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문제는 경제다 - 버리고, 바꾸고, 바로 잡아야 할 것들 선대인연구 2
선대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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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제는 경제다>는 김광수 소장의 <경제 3.0>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며,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문제, 거품 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두 책은 모두 한국 경제 위기를 재벌 위주 정책과 토건 중심의 산업으로 보고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관료들의 안일주의라고나 할까. 

 

현재 우리 경제의 정책인 고환율정책은 수출을 돕는다. 또한 투자를 위해 기업들의 세금 감면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에다 R&D를 지원하는 것까지 모두 실상 대기업을 위한 정책 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물가로 서민은 고통받고, 대기업은 일감을 몰아주며 끼리끼리 잘 살고, 지원금이나 세금 감면으로 인해 생긴 두둑한 돈으로 문어발식 확장과 땅장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이 생겨나고 발전하고 성장할 기회를 없앰으로써 일자리 창출 기회를 빼앗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거품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은 경착륙 때는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겁주기로 집값을 계속해서 떠받들고 있다. 저금리 정책으로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면서도 건설업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우리 경제는 하우스 푸어로 인해 소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거품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 두 책의 주장이다.

 

친재벌과 거품 낀 부동산은 위에서 말한 두 책 모두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의 핵심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와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보호정책을 세우고, 대규모 임대 건축을 활성화하는 것들이 있다. 구체적 방안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두책은 대책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김광수 소장은 정치적 힘(대안집단들의 세력화)을 갖는 방향으로, 선대인 전문가는 정책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듯 보인다.

 

한편 <문제는 경제다>에선 현재 유럽 경제의 위태로움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 경제력이 차이가 나는 여러 국가가 똑같은 화폐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같은 경우 경제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인 환율정책을 마음대로 쓸 수 없기에 그 위기를 더욱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로화로 이익을 얻은 독일이 어떻게 돈을 푸느냐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된다.

 

아무튼 두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부동산 거품을 빼는 정책 중의 하나인 대규모 임대 건축의 심리적, 교육적 측면에 대한 접근 없이도 실현 가능한지의 여부다. 임대 건축 거주민들을 격리 수용하듯 담을 쳐놓는 사람들의 심리와 학교에서 발생하는 아이들의 차별을 벗어날 수 있느냐는 거다. 물론 임대 건축이 다수가 되는 사회라면 이런 걱정도 기우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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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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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시절 공화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대학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당으로 입장을 바꾼다. 반면 자신의 룸메이트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뒤바뀜은 미국 대학의 철저한 토론식 수업 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시절 운동권을 대표하던 사람이 보수당원이 되었다고 실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땅한 곳이다. 반대로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 입장을 취하면 죽일듯이 욕을 해댄다. 입장 선회는 다름아닌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변화를 변절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토론 문화의 부재가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독재 정권을 지나면서 지조와 절개를 중시해 왔다. 물론 이런 경향은 유교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적으로 지조나 절개를 중시하면서도 실제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한번 정한 입장은 죽음 앞에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적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가능할 때의 일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물론 절대 퇴보할 것 같지 않은 민주주의의 발길이 때론 뒷걸음 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은 사라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대화와 토론은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책 <헌법의 풍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법과 함께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줄 사제가 사라진 시대에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화 또는 절차라고 하는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 이런 대화의 장에서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절차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방성과 민주성입니다. 101쪽

 

그러나 이런 개방성과 민주성이라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만 해도 그렇다. 한번 주장한 내용은 중간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거나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사리 고치지 못한다. 아니, 틀렸다는 생각을 애시당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나 개인만의 성향은 아닐듯 싶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들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주장만 있을뿐 토론은 없다. 개방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임수경씨의 '변절자'란 논란도 이런 개방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변화가 인정되지 못하고 변절로 낙인찍는 사회는 위험하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각을 서로 좁히기 위한 대화가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은 바로 그 길을 닦는 불도저다. 이 책은 그 불도저가 고장나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불도저가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더불어 평온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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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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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로도 쓰인 "YES WE CAN"은 이제 너무 자주 들어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히거나 힘겨울때면 주먹을 쥐고 외친다. "난 할 수 있어." 일종의 자기 최면인 셈이다. 때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래 잘 했어. 거봐, 넌 할 수 있다니까"라면서. 그러다 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연 그 고래는 진심으로 춤추고 싶었을까.

 

<피로 사회>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후기근대사회로 보며 성과사회라고 명명한다. 규율이나 지시, 명령을 통해 이루어지던 생산성 향상이라는 자본주의적 목표가 스스로의 성과를 목표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타율에 의한 강제보다는 스스로  일에 임했을 때 생산성 향상은 배가 된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더욱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자유를 느끼지만 또한 그 자유로 인해 강제가 발생한다. 바로 성과라는 수갑이 두 손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과 같은 '질병'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으로 방증된다.

 

즉 자유로운 개인들은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며, 자신이 열등하다는 느낌을 갖는 자책과 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킨다. 때론 그 목표를 위해 약물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노예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는 성공이란 자기 착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뭐, 그 정도까지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생존을 위해 야근을 밥먹듯 해야하는, 또는 승진을 위해 가족을 잊고 사는 피곤한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라. 물론 아직도 야근을 강제로 해야만 하거나 굶지 않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성과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성공을 위해 스스로 택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피곤한, 피로 인생이다.

 

그런데 이맇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일까라고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좋은 삶이란 혼자서만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일까. 행복은 모두가 함께 해야 그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생존을 위해 또는 성공을 위해 혼자서만 줄기차게 달려가고 있진 않은가.

 

그러니 제발 앞만 보고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보고 둘러볼 필요가 있다. 명상과 같은 깊은 심심함에 빠져 보아야 한다. 모든 일에 즉각 즉각 대응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무언가 마땅치 않다면 새로운 상황을 가져올 수 있도록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천천히 가더라도 어깨동무의 즐거움을 누려보아야 한다. 더이상 피곤하고 피로한 삶이 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스스로 정한(또는 스스로 정했다고 생각하는) 그 목표가 과연 나의 행복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종착지인지 이젠 나에게 소리내어 물어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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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49쪽

 

자신이 부족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느낌, 실패에 대한 불안은 바틀비의 감정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끝없는 자책과 자학은 그에게 낯선 것이다. 그저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후기 근대적 성과사회의 특유한 명령에 부딪힌 적이 없다.  57쪽

 

후기근대의 성과 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86쪽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95쪽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 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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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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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자는 양을 잡아먹고 배를 채우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저장해 두지는 않는다. 인간 약탈자들은 도가 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양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한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에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곧 신에게 보답하는 일입니다.  15쪽 

나는 시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과거나 미래 속으로 내던집니다. 거기에서 고통이 오며, 그 고통은 우리가 현재 속에 살 때에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영원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세계화의 가장 나쁜 점은 교환한다는것이 아닙니다. 세계화의 단점은 행성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빠른 정보 전달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낳고, 젊었을 대는 그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가 힘듭니다... 덫에 걸린 세계가 의식을 갖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44쪽

수익성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처럼 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생산을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습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기술을 가꾸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56쪽

지금의 농업은 흙을 떠난 농업이 되었습니다. 대지는 이제 무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흙 밖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최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본질을 비껴가고 있습니다.71쪽 

오늘의 어린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제 점점 더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혼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겨야 하고,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걱정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잘 왔다고, 각자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존재들이며, 경쟁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십시오. 만일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먹고 먹히는 지배의 과정 속으로 무참히 내던져지고 맙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 이상 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77쪽 

종자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다국적 대기업을 소유한 제조업체들이 선별해 내놓은 종자들의 침략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추악한 일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농부들은 스스로 씨앗들을 생산해 왔습니다. 그 씨앗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과 기후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오늘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광고 문구들은 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하지만 업체에서 판해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 인류를 파국으로 이끄는 범죄 행위입니다. 이런 범죄 행위가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까지 번듯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124쪽

전문가들은 국민 총생산량에 따라 국가의 발전 등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발전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발전 외에도 인간과 문화의 다양한 면들을 중요시해야 했습니다. 인간은 단지 위만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30쪽

나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거리를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내가 대지에 입문하는 수업들을 계속해서 기획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추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어디서 왓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159쪽

우리는 생명 속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부분에서만이라도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변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영성이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과 손은 내 영혼이 하고자 하는 일에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바로 나의 몸과 손을 이끌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은, 나는 재산을 모으겠다는 단순한 목적 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냥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허약한 존재입니다. 172쪽


일과 재산에 대한 숭배의식을 심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177쪽

신성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정하고 멋대로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길을 잃기가 더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어린아이들에게 자연을 신성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일깨우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200쪽

교육은 이제 봉사와 타인에 대한 사랑, 공동체 의식 등 본질적인 가치들을 말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규격화된 사회인을 만드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오늘늘의 교육은 생산성과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험을 보는 것도 사회 안에서 우수한 자들을 가려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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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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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양을 잡아먹고 배를 채우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저장해 두지는 않는다. 인간 약탈자들은 도가 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합니다. 15쪽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은 피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이다. 그는 이런 슬로건들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지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184쪽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국적을 지닌 농부 피에르 라비는 자연 농법을 통해 현대의 문제점을 정면 돌파하고자 한 사람이다. 다국적 기업에 의해 죽어간 흙(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하지만 업체에서 판매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이다) 대신 자연농법을 통해 종자를 보존하고 빚 투성이 농촌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직접 실천을 통해 보여줬다. 또한 5명의 아이를 시골에서 키워내 사회를 위한 재목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삶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제3세계 국가들이 그를 초청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을 통해 기아를 극복하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오히려 국민들을 더 배고프게 만들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배를 불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그는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의 기업들이 플랜테이션을 통해 부를 챙겨가는 것을 막고, 제3세계 국민들이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농업 기술을 전수한다. 그 기술은 자연의 순환을 가로막지 않는 퇴비와 흙의 되살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되살림의 철학을 영성으로 이야기한다. 피에르 라비의 국제적 활동이 가져온 변화는 그의 철학이 결코 몽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에 발을 내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 나는 나에게 세계파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또다시 말하건대, 신성으로 되돌아가는 일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이 말을 반복해 강조합니다. 이것은 시각의 문제입니다. 천지 만물에 속하는 것들은 아무리 보잘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신성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행복입니다. 76쪽 
 

지금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혹시 돈을 얻는 대신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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