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루토>는 넷플릭스 23년 10. 26 오픈 된 일본 애니메이션 8부작 작품이다. 2003년 공개된 <몬스터> <20세기 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동명의 원작 만화가 있다. 이 원작의 원작은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 중 일부 편이다. SF. 스릴러라 할 수 있으며, 액션은 살짝 가미. SF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강추. 한편으론 주제면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있다. 8~9점/10점


2. 세계 최강의 로봇 7인 중 하나인 스위스의 '몽블랑'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몽블랑은 자연을 보존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존재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 존재였기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그의 잔해에는 사슴뿔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막대가 놓여져 있다. 이어 '로봇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로봇법을 만든 사람과 대규모 학살 로봇이라 추측되는 '보라'를 검증했던 박사들도 사슴뿔이 남겨진 채 죽음에 내몰린다. '몽블랑'뿐만 아니라 다른 최강의 로봇들도 하나, 하나 죽어나가면서 세상은 혼돈에 빠지는 듯하다. 이 사건은 최강 로봇 7인 중 하나이기도 한 유로폴의 형사 게지히트가 맡는다. 이 연쇄살인(?)범은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일까. 


3. 애니메이션 <플루토>는 로봇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고, 가장 발달한 로봇의 경우엔 인간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발달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 AI의 경쟁을 통한 발전 속도와 AGI에 대한 기대감은 이런 로봇이 결코 공상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마저 주게 하고 있다. <플루토>가 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이런 현실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연쇄살인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풀어나간 스릴러가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하다. 


4. <플루토>에서 등장하는 지상 최강의 로봇은 모두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그들은 로봇의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완전한 로봇 또는 인공지능은 없을까. 완전하다는 의미란 인간에 가까운 이라는 뜻일 것이다. 극 중 천재적인 박사는 이런 완벽한 로봇을 꿈꾼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로봇보다는 오히려 인간에게 사랑받는 로봇이란 존재가 더 인간의 꿈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꼭 닮은 로봇이라면 인간이 일으키는 문제 또한 똑같이 만들어 낼 테니 말이다. 


5. '플루토'와 한 번 죽었다 다시 생명을 갖게 되는 '아톰'의 경우가 완벽에 가까운 로봇이라 할 수 있다. 애니 <플루토>에서는 99억 명의 인간을 모두 시뮬레이션 하고 이들을 분석해 가장 인간다운 로봇으로 태어나도록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아마도 완벽에 가까운 형상을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로봇을 깨어나게 하는 방법은 인간의 일부 감정을 극한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는 특히 '증오'가 로봇을 깨우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6. 인간의 감정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이며, 감정이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극한에 도달한다면 재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플루토>를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결국 사랑이나 가족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치우친 것은 위험한 것일지 모른다. 증오 또한 그 밑바탕엔 사랑의 감정이 있어야 생겨나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사랑 없이 증오가 발생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기에 최상의 로봇이 인간으로 깨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극한의 감정이라는 설정은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비극이 이 극한의 감정이라는 씨앗으로부터 맺어진 결실이 아닐까 해서다. 


7. AI와 로봇이 일상으로 점차 스며들기 시작하는 이때.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잘 만들어진 애니 <플루토>를 통해 이야기의 재미를 만끽하면서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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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삶이 다할 때까지>. 프랑스. 98분. 25.1.10. 액션. 스릴러. 드라마.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함. 알고보면 액션을 빙자한 출산 장려 캠페인 영화일지도... ^^;;;


2. 헌병대 소속 전직 엘리트 요원인 주인공의 집에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도둑이 들었다. 가져간 물건은 없고 집안은 난장판이다. 같은 헌병대 요원이었던 만삭의 아내는 주인공에게 이유를 묻는다. 영화는 이 난장판이 왜 일어났는지를 과거로 돌아가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난장판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다. 


3.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액션은 분량 만으로 따진다면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스케일로 압도하는 장면도 없다. 다만 총격신은 짧지만 강렬하다. 실제 총격이 벌어지고 있는 듯 제법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모터패러글라이딩과 자동차 추격신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꽤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삶이 다할 때까지>는 액션이 주가 아니다.


4. 목숨을 잃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직업이 있다. 소방관을 비롯해 군인 등등.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근무하고 있는 헌병대에서 주인공이 어렸을 적 순직했다. 이 기억이 그를 결혼과 아이를 낳는 일을 저어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도 같은 헌병대 요원이다 보니 아이를 낳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삶이 다할 때까지>는 출산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바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출산 장려 캠페인 영화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출산 장려 캠페인을 이런 식의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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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백 인 액션>. 미국. 114분. 25년 1월 17일. 15세 이상. 액션. 코미디 살짝. 세스 고딘 감독. 제이미 폭스. 카메론 디아즈 주연. 카메론 디아즈는 11년 만에 영화로 컴백. 은퇴 선언 후 7년 만의 컴백. 영화 찍는데 지친데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은퇴했다가 제이미 폭스의 설득으로 이 영화로 컴백했다고 전해진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이가 든 흔적이 얼굴에 나타나지만,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듯해 멋져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 액션은 그냥 팔과 다리를 합에 맞추어 휘젓는 것 뿐이라 아쉬움이 크다. <백 인 액션> 영화 자체도 킬링타임용 영화의 속성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스케일도 이야기도 고만고만.


2. 미국 CIA 산하 비밀 스파이로 활약하던 맷(제이미 폭스)과 에밀리(카메론 디아즈)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 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꾸미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키운다. 15년이 지나 딸이 클럽에서 놀고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격분해 활극을 펼치다 영상이 퍼지면서 정체가 들통난다. 15년 전 마지막 스파이 활동으로 가져갔던 기간시설의 디지털 마스터 키를 찾고자 CIA는 물론 적들이 몰려든다. 이제 가족까지 챙겨야 하는 부부 스파이는 이 난관을 뚫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까. 


3. 영화는 첩보활동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곳곳에 내비친다. 반항기 가득한 아이들과의 화해는 에밀리에겐 그녀 또한 반항기 가득한 딸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어머니와의 화해를 이끈다. 

마스터 키를 둘러싼 싸움 또한 조금은 예상이 되는 듯한 반전을 심어놓고, 깜짝 놀랐지? 하는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상투적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액션이 놀랍다면 괜찮을텐데, 제작비 문제였을까? 그래픽도 그다지 깔끔하지 못하고, 액션 또한 화려하거나 정교하지는 못하다. 그냥 그럭저럭 기본은/만 한다고 보여진다.


정말 심심풀이 땅콩을 먹듯 정 볼 것이 없어 심심풀이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면, 뭐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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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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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렸을 적 일기예보는 내일 '비가 온다', '맑다'와 같이 명확했다. 하지만 자주 틀리는 바람에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예보에서 확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일 비가 올 확률은 30%입니다. 60% 입니다. 등등. 

아니, 도대체 비가 온다는 것이야, 만다는 것이야? 확률로 이야기하는 일기예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일기예보가 틀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했다. 비가 올 확률이 80% 였음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나머지 20%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말이다. 


2. 아니었다. 일기예보에 확률이 등장한 것은 회피의 수단이 아니었다. 앙상블 예측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혼돈기하학이라는 학문이 연구되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선 앙상블 예측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미래란 결코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기에 100% 어떤 일이 발생하기는 어렵다. 소위 나비효과 이론처럼 홍콩에서의 나비 날갯짓 한 번이 북미에서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변수를 도입해 향후의 변화를 예측하다보면 결코 같은 결과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비가 온다, 안온다가 아니라 비가 올 확률이 몇 %인 것이다.


3. 결정적으로 비가 온다, 안온다가 아니라 확률론적으로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만약 내일 비가 올 확률이 60%라고 치자. 내일 세차를 할 계획이었다면 이를 밀어붙여야 할까. 취소해야 할까. 이럴 땐 먼저 세차비용과 세차를 했을 때의 만족도의 값(측정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그 다른 값도 좋다)을 정하고, 비용X0.6(비 올 확률)을 해서 이 값이 만족도의 값보다 큰지 작은지를 계산하면 된다. 이 값이 만족도보다 크다면 세차를 안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값이 작다면 세차를 하는게 좋다.-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시를 한 것인지 자신은 없다 ^^;;;;


4. 확률을 통해 비용과 효과를 비교 계산함으로써 행동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앙상블 예측 시스템을 적용한 사례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국경을 봉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 경우이다. 코로나19 전염이 봉쇄시 퍼지는 속도와 개방시 퍼지는 속도를 예측해 비교하고, 이때 미치는 국가경제적 피해 등을 따져본 것이다.

이 앙상블 예측 시스템은 전염병 사례를 비롯해, 기후위기(앙상블 예측으로는 중립적인 모양새다), 금융위기, 갈등과 전쟁 위기 등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5. 여기에 더해 인간의 뇌의 작용까지도 혼돈기하학의 앙상블 예측의 원리를 도입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창의성이 신경세포의 작용 중 나타나는 일종의 잡음(변수)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창의성 측면에서 인간의 뇌를 뛰어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컴퓨터의 작동에 있어 잡음은 성능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뇌에서 더욱 확장해 인간의 삶과 죽음, 어쩌면 신의 영역까지도 혼돈기하학적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6. 솔직히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이 책의 중반부부터 설명되어지는 앙상블 예측 시스템과 혼돈기하학의 원리는 문과생으로 이해하기에는 벅찼다. 반복되어 설명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위에 적은 글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맛은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라는 '타타타' 노래가사와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처럼 느껴지는 재미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부처님의 연기법이 생각나기도 한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어떤 사건은 명확한 결과가 예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모든 일들이 명확하게 예측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의 원인이 있었을 터이다. 우리의 삶이 결정론적이진 않지만 지금의 결단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어떤 사건이 결과로 나타나듯, 현재의 사건 또한 과거의 결단이 원인임을 안다. 그것이 어떤 잡음(변수)으로 인해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지금의 일기예보처럼) 확률적으로 미래를 가늠하며 현실을 일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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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드라마 4부작, 총 160분 정도로 보통 영화 1편보다 살짝 긴 정도. 스웨덴. 실화 바탕. 원작소설 각색, 스웨덴의 한 마을에서 8살 아이와 50대 여자가 한 곳에서 동시에 칼에 찔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16년 간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집념 어린 형사가 새롭게 등장한 DNA족보학자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 이 사건은 스웨덴 역사상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수사력이 동원되었다. 외로움은 죽음을 불러오는 병이자 죽음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범인과 형사, 피해자의 가족과 목격자까지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이들을 세심하게 살핀다.


2. 북유럽의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사실에 흥미가 갔다. 소위 살기 좋은 나라라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곳에선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시리즈 속에 비쳐진 모습 속에서는 스웨덴만의 독특한 삶의 풍경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축구클럽의 성황, 의무교육의 절대성?(족보학자의 딸이 학교를 결석하자 족보학자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결코 결석은 용납될 수 없다는 말을 건넨다. 실제 스웨덴에서는 홈스쿨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집의 규모와 풍경 등을 얼핏 엿볼 수는 있었다.


3. 독일어처럼 들리기도 하는 스웨덴어의 낯설음이 드라마 초반 집중력을 잃게 하지만 이내 화면 속에 집중하게 된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두 가족과 담당 형사의 사건 당일 아침 풍경이 교차 편집되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목격자도 있는데다 혈흔을 통한 범인의 DNA까지 확보해서 범인은 쉽게 잡힐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목격자는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만 간다. DNA대조를 위해 프로파일링을 통해 밝혀진 15~30세 남성의 DNA를 확보하려 하지만,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DNA를 확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면요법으로 겨우 범인의 몽타쥬를 작성해 배포하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 16년이 흘렀다. 이제 이 이중살인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넘어갈 날이 멀지 않았다. 담당형사 욘은 최근 40년 만에 사건을 해결하게 도움을 준 DNA족보학을 알게되면서 마지막 희망을 건다. 


4. 시리즈는 담당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다 가족 간의 관계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막 태어난 아기와 부인을 돌보지 못하면서 별거에 들어가고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 가족 중 한 가족은 이민자 가족으로 살인 사건의 피해가 도리어 인종차별로까지 이어지면서 이사까지 가게 된다. 목격자는 기억나지 않는 범인의 얼굴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어떻게 이 파장으로부터 힘들어 하는지를 과장되지 않게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관심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할 부분들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5. <브레이크 스루>라는 제목처럼 이 사건을 해결하는 돌파구는 DNA족보학이다. 시리즈 후반부에선 이 족보학에 꽤나 시간을 들이지만, 짧은 설명만으로 족보학의 의미를 알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시리즈 속 족보학자가 족보학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면서 화를 내지만, 좀처럼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족보학자가 자신이 밝혀 낸 범인이 틀리면 어떡할 지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는 학자로서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6. 올해 발표된 케임브리지 연구에서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건강을 악화시키며 그 원인이 단백질에 있다고 밝혔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과 연관된 단백질이 있으며, 이로 인해 수명까지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스루>의 범인은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전화통화와 문자 등 타인과 소통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스웨덴에서는 이런 사회적 고립을 특히 두려워하는 듯 보인다. 족보학자의 딸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야단치는 행동에서 보여지듯 말이다.

실제 스웨덴을 포함해 노르딕 국가에서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것을 중시한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은 평범함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나 개인적으로 야심을 품는 행동을 부적절하다고 본다.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거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1등을 칭찬하지도 꼴등을 비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사적인 성공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대한민국에서 눈 여겨 볼만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집단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게 지나쳐 개인이 설 자리가 빈약해지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사뭇 다른 길을 걷는 나라들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외로움이라는 병만큼 무한경쟁이 가져다 주는 병리적 현상도 못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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