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로 가기 위해서는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를 타야 한다. 이 배에 올라서면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든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에 등장하는 갈매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사냥의 본능마저 잃어버린 애완동물 갈매기. 하지만 이 갈매기들이 정말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일까?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택한 길일 뿐이지 않을까?
갈매기들의 눈은 매서웠고 날갯짓은 치열했다. 삶을, 생존을 향한 그들의 몸짓을 비아냥거리기에는 어딘가 모를 애달픔이 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갈매기들의 모습 뒤에는 삶의 고달픔이 서려 있다.
보다 쉬운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하려는 진화의 모습을 엿봤지만, 실은 그것이 멸종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것은 갈매기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갈매기의 날갯짓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얼핏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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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포리 나룻터에서 배를 기다리며 쭈그려 앉아 먹던 망둥이 회맛이 생각납니다.
바람, 겁나게 불던 겨울이었지요.
동동주 한 잔 마시고 배를 타서 새우깡에 미쳐 덤벼드는 녀석들을 보며 씁쓸했던.
곧 보문사 사진도 올라오겠군요^^

하루살이 2006-06-2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보문사 사진은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요 ^^;;;
낙조도 찍은게 있지만 흔한 것 같기도 해서...
일단 휴지통에 넣어둔 것 다시 찾아봐야 할련가...^^
 





춘천 오봉산에 있는 청평사.

저 열려진 문 사이로 속세의 고뇌를 짊어지고 불국정토로 들어서는 것인가?

깨달음을 위해 가사 장삼을 걸치고 고행차 속세로 나아가는 것인가?

저 빛의 사각 프레임 안에 탐, 진, 치를 벗어버리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게의치 않고 살았으면 싶다.

저 빛은 출구인가 입구인가

속세로부터의 탈출구이며 깨달음으로의 입구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똑같은 크기로 정렬되어진 기와들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통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론 모두 똑같은 것이리라.

저 기와들마냥. 누구나 감당해야할 무게의 짓눌림.

개인에게 주어진 고뇌들 또한 경중을 가릴 수 없으니 기왓장 하나가 빠져 우르르 쏟아지듯

고뇌의 고리 하나만 끊긴다면 해탈할 수 있을련가?

그 고리 하나를 찾아 오늘도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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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화려한 나비. 바위처럼 무던한 나비.

보호색을 입고서 하늘하늘. 세상과 하나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 속에 숨어살기 위해서일까?

나는 지금 이 곳에 어떤 보호색으로 물들여 있을까?

세상 속에 숨어 지내려고 말이다.

나는 번데기를 벗고 나를 찾아 날고싶다. 보호색따윈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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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전시장을 찾은 일이 있는데, 나비의 무늬가 그리 슬프게 보였어요. 화려함, 무던함, 그 안에 끓는 뜨거움.. 고난의 시기를 벗고 떨쳐나왔는데도 그리 애틋하게 보이던 이유 말이죠, 그게 하루살이님의 글에서 느껴지네요.. 좋은 하루~~

하루살이 2006-06-1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산에 가면 나비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앞길에서 팔랑팔랑 거릴 때면 잠시 멈추고 어디로 가나 지켜봅니다. 한걸음 걸어가면 한걸음 앞으로 날아가는 모양이 꼭 길을 가르쳐주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비가 인도하는 길은 화원의 천국으로 가는 길일까요? 나비의 날개에서 묻어나는 가루마냥 슬픔이 눈처럼 날리는 곳일까요? 따라가다 보면 이내 저 멀리 사라집니다.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파란여우 2006-06-1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하루살이님이 직접 찍으신거여요? 아, 아주 좋아요!
특히 이끼 얼룩진 바위 위에 앉은 나비가 꼭 저처럼 울룩불룩 근사합니다^^

하루살이 2006-06-1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사진과 비교한다면 부끄럽습니다.
'울룩불룩' 그러니까 님이 근사하시다는거죠?^^
 


오봉산의 구름

 

파란 물에 흰 물감을 풀어 번지면 이렇게 될까? 그라데이션 또는 보카시라고 표현하는 점점 묽어지는 모양새가 눈을 사로잡았다. 아득하니 사라져가는 그 경계선.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어가는 곳. 그 희미한 경계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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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15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 섞이는 것, 그 어울림의 묘연함이 현기증나게 아름답습니다

하루살이 2006-06-1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기름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폭력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힘의 균열이 바로 폭력의 씨앗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리적 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심리적 폭력이든 그 힘의 우열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 비로서 폭력은 기지개를 피는 것이다.

영화는 상황극이다. 영화적 표현보다는 오히려 연극적 요소가 강해 무대에 올려진다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성악과 교수와 제자가 뮤지컬 오디션을 보고 서울로 향하다 우연히 들어서게 된 낯선 곳. 군대시절 폭력에 의해 귀가 멀고 정신까지 이상해진 돼지 사육자와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아이, 왕따 당하는 고등학생,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겁을 상실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청년이 이곳에 모임으로써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교수라는 직분과 뮤지컬 오디션 채점자로서의 권위를 앞세워 제자를 성추행하려다 실패하는 모습 속에서는 뉴스 속에서 항상 접하는 것들이라 오히려 무감각하고 지레짐작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네 청년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선입견에 꼼짝달싹않는 교수와 혹시 죽지 않았을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청년들 속에서 웃지못할 폭력의 전초가 시작된다. 목소리로 먼저 힘이 셈을 과시해보지만,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를 보고 떠는 바람에 본모습을 들켜버린 교수나, 왕따 당하던 고등학생이 무지막지하게 얻어맞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변하게 되는 상황, 경찰이라는 직분이 주는 힘을 이용해 사용하는 폭력 등등. 그들의 폭력은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의해 유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간엔 질긴 인연을 숨기고 있는데, 이게 영화의 결말을 게운치않게 만든다. 순환되는 복수의 고리, 인과응보라는 결말. 차라리 현실이 그렇게 인과응보적이라면 폭력도 불사하고픈 심정이 꿈틀거린다. 반대로 모든걸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평범한 사람이 지니고 산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복수도 용서도 힘든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로 다가설까? 애시당초 복수의 씨앗을 키우지 말자는게 정답인듯 보인다. 아니면 차라리 아주 강한 사람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바보가 되는 수밖에.

잔혹과 코믹을 내세운 영화같지만 잔혹 쪽이 훨씬 강하게 인상을 풍긴다. 아무래도 그것은 연기자들의 제대로 된 연기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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