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맑음 오전 8도 오후 24도 하우스 온도 오전 19도 오후 34도

 

날씨가 뜨겁다. 방송에선 초여름날씨라고 시끄러운데 하우스는 이미 한여름이다. 온종일 시원한 물을 찾는다. 그야말로 물배 채우기다. 물, 물, 물, 물 좀 주소. 이러다 더위 먹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된다.

 

아침 일어나자 마자 숙소 밖을 거닐어보니 이 마을 농부들은 해가 중천인듯 움직이고 있다. 사과밭에서 사과나무를 손질하고,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밭에 쭈그리고 앉아 북주기를 하고 있다.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이건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신체적 고달품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오전엔 하우스 9번동에 고추를 심었다. 토종 고추인 붕어초, 오갈초, 청룡초, 이육사를 심고, 나머지 공간에 무한질주라는 맵지않은 고추를 심었다. 땀이 주르륵이다. 토종 고추는 잎이 약간 말려들어 있는 모양새가 특이하다.

오후엔 볍씨를 파종했다. 토종 종자들을 1킬로그램씩 파종하다보니 다소 복잡하다. 씨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니 신경이 곤두선다. 오후 한나절 내내 겨우 6종을 파종했다. 아직도 15종 정도가 남아 있다. 모판에 상토를 절반 정도 붓고 물을 충분히 준다음, 볍씨를 흩뿌리고 다시 상토를 덮는 과정이다. 보통 한달 정도면 모가 나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 5월 10일 경이면 직파가 가능할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 있는다고 한다. 그러니 농장에서 이제 파종하고 있는 건 다소 늦은감이 있다.

하우스가 뜨거워지니 방울토마토와 고추의 모종을 관리하는게 만만치 않다. 방울토마토는 17도에서 30도 사이를 유지해주면서 다소 덥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초반에 생육이 왕성하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수확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고추는 반대로 초반 생육 과정에서 다소 스트레스를 주어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한다. 요즘 새벽이면 아직도 3~4도 정도인데, 하우스 안이라 해도 겨우 6,7도 정도 일텐데, 이 정도 날씨에 견디도록 훈련시키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우스 측면을 살짝 10센티 정도 열어두고 밤새 놔두기로 해본다. 전문가의 견해이긴 하지만 농작물이란 것이 풍토에 따라 다소 다르게 성장할 수 있기에 세심하게 지켜봐야 할듯 싶다.

 

사람도 작물처럼 그 특성이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야 강하게 자라는가 하면, 좋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꼭 시련을 거쳐야 성장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의 육아는 토마토 기르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평온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무척 신경을 써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이다. 아이들과 공감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칭찬해줄 때 쑥쑥 성장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고추가 아니랄 토마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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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맑음 오전 3도 오후 25도 하우스 온도 오전 18도 오후 31도

 

지난 주말엔 개인적 사정으로 농장일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에 방울토마토가 3개동 하우스에 심겨졌다. 점점 관리해야 하는 작물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수확 시기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할 것인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오후엔 고추를 심기 위해 9번 하우스의 정지 작업을 했다. 두둑을 만들고 점적호스를 깔고 멀칭을 했다. 벌써 몇번을 하다 보니 꽤 익숙해지긴 했지만, 힘든건 여전하다. 6번 하우스에 심겨졌던 상추엔 물을 듬뿍 줬다. 상추 잎이 말려들어가는 증상이 보이면 물을 줘야 한다고 한다. 스프링쿨러로 1시간이 넘게 줬다. 더 흠뿍 줘야 하지만 회의가 계획되어 있어,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주기로 했다.

 

 

 

농장으로 오가는 길목에 요즘 사과꽃이 한창이다. 관광객이라면 잠깐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향기도 맡아보고 할건데... 그냥 일과가 끝나고 숙소 앞에 있는 사과밭에서 잠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숙소 뜰에 핀 매자꽃엔 벌들이 웅웅거린다. 진짜 말 그대로 웅웅대는 소리가 꽤 크다. 토마토 수정을 위해선 호박벌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벌들도 하우스 안이 더울땐 꼼짝도 안하고 숨만 헐떡헐떡 몰아쉰다고 한다. 부지런한 벌이 이럴진데 벌써 30도를 넘어선 하우스 안에서 여름을 어떻게 날지 슬슬 걱정된다. 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지만. 그래서 걱정은 이제 그만! 그저 이 한가로운 풍경이나 잠시 즐겨본다.

 

 

 

땅바닥엔 조그마한 꽃들 세상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모양새가 모두 아름답다. 막 피려는 꽃봉오리는 그 희망찬 내일 덕분에 오히려 더 화사해보인다. 내일은 활짝 꽃 피리라는 것. 그런 희망이 꽃봉오리마다 스며들어 있다. 또한 이들은 지는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그래서 찰나라 하더라도 찬란함을 꽃피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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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오전 맑음. 오후 소나기 오전 5도 오후 19도 하우스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전엔 볍씨 모판을 만들기 위한 육묘장 정리를 했다. 10번 하우스의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트랙터로 로타리를 친 후 트랙터 바퀴로 땅을 다졌다. 바퀴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2차로 트럭을 하우스 안으로 집어넣어 왔다갔다 하며 평평하게 만들었다. 아직 운전이 서툰 L씨에게 트럭을 운전하도록 했다. 일종의 운전 연수인 셈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타는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클러치 쪽에 문제가 발생한 듯한 낌새다. 큰 문제는 아닌것 같아 한숨 돌렸다.

 

평탄화 작업을 하면서 하우스 안의 풀들을 깨끗이 치워냈다. 하우스는 일종의 사막이라고 했다. 물론 10번 하우스는 찢긴 상태로 오래 있다보니 사막이라 하기에는 적정치가 않다. 그래서일까. 정말 다양한 풀들이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면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비록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작물만이 선택되고 다른 풀들은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힘을 다해 자라고 있다.

 

다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또한 생명이다. 똑같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자신의 생명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 그 모습을 닮고 싶다.

 

오후엔 괴산군농업연구소에서 유기농산물, 유기가공품 인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외국에 비해서도 너무나 까다롭고 복잡한 인증제에 혀를 내둘렀다. 농부가 100% 농약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농자재 중 어느 하나가 사업체의 비양심적 행태로 인해 농약이 들어가 있는 경우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제도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얼마만큼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땅도 살고 농부도 살고 소비자도 살고 지구도 사는 길. 가까운 듯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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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맑음 오전 4도 오후 19도 하우스 안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늘은 하루 종일 감자밭에서 북주기를 했다. 오전에 두둑 2줄, 오후에 2줄. 1줄이 대략 60미터쯤 되는데, 정말 정말 먼 거리다. 달리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쪼그리고 앉아 흙을 퍼올리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가롭고 여유롭지만 그 풍경 속 주인공은 대부분 힘에 겨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허리, 무릎, 손목, 어깨...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속도를 잊고 싶어 도시를 떠났건만, 시골이라고 속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작물의 재배 시기를 놓치면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에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날마다가 아니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리고 이런 속도 올리기가 자연과 함께라는 것이 또다른 차이점이기도 하다.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농부의 마음에 작물은 꼭 보답을 한다. 3주 전에 심었던 아스파라거스가 꽃샘추위를 이기고 순을 내놓았다. 하나 살작 꺾어 맛을 보았다. 상큼하다. 이것이 시골의 속도가 주는 기쁨인가 보다.

 

조선배추꽃도 한창이다. 그 어떤 노란꽃들보다도 더 샛노랗다. 물감에 한번 푹 담갔다 꺼내놓은듯한 선명함에 눈이 부실 정도다.

 

저 멀리 산 속 과수원에 복숭아꽃도 한창이다. 사과나무엔 새 잎이 나고, 꽃도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을 수확을 위한 농부의 봄은 하루하루가 더디면서도 빠르다.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할 땐 너무나도 느릿느릿 해가 움직인다. 그러나 오늘 마감지어야 할 일 앞에선 해님은 번개와 친구가 된다. 그 속도의 변덕 속에 하우스 속 농부의 봄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봄 천천히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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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맑음 오전 3도 오후 20도 하우스 내 온도 오전 18도 오후 28도

 

오전엔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핑크체리라는 품종이다. 너무 웃자라고 늙었다고 해서 바삐 심었다. 매일 매일 허리 필 날이 별로 없다.

 

3번 하우스에 40센티미터 간격으로 5두둑에 600주를 심고 나니 허리가 무너질 것 같다. 방울토마토 심는 법은 고추와 비슷하다. 단 접목을 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흙을 덮어주는 양상이 달라진다. 접목은 뿌리가 강한 것과 성장을 잘 하는 것의 장점을 합한 경우가 많은데 흙을 접목 부위 이상으로 덮어버리면 강한 뿌리의 장점이 사라진다. 따라서 접목을 한 방울토마토의 경우 흙을 덮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심어야 한다.

 

모종을 다 심은 후 점적호스를 통해 물주기를 시도했다. 원래 흘려주기를 하는데 점적호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삼는 겸 물을 틀어보았다. 하우스 3개동 총 15개 호스 중 2개가 말썽이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후엔 하우스 2개동을 토양관리할 계획이었다. 두둑을 만들고 멀칭을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 채소의 달인 농사꾼께서 농장을 한번 둘러보시고 나더니 감자 북주기를 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북주기란 뿌리 주위에 흙을 덮어주는 것으로 잡초억제, 배수, 지주역할, 뿌리 강화 등의 기능을 한다.

 

흙을 퍼서 감자 뿌리 주위에 덮어주는 작업이 계속됐다. 아침에 토마토를 심은 것은 그야말로 예열단계였다. 11두둑 정도를 덮고나니 허리를 피는 것 자체가 힘이 들 정도로 아프다. 농사일은 허리힘이라더니...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우스 안이 아니라 노지였다는 것.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줘 땀을 식혀주니 다행이다.

 

바로 앞 언덕에 조팝나무가 꽃이 한창이다. 서울 남산의 한옥마을에도 조팝나무가 무성했는데... 점심시간 산책을 하며 즐기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고된 밭일을 하는 농부의 설움이 묻어난듯 하얀색이 서글퍼보인다.

 

저녁엔 흙살림 공장에서 일하시다 퇴사하는 세 분을 위한 환송식이 있었다. 삼겹살과 막걸리가 오가는 조촐한 식사였다. 흙을 닮은 사람들이라서일까. 거추장한 허례허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꼽만큼도 없다. 환송식이 끝나고 숙소엔 연수생들만 남았다. 막걸리 한사발 들이킨 큰 형님이 오디오를 틀어놓았다. 장사익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듯 반짝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다. 대학시절 MT에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통기타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늘 시골밤 마당에선 막걸리와 장사익의 목소리가 걸쭉하게 가슴 속에 얹혀진다. 밤이 깊어간다. 숯불의 온기도 사그라든다. 가슴은 어디에서 새어나온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젖어든다. 아마도 사람이 준 상처였을 것이다. 흙을 만지다보면 그 상처들이 비록 흉터를 남길지라도 곪지는 않도록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젖은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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