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과 채집, 사냥으로 살아가던 인간이 어느 순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농사가 편하고 수확이 많기 때문이라고 보아온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다윈의 유전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소 다른 의견이 있다. 콜린 텃지가 쓴 <에덴의 종말 - 인간의 왜 농부가 되었는가>를 참조해 인간이 농사를 짓게 된 배경을 알아본다.

 

인류 화석을 살펴보면 농사를 짓게 된 시기부터 관절염과 허리 비틀어짐을 찾아볼 수 있다. 농사로 인해 그전 다양하게 먹었던 곡물, 열매, 채소의 종류가 단순화되면서 영양분도 불균형해졌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이 결코 편한 일이거나 무작적 득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된 것일까.

이는 기후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빙하기 전 온화한 기후 속에서 선호하는 식물이나 동물(고기)을 얻기 위해 취미로 농사를 지어오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함으로써 풍요한 땅을 잃게 돼 식량 공급이 늘어날 필요성이 생긴다. 즉 취미로 지은 농사 덕에 늘어난 인구와 해수면 상승으로 잃어버린 땅 탓에 수렵, 채집해 얻을 수 있는 식량이 줄어든 것이다. 인구는 늘고 식량은 줄어들다보니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농사를 지음으로써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됐고, 이는 농사의 규모를 더욱 키워야 하는 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즉 농사를 지은 것은 스스로 원해서도 곡물의 장점이 뛰어나서도가 아니라,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한 것은 농사가 결코 수렵, 채집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드러나는 농사는 인간을 자기 성공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즉 부지런히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치를 만들어 쉼없이 부지런히 살도록 유도한 것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부지런함이라는 가치로 희석시켜 버린 것이다.

농지가 늘어나면서 멸종되는 동물이 속속 생겨나고 이로 인해 사냥의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즉 노력한 만큼 성과가 드러날 수 없게 된 환경 탓에 사냥꾼은 몰락하고 반대로 그 성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농업이 중요해진 것이다. 늘어난 인구와 농사의 번영은 악순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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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감독- 존 에릭 도들 

출연 - 오웬 윌슨, 피어스 브로스넌, 레이크 벨, 스털링 제린스

 

 

 

 

 

 

 

 

영화를 보고나니 할리우드가 참 약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만이 유일한 선 또는 영웅이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보같은 짓을 교묘하게 피하는 법을 알았다고 할까.

이스케이프는 미국의 물 관련 기업의 기술자가 가족과 함께 아시아의 어느 국가로 들어간 첫날, 혁명(폭동?)이 일어나면서 목숨을 위협받게 되자 그곳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 앞에 내몰린 가족이 마냥 죽음을 기다리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가거나의 기로에서 당연히(? 누군가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도망을 선택하면서 펼쳐지는 긴박함이 숨을 가쁘게 만든다. 이제 죽겠구나 하는 순간 나타나는 영웅(피어스 브로스넌) 덕분에 고비도 넘기고, 새로운 출로도 모색한다. 그리고 그가 첩보원이라는 것을 알게되며, 그로부터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그는 작금의 상황이 다국적기업의 탐욕으로 발생된 것이며, 그 활동의 밑바탕엔 기업과 관련된 정부에서 일하는 첩보원들의 활동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절대 선도 악도 없으며, 당신이 가족을 위해 탈출하듯, 이들도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혁명가들은 폭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상관않는 무차별적 살인과 잔인한 폭력이 이들을 악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도 악도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은 그저 귀로 흘러들어 빠져나가고, 악당의 이미지만 넘쳐난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의 가족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때 우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말과 이미지의 어긋남. 숨가쁘게 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이미지에 사로잡힌 우리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는 고백을 허공에 날려버린다. 이로써 말로는 악한 서방세계가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선한 존재로 비쳐지고, 말로는 희생자인 약소국의 국민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 된다. 할리우드의 잔꾀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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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폰(스포 있음)

감독 - 김봉주, 주연 - 손현주 엄지원

 

아내가 살해되었다. 1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분명히 아내다. 살아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영화는 태양풍에 의한 전자파 간섭으로 시간을 초월해 통화가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사건을 진행한다.(영화적 상상력에 대해 토를 달지는 말자. 영화 <동감>에서는 개기월식 영향으로 시간을 초월한 무선통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무튼 1년 전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이다. 이 사건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미제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남편이 알고 있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뿐이다. 그리고 번호판을 알 수 없는 자동차만이 단서이다. 자, 이제 주인공인 남편은 전화통화만으로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영화는 초반 시간을 초월한 통화 덕분에 원래 아내가 죽었던 시간과 장소를 피해 아내가 살아남지만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살인 용의자로 남편이 지목된다. 과거가 바뀌면서 현재도 바뀌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엮이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사뭇 흥미진진하다.

현재가 바뀐 상황에서 다시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떻게든 아내의 죽음을 막아야만 한다. 물론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면서 남편의 활동은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초반 흥미진진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던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힘을 잃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얽히는 모습 대신 과거 속에서, 또 현재 속에서 각각 아내와 남편이 사건을 피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에 집중하면서 급박함이 다소 약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적 재미는 상당하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영화의 여운을 남겨주진 못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실제 인생은 또 한번의 기회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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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처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이 말해주듯 농사란 무릇 인구 부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농사란 먹고 살기 위한 근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농사는 녹색 혁명(농약과 화학비료, 종자개량을 통해)과 백색 혁명(비닐하우스, 비닐 멀칭 등을 통해)을 거치면서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 급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깰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의 혁명 덕분이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석유를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소비하는 곡식의 1/3은 가축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고기를 먹기 위해 가축에게 먹이는 곡식의 양을 염두에 두는 것도 퍼머컬처를 이야기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퍼머컬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농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최근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농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듯하다. 누군가는 '농사를 예술'이라고 하고 이어령 씨는 "농부가 시인이요 철학자"라고도 말한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농부가 돼라"고 말한다. 경제적 입장에서부터 철학적, 문화적인 입장까지 농부를 찬양한다.

그런데 그 속내를 잠깐만 들여다보자. 특히 짐 로저스의 경우, 그가 바라보는 농업의 실상은 다음과 같다.

"향후 수년간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를 겁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소비해 왔어요. 곡물 재고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죠. 더 좋지 않은 것은 농부가 없다는 겁니다. 농업의 수익성이 과거 30년 동안 끔찍했거든요. 아무도 농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미국 농부의 평균 나이는 58세예요. 일본은 66세죠. 영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바로 농부예요. 인도에선 수백 만 명의 농부들이 자살하고 있고요. 이제 세계는 농업 부문에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어요. 곡물을 생산할 농부가 없는 한 가격은 계속 오를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될 예상이니 농부가 되면 앞으로 높은 곡물가격 덕에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각국의 정부나 기업들이 농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농업이 살아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꼭 경제적인 문제 때문만에 사람들이 농사를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는 육체적으로 고되다. 너무 힘든 작업이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찾고자 한다. 젊은이들이 힘들고 고된 일들을 피하는 것은 어찌보면 본능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 고되고 힘든 일을 줄이고자 기계화가 진행되어 온 셈이다. 물론 여기엔 생산량의 증가라는 이익도 필수요소이긴 하다. 이것도 땅덩어리가 넓어야 그 효율성이 높아진다. 또한 기계화 역시 석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와 같은 농사방식으로는 아무리 돈벌이가 된다 할지라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농사의 어려움과 농부가 줄어드는 현상은 이미 200여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정약용 선생이 쓴 <응지논농정소>를 보면 농민이 3가지 못한 점이 있는데 그를 해결하지 않으면 회초리로 때려가며 농사를 강요해도 아무도 농사를 짓지않게 될 것이라 하였다. 첫재 농민은 선비보다 지위가 못하고, 둘재 상인보다 벌이가 못하고, 셋째 공인보다 일의 편하기가 못하다는 것이다. 짐 로저스가 말한 부분은 둘째에 해당될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미빛 전망과는 달리 현실의 농부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고되다. 농사의 이런 성격은 농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에 대한 해답을 다윈에게서 찾아본다. 그리고 그 해답을 토대로 퍼머컬처가 미래의 농업을 이끌어갈 대안 중의 하나일 수 있는 이유를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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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처(permaculture)란 영속농업, 지속적 농업 혹은 영속문화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영어에서 ‘영구적인’을 의미하는 permanent와 농업을 의미하는 agriculture를 합해 만든 신조어다. 데이비드 홈그렌과 빌 몰리슨이 1970년대 중반에 현대사회의 환경위기, 특히 1차 오일쇼크에 대한 반응으로 퍼머컬처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데이비드 홈그렌은 퍼머컬처를 ‘자연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관계를 모방해서 지역에서 필요한 음식, 섬유,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한 경관’, 혹은 ‘위에서 말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체계론적 사고방식과 설계 원리’라고 정의한다. 현재 퍼머컬쳐는 생태농업의 한 갈래로 받아들여지며, 생태계를 모델로 농사 공간을 디자인함으로써 자연 에너지와 유기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농작물과 가축 등이 생장하게 하자는 농법이자 운동이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퍼머컬처를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퍼머컬쳐를 지향하는 농부는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즉 땅을 갈고 거름을 주고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는 일체의 행위가 없다. 다만 나무와 풀, 과수 등등이 스스로 씨를 뿌리고 자라는 자연마냥 커갈 수 있도록 디자인할 뿐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기름으로 짓는 농사가 아니라 물로 짓는 농사이며, 인위가 아니라 자연을 따르는 농사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물이 아무렇게나 자라도록 놔두는 방치는 아니다. 물의 흐름, 바람의 방향, 빛의 세기 등등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어떻게 가두고 흘려보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작물들을 배치한다. 이와 함께 땅 속 미생물에서부터 땅 위 벌레까지 상호관계를 파악해 병충해를 막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작물들의 이웃 관계를 설정한다. 몸으로 짓는 농사보다 머리로 짓는 농사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농사는 고투입을 통한 대량생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퍼머컬처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유기농법을 하는 농부들의 일부는 그 취지와는 다르게 고투입 다생산의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먼저 따르기 일쑤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영국의 퍼커컬처 지도자인 패트릭 화이트필드(Patrick Whitefield)의 대답을 통해 들어본다. “현재의 농법이 영원히 영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 “화석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농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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