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극한직업]과 [엑시트]의 대성공으로 코미디 장르가 꽤 만들어지고, 눈길도 끌고 있다. 올해 첫 코미디 영화로 상영된 [해치지않아]가 과연 대박의 기운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대박이 난 작품들을 분석해보곤 하는데, 지난해 [극한직업]과 [엑시트]에서는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이라는 칼날을 지녔다고 평을 받는듯 하다. 소위 웃픈 영화라는 것이다. [극한직업]은 소상공인의, [엑시트]에서는 청년백수의 아픔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를 '찾는다'는 행위는 관객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우선 코미디영화라면 웃겨야 한다. 그 웃음을 발생시키는 부조리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면 더욱 좋은 것이고. 

 

[해치지않아]는 이런 측면에서 다소 애매모호하다. [해치지않아]는 사람도 찾지않고 동물도 없는 다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동물탈을 뒤집어쓴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동물탈을 뒤집어쓰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웃음을 준다. 그런데 아쉽게도 웃음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다. 그럭저럭 웃기다. 

 

[해치지않아]는 '동물원'을 통해 동물을 좋아한다는 의미와 동물원의 의미 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듯했다. 동물탈을 뒤집어 쓴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발각된 이후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냐에 따라 그 기회가 폭발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결말이 궁금했다. 그런데 영화는 아주 급하게 무난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덕에 영화의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않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가끔 아무 생각없이 피식피식 웃고싶다면 동물탈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소동을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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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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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개념이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인권이 인종, 성별, 나이, 지역 등의 차별없이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된 것은 체 100년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국민인권위원회가 생긴 것도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권을 넘어 동물권에 대한 개념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을 받는다. 또한 초중고 교육과정에 동물보호와 동물복지교육이 곧 포함될 예정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이들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생명에 대한 권리의 대상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식물권에 대해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의 연구 등을 살펴보면 식물들도 자신의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주위 나무들과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고통을 느끼고, 땅 속 미생물을 포함해 주위 생명체와 협력하는 등등, 동물과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동물권에 이어 식물권도 생각할만큼 우리의 사고가 확장돌 수 있는 지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식물권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인권, 동물권, 식물권 이라고 나누긴 했지만, 이는 모두 생명에 대한 권리이다.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2019년 풀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오버스토리]는 나무와 숲을 통해 식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려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100여년에 다다르는 수대에 걸친 시간과, 십여명의 주인공이 잘 직조된 방직물마냥 꽉 짜여진 이야기다. 

 

소설 초반부에는 마치 성경의 창세기 마냥 어떤 가족들의 계보가 이어진다. 그리고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처럼 잠언이라 여겨지는 문구들이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하지만 결국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는 한 사건으로 응결된다. 내가 어렸을 적 외신을 통해 보았던 사진 중 아직도 인상 깊었던 바로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수십미터 되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환경운동을 펼쳤던 모습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극렬한 저항을 통한 환경운동이 비극을 자아낸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 속 이야기는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나무를 베고 숲을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도 막지 못하는 것을 방관자 효과라고 지적한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도움을 줄거라며 자신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체 방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UN에서 외친 것처럼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당장의 행동이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도 식물권을 위해 행동에 나설 때다. 그럴 때가 돘다. [오버스토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일어서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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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화두는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갑질이나 금수저 등의 단어가 세간을 떠도는 이유 또한 이 공정과 떼놓을 수 없다. 가진 자들이 더 가질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더 갖고 있다는 것 하나로 힘마저 챙길 수 있는 현실이 슬프기 때문이다.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sbs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공정'한 주인공의 활약이 쾌감을 안겨준다. 갑질하는 자들을 향한 맞섬과 마침내 거둘 승리를 예감하며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 [스토브리그]-저항하지 않으면 썩는다 

야구팀 드림즈의 (사실상)구단주와 사장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은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이다. 그는 '한 번 굽히면 편해지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굽히면 평생 굽혀야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갑질에 맞서고, 부조리한 조직을 바꾸기 위해 휘두르는 무기는 바로 '합리'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식과 합리로 그는 당당하게 횡포에 맞선다.

임미선 마케팅 팀장이 사장의 불공정한 지시대로 시구자를 선정하자 백 단장은 단호하게 호통친다. "부정한 지시라면 단 한 번이라도 저항이라는 것을 해보세요. 그렇게 썩어가는 겁니다. 우리 팀이"

 

 

■ [이태원 클라쓰] - 소신에 대가가 없는 삶을 살련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 분)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잘못한 행위에 대한 죄값은 치르데, 잘못하지 앟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일은 없다. '소신대로 살라'는 아버지의 가훈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가'라는 대기업의 총수와 그의 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그를 무릎꿇리고자 하지만 새로이는 끝내 굽히지 않은 것이다. 마치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오수아(권나라 분)는 자신이 따르던 새로이의 아버지를 장가 총수의 아들이자 같은 반 친구인 근원이 교통사고로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가의 장학금을 받고 장가에 취직해 일을 한다. "나는 새로이 너처럼 용기가 없다"면서. 하지만 새로이는 수아에게 '너의 삶을 그냥 살라'고 말한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이다. 백승수 단장과 새로이의 차이는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수저이자, 을이다. 무수한 타협을 거치며,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그곳에 서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괴로움과 분노, 슬픔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그것을 넘어 자기합리화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새로이나 백승수 단장을 보며 환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그들처럼 갑질에 굽히지 않고 맞서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체념과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임미선 팀장이 한때 열정을 불태우며 팀의 발전에 힘을 쏟다 불성실해진 것은 체념이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체념은 찾아온다. 그리고 체념은 갑질에 순응토록 만든다.

수아가 장가를 받아들인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학비가 걱정이고 생계가 걱정인 상태에서 잠깐 눈만 감으면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순 없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 나아가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당한 것에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저 마음 속 밑에 꼭꼭 숨겨둔 용기라는 것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우리에게 기본 생계권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본다. 돈이나 권력으로 갑질하는 대상에게 저항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꽁꽁 싸매둔 마음 한켠에서 꺼낼 수 있도록 매듭을 풀고 뚜껑을 여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든든함만 우리가 갖고 있다면 가슴을 펴는 당당함과 굽히지 않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공상에 빠져본다. 나약한 '을'의 실없는 주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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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한석규와 최민식의 열연이 빛난다.

 

실록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장영실은 세종의 안여(임금의 가마)가 부서져 뒤집혀진 책임을 지고 곤장을 맞은 이후,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왜 장영실은 급작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린 것일까. 작가들에겐 그야말로 상상력을 품게 만드는 소재다.

 

2016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장영실](김상경이 세종으로, 송일국이 장영실로 분)은 그 뒷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냈다. 궁에서 몰래 사라져 남이 알아차릴 수 없는 세간에서 계속해서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발명하고 만들어냈다고. 드라마는 또한 기록 이후의 모습과 함께 장영실의 삶에 드러나는 우여곡절을 24회라는 긴 시간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영화는 이 드라마와 어떻게 다를까.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세종과 장영실을 소환했을까. 영화는 세종과 장영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분상 단 한 번의 마주침도 가능하지 않았을 관계이지만, 서로의 뜻과 능력을 알아보고,함께 길을 걷는 벗이 되는 모습에 집중한 것이다. 거문고 명인 백아와 그 소리를 이해한 종자기의 사귐처럼 말이다. 또 서로를 위해서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않는 문경지우의 관계였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세종과 장영실의 이런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실록에 남겨진 마지막 장면에 주목한다. 안여가 부서진 사건은 세종이 영실을 살리기 위한 자작극으로 본다. 하지만 영실은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수 있도록,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었다며 죄를 뒤집어쓴다. 영화의 상상력이 최고조로 달하는 부분이다. 결국 세종은 한글을 위해 영실을 포기한다. 함께 뜻을 이룬다는 점에서 벗이자 동지인 그들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세종과 장영실의 우정을 우리 앞에 소환한 것일까. SNS속 수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외로워하는 우리들을 위한 것일까. 진정한 벗이란 무엇인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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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디선가 범죄가 발생하고, 그 범죄를 밝히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범인이 밝혀진듯 하지만, 결말에 이르르면 진짜 범인은 다른 이인 경우가 많다. 반전의 재미, 사건을 해결하는 머리싸움, 주어진 단서들이 어떻게 아귀에 들어맞는지를 살펴보는 흥미, 점차 범인에게 다가가는 쫄깃함 등등. 추리소설의 매력은 흘러넘친다.

 

추리소설의 플롯을 활용한 영화 또한 이런 매력을 고스란힌 담고 싶어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영화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 용의자는 작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모든 가족들이다. 마치 애거사 크리스트의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 마냥 모든 인물들이 용의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살인동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러닝타임 1/3 정도 쯤에 범인을 밝힌다.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를 그 이후에 풀어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초반에 범인이 밝혀진듯하다. 아무렴. 결국 반전이 있다. 범인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가 밝혀지는 과정이 영화 러닝타임을 치밀하게 계산한 듯 3등분 정도의 분량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고삐를 쥐었다 풀었다 하는 솜씨가 좋다. 게다가 범행의 알리바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진짜 범인을 잡게 해줄 단서가 되도록 만들어놓은 구성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정통 추리소설, 추리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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