신다. 고단했던 삶에서 아버지에게 이런 테이크 아웃 커피는 하나의 축복이다. 너무 많은 진지한 생각, 어려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 책에서는 넘어져도 정말 아프게 쓰러져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고 웃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구체적이고 와닿게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 그냥 갑자기 삶이 너무나 눈이 부시게 느껴진다는 것으로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에는 된장남, 된장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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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1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이었나,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보고 읽어볼까 말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왔었어요.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여기, 블랑카님 서재에서 보게 되네요. 저도 읽어볼래요.

blanca 2013-04-18 11: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가볍고 흥미로운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이상이었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3-04-1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마침 어느 알라디너분으로부터 선물받은 스타벅스 텀블러를 사진으로 찍어 올린 후 서재 브리핑을 보니 블랑카님의 이 책 리뷰가 업데이트되었군요! 이 책은 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하워드 슐츠의 자서전보다 이 책이 스타벅스의 입장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구태의연하고 밋밋하고 예상한 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가끔 꾸미지 않은 따뜻함과 밝음이 부러울 때면 이런 책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함께.

쓸데없는 덧-스타벅스가 시중 모든 커피 전문점 커피 중 카페인 함량이 가장 높대요.

blanca 2013-04-18 11:2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슐츠 자서전은 저도 읽다 말다 그랬어요.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에 관련된 이야기 중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백인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군요.

스타벅스 카페인 함량이 제일 높단 말이에요? 저는 라떼는 카페인 함량이 무조건 낮을 거라고 맹신했는데 기사를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점점 카페인의 노예가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3-04-21 18:01   좋아요 0 | URL
더욱더 쓸데없는 덧-카페인 함량은 에스프레소와 더치 커피에 가장 낮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어요. 미뢰가 나를 배신한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이미 카페인 세계의 자발적 노예로 와있으니, 웰컴, 블랑카님!

세실 2013-04-1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현재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삶이 너무나 눈이 부시게 느껴진다는 것.....저도 느끼고 싶어요^^
울 도서관에 있나 찾아봐야지~~

blanca 2013-04-18 11:29   좋아요 0 | URL
세실님, 이럴 때에는 도서관에 계신 게 너무 부럽습니다.^^;; 드뎌 봄기운이 완연해졌습니다. 벚꽃비도 내리고. 그곳은 더더욱 그렇겠죠?

saint236 2013-04-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에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있네요. "스타벅스 감성 마케팅"이라는 책과 "교회 스타벅스에 가다"라는 책도 있지요. 블랑카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죠?

blanca 2013-04-20 09:29   좋아요 0 | URL
saint236님도 안녕하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나이들면서요--;; 아, 그런 책들도 있었군요! "교회 스타벅스에 가다"는 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주말이라 잔뜩 기대했더니 비가 추적추적. 날씨 변덕이 정말 너무 심하네요. 그래도 모처럼의 여유, 가족들과 즐거운 주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