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이러스에 오염이 됐다. 소수만이 면역체를 가지고 있다. 오염된 사람들은 괴물로 변한다. 그런데 왜 꼭 이런 괴물들은 식인의 습관을 지니게 될까. 어쨌든 모든 사람이 대피를 했지만 결국 99% 오염. 1%만이 생존한다. 하지만 그 생존이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 괴물은 생존자를 먹어치울텐데... 그래서 해결책은 괴물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영화는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박사(윌 스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여기까지면 실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구성.

여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 윌 스미스에게 나타난 다른 생존자. 그들은 소위 엘도라도 또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는다. 생존자들만의 땅.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 하지만 윌 스미스는 믿지 않는다. 그런 곳은 없다고. 설상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금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갈등은 쉽게 해결이 된다.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산산조각 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윌 스미스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그의 노력과 남은 사람들의 희망이 결국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히면 도망가려고 한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첫번째 방법이다. 회피. 이것처럼 좋은 것도 없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회피일 뿐이다.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윌 스미스는 그래서 문제와 정면대결하려 했다. 유토피아로 도망을 가면 과연 그들만의 행복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더 빌리지'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도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한다.

윌 스미스의 선택은 어찌보면 정답인 셈이다. 물론 그 정답을 위해선 용감하고 똑똑해야만 한다. 보통 사람들은 갖기 힘든 덕목이다. 그래서 '나는 전설'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제를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결국 그것에 답이 있는데... 전설을 꿈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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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까 말까 하늘은 잔뜩 찌푸린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다.

바람소리가 쌩쌩 추위를 가늠케 한다.

집에서 꼼짝않고 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뒹굴었다.

그시간이 그시간같았다. 세상은 그대로고 나도 그대로 인듯..

창밖으로 시선이 갔다.

어떤 이야기와 영상을 담았는지 모를 전파를 받기 위해 꿋꿋하게 서 있는 안테나 뒤로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구름 뒤편엔 자신의 할 일만은 꼭 하겠다는 투로 태양이 반짝였다. 짓궂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더라도 그의 움직임엔 한치 흐트러짐도 없다. 다만 그 장나꾸러기 구름만이 형형색색 변화할 뿐이다. 그 때 문득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구름이 변화하듯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가듯 내 모습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난 뭘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방구석에 드러누워 몸이나 지지며 망각 속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다니... 안테나라도 되어 추억이라도 붙잡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쉬는 날엔 으레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태양처럼 버티고 있는 것인가?  

문득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라져가는 구름이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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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 일출

1. 동해 촛대바위 위에 갈매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옆 형제 바위 위쪽으로 해가 떠오른다. 운무가 많아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을 준다.
촛대바위는 2005년도 세찬 너울에 두동강 난 적이 있다고 한다. 크레인을 이용해 다시 붙이는 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마 부러진 촛대바위를 그대로 둔다면 관광객을 잃을까봐 걱정한 지자체의 배려(?) 아닌 배려였을 것이다.
형제바위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자주 싸우는 형제들이 형제바위를 함께 보면 우애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부러진 촛대바위가 다시 붙고, 싸우던 형제가 우애를 찾는 것처럼 남북이 하나로 되기를 바랐다.

2. 촛대바위 위에 앉아있던 갈매기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날개를 가진 것들도 휴식이 필요하다. 쉼없이 난다는 것은 고달프다. 우리에게도 편안한 휴식이 있기를... 그래서 다시 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갈매기의 모습이 외로우면서도 씩씩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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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노믹스
존 로트 지음, 진성록 옮김 / 부글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모든 해결책은 시장으로 통한다?

시장 만능주의자는 자유로운 시장만이 경제적 풍요와 함께 자유의 확장이라는 정치적 문제까지도 해결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유독 반시장주의적 사고가 팽배해 있어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런 시장만능주의자가 쓴 책이다. 경제는 물론이고 법령도 정치도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됐을 때만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바라본다. 덩치 큰 기업이 가격을 통해 자기들 마음먹은 대로 횡포를 부릴 것 같지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조치, 범죄율이 떨어진 이유, 금연의 확장 등등이 모두 규제없는 자유로움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그 주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다양한 논거를 든다. 이들의 논거 속에선 항상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가져온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국부론을 언급하면서 빼먹는 것이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1권 11장에서  신흥자본가계급을 이렇게 말한다. "이 계급이 제안하는 상업적 법률, 규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큰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오랫동안 신중히 검토한 뒤 채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과 결코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란 것의 보이지 않는 부작용에 대한 암시인 셈이다. 시장만능주의자는 이 경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항상 보이지 않는 손만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시장만능주의자이다. 시장을 형성하는 요인들 중에 명성과 평판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비자금을 조성하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은 그 훼손된 명성에도 승승장구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활개를 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명성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서는 명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정치 스캔들이 수시로 터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평판의 상실에 대한 우려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하게 삶을 살도록 바로 잡아준다. (130쪽)

우리의 경우엔 아직 시장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서라고 변명할 것인가? 시장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작용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시장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시장의 자유도 다양한 스펙트럼에 맞추어 주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무조건 시장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시장의 결함은 공유문제에 있다. 즉 자신의 이익을 구하려다 다른 사람들에게 블공평하게 비용을 부담 지우게 되는 분야를 공유문제로 보았다. 예를 들면 환경오염 또는 물고기 남획과 같은 것이다. 이런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만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공유의 문제를 확대해 정부가 그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공유의 문제는 어디까지로 한계지울수 있는가. 또 어느 선까지 규제를 행해야 적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지 않는한 시장에 대한 규제의 정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얼핏 든 생각이지만 미국과의 FTA라는 것도 환경오염이라는 공유의 문제의 국제화와 더불어 생각해봐야 되는 건 아닐까. 개인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고 약탈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고 이타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래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의 도구는 없는 지도 모른다. 만병통치약이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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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생생한 사진을 찍어오면 500달러, 스타들이 커피를 먹고 있는 사진을 찍으면 1만 달러를 받는데, 당신이라면 어떤 사진을 찍겠습니까?"

한 파파라치의 변명이다. 아니 변명이라고 말해서는 안되겠다. 이 시대가 원하는 일,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해 둬야겠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신이라도 사진을 찍는다면 스타 사진을 찍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한다. 다만 카파가 활동했던 그 시절의 존경의 무게와 현재의 무게감은 현저히 달라졌지만.

문제는 이거다. 사람들이 원하는 사진이 무엇이냐는 것.

인터넷 검색순위를 한번 보라. 온통 연예인 천지다. 마치 신처럼 군림한다. 인기도 많고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통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연예 일색이라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들. 그 정보들의 최종 목표는 실제로 돈이다. 벌이가 없다면 시간을 써가며 정보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보 생산자에게도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는 절실하다. 그런데 이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사람들이 온통 연예세상을 원한다면 생산자는 그쪽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시시콜콜한 연예 이야기만을 원하는 사람들과 이 사람들에 맞춰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 이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 취향에 맞춰 세상의 관심사도 바뀌는 것이니.

하지만 가끔은 가벼운 이야기 속에 묵직하면서도 시간과 통찰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 작은 시장 속에서도 경쟁이 성립돼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참담한 모습을 전하는 사진 한 장이 없다면 그 억울함은 영원히 파묻힐테니 말이다.

그냥 잠깐 심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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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7-12-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반가워요.
너무 너무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