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면 지는 거라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저자 김화영은 알베르 카뮈 전집, 장 그르니에의 <섬>,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 <카뮈, 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등 90여권의 번역서가 있는 전문 번역가이자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년 동안  교수로 재직한 불문학자이다. 이제는 현직에서 은퇴하여 자신의 서투르고 달뜬 청춘과 풋풋한 신혼을 보냈던 엑상프로방스에 곱게 나이 든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가 그의 일생을 동행했던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 장 지오노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 나라의 언어를 평생 연구하고 공부하고 그 언어와 사람들의 정서로 빚어진 아름다운 문학 세계를 탐사한 이방인이 자신의 기억과 사랑과 동행과 함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영롱하고 눈부시다. 누구나 엑상프로방스에 갈 수는 있겠지만 저자가 느끼는 그 깊이 있는 즐거움과 관조는 요원해 보이면서 불현듯 질투가 인다.

 

 

 

 

이 책은 김화영이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갓 귀국한 겁 없는 천둥벌거숭이였을 때 처음으로 낸 저서라고 고백한다.  역시 프로방스에 대한 이야기. 카뮈의 무덤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이 한 아름 안고 있었던 금빛 수선화를 받아들었던 여기에서의 기억은 사십 년을 훌쩍 넘어 은퇴한 노신사가 된 김화영에게 <여름의 묘약>에서 다시 돌아온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 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이었던 프로방스는 그래서 청년에게 낯설게 물러났던 프로방스는 삶의 굴곡을 겪고 그 지방의 언어와 문학에 침잠했던 노년의 사내를 이제는 라벤더, 타임, 로즈메리 향기로 따사롭게 안아준다. <행복의 충격>과 <여름의 묘약>은 시간의 풍화 앞에서 화자와 대상이 어떻게 변전하는 지에 대한 흥미로운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더 늙어지기 전에 나도 프로방스에 갈 수 있을까? 카뮈와 장 그르니에와 장 지오노를, 조르주 상드를 깊이 알지 못하고 불어도 프랑스의 지리적 위치에도 문외한이지만 그래서 저자가 프로방스에 작가들의 흔적에 느끼는 그 절절한 감정의 깊이에 온전히 가 닿을 수는 없겠지만, 고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권 읽었지만, 나도 햇빛이 나비처럼 내려앉아 머물러 있는 그 풍경 속에서 고개를 까닥이며 스리슬쩍 낮잠에 빠지고 싶다. 저자가 이야기한 살바도르 달리의 '열쇠를 가진 잠'. 큼직한 열쇠를 쥐고 안락의자에 앉아 빠져드는 낮잠은 반드시 열쇠가 떨어져 바닥에 닿는 소리에 깰 것이므로 기분나쁘게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단다. 그런 잠. 그런 곳. 그런 느낌. 꿈꾸는 것만으로도 나비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가슴 속에 들어오는 느낌. 여기에서 바라보는, 꿈꾸는 저기는 항상 그렇듯 실제보다 훨씬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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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4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7-2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저기가 훨씬 아름다울 것이라는 글귀 따라 간절히 꿈꾸기 위해 두권의 책 담아가요. 블랑카님, 이곳은 연일 폭염이에요. 너무 깊이 빠지지않는 달콤한 잠에 들고싶은 날들입니다. ^^

blanca 2013-07-24 13:45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서울은 연일 비가 쏟아지고 남부는 폭염이고. 습도가 어마어마해서 빨래가 고민이에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끈적이고. 아, 청량하고 시원한 가을이 너무너무 기다려져요. 이 책들 읽으니 진짜 누가 프로방스 가는 가방에 절 좀 넣어갔으면 ㅋㅋ 싶더라고요. 같이 읽으면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한참 격차를 두고 읽으니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서요.

감은빛 2013-07-2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쏟아지는 비에 빨래를 할 수가 없네요.
신발이 두 개나 흠뻑 젖었는데, 빨지 못해서 아침마다 신발 젖을까봐 걱정입니다.

북아프리카나 남부 유럽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실제로 가보기는 쉽지 않을테니 책으로 대리 만족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blanca 2013-07-25 07:1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들이 너무 많아서 그곳들을 갈 기회가 있을지... 또 기회가 언제 올지 궁금해요. 사실 우리나라도 남해도 아직 가보지 못해서요. 숨은 비경들이 많더라고요. 건강하고 젊을 때는 돈과 시간이 허락치 않고 나이들어서는 기력이 따라주지 못해 여행을 못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워요^^;;
 

가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총천연색의 짙은 화장과 지나치게 튀는 옷차림을 한 할머니들을 볼 때가 있다. 한때 엄청난 미인이었던 중년의 여배우가 자신의 나이와 마치 힘겨루라기도 하듯 과도한 성형과 짧은 치마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은 때로 서글프다. 시간은 공평하고 잔인하다. 누구나 그 앞에서 불멸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여자의 일생에서 꽃을 받을 수 있을 때, 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자가 더 이상 꽃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꽃을 받는 일이 점차 뜸해지다가 완전히 없어졌을 때, 꽃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하다.

-에밀 아자르 <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쓰고 바로 다음 해에 로맹가리는 여기에서 '삼류의 죽음'이라고 비하했던 자연사 대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 책은 마치 로맹 가리의 유서 같다. 시간, 죽음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지지 않게 투쟁하는 이들의 이야기. 그게 아무리 무모하고 가련한 시도라고 해도, 시간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불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내고 마음의 안식을 얻곤 했던 스물다섯 살 청년 장이 아무리 어리석어 보인다고 해도, 우리는 로맹가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시도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누구나 그렇다. 죽음을 넘어서 지속되는 것이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우리는 이 전장 같은 삶 속에서 견딜 수, 버틸 수 있다. 로맹가리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작가다.

 

택시를 운전하는 청년 장은 우연히 파리의 한복판에서 성공한 바지 사업가이자 여든 다섯 살을 앞두고 있는 솔로몬을 태우게되면서 그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솔로몬은 이 '기성복' 같은 세상의 삶에서 이름 없이 잊혀져 가는 수많은 이들과 한때는 매력적이고 잘 나갔던 퇴물 샹송 여가수 마드무아젤 코라를 지켜주는 일에 열정을 바친다.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한켠에서 자원 봉사자들을 동원하여 고뇌하는 외로운 익명들의 전화를 받고 때로 그들에게 뛰어가는 '봉사의 구조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솔로몬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그 솔로몬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던, 이제는 환갑도 훌쩍 넘어 버려 꽃을 더이상 받을 수 없는 늙은 여자 코라에게 로맹가리가 할애한 애정어린 묘사에 시선이 갔다. 그녀는 마치 모든 찰나적인 것의 서글픈 종결의 은유 같다. 장과 솔로몬이 그녀에게 바친 위로들은 우리가 우리 청춘에, 우리 삶에서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의 헌사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계산을 해본 적이 없어. 인생을 샹송처럼 살았어. 사람이 젊을 때에는, 언젠가 늙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법이야. 너무 먼 미래의 얘기거든.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야.

-p.278

 

스물다섯 살의 청년 앞에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싶어하는 예순다섯 살의 그녀는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오르탕스 부인같다. 또 그 부인의 그러한 마음과 여성으로서 존중받고 싶어하는 그 바람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보듬어 주는 조르바는 솔로몬과도 장과도 닮아 있다.

 

 

 

 

 

 

 

 

 

 

 

 

 

 

우리 모두 로맹가리, 아니 에밀 아자르가 장과 젊은 연인 알린의 입을 통해 이야기했듯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나씩 지속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초연해지는 것을 배워가며 늙어갈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멸'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못한다. 그런 서글픎에 대한 아련한 묘사와 수긍과 이해에 대한 영롱한 이야기. 언젠가 화장품 가게에서 기기묘묘한 짙은 화장과 아가씨 차림으로 나를 놀라게도 서글프게도 했던 그 낯선 할머니를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누구나 그런 모습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 할머니는 솔로몬의 여인 코라처럼 꽃을 받고 싶었던 거다. 그 어떤 여인도 심지어 나도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그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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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3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주말에 가족과 종종 가는 편이다. 아이는 슬프게도 그곳의 책이 아닌 각종 예쁜 스티커, 문구류 쇼핑에 재미를 붙여버렸다. 만삭인 나는 거의 마지막 친구와의 만남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약속 장소를 교보문고로 정하였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앞에서 내렸는데 습도 80%의 여름, 교보문고는 머나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걸어야 조금이라도 서점에서 책을 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종종 걸음을 해보지만 보통 사람의 평상 걸음 속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광화문 광장 앞 전경들이 도열해 있다. 그 전경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위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어린 대학생들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 봤다. 그 아이를 둘러싼 전경들도 그 아이들 만큼이나 어리다. 분명히 지금 귀 기울이고 주목해야 하는 이야기는 교묘하게 묻혀 버렸다. 시위도 아니고 그저 열댓명의 대학생들이 차분히 의견을 이야기하는 현장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되묻고 싶었다.

 

 

 

 

 

 

 

 

 

 

 

 

 

 

 

지난 주말 서점의 진열대에서 이 책을 집어든 통통한 소녀는 엄마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엄마! 이것 재미있겠다!" 나는 이미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이라 그 모녀가 참 반가웠다.

트루먼 커포티는 누구일까? 그가 오드리 햅번이 창가에서 작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던 그 장면으로 남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인 것도 몰랐었다. 이 핑크색 겉표지, 토비 맥과이어를 연상시키는 눈망울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아가씨 홀리 골라이틀리는 영화에서 오드리 햅번이 그려낸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트루먼 커포티가 투영된 '나'와 같은 뉴욕의 아파트 이웃 주민으로 만난 그녀는 나이 든 남자들을 유혹해서  기대어 사는 생활을 하는 어린 여자다. 트루먼은 그녀를 정통 미국 게이샤 정도로 표현한다. 사회적 규범, 도덕 기준, 경직된 틀을 해체하는 이 통통 튀는 아가씨의 언변은 듣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자체를 떠나 절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불미스러운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그녀의 뒤에 남은 '나'는 렉싱턴 대로 술집 주인 조 벨과 함께 그녀와의 추억을 더듬는다. 무언가를 설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 자체로 투명하게 묘사하고 전달하는 이야기. 백오십 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는 술술 읽히고 트루먼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그의 또다른 책을 샀다.

 

 

 

 

 

 

 

 

 

 

 

 

 

 

 

 

소년 시절의 자전적인 이야기. 아주 아름답다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그의 소년 시절 이웃에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살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아직 <티파니에서 아침을> 정도로 트루먼 커포티를 알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것 같아 <풀잎하프>를 읽고 그에게 빠질지 아닐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아쉽게도 일가족 살인 사건에 대한 그의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는 일단 아이를 낳고 읽어야 할 것같다.

 

친구가 나에게 선물해 준 책 속에서 돈이 나왔다. 아무래도 비상금인 것같아 연락했더니 고맙다고 한다.^^;; 계좌이체해 주기로 했다. 지하철로 귀가하던 길에 펼쳐든 산후조리에 관련된 책은 뻔하지 않아 좋았다. 고3때 뒤돌아서 도시락을 같이 먹던 친구가 아직도 내 곁에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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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3-07-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커와 문구류에 꽂히는가 싶더니, 이제는 코믹북스 코너에 한참을 머물러요. ㅋ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를 흘리며 읽은 페이퍼네요 ^^
하퍼 리가 트루먼 카포티 어린시절 친한 이웃이었다니, 마실다니다 보면, 얻어 듣는 게 솔찮아여!

blanca 2013-07-11 21:32   좋아요 0 | URL
icaru님, 저도 스티커, 문구류 엄청 엄청 좋아해요. 하루종일이라도 그 코너에서 놀 수 있을 정도로요. 학생 때부터 펜 사는 게 취미였답니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가 커서는 트루먼 카포티가 하퍼 리의 성공을 시샘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유명인 중에도 어렸을 때 우정을 나누어도 커서는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젊음은 찰나다. 미숙하고 아리고 눈부시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는 더이상 마냥 젊지 않다는 느낌, 무언가 틈새에 낀 느낌. 애매한 시점이다. 이 지점에서 바라보는 청춘은 가혹하고 부럽기도 하고 진저리 나기도 하고 여기에서 보는 노년은 두렵기도 하고 한편 다 겪어낸 그 잔잔함에 끌리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작가는 노벨 문학상에 여러 번 거론되었고 동료 시인에게 자신의 아내를 양도하겠다고 약속하는 스캔들, 세 번의 결혼 등으로 근대 일본 문학계에서도 문학성 뿐만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대단히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탐미주의, 페티시즘 등이 기저에 깔려 있는 그의 작품들은 독특하게도 퇴폐적이거나 난해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섬세한 시선,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끌고 가는 작가의 힘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매력이 있다. 작가의 세번 째 아내,처제 들의 실제 사연에서 끌어낸 <세설> 같은 작품은 많은 분량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미친 사랑>은 어쩌면 작가 자신이 가장 솔직히 드러낸 자신의 욕망일런지도 모른다. 까페 여급이었던 열다섯 살의 소녀와 기묘한 동거를 통해 그녀의 성장과정과 성숙을 관찰하고 때로 주도하기도 하는 중년 사내의 이야기는 소재면에서 언뜻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음에도 이야기 전반에서 그런 퇴폐적인 분위기를 쇄신하는 기묘한 힘이 있어 쉽게 빨려들어간다. '나오미'라는 서양색이 짙은 이름의 소녀가 소위 밀고 당기기의 명수로 '나'라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성실했던 직장인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떠올리는 면이 있다.

 

 

 

 

 

 

 

 

 

 

 

 

 

 

 

 

 

미성숙이 나를 왜 매혹하는가, 그것은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요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명쾌함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것이 약속되지만 거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새를 무한한 완전성들이 메꾸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 <롤리타> 중 

 

"내 삶의 빛이오,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라고 명명했던 롤리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소녀들을 '님펫'이라 부르며 도착적인 집착에 빠졌던 험버트는  <미친 사랑>의 가와이 조지가 '나오미'라는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며 그녀의 소녀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과 대단히 닮아 있다. 시차, 공간을 두고 이 무모하고 집착이 많고 현실 계산에 무능한 두 사내는 만난다. 그들이 소녀들에 다가갈수록 그들의 삶은 소진되고 헝클어지고 소외된다. 돌아온 나오미를 다시 아내로 맞는 가와이 조지와는 달리 험버트는 남의 아내가 되어 만삭이 된, 이제는 더이상 롤리타가 아닌 롤리타를 씁쓸하게 대면해야 했지만. 서늘한 마지막의 그 차가운 여운은 두 작품을 넘나든다.

 

우리나라에는

 

 

 

 

 

 

 

 

 

 

 

 

 

 

할아버지 시인 앞에 나타난 관능의 현현, 소녀 '은교'가 있다.

오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앞에서 시인 이적요는 '사랑은 본래 미친 감정'이라고 설파한다. '변태적인 애욕' 대신 '생로병사를 이기는 관능'으로 소녀에 대한 감정은 합리화된다.

나오미도 롤리타도 은교도 그녀들의 그 미성숙, 저돌적이고 무모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정념, 아름다운 찰나의 육체로 남자들의 욕망을 점화한다. '소녀'는 '찰나'다. 그러니 그 집착은 시한부로 끌날 수밖에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워가야 하는 삶에서 시지푸스처럼 그렇지 않다고 되뇌며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오는 바윗덩어리를 굴려 올리는 그 무모한 치기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은유의 대상으로 소녀들을 등장시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느 곳에 있는 인간이든 인간은 누구나 얼마쯤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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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7-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사랑과 롤리타, 은교는 참 많이 닮아 있군요.
소녀는 찰나다...... 폭풍같은 소녀, 소년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답도 들어있는듯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생각도......

blanca 2013-07-07 22:0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신기한 게 이런 비슷한 욕망에 관련된 책이 동서양,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꽤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판타지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가장 쉽게 잘 읽혔던 것은 <미친 사랑>이었어요.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이것도 작가의 능력인 것 같아요. <세설> 같은 소설은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같은 작가가 쓴 책이 맞나 싶긴 했지만요^^;
 

책을 읽고 나면 꼭 역자의 후기를 읽는다. 번역 과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원작 자체에 대한 소감까지. 숨어 있는 화자는 작품의 뒤안의 또 다른 등장인물 같다. 번역은 대단히 민감하고 미묘한 작업이다. 어떤 번역가의 직역이, 또 어떤 소설가의 의역이 때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번역'의 한계와 이상의 철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한 시점까지 여전히 논란이 된다는 것의 방증이다.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때로 감정의 층위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일이라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느끼는 것을 저들도 비슷한 결로 느낀다는 보장이 없고, 저들이 울고 웃는 것에 우리도 감응하리라는 법이 없다. 이 자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응축되는 지점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장자리에서 번역은 때로 방황한다.

 

 

 

 

저자 김남주는 주로 프랑스 문학을 번역해 왔다. 이 책은 그녀가 번역한 책들에 덧붙인 옮긴이의 말이 모인 것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부터 아멜리 노통브, 로맹 가리, 가즈오 이시구로 등 그녀는 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자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녀가 세상에 내어 놓기 전에 독대한 작가들의 원작 자체에 대한 솔직한 감상도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번역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번역가의 성실한 독서의 여정에 대한 독자들의 초대로 보여진다.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부지런히 읽으며 또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수시로 월경하는 이가 하는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 삶에 대한 이야기는 끌리는 옷자락처럼 여운이오래 남는다. 군데 군데 인용되는 원작의 내용은 그 어느 홍보 문구보다 그 작품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을 동하게 한다. 그녀의 책에서 또다른 독서목록을 건져 올린다. 찾아 보니 절판된 것이 많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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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7-0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저도 나의 프랑스식 서재 받았어요.
아직 안 읽었는데 읽고 페이퍼 남겨야 겠어요.
이참에 김남주의 번역 문체에 대해 관심 좀 가지려구요.
제 취향이길 바라봅니다.^^*

blanca 2013-07-04 20:47   좋아요 0 | URL
저는 김남주 씨의 번역으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었어요. 번역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읽은 책이 아니라 번역가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색깔을 미처 몰랐다는 게 좀 아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