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혔다. 길도 사라졌다. 순백의 세상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이 하얀 도화지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왠지 모를 설렘을 준다. 먼저 걷는 기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묘한 느낌이다.

 

누군가 이 발자국을 따라 걸을 것이다. 이내 다른 길로 접어들지 모르지만 발자국은 길을 인도한다. 그러나 한명 두명 발자국이 이어지다 보면 이 길은 가장 먼저 빙판길이 되어버린다. 발에 밟힌 눈이 점차 녹아 추위에 얼어붙는 것이다. 누군가 걸어간 길은 이렇게 미끄러운 법이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는 꽈당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긴장하라. 남의 길은 넘어지기 일쑤이니. 그러니 걸어보라. 새로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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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아침놀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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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단상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굳이 핵심테제를 찾는다면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일 것 같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여민동락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위해 정부와 기업은 도덕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타인의 공통에 대하여 감각이 마비된 불인(不仁)의 기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선해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선이란 고정적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발현되는 과정으로 본다. 타인과의 교섭 속에서 더불어 형성되는 것이 바로 선인 것이다. 단순한 시혜적 발상으로 그쳐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위의 단상들이 아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조카를 설득하던 도올의 탄식이 오래도록 아른거린다. 게임 중독에 대한 비판에 앞서 자신의 끝없는 식탐에 대해 고백한 모습이다.

최근 1일 1식과 같은 소식을 통한 건강서가 유행하고 있다. 꼭 1식이 아니더라고 배가 터지도록 먹지 않는 습관이 건강과 장수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는 오래도록 배가 고픈 시절을 보냈기에 일단 먹을 수 있을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양의 130% 정도까지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즉 소식은 유전자의 욕망을 거스르는 강인한 의지가 작동했을 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한의학을 공부한 도올마저도 이 식탐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니, 소식은 얼마나 지난한 일일 것인가. 그의 고백이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식이 몸 건강의 지름길임을, 무소유가 정신건강의 핵심임을, 알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함을 날마다 후회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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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다 돌아가신 어르신이 장기 기증을 하셨다. 그런데 심장을 보니 20대의 것처럼 튼튼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렇게 심장을 튼튼하게 유지했기에 장수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20대 심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영양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즉 다른 장기에 골고루 쓰여져야 할 영양분이 낭비가 된 셈이다. 심장이 다른 장기와 비슷하게 늙어갔다면 이 어르신은 보다 더 오래 사셨을 가능성이 높다. 건강에 있어서도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동양의 오행을 바탕으로 한 인체관에 있어서 목,화,토,금,수 중 어느 하나가 너무 과해도 건강상에 문제가 발생한다. 힘이 세고 튼튼하면 좋은 것처럼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화평지인, 즉 중용의 도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서도 꼭 필요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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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간의 관계는 경쟁, 공생, 포식, 기생 이렇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중 경쟁을 특화해서 문명의 발전을 꾀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의 경쟁은 일정한 한계점을 둔다.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쟁탈 경쟁에 있어서 서로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생태계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균형이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협상에 의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드는 경쟁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도가 심해지게 되고, 급기야 경쟁으로 인해 포식이나 기생이라는 관계로 나아간듯하다. 즉 경쟁에서 이긴 개체가 모든 것을 다 갖는 포식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1%대 99%로 나뉘게 된 현재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1%에 기생해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포식과 기생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포식의 대상이 되는 99%가 무너지면 포식자 또한 굶어죽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공생이다. 착한 경제라는 말로, 또는 복지라는 말로 우리 사회에 등장하게 된 공생은 생물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탈출구인 셈일지도 모른다. 경쟁은 하되 공생할 수 있는 법을 찾자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대선의 중요 쟁점사항이 될 것이며, 진짜 공생의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바른 지도자를 뽑는 것이 한국이라는 생태계가 살아남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우리는 공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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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 007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있다. 그의 맨몸 액션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다. 이번 스카이폴 또한 그의 액션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 갓(?) 44세인 그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테이큰의 리암 니슨이나 익스펜더블 속의 액션 영웅들의 나이는 환갑이 기본이다) 아날로그적인 그의 액션이 아날로그를 찬양한 이번 영화 속에서 아날로그를 말아먹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1. 노장은 죽지 않는다

이번 007 스카이폴은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나이 먹는게 죄가 아님을 선포한 영화다. 나이는 단지 숫자라는 CF카피를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시대가 변해가니 첩보국도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고, 국장 M 또한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제임스 본드 또한 죽어서도 살아나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현장근무에서 떠나야 하는건 아닌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이는 오륙도를 지나 사오정, 삼팔선이 일상화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젠 영국은 물론 전세계에 퍼진 구조조정의 칼날이 도처에 번득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본드는 체력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부활해 어려운 문제를 깨끗하게 정리해버린다.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투다. 경륜, 연륜이라는 장점뿐만이 아니라 열정이 살아있다면 그 누구도 본드를 현장에서 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감독의 이런 시선은 영화 곳곳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강조된다. 007의 큰 재미중 하나였던 신무기 대신 과거 골동품에 가까운 총기가 달린 자동차가 나오고, 본드의 어린 시절이 담긴 고향이 주무대로 등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옛것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M은 자동차를 보며 농담을 건네고, 본드는 고향집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영화 속에서 본드를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반대로 신무기 개발팀의 박사는 앳된 젊은이다. 본드는 백발의 박사가 아닌 젊은이가 개발팀에 있는 것이 흡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발명한 송신기로 목숨을 구한다. 또한 본드를 도와주는 여자 파트너는 현장근무를 택하지 않고 본드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무직을 선택한다. 젊으면 현장에서, 나이들면 사무실에서. 이런 고정관념이 첩보국 안에서 다 깨져버린다. 결국 나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본드는 말하고 있는듯하다.

 

2. 그러나 그의 액션은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 안타까울 지경이다. 맨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액션은 약해지고 화력만이 거세졌다. 파르쿠르(야마카시)를 연상시키는 화려함 대신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 초반 잠깐 비쳐진 액션, 그리고 중후반 이퀄리브리엄을 연상시키는 그림자 액션이 잠깐 눈에 들어올 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종반의 액션은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다니엘 크레이그의 재능을 썩혀버리고 말았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그저 휙 던져진 칼 한자루가 전부였다.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007스카이폴의 이야기는 그의 액션과 화답하지 못하고 돈만 쏟아붓는 안타까운 풍경을 자아냈다.

본 시리즈도 맷 데이먼이 빠지자 액션이 빛을 잃기 시작하더니 다니엘 크레이그 마저도 몸을 사리다니 너무 아쉽다. 이젠 이런 류의 액션은 테이큰 시리즈만 남은 건가. 애시당초 디지털로 무장된 액션이 아니라면 화력은 잠시 낮춰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익스펜더블의 노장들이 아쉬울 것 없이 퍼붓는 그런 화력은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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