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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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시절 공화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대학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당으로 입장을 바꾼다. 반면 자신의 룸메이트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뒤바뀜은 미국 대학의 철저한 토론식 수업 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시절 운동권을 대표하던 사람이 보수당원이 되었다고 실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땅한 곳이다. 반대로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 입장을 취하면 죽일듯이 욕을 해댄다. 입장 선회는 다름아닌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변화를 변절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토론 문화의 부재가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독재 정권을 지나면서 지조와 절개를 중시해 왔다. 물론 이런 경향은 유교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적으로 지조나 절개를 중시하면서도 실제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한번 정한 입장은 죽음 앞에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적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가능할 때의 일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물론 절대 퇴보할 것 같지 않은 민주주의의 발길이 때론 뒷걸음 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은 사라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대화와 토론은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책 <헌법의 풍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법과 함께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줄 사제가 사라진 시대에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화 또는 절차라고 하는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 이런 대화의 장에서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절차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방성과 민주성입니다. 101쪽

 

그러나 이런 개방성과 민주성이라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만 해도 그렇다. 한번 주장한 내용은 중간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거나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사리 고치지 못한다. 아니, 틀렸다는 생각을 애시당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나 개인만의 성향은 아닐듯 싶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들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주장만 있을뿐 토론은 없다. 개방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임수경씨의 '변절자'란 논란도 이런 개방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변화가 인정되지 못하고 변절로 낙인찍는 사회는 위험하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각을 서로 좁히기 위한 대화가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은 바로 그 길을 닦는 불도저다. 이 책은 그 불도저가 고장나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불도저가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더불어 평온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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