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 007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있다. 그의 맨몸 액션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다. 이번 스카이폴 또한 그의 액션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 갓(?) 44세인 그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테이큰의 리암 니슨이나 익스펜더블 속의 액션 영웅들의 나이는 환갑이 기본이다) 아날로그적인 그의 액션이 아날로그를 찬양한 이번 영화 속에서 아날로그를 말아먹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1. 노장은 죽지 않는다

이번 007 스카이폴은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나이 먹는게 죄가 아님을 선포한 영화다. 나이는 단지 숫자라는 CF카피를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시대가 변해가니 첩보국도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고, 국장 M 또한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제임스 본드 또한 죽어서도 살아나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현장근무에서 떠나야 하는건 아닌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이는 오륙도를 지나 사오정, 삼팔선이 일상화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젠 영국은 물론 전세계에 퍼진 구조조정의 칼날이 도처에 번득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본드는 체력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부활해 어려운 문제를 깨끗하게 정리해버린다.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투다. 경륜, 연륜이라는 장점뿐만이 아니라 열정이 살아있다면 그 누구도 본드를 현장에서 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감독의 이런 시선은 영화 곳곳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강조된다. 007의 큰 재미중 하나였던 신무기 대신 과거 골동품에 가까운 총기가 달린 자동차가 나오고, 본드의 어린 시절이 담긴 고향이 주무대로 등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옛것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M은 자동차를 보며 농담을 건네고, 본드는 고향집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영화 속에서 본드를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반대로 신무기 개발팀의 박사는 앳된 젊은이다. 본드는 백발의 박사가 아닌 젊은이가 개발팀에 있는 것이 흡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발명한 송신기로 목숨을 구한다. 또한 본드를 도와주는 여자 파트너는 현장근무를 택하지 않고 본드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무직을 선택한다. 젊으면 현장에서, 나이들면 사무실에서. 이런 고정관념이 첩보국 안에서 다 깨져버린다. 결국 나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본드는 말하고 있는듯하다.

 

2. 그러나 그의 액션은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 안타까울 지경이다. 맨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액션은 약해지고 화력만이 거세졌다. 파르쿠르(야마카시)를 연상시키는 화려함 대신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 초반 잠깐 비쳐진 액션, 그리고 중후반 이퀄리브리엄을 연상시키는 그림자 액션이 잠깐 눈에 들어올 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종반의 액션은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다니엘 크레이그의 재능을 썩혀버리고 말았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그저 휙 던져진 칼 한자루가 전부였다.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007스카이폴의 이야기는 그의 액션과 화답하지 못하고 돈만 쏟아붓는 안타까운 풍경을 자아냈다.

본 시리즈도 맷 데이먼이 빠지자 액션이 빛을 잃기 시작하더니 다니엘 크레이그 마저도 몸을 사리다니 너무 아쉽다. 이젠 이런 류의 액션은 테이큰 시리즈만 남은 건가. 애시당초 디지털로 무장된 액션이 아니라면 화력은 잠시 낮춰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익스펜더블의 노장들이 아쉬울 것 없이 퍼붓는 그런 화력은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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