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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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책의 재미는 곁가지에 있다. 책의 중심테마를 이야기하면서 뻗어나가는 곁가지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곁가지가 너무 지나쳐 간혹 중심테마를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책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는 반야심경을 해제한 것이 중심테마다. 반야심경을 풀이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스무살 때 화장실에서 보게된 반야심경과의 인연에서 시작해, 조선시대 불교사의 중심인물을 훑고 내려온다. 

 

그러면서 뻗쳐내려가는 곁가지 중 주의깊게 새겨들을만한 구절들이 있다.

 

30년 동학의 민중조직건설의 비결은 다름 아닌 콜레라와의 전투였습니다. 희한하게도 괴질귀신은 동학도들을 피해간다는 소문이 전국에 유포된 것이죠. ... 하여튼 19세기 조선에 상륙한 콜레라는 한편으로 동학혁명의 기초를 구축시켰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선불교의 정신혁명을 촉발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동일한 국면을 놓고도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테마를 전개해나가는 것이죠. 59쪽

 

 

 

새로운 선불교를 선보였던 경허 또한 콜레라에 걸린 마을을 지나치며 느낀 생사일여의 무너짐을 통해 용맹정진의 계기를 갖게 된다. 이처럼 어떤 한 사건이 운명을 쥐고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사건 단 하나의 조건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처럼, 수많은 원인들이 쌓여서 그 하나의 큰 사건이 운명을 촉발시킨다. 하지만 그런 큰 사건을 맞이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코 변화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건과 그것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그곳에서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 사건이 운명적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눈과, 그것에 대해 행동할 줄 아는 손발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넘어 환경이나 배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삶에 대한 시선의 차이도 있다.  

 

 

고조선 고구려문명의 테마가 생이고, 인도문명의 테마가 고라고 한다면 중동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는 역시 죄입니다. 사막에서의 삶은 공동체의 영역이 매우 좁으며,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생생지도에서 단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지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을 수직적 관계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만 인식되고, 우주의 순환이라는 시공범주를 벗어나 버리죠. 그런데 사막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자에 대하여 갖는 의식은 죄라고 하는 한계상황을 통해 매개됩니다. 126쪽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은 나 혼자만의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과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그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곁가지를 지나 불교와 반야심경에 마주친다. 

 

 

 

누구든지 석가모니를 생각하고 석가모니를 본받고 석가모니의 말씀을 실천하기만 하면 석가모니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각성, 자각이 든 사람을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보살은 보리를 구현한 존재, 보리를 향한 존재, 보리의 실현이 그 본질인 사람, 보리가 체화된 사람이라는 뜻이지, 비구보다 더 낮은 단계의 사람도 아니고, 스님을 섬겨야만 하는 공양주보살도 아닙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불교라는 전체체제에 엄청난 변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비구중심의 승방정사에서 탑중심의 거대한 가람으로 불교중심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173쪽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것은 연기 하나입니다 연기라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사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무수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만 이벤트, 해프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연이라는 것도 인은 주원인이고, 연은 그 주변에 묻어 있는 수없는 보조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사라지면 존재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공입니다. 213쪽

자, 그래서 반야심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사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과 연기(유전연기 - 고제(과) 집제(인) 와 환멸연기 - 멸제(과) 도제(인)), 대승의 실천원리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을 통해 삶의 지혜를 건네고 있다. 뜬구름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부를 찬양하고, 물질적 소비를 권유하며, 쾌락에 탐닉하는 시대의 정신을 알아챌 필요가 있을 성싶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정신으로 삶을 향유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반야심경 또한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기에.

 

 

 

 

 

 

 

경허스님 법문- 삐뚤어진 나무는 삐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불교의 경직된 계율주의를 본질적으로 거부.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을 구가하는 자유로운 영혼. 96쪽

한국의 불교는 불교의 원래의 모습을 통째로 보전한 통불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허 같은 사람이 고뇌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선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닐, 단지 불교가 가르쳐준 근본 진리를 통해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인간학의 과제상황이었습니다. 113쪽

선이니 삼매니 요가니 하는 말들이 뭐 대단히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신집중 정도의 아주 비근한 인도말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죠. 116쪽

종교는 기원(빔)입니다. 화를 피하고 복을 비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평범한 심원이고 종교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죠. 탑돌이도 기원의 문화입니다. 170쪽

금강경이 말하는 벼락은 나와 대상 사이의 집착에 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내려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멸집이다. 193쪽 그림 풀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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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과 10일 포항 구룡포에서 과메기 축제가 열렸다. 오랜만에 동해바다도 보고, 과메기도 맛보고 싶어 조금은 먼 길을 떠났다. 딸내미에게도 과메기 맛좀 보여주고 싶어 떠난 길이기도 했는데..... 한 입 먹어보더니 비린내가 난다며 고개를 절래절래ㅜㅜ; 할 수 없이 과메기는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한채 축제장 주위를 둘러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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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길을 옮긴 곳은 바로 과메기문화관이다. 총 4층 건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지역 특색에 맞춘 전시관이나 문화관 중 가장 잘 꾸며진 측에 속한다고 보여진다. 1층은 매장과 체험행사 위주의 공간인데,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인지 매장은 정리세일 중에 있었다. 2층~4층은 꼭 과메기와 상관은 없지만 다양한 교육, 체험 공간이 있다. 대부분 3D 영상이나 가상스크린 등으로 해저생태계를 흥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직접 물고기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물론 과메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는 전시관도 있다. 4층의 전망대는 구룡포 앞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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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과메기 축제장이 있는 항구와 과메기 문화관 사이에는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다. 일제점령기 시대 지어진 일본인들의 집이 원형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최근 KBS2TV <동백꽃 필무렵>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 동백이의 가게 까멜리아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긴 줄이 서 있다. 실제 드라마 촬영은 축제가 있기 하루 전에 모두 끝났다고 한다. 일주일에 3일씩 이곳에 들러 6개월정도 촬영했다는 것이 이곳 식당주인들의 말이다. 아쉽게도 하루 차이로 촬영모습을 보지 못했다. 딸내미가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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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또한 1991년 방영됐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배경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제시대 가옥들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이런 특징 때문에 드라마 배경으로도 쓰이고 있다. 현재 구룡포에 사는 사람들이 이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골목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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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가옥거리와 과메기 문화관 사이에는 충혼탑과 구룡포 전설을 담은 용 조각상이 있다.

 

또 일제시대 항구를 만들고 거리를 조성했던 일본인을 기리는 비석에 광복 후 시멘트로 이 문구를 발라버린 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래저래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구룡포를 뒤로 하고 호미곶으로 향했다. 새천년기념관과 국립등대박물관, 상생의 손, 연오랑과 세오녀 조각상 등이 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져 다 둘러보진 못하고 먼저 상생의 손 앞에서 기념촬영을 찰칵. 바다와 육지에 서로 마주보며 세워진 이 손은 화합과 상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바다위 손가락 위는 갈매기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육지 쪽 손 앞에는 변산반도 천 년대 마지막 햇빛, 피지섬 새천년 첫 햇빛, 그리고 이곳 호미곶 새천년 첫 햇빛 등 세 개의 불씨가 놓여져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등대박물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등대 역사와 실제 등대지기가 사용했던 업무일지 등 등대와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개인적으론 8시간씩 3교대로 일했던 등대지기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딸내미는 그냥 바다 위에서 물수제비 뜨는 게 제일 즐거운 일이었지만....

당일치기로 둘러본 포항.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되어버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두르든가, 1박 2일로 느긋하게 움직이든가. 포항에 볼거리가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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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날씨가 영하로 접어들면서 된서리가 내렸다. 꿋꿋하게 초록색을 뽐내며 버텨내던 야콘과 멧돌호박이 모두 시들었다. 특히 야콘은 잎들이 검게 변하면서 계절이 바뀌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멧돌호박도 땅을 뒤덮고 있던 초록색 잎들이 모두 시들면서 맨땅의 모습을 드러낸다.

 

된서리 맞아 시든 야콘은 이제 뿌리를 캐낼 때가 되었다. 1평 남짓한 땅에서 생각보다 꽤 많은 야콘이 수확됐다. 팔뚝만한 것에서부터 손가락만한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잔뿌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무래도 뿌리를 캐어 먹는 것은 두둑을 조금 높에 만들어줘야 모양이 좋은 야콘을 수확할 수 있을듯싶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땅에 인위적 손길을 주지 않으려는 풀과 함께하는 농사와 상충되는 부분이다. 팔뚝만한 것도 나오는걸 보면 두둑을 꼭 높이 안해도 될 것 같기도하다. 내년에 한 번 더 지켜볼 요량이다.

 

내년 봄에 다시 심을 야콘의 종근은 따로 모아뒀다. 이걸 다 심으려면 3평 남짓 필요할 것 같다.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것 같다. 야콘은 달콤한 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찌개에 넣으면 궂이 설탕을 넣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요리보다는 생으로 갈아먹는게 훨씬 낫다. 과일이나 채소와 함께 갈아먹으면 달콤함과 상량함을 더해준다.

 

멧돌호박도 잎이 시들어 땅에 바싹 엎드리니 감추어졌던 호박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익은게 거의 없다. 내년에 좀 더 일찍 심어야 할 성 싶다. 덜 익은 호박을 찌개에 넣어먹으면 맛이 좋긴 하지만 호박 1개로 몇 끼니는 먹을 수 있으니.....

 

덜익은 멧돌호박을 5개만 땄다. 멧돌호박은 서리를 맞으면 먹을 수가 없으니 최대한 익는데가지 놔두었다 급히 수확했다.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좋겠지만, 다들 놁은 호박을 좋아해서 ㅜㅜ; 일단 욕심부리지 않고 5개만 수확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1~2개는 겨울에 찌개재료로 쓸 생각이다.

그야말로 이제 초겨울이다. 밭정리를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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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감독 곽경택, 김태훈
출연 김명민, 최민호, 김성철, 김인권, 곽시양
개봉 2019. 09. 25.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남북전쟁 당시 실제 있었던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에 실행된 이 전투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에 나왔듯 잊혀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명확하면서도 즉각적인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이다. 그런데 이처럼 영화로 다룬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리고 15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영화이니만큼 많은 관객(370만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모아야 할 극적 요소도 담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영화 실미도(2003년, 1100만 관객)를 롤모델로 삼았을지 모르겠다. 감춰진 진실 또는 잊혀져간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시대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감추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억압과 폭력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테니까. 바로 그 의지의 크기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잊혀진 사실 속에 감추어진 어떤 추악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장사리 전투는 한마디로 손자병법 36계중 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라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교란 작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도록 만드느냐에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작전에 미군은 제외된다. 자신들의 전쟁도 아닌데다 이미 미군의 피해가 많은 탓도 크다. 아마 이 작전으로 사상자가 더 늘어난다면 자국내 여론도 결코 우호적이진 않으리라는 판단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남한은 어떤가. 영화속에서는 당시 지휘관이 이 작전에 참여하는 군인들을 총알받이로만 생각했다고 표현된다. 그래서 겨우 2주 정도밖에 훈련받지 않은 학도병을 주력부대로 내세우고, 이들의 귀환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항상 희생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발생한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남침을 해오며 점령한 곳에서 학생들을 강제로 징발해 총알받이로 사용한다. 전쟁이란 원래 참혹한 일이지만, 그 피해는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크게 발생한다는 것이 더욱 비극적이다.

 

 

이 장사리 작전을 현장에서 전투지휘했던 대대장 이명준 대위는 실제로 귀환 후 작전 실패(실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으니 결코 실패한 작전이라 할 수 없음에도)를 이유로 사형을 구형받지만 이후 진실이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한다. 이 사형 구형 또한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벌어진 슬픈 일이다. 영화에서는 끝부분 실제 사진을 보여주며 나레이션으로 요약한다.

 

 

잊혀져서는 안될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 우리가 기억하도록 만드는데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어느 정도의 소임을 다한것 같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만을 따진다면 글쎄... 이제 정말 웬만한 전투장면으로는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뛰어넘는 연출은 영화가 제작된 1998년 이후 20년이 지났건만 찾기가 쉽지않다. 드라마적 요소는? 사촌동생과 남북으로 갈려 총부리를 겨누는 극적 장면이 연출되지만, 이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비하면 약한 느낌이 든다. 영화의 재미로만 따진다면 그냥 무난한 정도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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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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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백수'라는 답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백수는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을 갖추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떠오르는 '파이어족'과 무척 닮아있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으로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20~30대 때 극도의 절약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서 40세 전후에 은퇴를 하는 것이다.

 

최근 백수가 되었다. 풀타임 정규직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7년 전엔 자발적 백수의 길을 택해 시골로 내려왔지만, 이번엔 비자발적 백수가 되다보니 기분이 다르다. 파이어족이 될만큼의 경제적 자립기반이 충분하지 않기에 다소 당황스럽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가야 할까. 그래서 찾아본 것이 연암 박지원의 사생팬(?)이라 할 정도로 연암을 좋아하는 고미숙의 책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였다.  

 

연암을 본보기 삼아 백수로 사는 법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백수로 사는 법 중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측면은 일본의 '프리터족'에 가깝다. 자유롭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기본 생계를 꾸린다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통해 수입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즉 저자 자신처럼 연암을 좋아해 공부를 하고, 이 공부 덕에 강연이나 책 등을 쓰면서 돈을 버는 방식 말이다. 생계를 위한 억지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이 돈이 되는 길을 찾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프리터로 활동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로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단 시간만큼은 어느 부자보다 많은 타임슈퍼리치로서 자유시간을 누리는 행복은 포기해서는 안된다.  

 

백수는 노동의 소외에서 벗어난 존재다. 백수의 경제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활동의 산물이다. 당연히 소비와 부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동시에 투기 자본에도 포획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철학이다.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 그게 바로 백수의 생명 주권이다.(69쪽)

 

자, 이제 쇼핑, 일, 연애, 뮤지컬 등등에 중독되지 않고-이런 것들은 대부분 돈이 없으면 누릴 수 없기에. 그래서 도서관 등 공유경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의 거품을 걷어내고 살아보자. 무엇을 위해 살아가지 말자는 것이다. 살다보니 찾아오는 것들은 적극 반기면서 살아가는 거다. 반복은 중독을, 중독은 우울을... 또는 고립은 우울을, 우울은 중독을, 중독은 충동과 폭력을,... 그러니 새로움을 찾아, 즉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길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소유와 독점으로부터 벗어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경험이다. 경험의 공유는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경험이란 새로운 감각, 시선, 생각으로 반복에서 벗어나 배움을 준다. 명랑하게 길을 떠나 친구를 만들고, 또는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서 새로운 경험으로 배움을 갈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미숙이 말하는 백수의 길은 그야말로 외적성향의 청년백수에게 적용될만한 행동요령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내적성향의 사람에게는 다소 버거운 제안이다. 다만 화폐가 주는 쾌락, 즉 여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만의 활동(노동이 아닌)을 하라는 것은 새겨들을만하다. 어차피 최소한의 생계비로 삶을 유지해야하기에 거품은 걷어낼 수밖에 없다. 다만 길을 나설 수 없는 조건(과 성향)에서 끊임없는 배움을 어떻게 성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다. 고미숙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가 꼭 정답은 아닐테지만, 백수로 명랑하게 살아갈 요량과 응원을 건네주는듯하다. 자, 한 번 가보자. 명랑백수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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