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한다. 취향도 성격도. 심지어 가치관도. 원래 나에게도 취향이 스릴러, 호러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십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공수창 감독, 감우성 주연의 <알포인트> 영화를 심야로 보고 일주일 동안 엄마 옆에서 자야 했던 그 일 이후로 모든 호러물을 끊었다. --;; 그 영화가 뭐 그리 무서웠냐,고 반문한다면 글쎄, 유독 그 영화의 다큐멘터리 촬영 기법과 카메라의 시선이 내가 무서워하는 그 지점과 정확히 겹쳤다고랄 수밖에.

 

책도 그렇다. 추리물과 스릴러물은 미야베 미유키 정도만 간신히 읽어내고 되도록 시선을 안 두는 편이다. 본격 장르물이 아니더라도 그런 요소만 가미되면 뭐랄까,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빠르지만 그 읽고 난 후 잠들기 전의 이런 저런 연상때문에 그리 즐기지 않는다. 겁이 많아서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는 추리물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긴 했지만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사건 자체가 가지는 응집력 때문인지 대단히 흡인력 있게 읽혔다. 여러 인물과 하나의 사건이 씨실과 날실처럼 치밀하게 직조되어 고도로 치밀하게 무게감 있는 메시지로 응축되고 있었다. 한국소설이 이 정도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지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신작을 많이 기다렸다. 신작이 나오자마자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구입했다. 아껴두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으나 읽어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었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중심에 놓인 '개', 그리고 그 '개'와 '인간'의 이야기. 그 '개'는 눈덮인 설원을 자유롭게 달리며 때로 인간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큰 개'이다. 그 '개'가 광막한 대지 대신 창살 안의 한정된 공간에 갇혀 사육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묘사들을 묵묵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치열하고 때로 잔인한 '날것'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 같았다. 그러니 소심한 나는 잘 견뎌낼 수가 없다. 다 읽어내지 못한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조금 부끄럽다. 작가의 발전도 시선의 변화도 온전히 잡아낼 수 없으니 아쉽다. 누군가 다 몰입해서 읽고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련다.

 

 

 

 

 

일백 페이지 남짓한 얇은 이 책은 아주 청량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본 나라는 딱 두 곳이다. 호주와 일본.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은 아이가 네 살 때 북해도. 아, 쉽지 않았다. 7월의 더위 속에서 휴대용 유모차로 끈적끈적한 일본의 여름 안에서 아이와 실랑이하는 일은 얌전한 일본 사람들 속에서 조금 더 남사스러웠다. 이 책 속의 아이들은 이미 사춘기다. 그러니 조금 더 쉬운 것은 사실이다. 사촌남매를 데리고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다닌 이야기. 지나친 감상도 딱딱한 가이드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을 잘 포착한 미덕. 언젠가 나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도 있을 거라는 미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

 

 

 

 

이런 상큼한 가이드 지도도 군데군데 첨부되어 있어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같다. 이 덥고 습한 날, 여행을 꿈꾸는 일은 당연하고 또 너무 먼 일이기도 하다. 어깨선을 넘어버린 이 긴 머리를 귀밑으로 싹둑 잘라버리고 조금 더 시원해지고 조금 더 어려보이기를 꿈꾸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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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7년의 밤]을 재미있게 그래서 빠르게 읽긴 했지만 그 작가의 신작이 기다려진다거나 하지도 않았고 신작이 나와도 그다지 호감이 가질 않더라고요. 그 때 아마도 구매자평에 '감탄은 있으나 감동은 없다'는 뉘앙스로 썼던것 같아요. 재미있지만 '아 좋구나' 하는 그런 책이 제게는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무언가가 더 있기를 원하는데, 제가 원하는 게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은 70쪽 남짓 읽었는데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블랑카님 혹시 읽어보셨을까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이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블랑카님도 읽으시면 분명 마음에 들어하실텐데, 혹시라도 안읽어보셨다면 우리 같이 읽어요!!

blanca 2013-06-26 07:03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은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읽고 계시군요! 저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정도만 맛보았어요. 일단 주문한 책들 먼저 소화하고 뒤따라 갈게요. 작가의 능력이나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취향'이라는 면에서 제가 접근할 수 없는 책들이 있더라고요. 다양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3-06-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포인트,는 제가 최고로 치는 한국공포물이에요. 너무나 섬뜩하더라구요. 우리안의 공포감, 그것의 실체를 보여주니 더욱이요. 정유정 신작은 칠년의 밤,보다 더 강한가 보군요. 무장하고 봐야겠어요.^^

blanca 2013-06-26 07:05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당시만 해도 참 획기적인 공포물이었는데. 후속작들은 평가를 못 받았나 보더라고요.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요. 예, 프레이야님의 감상 기다릴게요. 저는 중반까지도 못 읽었어요^^;;

2013-06-2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6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6-28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랫동안 님서재에 댓글을 안 남겼네요.
아마 비로그인으로 글은 읽은 듯한데...
정유정, 7년의 밤 읽으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화된다는 애기를 들었어요.
우리지역에 사는 분이라 작가초청하려고 출판사랑 통화했지만 작품구상 들어가면 강연은 안한다고...
작년에 3년도 기다릴 수 있으니 성사시켜 달라했어요.
올 여름과 가을에도 작가초청할 건수가 많아서 다시 알아봐야겠어요.
신작은 다음달 구매리스트에 넣어둘래요.^^

아~ 나는 혼자서 호러영화 잘 봤어요. 여름이면 꼭 봤는데~ 이젠 그런 영화는 보기 싫어졌어요.ㅋㅋ

blanca 2013-06-28 10:27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화 얘기를 들었는데 진척이 있는지 궁금해요. 오호! 순오기님 지역에 사시는군요! 원래 간호사셨다고 들은 것 같아요. 이제 작품이 나왔으니 아무쪼록 성사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제는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가 좋아요.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화는 저어하게 되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3-06-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러물에서 시작하여 매끄럽게 정유정으로 스며들었다가 다른 부분에서 매듭을 짓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알 포인트,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이건 1편만), 엑소시스트, 링(대충 지금은 여기까지만)을 보더라도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참 다양한 것 같아요. 감정의 뿌리를 캐내다 보면 늘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미한 자국이곤 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상상을 자극하는 공포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bgm으로 삐걱대는 문 소리만 들려도 혼자 자지러지는 부류-하는데, 블랑카님을 글을 읽으니 정유정이 궁금해집니다.올여름, 한 번 챙겨보아야 겠어요!

blanca 2013-06-28 10:32   좋아요 0 | URL
쟌느님, 혹시 <7년의 밤>을 안 읽으셨다면 강추드려요. 참 잘 썼더라고요.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여기 저기에서 하도 칭찬을 해서 값을 하나 싶었는데 저한테는 아주 놀라운 소설이었어요. 저는 겁이 많아요. 번지점프, 스쿠버다이빙, 이런 것 죽을 때까지 못할 것 같고요. 무서운 것은 거의 눈감고 안 보는 수준이랍니다.--;;
 

'프랑스적'이라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연상시킬까. 코코샤넬과 각설탕, 소피 마르소와 바네사 파라디, 마리 앙투와네트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고향인 그곳은 무언가 조금 더 근사하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고 제2외국어로 잠깐 공부했던 불어의 99%를 망각한 나로서는 큰 감회는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주 달달하고 감각적인 책인 줄만 알았다. 진지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뉴스위크>의 해외 통신원과 <뉴욕 타임스>의 지국장을 지내며 수년 동안 프랑스에서 지낸 저자 일레인의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그녀는 프랑스를 무작정 칭송하지도 않고 싸잡아 매도하거나 속단하지도 않는다. '유혹'이라는 키워드로 프랑스적인 것들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프랑스는 다채로운 프리즘으로 재조명되고 진지하게 때로는 더없이 흥미롭게 재해석된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향수, 정치인들, 란제리, 3성급 셰프, 와인, 심지어 잔 다르크까지 유혹의 엔진이 장착된 채 정교하게 가공된 '갈고닦은 아름다움'과 '쾌락에의 관용'으로 다시금 이야기되고 그 이야기는 더없이 유혹적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다시 이야기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색다른 면, 뒤안의 이야기들과 함께 그것들을 더 잘 어루만게 된다. 앎과 깨달음의 즐거움들은 끊임없이 연마된다.

 

 

 

 

 

 

 

 

 

 

 

 

 

 

 

 

게다가 프랑스는 아이들까지 우아하단다! 태어난 지 4개월만 지나면 엄마의 수면을 더이상 방해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도 얌전하고 심지어 코스요리까지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그런 엄마들은 금세 날씬한 몸매로 빠르게 직장에 복귀하고 육아를 험난한 여정이나 자신의 커리어의 장애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관찰자 역시 윌스트리트저널의 경제 섹션 여기자로 미국인이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엄마가 되고 육아가 되는 과정에서도 프랑스 여자들은 매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부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것은 프랑스적인 것의 장점이기도 하고 가혹한 사회적 시선이기도 하다. 아이도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하고 정중한 배려를 하는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그리고 절제와 적절한 규제의 사회적 합의를 온건하게 도출해 낸 그 민주주의적 방식에 있어서는 칭찬 받아 마땅하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뚱뚱한 여자나 관리하지 않은 외모, 전업 주부는 설 곳이 없는 곳이다,라는 대단히 경직된 편견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용인되는 것들보다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곳들로 느껴졌다.

 

죽을 때까지 이성한테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다. 유혹의 이데올로기는 젊음과 아름다움, 자기애가 뭉뚱그려져 자칫 인생이나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 쇠락,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저어함을 증폭시킬 수 있다. 또한 그 반대편의 것들에 대한 거부감의 온건한 표현이기도 하다. 온순하고 예의바른 아이들로 가득한 공공장소는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의 또다른 형상화일런 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론은 우아함을 동경하면서 정작 발은 뜨거운 노면을 디디고 사는 지금이 더 다이나믹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저기'가 근사해도 나는 '여기'가 좀 더 좋다. 참, 미국의 여류언론인들이 그려낸 프랑스가 물론 '다'라고 보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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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6-1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제목이 굿이네요^^

blanca 2013-06-18 09: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세실님^^ 여긴 드디어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막 내리니 시원해요. 일단 좀 쉬어가는 분위기고 무더워서 힘들었던 것들이 날아간 기분이네요. 거기는 장마가 시작되었는 지 모르겠어요. 중부부터 시작한 건 거의 이례적인 일이라고 뉴스에서 그러더라고요.

프레이야 2013-06-1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담아둔 책들이에요. 반가운 리뷰, 맛깔난 리뷰! 유월중순도 지나가고 있네요. 잘 읽고 잘 쓰시는 블랑카님.^^

blanca 2013-06-19 12:5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진짜 오늘 벌써 6월도 19일이 되었어요. 정말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저는 지금 정유정의 28을 배송받고 기대하는 중이랍니다.^^;;

꿈꾸는섬 2013-06-1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ㅎㅎ
첫번째 책은 저도 눈여겨 보던 책인데, 진지하군요.^^

blanca 2013-06-19 12: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 흥미위주로 씌어진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은 아니더라고요.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아이들 여름방학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꿈꾸는 섬님도 미리 체력 충전 해 놓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icaru 2013-06-1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가 4개월이 지나도 보채고, 공공장소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한국 정서에서 자라는 아이라 그랬던 걸까요? ㅎ
여전히 님이 글이 근사해요~ 책도 그럴려나...
사람들이 프랑스에는 뚱뚱한 여자가 없어, 라고 할 때 그 이유를 먹거리에서 짐작했는데,,,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로는 먼지나는 발헤엄이 존재했네요.

blanca 2013-06-19 12:59   좋아요 0 | URL
이게 참 대단한 강박인 게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임산부의 체중 증가도 12키로까지만 관용적으로 봐 준다네요. 바게뜨 빵 사러 집 앞에 나가도 차려 입는다니 (실제로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야구모자 눌러쓰고 동네 돌아다니는 저로서는 참 피곤해 보이는 일상입니다. 그래도 여자들이 참 예쁘고 매력적인 것은 사실인 듯 해요. 공짜는 없나 봐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디쯤에 갈까.

답은 항상 비슷한 것 같다.

 

바로 중학생 시절.

아주 아주 작았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의무 단발제로 인해

두껍고 곱슬인 머리칼을

억지로 잘라 머리는 항상 둥둥 뜨고

단짝 친구들이랑 붙어 다녔고

이해할 수 없었던 헤세를 붙잡고 동생 앞에서만 잘난 척하고

학교로 가는 급경사에서 세 번에 한 번 꼴은

꼭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고 바로 정차해버려

어쩔 수 없이 승객들이 한꺼번에 다 내려 차도를 걸어 학교로 가던 기억.

힘든 일도 있었지만

세상이 가장 명료하고 생생해 보이던 시간들.

너무 너무 그립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두번 째. 어느 서재분의 페이퍼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간만에 다시 만화책을 만나게 되었다.

중년의 회사원 히로시는 회사 출장에서 돌아오다 무언가에 끌리듯 고향 가는 열차를 타게 되고

어머니를 모신 절의 묘지에서

갑자기 열네 살로 돌아간다.

중2때 불현듯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를 기다리며 남매를 키우느라 세상과 고투를 벌이다

지금 히로시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제 히로시는 48세의 깨달음과 앎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지닌 채

다시 한 번 그 순수하고 치기어렸던 열네 살의 시간을 다시 살게 된다.

이미 어떤 행로를 알고 덤비는 과거는 어떤 경로로 다시 재창조될 수 있을까.

히로시는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행동과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리고 떠나는 아버지를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결국 다시 현재로 오는 길에 주저앉게 된다.

평행우주처럼 우리의 또다른 선택이 만들어 내는 다른 삶이 아니라

그저 모호하게 가슴에 묻었던 과거의 일들을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고 마는 것으로 히로시의 과거 여행은 마무리된다.

 

아버지는 다시 붙잡을 수 없고

어머니는 다시 홀로 남는다.

가족을 위하여 자기를 포기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찾아 떠났던 그 행로에서

히로시는 자기 자신의 현재를 만난다.

아버지의 그 떠낢을 가까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히로시.

소설가를 꿈꿨던 친구가 보내 온 <시간의 나그네>라는 책을 받아들고

히로시는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우리 시대가 안고 가야 하는 많은 걱정거리들이 불만입니다. 아무리 위험을 감수하고 견뎌내도 제 안에 있는 양심의 가책은 가라앉을 줄 모릅니다. 그런 제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유일한 샘물을 저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찾습니다. 그건 바로 크리스마스 때마다 피우던 양초냄새예요. 오늘날 이토록 황폐해진 건 바로 영혼입니다. 사람들이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있어 책을 쓰려면 쓰겠지만,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 안에 있는 책이 무르익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목을 축여 줄 것 같은' 그런 책이 말입니다.

 다시 편지드릴게요, 엄마, 마음으로 안아드릴게요.

                                                                                                             엄마의

                                                                                                             앙투안

 

 

 

 

 

생텍쥐페리는 그렇게 사람들의 '목을 축여 줄 것 같은' 책을 남기고 비행을 떠났다 죽음에 이른다. 이미 결론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 그가 어머니에게 쓴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읽는 일은 삶의 종결을 앞두고 우리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일과도 닮아 있다. 돌아올 것을 알고 믿고 떠나는 여행은 안온하다. 하지만 삶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드시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과거를 살아낼 수는 없다. 다만 과거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과거와 화해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인다.

 

다시 열네 살이 된다면 이 시간이 그렇게 언덕에 버스가 정차한 것처럼 순간의 기착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 명료하게 인식하리라. 친구 얼굴도 시선으로 꾹꾹 눌러 나의 기억 저장고에 담아두고 일기장도 더 잘 챙겨두어 나중에 못 읽게 되는 경우가 없도록 하리라. 노인이 되어 그리워할 지금의 시간들을 위해서도 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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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5-2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보았던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들뜬 얼굴로 이야기했는데 그가 결말을 이야기하며 '이것을 말하려 한 것이지?'라고 답해와 의아했던 순간, `내가 아는 누군가도 그렇게 말하더라고.'라는 부연설명.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자명한 이치.

그 시절의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 속 인물 같은 면면.

자기 자신에 관해, 시간에 관해, 결국, 새롭다 생각했으나 구태의연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으나 엄청난 결과를 내기도 하는 것이 삶인 듯싶어요. 한 인간의 시간 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고 그 당위를 찾는 일도 위험한 일이건만 사람은 끝없이 해답을 구하곤 합니다. 여름 초입, 블랑카님의 페이퍼로 떠올리는 시간이 참 소중해 보여서 좋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일 테지요.

blanca 2013-05-22 08:04   좋아요 0 | URL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그 길로 갔더라면, 의 가정은 이 생에서는 결국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운명론과 체념을 지니지 않으면 현실의 당위를 설명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무언가 아련하고 내가 했던 생각을 다들 하고 사는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어디에선가 시간이 결국 신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요.

후애(厚愛) 2013-06-0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13-06-03 16:12   좋아요 0 | URL
후애님,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만화예요. 열네 살로 다시 돌아가 만나는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다른 감상이 참 애잔합니다. 덕분에 덥지만 즐거운 주말을 보냈답니다.
 

막상 읽고 싶은 책이 손 안에 들어오면 주춤하게 될 때가 있다.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영화도 그 앞에 서면 멈칫하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제대로 듣겠다고 결심하면 하나의 과업이상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읽는 것도 보는 것도 해가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나만의 여과기가 더욱더 고착화되어가고 있다는 예증이다. 그래서 숱한 오해와 오독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결국 나는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을 임의적으로 '보았다', '들었다', 고 표현하는 지도 모른다.

 

 

 

 

<위대한 개츠비>를 보았다. 원작처럼 화자는 토비 맥과이어가 분한 닉 캐러웨이다. 모성애를 불어일으키는 눈망울을 지닌 배우가 연기하는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사랑의 관찰자, 때로는 조력자로서 무력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야 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영화에서 그는 여러 정신질환들에 시달리면서 의사의 상담을 받는 환자로 개츠비를 둘러싼 일들의 회고록의 저자로서 나온다. 눈이 내리는 바깥의 황량한 풍경과 대비적으로 1920년대의 그 소비향락적인 흥청망청의 분위기의 귀환은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화려하게 복원된다. 백 년 가까이 전의 젊은이들의 사치스러운 파티는 당시의 재즈 음악과 현대의 힙합이 적절히 배합된 사운드트랙으로 오늘날처럼 역동적이고 생생하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도 종종 언급되었던 흥겨운 찰스턴춤을 추는 그들을 보면 아이돌들의 약속이나 한 듯한 일률적인 댄스 동작보다 더 배워보고 싶은 욕구가 일게 한다.

 

데이지역의 캐리 멀리건은 원작에서보다 오히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습과 매력을 보여준다. 짧은 금발 머리, 코와 입술 사이의 절묘한 지점의 점,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원작에서보다 조금 더 개츠비에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한다. 내가 느꼈던 데이지의 개츠비에 대한 감정은 원래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개츠비가 데이지를 위하여 만든 그 어마어마한 저택에서 수많은 셔츠들을 꺼내 보여주며 과시하던 대목에서 데이지가 흘리던 눈물에 대한 해석도 원작과는 다르다.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고만 표현하며 데이지의 물질에의 그 다소 천박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곤 하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닉의 설명을 빌어 데이지가 톰 뷰캐넌과 해온 결혼생활의 비참함에 대한 속내를 그저 숨기고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그려진다. 결론적으로 데이지는 개츠비가 그렇게 평생을 바쳐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여인이 아닌 것으로 귀결되는 것으로는 같지만 그 종착점으로 가는 길에서 영화와 소설은 갈린다. 그래서 영화에서 데이지가 조금 더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그려지다 갑자기 설명 없이 개츠비의 죽음 앞에서 매몰차게 돌아서는 결론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어쩌면 피츠제럴드가 꾸준히 데이지를 묘사하며 풍겼던 그 가벼운 정서가 데이지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더 용이했는 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호>의 그 앳된 소년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자신의 과거와 데이지와의 사랑을 닉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장중한 사운드트랙과 함께 그가 연기해 낸 개츠비의 속살을 가감없이 드러내어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는 최대한 원작에 근접하려고 노력했고 개츠비의 슬픈 몰락과 대비되는 그 화려한 흥청망청함을 잘 살려낸 성실한 느낌이다. 닉이 개츠비에 대하여 다 쓰고 마지막에 "The Great"를 덧붙이는 대목은 개츠비의 그 허망한 사랑이 결론의 중추가 아님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리고 화면을 떠도는 닉의 마지막 이야기들은 거의 정확하게 원작의 마지막과 겹친다.

 

개츠비는 오직 저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가슴 설레는 미래를. 그것은 이제 우리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무슨 문제인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p.225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멈칫한다. 영화의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그 허망하면서도 장중한 결말 덕택일 것이다. 삶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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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5-16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에서의 데이지는 원작보다 훨씬 사랑스럽군요^^ 그것도 나쁘진 않을듯~~~
저도 내일 보려고 하는데 왜이리 설레이는지 ㅎㅎ
영화 안나 카레니나보다는 확실히 뜨겠죠?

blanca 2013-05-17 07:30   좋아요 1 | URL
아, 오늘 보실 예정이군요. 제 생각에 흥행 성공할 듯해요. 어제도 꽉 차 있었어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다들 자리도 안 뜨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 생기기 시작하면 그 영화 흥행은 --;; 안나 카레니나는 연극 무대 같은 장치가 오히려 영화를 조금 더 난해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일단 음악이 너무 너무 좋아요!

2013-05-16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7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5-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일찍 보고오셨군요. 저도아침 첫 시간으로 달려갔답니다. ㅎㅎ 캐리 멀리건이 아주 이뻤어요. 원작보다 사랑스럽고 이해 가능하게 만들었더군요. 디카프리오는 갈수록 더 좋아요. 전 토탈 이클립스에서그가 참 좋던데 중후해지면서 다양한 표정을 가진 배우로 더 멋지게 변하고있네요. 엔딩의 닉 대사, 전 펭귄클라식 것으로 뒤져보려구요. ^^

blanca 2013-05-17 07:33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도 보셨군요! 그죠, 저는 사실 이 배우 잘 몰랐는데 <오만과 편견>에 나왔었다고 하더라고요. 디카프리오는 그렇게 나이가 들었는데 어쩌면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는지. 제 자신 반성좀 했습니다. ㅋㅋ 토탈 이클립스 기억하죠! 저랑 동생이랑 정말 좋아했던 영화예요. 영화보고 나서 책 뒤져 보니까 그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3-05-16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느에서 오프닝 파티를 하던데, 바즈 루허만은 영화의 평과는 별개로 칸느에서 유독 사랑받는 감독인 듯 합니다. 블랑카님의 글, 잘 읽고 가요!

blanca 2013-05-17 07:36   좋아요 1 | URL
영상이 너무 예쁘고 일단 음악!! 제이지가 참여했다고 하는데 1920년대 2013년의 조화가 아주 근사하더라고요. ost를 구입할까 생각중이에요. 쟌느님은 어떻게 볼지도 궁금해요. 하여튼 화면이 너무 화려해서 보고 나면 일상의 풍경이 다소 초라해 보이는 부작용은 있습니다.^^;;
 

중학교 때였던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에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비디오가 눈에 띠었다. 부모님이 외출을 한 틈을 타 큰 기대를 가지고 봤지만 실망했던 기억. 숲의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실비아 크리스텔의 두툼한 입술의 잔상만 남아 있다.

 

나중에서야 그 원작이 데이비트 허버트 로렌스의 것이며 고전 반열에 올라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채털리 부인은 몽환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대변된다.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읽고 그가 얼마나 사물이나 현상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작업에서 치밀하고 섬세한 자신만의 재능을 가졌는 지에 알게 되자 그의 대표작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다시 제대로 다가가고 싶었다. 오해와 곡해만으로 이 광부의 아들이었던, 스승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던, 항상 이단아였던 작가를 인식하고 싶지 않았다.

 

 

 

 

 

 

 

 

 

 

 

 

 

 

민음사 판대신 펭귄 클래식을 택하게 된 이유는 도리스 레싱의 서문이 있다는 것과 아무래도 책의 가로 판형이 민음사판보다는 조금 더 넓어 보기 편한 면도 있었다. 다만 펭귄 클래식에서 아쉬운 점은 각주가 아니라 미주라는 점이다. 주가 많은데 일일이 책의 뒷면에서 찾아 봐야 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나중에는 다 읽고 주석만 몰아 읽었다.

 

이 글은 과거에 대한 기도이며, 우리로 하여금 계절과 조화롭게 사는 시대, 세월의 커다란 수레바퀴 속에서 조화하며 살아가는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호소하고 있다. 그가 쓴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이 글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마치 어떤 주문처럼 이 글을 따라가게 되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지 모르는 연약한 이의는 모두 설득당하여 제기할 수 없게 된다.

- 도리스 레싱 <서문> 중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의 서문은 로렌스의 생애에 대한 개관과 더불어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대한 의미를 그녀의 명료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 로렌스가 이 작품을 죽기 4년 전 썼다는 사실과(그는 페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가 최종판인 제3판을 가장 최고라 주장했다는 점,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작품이 바로 그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또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1차 세계대전 후의 상흔과 인간에 대한 실망, 좌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그 시대적 배경에 주목하는 것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환기도 있다. 어두운 질곡에서 피어오르는 인간애에 대한 기대, 남녀의 진정한 소통이 가지고 오는 환희는 더 남다른 것일 수밖에.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어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p.51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귀족 계급인 클리퍼드 채털리와 부유한 지식인 계급 출신의 코니의 결혼. 1920년 이 부부는 탄광촌의 굴뚝이 뿜어내는 수증기과 연기의 영향권에 있는 렉비의 대저택으로 돌아온다. 이 이야기가 가지는 기본적인 갈등구조가 암시되는 부분이다. 클리퍼드는 참전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왔고 코니는 그런 남편의 시중을 들며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고사되어 간다. 클리퍼드는 저택 가까이의 탄광촌의 광부들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탄광촌의 부속품으로 여기며 자신의 육체적 죽음을 사변적 탁상공론으로 위장하곤 한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진정 원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라앉아 있다. 코니가 사냥터지기 멜로즈를 만나 육체적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20세기 초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문득 문득 적나라하고 과감하다. 로렌스가 뒤에 덧붙인 말처럼 외설이라는 것은 정신이 육체를 경멸하고 두려워할 때, 그리고 육체가 정신을 증오하고 저항할 때에만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러한 솔직과감한 성에 대한 묘사에 움찔 움찔 놀라는 21세기 독자들은 아직도 그 외설이라는 말에 끄달리는 중인가 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학창시절 인기를 끌었던 하이틴 로맨스나 삼류 외설물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렌스의 언어로 걸러 올린 인간의 육체에 대한 탐구, 교감에 대한 묘사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단발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더 근원적인 본능, 실재에 대한 예리한 탐사에서 나온 진실의 핵을 겨냥하고 있다. 귀부인과 사냥터지기의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구획, 계급, 관념에 대한 도전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교감은 상투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중요한 사람이요. 적어도 내 자신에게는 말이요. 나는 내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소.-p.224

 

사냥터지기 멜로즈는 비굴하지 않다.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를 쓰고, 왈패 같은 전처가 있고 클리퍼드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하찮은 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자긍심과 자존감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멜로즈는 로렌스의 하나의 분신 같은 인물이다. 그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사회가 부여하는 신분 상승의 기회, 타협, 물질에의 굴욕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코니와 함께 있을 때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를 속박하지 않고 그녀에게 속박되지 않는다. 도무지 아씨와 사랑에 빠진 머슴으로 보이지 않는다. 로렌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딘가에 끄달리지 않고 속박되지 않고 비겁하지 않은 진정한 자아의 표현이다. 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 것으로 그는 언어의 위선, 전쟁, 기계화, 사회적 압력 등을 거론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내재화한 인간 자신이 자신을 끊임없이 고문하는 것으로 돌아온다. 에로티시즘을 빌려, 외설이라는 비판에 대항하며 그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시쳇말로 야한 대목들은 전체의 깊이와 그 진정성 안에 조화롭게 포용된다.

 

"인생이란 언제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꿈 아니면 광란인 듯했다."는 로렌스의 이야기는 잔혹하지만 때로 아름다운 진실에 접근해 있다. 알면서도 또 그러는 것. 그게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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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5-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에 한 권짜리로 읽었거든요(출판사가 기억나지 않아요),
마지막에 사냥터지기가 채털리 부인에게 편지를 쓰잖아요. 자신의 성기와 그녀의 성기에 이름을 붙여서요(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네요;;). 그 장면도 인상깊었고, 그녀를 둘러싼 부자 남자들은 그녀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한것도 인상깊었어요. 최근에 읽은건 로렌스의 단편이었기 때문인지, 단편이 진짜 끝내준단 생각이 들어요. 창비에서 [패니와 애니]로 나왔던데, 블랑카님, 로렌스의 단편도 도전해보세요. 정말 좋아요. 저는 이제 [아들과 연인]을 읽어봐야겠네요. 단편 읽고 완전 반해서 [아들과 연인]을 사두었거든요. 블랑카님은 [아들과 연인]을 먼저 읽으셨으니 저랑 읽는 순서가 반대네요.

블랑카님이 이렇듯 소설을 읽으시고 감상을 얘기해주시는 게 전 참 좋아요.
:)

blanca 2013-05-16 13:36   좋아요 0 | URL
아, 로렌스의 단편도 좋아요? 꼭 읽어볼게요. 그 <무지개>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들과 연인> 꼭 읽어보세요. 로렌스의 자서전 같아요. 로렌스의 필력, 그 감성의 결은 정말 남다른 것 같아요. 결코 평범하게 살고 갈 수는 없는 시선, 표현력을 지닌 것 같아요. 개인적인 삶은 파란만장하고 좀 서글픈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