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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 1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함께(바소책)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의 배경은 크게 지역 신문사 키타칸토 신문과 타니가와다케라는 산이다. 사건은 여객기 추락과 신문사 동료의 갑작스런 쓰러짐. 두개의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갈까라는 의문을 가졌다면 조금 당황할 것이다. 연결고리는 전혀 없고 사건 해결 또한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소설은 여객기 추락에 따른 보도를 둘러싼 신문사 내부의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문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싶다면 꼭 한번 이 책을 보기를 바란다. 다른 어떤 다큐멘터리나 신문사에 대한 설명보다도 내부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편집국과 광고국, 판매국간의 갈등, 사장이나 국장, 이사 등의 절대 권력과 이들을 둘러싼 줄서기 싸움. 특종에 대한 압박과 기사라는 것의 성격 등등. 실제로 신문사에서 일어나는 일의 속사정까지 90% 이상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하나 소설의 재미는 암벽등반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유키가 산에 빠지게 되고, 많은 산악인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의 산 츠이타테이와에 도전을 앞 둔 순간 산악인 동료 안자이가 갑자기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파헤쳐가는 부분 또한 신선한 재미를 준다. 산악인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조금을 알 수 있을듯 싶다.
이 두 사건, 그러니까 여객기 추락과 관련된 신문사의 보도와 츠이타테이와 암벽 등반을 앞두고 쓰러진 동료에 대한 수수께끼는 모호하게 결말을 낸다. 명확한 답변이 나올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명확함으로 남을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바로 클라이머즈 하이에 있다.
클라이머즈 하이란 마라톤을 하면서 경험하는 환각상태 러너스 하이처럼 암벽을 오를 때 느끼게 되는 무감각의 극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쾌락을 말한다. 클라이머즈 하이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이다. 아직 암벽등반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벗어나게 될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로의 초집중력상태에서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벗어나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고도의 집중력 때문이 아니라 그저 계속되는 되풀이때문에 벌어지는 환각상태의 비유로 해석할 수 있을듯 싶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지금 내가 처한 위치가 무엇인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 상태. 이것을 라이프스 하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어느 순간 그 하이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현실을 실감하고 공포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망각의 상태, 즉 하이의 상태로 남아있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환각의 상태가 아니라 말짱한 정신으로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기를... 소설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 나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 곰곰히 들여다보자. 누구에게도 쓸데없는 일이란 없다. 결국 누군가에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일인지를 용기를 내어 들여다보자.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삶의 암벽을 오르는 방법은 아닐까? 애쓰지 않고도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클라이머즈 하이며 극도의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