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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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콰이어트>라는 책이 꽤 높은 인기를 얻었다.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떨칠 때 개인적으로 이런 선입견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성적 성격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이런 내성적 성격에 대한 긍정이자 그들을 위한 위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갖춘 셈이다. 그렇기에 궂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의 내성적 성격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읽고 말았다. 이책 <콰이어트>를.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선입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책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와 그 다양성이 갖는 장점을 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인식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지금의 세상이 외향적 사람들이 기세를 떨칠 수 있도록 변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교육현장에서 토론식 학습의 장려와 확장, 직장에서는 유창한 말과 사교 능력이 창의성이 있다고 해석되어지는 현실은 외향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겐 천국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성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겐 적응하기 힘든 고역스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외향적 시대의 배경에는 산업화, 도시화가 깔려 있다. 즉 모르는 사람들과 무수히 접촉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외향적 사람들이 빛을 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격의 문화가 성격의 문화로 대체되는 현상으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들이 외향적이라면 그 조직이 어떻게 될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새로운 모험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필요한가 하면, 그 길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뒤돌아보며 살펴볼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다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결국 모두 벼랑 끝 바다로 추락하는 레밍쥐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각자의 성격 특성에 맞는 조직 내 임무를 맡아 협업을 하는게 중요하다. 즉 알맞은 자리 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향적 사람들만이 승승장구하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멈춰서 반성, 반추할 줄 알 때 그 조직이 생존,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향적 사람들이 항상 움츠러들며 수동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핵심목표가 생긴다면 행동의 한계도 뛰어넘는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고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핵심목표를 내세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때론 외향적인 척하는 연기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무척 피곤한 일일 터이다. 그렇기에 이들 내성적 성격의 사람들에겐 회복환경이 필요하다. 외향적 사회에 발맞춘 피로를 회복하고 다시 세상에 뛰어들 그런 환경말이다.

물론 이런 외향적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먼저일 지도 모른다. 서로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개성에 맞춘 일을 할 수 있는 세상 을 위해 내성적인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IT의 발전으로 인해 내성적인 사람들도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게 됐다. 바야흐로 외향적인 사람들과 내향적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인정해 줄줄 아는 풍성한 세상이 될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이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콰이어트>를 통해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긍정적 에너지를 세상에 맘껏 표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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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2013-04-1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제 카페에 스크랩해갈께요..^^*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 최악의 시나리오로 내달리는 한국경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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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사회다. 휴대폰으론 너도나도 돈을 빌려주겠다며 전화를 해대거나 문자를 보낸다. 은행이나 제2금융권도 돈을 갖다 쓰라고 유혹한다. 마치 눈먼 돈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빚은 훌륭한 자산이 됐다. 갚아야 할 짐이 아니라 빚을 지고 투자를 하면 그 몇배를 벌어들일 종자돈처럼 행세한다. 그러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빚과 함께오는 그림자, 즉 이자가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도 땅값도 주춤하고 주식도 원하는만큼 오르지 않다보니 빚을 빌려 투자한 사람들은 이자를 갚느라 허덕인다. 정부의 각종 세제 혜택 유혹에 넘어가 빚을 지고 살 집을 장만한 사람들도 허리 필 날이 없다. 2012년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1000조원, 1인당 2000만원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다. 또한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은 물론 재정절벽의 위험에 처한 미국 등 전세계가 빚잔치에 빠졌다. 빚으로 풍요로웠던 삶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누구인가 "배 째"라며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선언해 버린다면 세계 경제는 휘청일 것이다. 아니, 누군가 선언을 하지 않더라도 곧 선언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한 순간 그 공포심으로 인해 너도나도 빚을 거두어 들이려 한다면 경제는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그 공포심이 도래한 순간, 그것을 우리는 임계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는 카오스 이론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복잡계 경제학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바라보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를 안정되고 평형 상태에 놓인 시스템이라 보지않고 경제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성이 계속 누적되면 나중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임계상태에 다다르는데 저자는 이런 변수로 과도한 빚을 들고 있다.

그런데 빚을 지는 것이, 그것도 지금처럼 과도하게 지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바로 금융자유화 때문이다. 그리스 경제가 붕괴 위기를 맞게 된 것도 유로화 채택으로 국외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거품 경제를 조성한 데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물론 이에 걸맞은 생산성이 따랐다면 그 빚을 청산했겠지만 부동산 거품만 불러오고 만연한 부패로 재정은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한 것이다. 이런 유럽발 위기는 세계로 전염됐다. 금융강국이라 칭송받던 미국도 버블이라는 치명적 유혹에 빠져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그나마 두터웠던 중산층이 무너져가면서 대붕괴를 부르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사회 불안을 가중시키고 이로 인해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가 줄어들게 되는 현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과 든든한 사회안정망, 활발한 계층 이동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지난 시대의 미국 사회가 현재 위기에 처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우리도 휘청인다. 경쟁은 불공정하고 사회안정망은 허술하고, 계층 이동은 꽉 막혀 있다. 더더군다나 우리는 2020년이 되면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지금 경제의 기반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에서 살아남는게 몹시 힘들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을 다양한 통계 수치로 설득해낸다.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빚더미에 몰린 한국경제를 새 정부가 어떤 길로 인도할 것인지 날 선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지금 당장의 평안과 안도로 눈앞의 추락을 나몰라라 하면 안 될 일이다. 이 책은 앞으로 전개될 한국 경제 정책들과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 볼 눈금자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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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제는 경제다 - 버리고, 바꾸고, 바로 잡아야 할 것들 선대인연구 2
선대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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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제는 경제다>는 김광수 소장의 <경제 3.0>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며,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문제, 거품 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두 책은 모두 한국 경제 위기를 재벌 위주 정책과 토건 중심의 산업으로 보고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관료들의 안일주의라고나 할까. 

 

현재 우리 경제의 정책인 고환율정책은 수출을 돕는다. 또한 투자를 위해 기업들의 세금 감면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에다 R&D를 지원하는 것까지 모두 실상 대기업을 위한 정책 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물가로 서민은 고통받고, 대기업은 일감을 몰아주며 끼리끼리 잘 살고, 지원금이나 세금 감면으로 인해 생긴 두둑한 돈으로 문어발식 확장과 땅장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이 생겨나고 발전하고 성장할 기회를 없앰으로써 일자리 창출 기회를 빼앗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거품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은 경착륙 때는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겁주기로 집값을 계속해서 떠받들고 있다. 저금리 정책으로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면서도 건설업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우리 경제는 하우스 푸어로 인해 소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거품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 두 책의 주장이다.

 

친재벌과 거품 낀 부동산은 위에서 말한 두 책 모두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의 핵심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와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보호정책을 세우고, 대규모 임대 건축을 활성화하는 것들이 있다. 구체적 방안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두책은 대책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김광수 소장은 정치적 힘(대안집단들의 세력화)을 갖는 방향으로, 선대인 전문가는 정책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듯 보인다.

 

한편 <문제는 경제다>에선 현재 유럽 경제의 위태로움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 경제력이 차이가 나는 여러 국가가 똑같은 화폐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같은 경우 경제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인 환율정책을 마음대로 쓸 수 없기에 그 위기를 더욱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로화로 이익을 얻은 독일이 어떻게 돈을 푸느냐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된다.

 

아무튼 두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부동산 거품을 빼는 정책 중의 하나인 대규모 임대 건축의 심리적, 교육적 측면에 대한 접근 없이도 실현 가능한지의 여부다. 임대 건축 거주민들을 격리 수용하듯 담을 쳐놓는 사람들의 심리와 학교에서 발생하는 아이들의 차별을 벗어날 수 있느냐는 거다. 물론 임대 건축이 다수가 되는 사회라면 이런 걱정도 기우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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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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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시절 공화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대학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당으로 입장을 바꾼다. 반면 자신의 룸메이트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뒤바뀜은 미국 대학의 철저한 토론식 수업 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시절 운동권을 대표하던 사람이 보수당원이 되었다고 실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땅한 곳이다. 반대로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 입장을 취하면 죽일듯이 욕을 해댄다. 입장 선회는 다름아닌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변화를 변절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토론 문화의 부재가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독재 정권을 지나면서 지조와 절개를 중시해 왔다. 물론 이런 경향은 유교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적으로 지조나 절개를 중시하면서도 실제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한번 정한 입장은 죽음 앞에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적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가능할 때의 일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물론 절대 퇴보할 것 같지 않은 민주주의의 발길이 때론 뒷걸음 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은 사라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대화와 토론은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책 <헌법의 풍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법과 함께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줄 사제가 사라진 시대에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화 또는 절차라고 하는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 이런 대화의 장에서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절차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방성과 민주성입니다. 101쪽

 

그러나 이런 개방성과 민주성이라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만 해도 그렇다. 한번 주장한 내용은 중간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거나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사리 고치지 못한다. 아니, 틀렸다는 생각을 애시당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나 개인만의 성향은 아닐듯 싶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들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주장만 있을뿐 토론은 없다. 개방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임수경씨의 '변절자'란 논란도 이런 개방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변화가 인정되지 못하고 변절로 낙인찍는 사회는 위험하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각을 서로 좁히기 위한 대화가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은 바로 그 길을 닦는 불도저다. 이 책은 그 불도저가 고장나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불도저가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더불어 평온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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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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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로도 쓰인 "YES WE CAN"은 이제 너무 자주 들어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히거나 힘겨울때면 주먹을 쥐고 외친다. "난 할 수 있어." 일종의 자기 최면인 셈이다. 때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래 잘 했어. 거봐, 넌 할 수 있다니까"라면서. 그러다 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연 그 고래는 진심으로 춤추고 싶었을까.

 

<피로 사회>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후기근대사회로 보며 성과사회라고 명명한다. 규율이나 지시, 명령을 통해 이루어지던 생산성 향상이라는 자본주의적 목표가 스스로의 성과를 목표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타율에 의한 강제보다는 스스로  일에 임했을 때 생산성 향상은 배가 된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더욱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자유를 느끼지만 또한 그 자유로 인해 강제가 발생한다. 바로 성과라는 수갑이 두 손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과 같은 '질병'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으로 방증된다.

 

즉 자유로운 개인들은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며, 자신이 열등하다는 느낌을 갖는 자책과 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킨다. 때론 그 목표를 위해 약물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노예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는 성공이란 자기 착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뭐, 그 정도까지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생존을 위해 야근을 밥먹듯 해야하는, 또는 승진을 위해 가족을 잊고 사는 피곤한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라. 물론 아직도 야근을 강제로 해야만 하거나 굶지 않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성과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성공을 위해 스스로 택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피곤한, 피로 인생이다.

 

그런데 이맇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일까라고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좋은 삶이란 혼자서만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일까. 행복은 모두가 함께 해야 그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생존을 위해 또는 성공을 위해 혼자서만 줄기차게 달려가고 있진 않은가.

 

그러니 제발 앞만 보고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보고 둘러볼 필요가 있다. 명상과 같은 깊은 심심함에 빠져 보아야 한다. 모든 일에 즉각 즉각 대응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무언가 마땅치 않다면 새로운 상황을 가져올 수 있도록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천천히 가더라도 어깨동무의 즐거움을 누려보아야 한다. 더이상 피곤하고 피로한 삶이 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스스로 정한(또는 스스로 정했다고 생각하는) 그 목표가 과연 나의 행복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종착지인지 이젠 나에게 소리내어 물어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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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49쪽

 

자신이 부족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느낌, 실패에 대한 불안은 바틀비의 감정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끝없는 자책과 자학은 그에게 낯선 것이다. 그저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후기 근대적 성과사회의 특유한 명령에 부딪힌 적이 없다.  57쪽

 

후기근대의 성과 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86쪽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95쪽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 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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