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가지고 조각하는 나를 보고 자네는 말했지.

"내게도 뭘 좀 만들어 주게나."

나는 "뭘 만들어 줄까?" 하고 물었네.

자네는 "상자."라고 대답했지.

"뭐 하게?"

"물건 넣으려고."

"무슨 물건?"

"자네가 갖고 있는 건 뭐든지 다."

자, 여기 그 상자가 있네,

상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거의 다 넣었는데도 가득 차질 않는군.

이 속에는 고통과 흥분, 호감과 악감, 악의와 선의, 기쁨과 절망,

그리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창조와 환희가 들어 있다네.

게다가 그 맨 위에는 자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놓여 있지.

그런데도 상자는 도무지 가득 차질 않는군.

-존 스타인벡

 

 

존 스타인벡이 친구인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에게 만들어 준 온갖 것을 다 넣었으나, 차지 않았던 상자는

 

 

 

 

 

 

 

 

 

 

 

 

 

 

 

 

 

 

이것이었다. 천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 존 스타인벡이 친구에게 헌정하는 이 애정어린 제사는 그가 <에덴의 동쪽>에 쏟아부은 것들에 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요절한 제임스 딘의 강렬한 이미지. 동명의 스케일 큰 드라마. 정작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캘리포니아 북부 살리나스 계속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부터 펼쳐지는 이 장대한 이야기에 코를 박았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객관적 관찰자이기도 하고 작가 존 스타인벡의 대리 자아이기도 하다. 실제 그의 외가에 대한 자전적인 고백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고 한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인 외할아버지 새뮤얼 해밀턴이 살리나스 계곡에 도착하여 킹시티 동쪽의 척박한 언덕에 정착하는 과정은 존 스타인백 외가의 일대기에 끼워 넣을 만하다. 새뮤얼이라는 캐릭터는 더없이 복합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는 손재주가 많고 따스한 성격으로 각종 마을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지만 돈을 버는 재주는 없는 몽상가였다. 반면 아내 라이자는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고 메마르고 건조한 독실한 장로교도였다. 이 둘은 너무나 달랐지만 그래서 더 조화로웠다. 남편이 꿈을 꾸는 동안 아내는 묵묵히 아이를 아홉이나 낳고 길러냈다. 보수주의자,혁신주의자, 몽상가,현실주의자가 적절하게 섞인 더없이 균형감 있는 가족이었다. 9남매 중 딸 올리브가 존 스타인백의 어머니이다. 한편 동부에서는 제임스 딘이 연기했던 칼의 아버지가 될 애덤 트래스트가 배다른 동생 찰스의 반대를 묵과한 채 악마적인 데가 있는 여자 캐시를 데리고 살리나스 계속으로 이주해 온다. 캐시는 쌍둥이 형제를 낳고 남편을 총으로 쏜 채 도주해 유곽에 흘러들어간다. 실의에 빠져 쌍둥이 아들도 중국인 요리사 리에게 맡겨 버리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애덤은 부지런한 몽상가 새뮤얼에게서 아들들의 이름을 얻는다.

 

당신의 첫 아들을은 카인과 아벨인 셈이지.

-p.491

 

이름을 짓기 위하여 모인 새뮤얼, 애덤, 중국인 하인 리는 창세기 4장,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과 아벨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이 토론은 사변적이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위대하고 영원한 이야기는 만인에 관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라는 하인 리의 이야기처럼 야훼에게 바친 제물이 거부당하자 야훼를 흡족하게 한 아우를 죽이고 만 카인의 후예인 우리는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악행을 저지르고 방황하는 카인의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왜 야훼는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 표적을 찍어 죽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는 지에 대한 그들의 의문은 말씀히 해소되지 못한 채 성경에서 '약속된 땅'으로 돌아온 칼렙과 여호수아라는 이름를 쌍둥이 형제에게 붙여주려는 것으로 끝난다. 여호수아는 '약속된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론으로 변경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칼과 아론이라는 형제는 성경에서 이름을 얻는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름다운 외모의 형 아론, 타인을 두렵게 하는 동물적인 공격성이 있지만 형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하는 동생 칼. 이 형제는 마치 아버지와 삼촌, 카인과 아벨의 또다른 은유 같다.

 

절대 늙어 소멸할 것 같지 않던 새뮤얼은 딸 유나의 죽음으로 점차 노쇠해가고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간청을 못 이기는 척 그 척박한 땅을 떠나기 전 애덤과 하인 리를 다시 찾아와 아름답고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인종, 민족, 계층을 뛰어넘어 한 곳에 모여 인간의 원죄의식, 삶 전체에 대하여 아름다운 운율의 시를 읊듯 대화를 펼치는 그들 모습의 묘사가 눈부시다. 그 대화는 사변적이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은 영롱하고 생생한 음악 같다. 마지막으로 새뮤얼 덕택에 기운을 차리고 악마적인 여자 캐시에게서 해방되었다고 느낀 애덤이 새뮤얼에게 정원, 풍차 우물을 만들어 주고 서풍을 타고 장미향이 퍼지게 도와달라는 요청에 보인 새뮤얼의 반응은 너무나 아름답다.

 

"애덤, 고맙네. 자네의 향기로운 제안이 서풍을 타고 향기롭게 번지는군. "

p.54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이 멀지 않았다고 느낀 새뮤얼은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에 장미를 심으려 들 자신의 아들 톰을 대신 찾아보라고 완곡하게 거절한다. 새뮤얼은 죽고 그의 영혼은 하인 리의 표현처럼 애덤과 리 사이를 떠돌다 미처 마무리 되지 못했던 그들의 카인과 아벨에 대한 의문의 답을 가지고 온다. 야훼가 카인에게 이야기한 "팀셸"이라는 히브리어. 이것은 <에덴의 동쪽> 전부를 아우르는 핵심이기도 하다."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악도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으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 스타인벡 앞에서 인간은 신만큼 존귀하고 위대해질 수 있다. 칼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소외감으로 섬약한 형 아론에게 유곽에서 마담으로 일하는 생모의 모습을 노출하여 그를 전장으로 떠나게 만들고 끝내 전사하는 결과까지 낳게 했을 때에도 그들의 실질적인 양육자였던 하인 리가 아버지 앞에 아들을 세우고 그 입에서 끝내 용서를 의미하는 "팀셸"을 뱉게 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 전체를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위대하게 고양시키고 삶의 존귀함을 응축시킨 존 스타인벡의 저력을 그 자체로 형상화한다. 존 스타인벡이 그려낸 인간의 숱한 악한 기질들은 우리 외면에 존재하는 머나먼 것이 아니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때로 어리석은 충동에 지고 피를 나눈 혈족들에게  상처와 위해를 가하는 모습은 우리 내부 안에  떠돌아다니는 부스러기들이다. 이러한 악덕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은 미덕에 닿아 있다. 그러고 보면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결론이자 바람을 새뮤얼에게도 애덤에게도 하인 리에게도 골고루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아니, 찰스에게도 칼에게도 심지어 사악한 여자 캐시에게도 그의 모습은 투영되어 있다. 그가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모든 소설과 시는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끊임없는 대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만 <에덴의 동쪽>이 조금 더 밀고 나간 지점은 섣불리 미덕의 승리를 확정지은 것이 그 가능성의 도정에 인간의 선택과 의지를 조심스레 놓아 둔 것에 있다.

 

존 스타인벡의 모든 것이, 그리고 나머지는 읽는 자의 몫으로 남겨진 이 위대한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기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3-04-2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저 잘생긴 남자는 아마 제임스 딘이겠지요. 제임스 딘 정말 좋아해요.
동명의 한국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죄와 벌>을 언젠가 다 읽은 후에 읽어볼게요.
천천히, 천천히 열어볼게요.

blanca 2013-04-23 10:4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저는 아직 제임스딘의 <에덴의 동쪽>을 보지 못해 이번 기회에 보려고요. 아, 저 이 책 읽으며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이 생각났어요. <죄와 벌>을 읽고 비교해 보셔도 좋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3-04-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단에 자기 자식은 커녕 염소 한 마리 올리지도 못하여도, 씻겨줄 발이 없더라도, 마침내는 성 베드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하여도 끝내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할 용기가 인간에게 과연 있는 걸까요?

요즘은 점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지는 '그리하여'는 구약과 신약에만 존재하는 어구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 무섭게 궁금했어요.

blanca 2013-04-23 10:42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여러 번 성경 문구에 대한 토론이 나와요. 그런데 그 대목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여러 시각에서 토론을 벌이면서 결국 인간의 위대함, 선택의 자유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보면 신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인간으로 돌아가는 스타인벡의 의도가 보입니다. 반대의 것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재능이 부러웠어요.

성경은 언젠가는 학문적으로 정독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리시스 2013-04-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한번씩 보는데, 책은 못봤어요. 재밌겠다!

blanca 2013-05-16 08:46   좋아요 0 | URL
댓글 달린 줄도 몰랐어요. 아이리시스님. 아, 책 정말 좋아요. 진짜요! 강력추천합니다. 영화에서는 너무 생략된 대목이 많은데 그 생략된 대목 중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답니다. 좋아하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