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볼거리★★ 마음거리★생각거리


2.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이야기. 자신의 아파트에 나타난 여자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여자는 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몇일 후 다른 여자가 딸이라며 이것저것 챙겨준다. 도대체 이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내 재산을 훔쳐가려는 자들의 음모일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남자의 삶을 미스터리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재미가 솔솔.


3. 영화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온통 뒤죽박죽 되어버린 그의 기억들로 말미암아 평온한 일상은 음모로 가득찬 세상이 되어버렸다. 기억을 잃어가는 그는 아직 기억을 쌓지않고 있는 아이와 같아진다. 그가 아이가 되어가는 모습이 짠하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다. 


4.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나빌레라>에서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나빌레라>는 비록 기억을 잃어간다 하더라도 차마 꿈꾸지조차 못했던 어릴적 동경을 실현하려는 할아버지의 분투를 통해, 지금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다하더라도 한번쯤 날아오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비록 기억을 잃을지언정 몸은 기억하리라. 


5.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한 이야기 중 단연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압권이라 생각한다. 김혜자 주연의 이 드라마는 마지막 부분에서 앞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김혜자가 만들어낸 상상이었음을 밝히는 반전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래켰다.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 시간인지를 깨닫도록 만드는 감동의 힘까지 지녔다. 


6. 영화 <더 파더>에서는 소품 중에 시계가 등장한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는 시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더 파더>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안소니의 상태를 시계에 대한 집착을 통해 보여준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을 잃어버린 것과 같을지 모른다. 


7. 기억을 잃은 사람에겐 지금까지 함께 해 온 모든 사람들이 처음 본 사람들로 둔갑하는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기억을 잃는 것은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기억을 잃은 이들에게 어깨를 내주고 품을 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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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발견 - 예일대 감성 지능 센터장 마크 브래킷 교수의 감정 수업
마크 브래킷 지음, 임지연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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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이큐 검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능검사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언어, 수리, 공간 등등 일종의 논리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좀 더 포괄적으론 이성적 능력이라 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 이런 이성적 능력만으로 측정, 예측되어지지는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머리가 똑똑하다고 해서, 능력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우리네 삶은 과학적, 논리적, 수리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 자기성찰 능력, 감수성 등등의 다양한 요소가 우리네 삶을 구성하고 있다. 가드너가 다중지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다양한 영역의 지능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관계를 맺는 상호독립적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다중지능에서도 혹시 핵심적인 지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 <감정의 발견>은 감성지능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감정이 학습능력, 의사결정, 관계, 건강, 창의성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감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어렸을 적부터 감성지능을 키우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 마크 브래킷의 주장이다. 물론 아이들의 감성지능을 키우기 위해선 그들을 교육하는 어른들의 감성지능이 먼저 발달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먼저 이 책 <감정의 발견>이 주장하고 있는 감정의 중요성이 정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굉장히 합리적이라 판단하지만, 실은 감정적 요소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주식만 보아도 그렇다. 주식 거래를 합리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주식을 하겠다는 결심 그 자체가 이미 감정적이지 않았을까. 우리 행동의 근저에는 이런 감정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마크 브래킷은 행복이라는 것이 객관적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인삭하고 다루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에 달려있다고 본다. 즉 사건을 대하는 마음(감정, 감성)이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감성의 능력, 감성지능을 키우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좋은 접근법은 감정을 심판하지 말고 감정을 관찰하는 감정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은 아이의 감정을 평가하고 판결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아이의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경청하고 탐색해야 한다. 물론 이런 판단 대신 탐색은 나의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져야 한다. 


마크 브래킷은 감성 능력이 모두 다섯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RULER라 표현하고 있다. Recognizing, Understanding, Labeling, Expressing, Regulating. 즉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이름을 붙이고 표현한 후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 감성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감정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다. 그 감정을 발생시킨 일련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 생겨난 감정을 인식하고, 왜 발생했는지 이해하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서 표현해보면, 감정이 일으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분하게 그 감정의 원인을 파악해 감정을 조절하며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명상을 하듯 말이다.   


우리가 감성능력을 키우게 되면,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는 곧 내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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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일이 없는 외로운 사람의 감정이 가슴에 와닿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너무 무겁게 너무 비장하게 흐르지 않으려는듯 웃음을 집어넣었지만, 오히려 감정의 흐름만 깨뜨린듯. 이 영화의 교훈은 <총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 볼거리★ 생각거리★ 마음거리


2. 조직의 행동대장이라 할 엄태구는 유일한 가족인 누나와 조카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그는 교통사고가 자신을 향한 경고였다 생각하고, 지시를 내렸을 것이라 여긴 조직의 보스를 살해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제주로 몸을 숨긴다. 이곳에서 시한부로 살아가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삼촌으로 인해 러시아 마피아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 사건을 겪었다. 피붙이 하나없이 홀로 남겨져 언제 죽게될지 모르는 이 두 남녀가 서로에게 기대며 아주 작은 희망 하나를 품어본다. 


※스포일러주의

3. 영화는 반전을 준비해놓았다. 하지만 느와르라는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 악당 중에서도 악당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해놓고, 이를 향한 분노를 키워간다. 하지만 모두가 결국 악당이다. 그냥 싹 쓸어버리고 싶은.... 그래서 영화는 확실히 싹 쓸어버리지만, 통쾌함 보다는 허무함이 가득하다.     


4. 영화의 액션은 곳곳에서 피를 튀긴다. 특히 칼은 무자비하다. 하지만, 칼은 상대와 가까워졌을 때만 살인무기가 된다. 총은 멀리서도 한방에 깨끗하게 보낼 수 있다. 총보다 무서운 칼솜씨를 선보였다면 르와르가 아니라 무협영화였을 것이다. 총을 총처럼 다루지 않고 칼처럼 다룬다면 액션영화였을 것이다. 총이 칼보다 강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낙원의 밤>은 총이 느와르의 최적의 도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총알이 발사되고 난 후 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느와르의 비장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 비장함은 세기말적 시대의 이미지다. 2021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런 비장함이 겉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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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액션영화. 다양한 캐릭터와 경쾌발랄한 액션이 잘 버무려졌다. 볼거리★ 생각거리★ 마음거리


2.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타임루프에 갇힌 주인공.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 똑같은 설정인데, 똑같은 일상을 대하는 주인공의 변화를 액션으로 옮겨놓았다. 그런 면에서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도 닮았다. 


3. 타임루프 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실은 게임 속 캐릭터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단계를 반복하다보면 실력이 늘어 점차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보스 레벨]이다. 날마다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보니 실력이 늘어나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4.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실력이 늘어나 레벨을 높여나간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맞닥뜨려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 결말이 지구의 멸망이라면 궂이 애를 써서 실력을 쌓을 필요가 있을까. 목표를 상실한 이에겐 모든 것이 허망할 따름이다. 소위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궂이 타임루프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무한반복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목표를 상실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수 있을까. 


5. 영화 [리스타트]에서는 주인공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무한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통해 무기력증에서 벗어난다. 실패를 맛보더라도 실력을 쌓아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 길에 지지자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타임루프 같은 일상에서 우리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목표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지지자를 곁에 두어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지지자가 되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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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화끈한 케이퍼 무비(범죄영화).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난감하게 만드는 연출력에 박수! 볼거리★★ 생각거리★ 마음거리★☆


2. 최근 개발과 관련된 투기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LH직원들. 개발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워낙 크다보니 발생한 일이다. 이런 이익은 일정부분 환수를 통해 개발로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을 돌보는데 쓰이는게 맞지 않을까. 이런 환수 조치가 없으니 커다란 이익을 좇아 불법이나 탈법이 난무할 수밖에.

영화 [퍼펙트 케어]의 주인공 말라는 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해주는 기업의 CEO다. 하지만 건전해보이는 기업의 이미지와는 달리 은퇴자들을 속여서 요양원에 감금(?)시켜놓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해가는 사기꾼에 가깝다. 의사와 요양원과의 카르텔을 통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다. 이런 그녀에게 새로운 희생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희생자의 아들이 전 러시아 마피아? 죽음을 무릅쓴 대결이 펼쳐진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3. 말라가 바라보는 미국은 정글이다. 뺏는냐, 빼앗기느냐. 사자냐, 양이냐. 그래서 그는 사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양을 눈앞에 두고는 거침이 없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자와의 대결에도 두려움이 없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생존의 필수요소다.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을 모르면 위험이 닥쳤을 때 피하거나 대처하기 못하고 그대로 맞닥뜨림으로써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꼭 목숨만을 지키기 위해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문명 사회에서는 도덕적 두려움도 가져야 한다. 이런 두려움이 인간다움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퍼펙트 케어]의 원제는 [I care a lot]이다. 여기에서 케어는 돌봄이란 뜻으로 읽혀지지만 또한 조심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 인생사다. 


4. 말라는 승승장구한다. 판사의 전폭적인 신임과 두려움 없는 돌진이 그를 정상에 오르게 만들었다. 말라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화가 치민다. 은퇴자들을 속이고 재산을 빼앗아 일군 부와 성공에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손해를 입혀 자신의 이익을 취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소위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말리는 미국이라는 정글에서 암사자로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반전을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이 반전이 우리의 정의감을 만족시켜 통쾌함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접한 세상에선 이런 반전을 목격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 [퍼페트 케어]의 주인공 말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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