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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제인 오스틴의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제일 먼저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만든 소설가>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로맨스 소설의 전형으로 보기는 힘들다. 분명히 중심 줄기가 남녀관계이고 결론은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함으로써 로맨스소설의 클리세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스틴의 소설속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사회의 다양한 인물 유형을 그려놓은 만물상이랄까? 그런 느낌이 강해서 그 인물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의 로맨스는 어느 순간 뒷전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주인공보다 조연들의 캐릭터성이 더 강하여 독자들을 더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욕이든 공감이든 어느쪽이든 말이다.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 나는 제인 오스틴에게 주어진 저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만든 소설가>라는 호칭은 당연히 샬럿 브론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고로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일단 서사의 중심이 여주인공에 있어야 하고, 남녀주인공의 사랑과 위기 그리고 해피엔딩으로서의 결혼이 중심줄기로 단단하게 서있어야 한다.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주변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주인공을 위한 주변인으로서 주인공의 사랑을 돕거나 방해하거나 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을 잊어서도 안된다. . 이런 오늘날 로맨스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하는 소설은 제인 오스틴이 아니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날 로맨스 소설들의 서사와 기본 구조를 같이 하는 제인 에어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보다 읽기가 훨씬 편하다.
로맨스 소설의 중심은 여자 주인공! 따라서 제목이 제인 에어인 것도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여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소설임을 감안하고 볼 수 밖에 없는데도 여주인공 제인 에어는 아주 훌륭한 여주인공으로서의 클리셰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에 이 소설을 보는 내가 반할 정도로 말이다.
시작부터 제인의 캐릭터는 강렬하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니는 지옥에 간다는 설교로 어린 제인을 겁주려는 어른에게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건강하게 지내서 죽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그러나 꼰대어른이 바라는 답이 아닌 대답을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런 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착하고 여린 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해대는 리드 부인에게 "당신이 나를 학대했음을 하늘에 있는 나의 부모님과 외삼촌(리드 부인의 남편이기도 한)은 다 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벌을 반드시 받고야 말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세에서도 나는 내가 당신에게 받은 학대를 다 말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로 방항을 함으로써 리드 부인을 기함하게 하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준다.
이토록 똑똑하고 자존감 강한 여주인공 제인, 이로써 21세기의 독자조차도 매료시키기 시작한다. 자선학교로 보내진 제인이 교사로 성장하고 사실 거기서 머물수도 있지만 다른 삶을 찾고자 과감하게 스스로 직업을 구하는 광고를 내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인이 빛나는 것은 로체스터와의 결혼을 포기하는 대목이다. 결혼식장에서 로체스터씨의 부인이 살아있음이 밝혀지자 그 결혼이 얼마나 자신에게 불합리하고 원통한 것이었나를 주구장창 변명하는 로체스터, 그의 생각의 근본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나타난다.
정부나 노예나, 대로는 천성이 그렇기도 하지만 그 지위로 보아서 열등한 사람들이오. 열등한 인간과 친밀하게 산다는 것은 타락이오. -2권 149쪽
그러니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부인 버사와 사는 것은 로체스터에게는 타락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이 온전한 부인을 찾아 다시 결혼하는 것이 로체스터에게는 정의이고 진리인 것이다. 여기서 로체스터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와 형의 계략이었든 어쨌든 그 결혼을 결국 받아들인 것은 자신이라는 것이다. 버사의 집안의 정신병 내력을 몰랐기 때문에 속았다고 길길이 날뛰지만 적어도 자신이 결혼할 때에는 버사의 병이 발병하지 않았었고,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쳤든 그녀의 치료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남편인 로체스터의 의무인 것을 어쩜 이렇게 이기적으로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부인인 버사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로체스터가 해야 하는 일은 아내의 정신질환을 고치기 위해 버사를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로체스터에게 제인이 말한다.
당신은...... 그 불행한 여인한테 너무 가혹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증오심을 가지고. 앙심 깊은 반감을 가지고 그분 일을 이야기 하시는군요. 잔인해요. 미치지 않을 수가 없겠어요. -2권 127쪽
19세기에 로체스터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토록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작가의 통찰력이 빛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로체스터가 제안하는 중혼을 받아들이는 것, 또는 결혼이 안되니까 그저 연인으로 같이 살자고 하는 것이 당대 여성인 제인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희생이라는 것을, 그렇게 자신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관계는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음을, 언제든지 제인이 또 하나의 버사가 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작가 샬럿 브론테에게 감탄하는 장면이다. 로체스터가 제대로 사랑을 알고,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면 아직 더 많은 시련이 남아있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 시련을 손필드 저택의 화재와 버사의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손을 잃고 장님이 된 것으로 그의 회개를 표현했다고 봐도 될듯하다.
또한 여기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버사를 제인의 또 다른 자아로 보는 의견도 있다는데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보기에는 제인이 버사에 대해 인지하고 한 표현이 너무 적지 않나 싶다. 위의 인용문이 거의 유일하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저 문장을 샬럿 브론테가 당시 여성 일반에 가지고 있던 연대의식과 공감이 아닐까싶은 것이다.
이 시대에 제인 에어를 통해 보여지는 여성상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될듯하다. 가령 아래와 같은 말은 오늘날의 여성들이 해도 별 위화감이 없을듯하니 말이다.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도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 1권 198쪽
제가 만약 사랑을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결혼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녜요. 자기를 쓸모 있는 연장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평생 매어져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니겠어요? - 2권, 354쪽
이토록 똑똑하고 제인 만세라고 외치고 싶은 주인공인데 별 하나를 뺀것은 로체스터를 떠난 그녀의 선택때문이었다. 아니 왜 한밤중에 도망치듯이 돈 한푼 안들고 집을 나서서 얼어죽을뻔하냐고 말이다. 분명히 그 전에 자신에게 삼촌이 있고, 유산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제인은 삼촌을 찾아가야 하고, 그 유산으로 학교를 세운다든가 뭐 이런 일을 했다면 훨씬 더 소설의 전개가 매끄러웠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죽을뻔한 고생을 넣어서 제인의 숭고함과 도덕성을 돋보이게 하려 한것 같은데 음..... 이건 작가의 착가? 또는 시대적 한계? 당대 기독교 의식의 한계? 하여튼 무엇이었든 그녀는 한푼도 없이 집을 나가서는 안되었고, 당연히 유산을 받았어야 한다고 계속 욕하면서 책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세인트 존 같은 제 신념에 도취되어 사는, 그래서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병맛 인간을 만나지만 이런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끼워넣을 수 있는 인간이니 역시 이 부분은 샬럿이 살아있다면 다시 써달라고 하고 싶다.
결국 시련을 겪고 끝내는 사랑으로 돌아감으로써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완벽하게 탄생시키고,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의 전형을 만들어낸 이 소설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에게는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만들어낸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반드시 주여져야 한다.
뱀꼬리.
다락방에 갇힌 버사가 백인인가 자메이카 출신의 혼혈인가의 논란이 있었는데 일단 이 책에서 읽은 바로는 백인이다.
버사의 출신에 대해 나오는 대목은 딱 한 문장인데 2권 109쪽에 "그 모친은 서인도의 크리올인인데...."라고 나온다. 버사의 아버지는 농장주니까 당연히 백인이고, 모친을 표현하는 크리올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순수백인이다.(크리올은 혼혈 아님, 식민지에서 백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 이 크리올들은 본토에서 파견된 총독이나 식민지 관료들보다 차별받기는 했지만 명백하게 식민지에서 최고의 지배계층이었다. 따라서 버사의 존재를 가지고 인종차별을 끌어들이기는 힘들듯.... 또한 피부가 검다는 표현이 딱 한번 나오지만 그게 인종적 특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개인적 피부톤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러면 제3세계에 대한 차별로 버사를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진짜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로체스터가 버사에 대해 가지는 혐오는 그녀의 출신이 식민지여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집안의 알콜중독과 정신병 내력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이 점 역시 버사가 백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딱히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사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하나의 뱀꼬리
어릴 때 축약본으로 제인에어를 읽었고, 내게는 왠지 로체스터씨는 굉장히 음울한 인간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아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제인에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캐릭터가 바로 로체스터이다. 아 진짜 대놓고 처음부터 제인을 꼬셔보려고 온갖 수를 다 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진중하고 말없고 뭔가 로맨스 소설에 나올만한 중후한 이미지의 로체스터씨는 산산조각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