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 P9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않는다. 슬이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 P40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P109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좋은 너.
미운 너. 웃긴 너, 우는 너. 아픈 너. 질투 나는 너. 미안한 너. 축하받아 마땅한 너. 대단한 너. 이상한 너. 아름다운 너. 다만 운이좋지 않았을 뿐인 너. 동물인 너. 죽은 너 잊을 수 없는 너. 그런너를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고 기억하는 나. 문학의 이유는그 모든 타자들의 총합이다. - P181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 P228

월요일은 또 돌아올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계의 아름다음 역시 달라질 것이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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