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섬을 품다 - 섬은 우리들 사랑의 약속
박상건 지음 / 이지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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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섬도 많고 갈만한 항구도 많다. 아이들이 어릴때 가족여행을 하다보니 '섬여행' 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갈만한 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하여 아이들과 약속을 하였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섬을 한 곳 한 곳 여행해 보자고. 그렇게 계획은 거창하게 해 놓았지만 가본 섬이라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거제도 돌산도 증도 도비도 또 어디가 있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 근처에만 갔을뿐 직접으로 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려고 계획했던 청산도 보길도 비금도 비진도... 어찌하다보니 시간도 맞지 않았고 다른 일이 생겨 미루게 되었는데 아직 이렇다할 섬여행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무 가고 싶다.

하지만 섬여행은 많은 준비를 하고 가야한다. 섬에 들어갈 배시간이며 물때라든가 날씨 그리고 주체적인 섬여행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가야한다. 우리가 증도여행을 갔을때 배시간도 잘 맞추고 정보도 많이 얻어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섬에 들어가니 새벽부터 달려가서인지 피곤하다며 섬을 한바퀴 돌고는 나가자는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 갯벌체험을 할 것도 아니었고 여행철이 지나서인지 한적한 섬에서 아이들은 심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정말 해야할 진정한 여행을 하지도 못하고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 올라오는 길에 이곳 저곳 많은 곳을 들러서 추억을 쌓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남해쪽을 여행지로 삼고는 올라오는 길에 가고 싶은 곳을 들러서 오는 여행을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첫여행지를 어디로 잡느냐가 중요한데 거제도를 잡았을때는 통영에 들러 오려다가 다른 곳을 가느라 통영을 놓쳤다. 여행지를 너무 많이 계획에 넣는 것도 차질을 불러 올 수 있다. 갈 수 있는 곳만 크게 잡고 좀더 여유를 가지고 둘러 볼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것이 쫒기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해의 대진항에서 시작하여 7번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등대여행과 항구여행을 겸하여 한다. 그리고 서해는 백령도에서 완도까지 그리고 남해를 거쳐 제주도에 아우르는 섬과 포구여행을 한다. 책에서 거론하지 않은 정말 갈만한 곳이 많다. 아름다운 곳도 많고 역사를 지닌 곳도 많은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등대여행도 괜찮게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바닷가를 가면 등대가 없는 곳이 없는데 작가의 말처럼 전쟁과 약탈의 등대 이야기에 보면 '누가 등대를 먼저 만들고 등대를 점령하느냐는 승패의 관건이었다. 일본의 끊임없는 대륙 진출 야망 역시 한반도 요충지에 등대를 세우는 일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등대도 일ㅈ 치하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등대에는 기쁨과 슬픔을 버무린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야욕의 발판으로 등대가 세워졌지만 지금은 바다의 길라잡이이며 어느곳은 문화행사까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등대가 되었다는 것이 기쁘다. 오동도의 등대가 갔던 생각이 난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커다란 등대를 밖에서만 구경해야 했는데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런 테마가 있는 여행도 괜찮을듯 하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더하자면 '필자는 이 책에서 대진등대를 시작으로 섬이나 포구에서 방파제 등대, 그리고 섬에서는 유인등대와 무인등대를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등대의 역사가 곧 우리나라 개항의 역사이고 해양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등대는 소통의 목마른 시대에 무엇이 진정한 소통인가를 웅변해준다. 등대는 조건없이 국적과 이념을 불문하고 불빛을 비추며 밤바다의 항해를 돕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자욱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서서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다.등대는 늘 그 자리에서 실천하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반짝반짝 빛으로 바다에 나아간 모두를 지켜주는 어머니와 같은 모성애의 등대와 그 등대를 가진 항구를 여행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빨리 달려가고 싶다. 항구와 등대는 모두 같은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가는 곳마다 여행에 꼭 필요한 '여행정보' 와 '미니상식' 이라고 하여 좀더 보충하고자 하는 역사나 그외 상식적인 이야기를 덧붙임으로 하여 미리 읽고 떠난다면 섬여행에 큰 도움이 될 정보로 가득하다.

바다와 섬 사진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 사진속에 풍덩 빠져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고 싶기도 하고 섬을 바라보거나 몽돌 콩돌해변을 거닐고 풀등을 바라보고 싱싱한 활어의 맛을 할어와 같은 팔팔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니 유독 1박2일에서 갔던 섬여행이 더 떠올랐다. 티비 화면속 연애인들이 재미난 게임과 함께 리얼버라이티로 섬여행을 했던 것들이 기억에 더 많이 남겨진듯 하지만 해안산책도로나 섬여행은 조용하게 여유를 가지고 혼자서 누려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곳을 가만히 거닐고 싶은 화진포,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걷는 길 묵호항,눈 내리는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후포항, 우리네 삶을 사랑하는 길 울릉도,볼수록 정겹고 추억 어린 섬 가덕도,나를 돌아보는 여행 석모도,매바위에 앉아 노을에 취하다 제부도...' 글 제목만 봐도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보면 른 여행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섬여행이 더 많이 남는것 같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여 졸업여행으로 봄방학에 거제도를 갔다. 우리집 아이들은 몽돌해안을 처음봐서인지 나도 그렇지만 몽돌해안에 파도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차르르 차르르..' 하면서 들려 올것만 같고 천천히 섬을 한바퀴 돌면서 가고 싶은 곳에 들러 쉬면서 여유도 부리고 다른 섬과 연계하여 여행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이들도 그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돌산도에 가서는 보길도에 가고 싶었는데 배시간도 않맞았고 날씨가 좋지 않았다. 보길도에 들어가기 위해선 하루 더 묵어야 할 상황이 왔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다른 곳을 포기하게 되고 그곳을 들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것만 같았는데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으니 아직도 후회스럽다. 시간에 쫒기며 이곳저곳 관광하듯 하는 여행보다는 섬이나 그외 포구와 함께 주변을 함께 정하여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섬과 연계하여 섬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고 싶다.

요즘은 연륙교나 연도교가 많이 세워져 편하게 섬아닌 섬을 갈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겼다. 섬여행이란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계획해 보는 것이 좋다. 또 그렇게 여행을 하고 싶다. 청산도도 보길도도 그렇고 가보고 싶은 섬들이 정말 많다. 이곳에 소개된 곳도 가본것 같지만 실상은 뚜렷하게 다녀왔다고 할만한 곳이 없다. 그냥 지나치거나 멀리서 보기만 한 곳이 대부분인데 언제 이렇게 한번 멋진 섬여행을 계획해봐야겠다. 모두가 함께 움직일때는 북적이니 다른 계절을 선택하여 좀더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섬을 즐기고 자연을 즐기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섬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자연을 잘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멋진 여행을 망치기도 하는데 좀더 불편한 여행을 하면서 내가 있던 육지가 정말 편하고 여유롭고 모든것을 다 갖춘것이란 소중함을 느끼게도 된다. 떠나보면 내 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육지를 떠나서야 비로서 느끼는 소중함을 올해는 느껴보고 싶다. 그곳이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바와 섬과 등대의 이야기를 짙은 색으로 그려보고 담고 싶다. 산다는 것은 가끔 낯설고 불편한 곳으로 떠나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내 자리를 한번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봄여행을 가려 했는데 가지 못했던 그 아쉬움을 이 책 한 권으로 달래본다. 동해안 서해안을 거쳐 남해까지 한바퀴 돌고나니 우리나라는 가 볼 곳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아 빨리 떠나고 싶다.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그곳 청산도로 그리고 풀등을 보러 이작도로..어디인들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 있으랴 한 곳 한 곳 언제 가보느냐가 언제 떠나느냐가 중요한것 같다. 생각했을때 빨리 가방을 싸고 싶게 하는 '바다,섬을 품다'  는 그러지 않아도 설레이는 봄, 마음을 더 세게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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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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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작가에 반한 것은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읽고 나서이다. 그 책을 읽자마자 바로 <밀실살인게임> 과 그 후속편 <밀실살인게임 2.0>을 구매해 놓았지만 다른 책들을 읽느나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더이상 참지를 못하겠다. 전편이라도 읽어야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맛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지난 추리소설의 상식을 뒤엎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을 모두 일고 이 책에만 빠져 들어야 한다.

소설은 회색부분과 일반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회색부분에는 두광인과 그의 오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렇게 소설의 축을 이루는 두광인, 잊을만 하면 회색부분으로 나온다는 것은 소설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두광인의 집안은 평범했다. 아버지 엄마 위로 오빠라고 볼 수 있기도 하고 형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두광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두광인도 오빠도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가정은 그야말로 콩가루가 되고 말았다. 두광인은 오빠보다는 덜하지만 그는 집에 있어도 없는 것으로 치부된것이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두광인의 집안을 설명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여기에서 나오는 살인은 전부 실제 일어난 일이다. 그들 각자의 손으로 직접 저지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두광인, 044APD,잔갸군,aXe,반도젠 교수로 나오는 다섯명의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추리살인게임을 펼친다. 살인은 전부 실제 일어난 일이니 범인은 출제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인에 쓰인 '트릭' 은 무엇일까. 그들은 단지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살인을 한다. 사람 목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나만이 알고 있고 한번 사용해보고 싶은,남보다 살인에 우월성을 가지고 싶어 기묘한 트릭을 사용한 살인을 하고 그 살인에 대한 파일과 내용을 전해주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인에 쓰인 '트릭'을 정해진 시간이나 기간내 찾아내는 것이다. 밀실살인게임이라고 했지만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것처럼 밀실이라는 것은 그곳에 트릭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만 밀실이지 그들에겐 밀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이상한 모습과 변조된 목소리로 로긴하는 그들은 아직 오프라인에서 만난적이 없다. 그들의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모른다. 단지 살인게임을 위해 뭉쳤다. 그들의 살인게임이 시작되었다.

먼저 aXe부터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말해준다. 파일도 전송하여 모두에게 공유하게 하지만 점점 살인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연쇄살인이 되어 간다. ' 명탐정은 대개 연쇄살인을 막지 못하는데, 탐정이 수수께끼 풀이를 행하는 때는 바로 범인이 연쇄살인을 완결했을 때.' 라고 말하며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 살인은 계속적으로 일어난다. 그 살인에서 무엇이 공통점일까 나머지 네 명은 이런 저련 대유를 해보지만 찾을 길 없고 두광인은 직접 장소를 찾아가 탐문해 본다. 그러다 그들이 알아내게 된 것은 '12간지' 이다. 그리고 한사람의 살인이 종결되면 바로 다음사람에게 넘어가는데 그 또한 자신이 범인이다. 자신이 사용한 트릭이 뭔지 남들이 발혀야 한다. 그렇게 계속되는 살인게임 속에서 그들은 만족감을 얻으며 다른 사람의 살인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트릭을 찾아 보려 노력한다. 이 작품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이란 완전히 무시된다. 그저 살인이 목적이 아닌 '사용하고 싶은 괜찮은 트릭' 이 목적인 그들에게 목숨이란 자신의 가족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세간 사람들은 오로지 사건의 엽기성에만 흥미를 보이며 범인의 프로파일링에 기를 쓰고 있지. 하지만 너희들은 그런 짓을 하며 골머리 썩일 필요 없어. 범인은 바로 이 어르신, 다가야 모 씨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거니와, 세사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미쳐서 그런 것도 아니야. 동기는 바로 리얼 추리게임이지.' 얼마나 더 리얼해야 거기에서 흥미를 느낄까. 그동안 온갖 방법의 추리소설에 휘둘린 독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고 짜릿한 리얼추리게임에 빠져들게 할까. 생각은 바로 그런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작가야 말로 정말 비상하지 않은가. 독자의 입맛을 정확하게 꼬집어 낸 것이다. 밋밋한 맛에 길들여진 독자들을 리얼하면서도 짜릿한 한방에 보낼 살인게임을 계획해낸 작가의 의도대로 누구나 이 작품을 읽으며 신선하고 리얼함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하면서도 섬짓하니 말이다.

'어쩔 도리가 없지. 출제자가 범인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는 이상, 이른바 '범인 맞추기' 를 할 수 없으니까 '트릭 맞추기'  에 치우칠 수밖에 없네. 그리고 트릭 하면, 그 대표격은 밀실이지. 다음으로 알리바이. 밀실과 알리바이는 트릭계의 비차와 각이니만큼, 소재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그 두 가지로 생각이 기울기 십상이지. 이건 숙명일세.' 출제가가 모두 범인이니 독자도 소설속의 미친 그룹의 사람들도 '트릭맞추기'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리소설은 '범인' 을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범인일까 하면서 범인에 올인을 하여 소설을 읽어나갔다면 이 소설은 범인은 문제를 내는 출제자인니 트릭을 맞추어 보라는 것이다. 살인게임을 조각이 딱딱 들어맞도록 퍼즐을 잘 맞출 수 있는 숨겨진 트릭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정말 스릴로 몰아 넣는 마지막 게임이 시작 되었다. '지금까지의 탐정 놀이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어. 지적 흥분은 얻을 수 있었지만 스릴은 제로에 가까웠지.' 그럴수밖에 혼자서 살인을 하고 나머지 사람이 트릭을 찾아내는 방식이니 '스릴' 을 느끼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작가는 여기에서 덧붙여 스릴을 느끼게 해 줄 놀라운 게임을 마지막에 제시해 놓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고는 끝내니 2권이나 마찬가지인 <밀실살인게임 2.0>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살인게임은 어떻게 되었을까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화면속에서 서로 대화하고 파티를 하던 그들이 한 명의 그룹원이 죽음에 이르면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고 탈을 쓰기 않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꾸미지 않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실제 살인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그 후는 어떻게 될까. '왕수비차잡기' 란 일본식 장기에서 왕과 비차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놓는 한 수를 가리킨다고 한다. 두광인이 어떤 인물인가 밝혀지게 되고 사건은 겁잡을 수 없이 흘러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중간중간 두광인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가 나왔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접어들게 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오프에서도 직접 사건을 조사하지 않는데 오로지 두광인만 사건현장에 직접 조사하러 다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만 중간중간 나온다. 왕수비차잡기라 했으니 범인이면서 살인게임 문제 출제자이면서 이젠 스릴까지 맛보게 될 그들, 독자가 얻는 왕과 비차는 무엇일까. 독자 또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트릭을 찾아 나서게 되고 마지막 살인게임에서 스릴을 느끼보려 하는데 소설은 끝난다. 그렇다면 다음권에서 그 스릴을 맘껏 느끼게 해준다는 이야기인듯 하다. 

그의 소설은 점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에서도 다른 작가에게서 느끼지 못한 신선함이랄까 그런 묘한 매력을 느꼈는데 이 추리소설로 인해 더 빠져 들게 되었다. 이런 살인이야 없어야 하겠지만 정말 묘한 구성으로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한 추리소설의 묘미를 주는 소설이다. 그들이 그렇게 모였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그런 그들이 리얼살인게임을 하고 있으니, 독자 또한 그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스릴감에 책은 금방 읽게 된다. 처음엔 머리가 조금 복잡한듯 하더니 읽고나면 이런거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겠지만 무엇이든 먼저 생각해 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빨리 <밀실살인게임 2.0>을 읽고 싶다. 작가에게 독작에게 주는 트릭은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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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비, 성균관에 들어가다 - 옛날 공부법으로 본 우리 역사 처음읽는 역사동화 2
세계로 지음, 이우창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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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한동안 마음을 흔들어 놓던 드라마가 있었다,성균관 스캔들 말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란 원작으로 여자가 남장을 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게 되는 조금은 발칙한듯 하면서도 정말 재미를 주면서 '성균관' 그곳에 주목하게 한 드라마였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하여 역사 논술 선생님들이 모여 재밌와 감동을 함께 하며 역사와 옛날의 공부법에 대하여 읽어나가면서 배우게 하는 정말 유익한 책인듯 하다. 그림 또한 익살스럽고 재밌다. 손에 잡자마자 웃으면서 그리고 울컥 하는 감동을 함께 하며 읽어나갔다.

호학好學이란 무엇일까, 아니 성균관 옛날의 대학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고 공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어떤가 선생이 잘못하면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하여 UCC로 올린다. 그렇게 하여 문제화 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다. 사제간의 도리는 찾아볼 수 없고 한대만 때려도 부모가 달려오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스승을 옛날처럼 하늘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란 힘들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경쟁심만 키워준다. 그리고 정말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 되었으니 그 밑의 아이들은 어떨까, 호학을 생각할까. 요즘 대학등록금 때문에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수업거부를 하며 일인 시위를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미친 등록금' 이라 하여 오류를 수정하라고 한다. 그런 교육의 현주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리나 유생과 유생사이의 도리를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다. 세로의 아버지는 그의 일기에 '배움에서 머무르지 않고 배운 대로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평생 배움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비로소 군자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집 가훈인 호학임을 늘 기억하여라.' 라고 썼다. 배움을 배움에서 그치지 말고 배운대로 살아가고 배운대로 누리며 살라 했다. 머리속에 배움을 가두어 두지 말고 널리 그 기쁨을 누리라 했다. 

주인공 세로는 한양이 아니 부산에서 살았기에 한양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조금 덜 공부에 부대끼며 자유로운 공부를 했다고 할까.그런 그가 성균관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부딪히고 그들보다 뒤쳐졌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열려 있고 그는 배운대로 머무르지 않고 노비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알았다. 아니 배운 학문을 그냥 책에 묻어 두고 머리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닌 그 학문을 널리 백성을 위해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공부란 양반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그가 계획적이고 단체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헤쳐나갔다. 서울 유생인 맹유생은 '학문을 갈고 닦는 까닭은 덕을 쌓기 위함이요, 백성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기 위함이요,어질고 선한 마음을 갖지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하고 그저 글 그대로 읽었지만 이세로는 '저는 책을 읽고 백성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농기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조금 더 연구하면 제대로 된 농기루를 만들 수 있겠지요. 저는 백성들의 힘든 삶을 편하게 해 줄, 그런 실용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학문이 좀더 백성을 위하여 실용적인 실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하며 글이 글로만이 아닌 마음로 글을 읽는다. 하지만 맹유생은 글은 그냥 글인 것이다. 마음으로 읽을 줄 몰랐는데 이유생을 통해 마음으로 읽는 법을 배운다. 

이유생이 몰랐던 한양생활이나 성균관 생활을 매유생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면 맹유생은 이유생을 통해 세상과 백성에 대하여,좀저 널리 학문의 폭을 넓힌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그런 두 유생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감동 그 자체이며 유익한 이야기가 줄줄이다. 책을 읽는 방법으로는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머리로 읽고 그리고 마음으로 읽는다' 라고 했다. 읽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그런 다독이나 정독을 하기엔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암송과 다독,그리고 토론으로 읽고 공부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이유생과 맹유생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닌 중간 중간 정리를 하여 성균관 생활에 대하여 포인트를 집어 정리해 두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옛날에는 읽을 책도 부족하고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지금은 어떤가 읽을 책도 넘쳐나고 공부해야 할 것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익혀야 하는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대학의 등록금 문제로 인한 자살과 교수의 자살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서 받은 등록금으로 대학의 몸부풀기에 바쁜데 옛날의 대학인 성균관은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이고 위계질서가 확고한 곳인듯 하다.스승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유생들이 들어 오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공부법도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역사를 보며 취사선택하며 우리의 현 모습을 들여다보며 오류를 고쳐나가는 것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자신들의 실리보다는 널리 정말 백년이 갈 수 있고 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물려줄 그런 교육정책과 현장을 만들어 본다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이세로와 맹유생의 감동이 곁들어져 잔잔한 웃음을 웃으며 읽을 수 있어 성균관이란 곳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읽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호학' 이란, 아니 독서란 것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소과에 급제한 유생들이 대과에 붙기 위하여 공부하는 곳이 아닌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이선비를 통해 잠시 역사여행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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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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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문득 그 이야기가 떠 올랐다. 중국의 교사들이 쓰는 우화 가운데 외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남을 원망하며 살던 여인이 하루는 늙은 철학자를 만나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제가 겨자씨를 가져오면 네 아들을 찾게 해주마.그러나 그 씨앗은 슬픔이 없는 집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녀는 열심히 겨자씨를 찾으러 다녔다. 겨자씨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슬픔이 없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이렇게 슬픔은 내게 닥치며 무척이나 큰 일처럼 느껴지고 내겐 대단해보이지만 그렇다고 나 이외의 남에게 슬픔이 없으란 법은 없다. 누구나 보편적인 슬픔을 다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의 크고 작음을 떠나 밖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일 뿐이지. 그렇다면 영란 그녀의 슬픔 또한 보편적인 슬픔일까, 누구나 죽음이라 그외 다른 이유로 이별을 할 수 있다.그것이 준비된 이별일 수 있고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할 경우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내고 치유하느냐에 따란 남은 자로서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김형경의 <좋은 이별> 에서처럼 사랑과 죽음으로 인한 좋은 이별을 하였다면 치유가 되는 시간도 빠르고 견디어 내는 삶 또한 더욱 단단하게 영글었으리라. 하지만 주인공 영란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들의 죽음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여 갱생을 삶을 얻지 못하고 그 안의 깊은 슬픔에 갇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이른다

그렇다고 부모와의 삶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를 잃고 재가한 엄마를 따라 다시 얻게 된 가족은 아버지와 오빠, 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녀와 오빠사이에 이렇다할 끈끈한 정을 나눌 그런 일들이 없다. 다시 아버지를 잃고 엄마마져 돌아가신 불운한 삶 속에서 겨우 만난 남편, 알콩달콩 아들 하나 얻어 재미있게 살아가는가 하는 순간에 불행은 한꺼번에 겹친 것이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낡은 집마져 오빠가 헐어버리려고 할때 그녀는 딱히 가야할 곳이 없었다. 거기에 출판사를 한다고 빚만 잔뜩 남기고 간 남편, 그녀는 남편이 남기고간 빚을 정리해야할 것 같아 남편과 함께 하던 작가인 이정섭에게 연락하여 만나지만 그 또한 불행한 삶 속을 거닐고 있다. 기러기아빠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그는 아내와 헤어지고 겨우 생활비를 보내주는 수준인데 그 또한 인쇄를 받아야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삶, 그 둘이 우연인것처럼 노대통령의 빈소에서 만나고 한끼 밥을 먹으며 인연처럼 끈을 잇게 된다. 우연찮게 목포의 지인이 죽어 그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정섭을 따라 물흐르듯 그냥 투명인간처럼 그를 따라나선 영란, 그렇게 간 목포는 그들의 제2의 삶의 터전이 되고 만다. 아니 '목포의 눈물' 처럼 그동안 깊은 슬픔뒤에 숨겨 놓았던 눈물을 그곳에 가서 진정한 눈물을 흘리게 되면서 사람으로 인해 받은 슬픔을 그들처럼 한곡절 슬픔을 가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자연치유를 해 나가는 그야말로 치유의 소설이다. 

'죽음은 참 무정한 것이다. 한번 죽어버리면, 이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봄밤의 향내를 함께 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 봄밤의 따스한 볼빛들을, 저 다정한 소리들을 함께 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은 그렇다. 함께 하던 자잘한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눌수가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이승에서 함께 해야 봄밤의 향내도 함께 맡고 따스한 불빛도 함께 하지 아무리 장미가 아름답게 핀들 무엇하리. 버려진 집에 세상과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여인 영란, 그녀의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영란,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은 '공란' 인 것이다. 비었다. 이름이. 가족이 떠나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여인이 무엇인들 남았겠는가.그렇다며 그녀는 이제 이름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어디에서 무엇부터 시작을 할까.

정섭과 우연찮게 목포로 내려가지만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 한가지 자신의 마지막 목숨을 맡길 약은 가져왔다. 정섭과 만났던 자리에서 어울렸던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한소녀를 만나 가게 된 '영란여관' 에서 마지막을 보내리라 다짐하지만 질긴 목숨은 다시 이승에 버려지게 되고 그곳에서 갱생의 삶을 찾듯,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영란' 이란 이름도 얻게 되고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고 잃어버렸던 말하는 법도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새로 시작할 에너지를 타인에게서 얻게 된 그녀, 다시 사랑도 찾아오고 누군가를 품어줄 모성애도 되찾게 되지만 그녀의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영란이 그렇다면 정섭 또한 목포를 배회하게 된다. 그 또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가지만 늘 한구석에 자리한 여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두 사람은 늘 서로의 삶에서 교묘히 얽혀 있지만 그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재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마지마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해피엔드로 맺을 것인지 불행으로 끝맺음을 할것인지 독자가 알아서 할 몫이다. 

'모든 것은 헛수고에요.쓰레기를 치우는 것도,사는 것도.' 
그런 그녀였다. 집이 주위 빌라 사람들에 의해 쓰레기장이 되어가도 치울줄을 모르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헛수고와 같은 삶인데 쓰레기가 대수인가,당장 자신의 앞날이 문제인데 그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쓰레기가 쌓여 있는들 어떠리. 하지만 그 쓰레기도 낡은 집도 모두가 다 헛수고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듯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부딪히다보니 살아갈 힘이 생겨났다. 어찌 슬픔이 없는 집이 있으랴. 겨자씨를 얻을 수는 있어도 슬픔이 없는 집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모성애가 사라진줄 알았는데 영란여관의 수옥이를 보고 완규의 조카 수한이를 만나면서 다시 솟아나는 모성애에 목포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영란, 하지만 이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치매를 앓는 안자의 어머니를 떠안게 되어 다시 떠날 수가 없다. 질긴 삶의 끈은 그녀를 목포에 칭칭 감아 옮아매 놓는다. 그렇다고 딱히 목포를 떠나서 다시 서울로 돌아간들 무엇이 있으랴, 시작해야 한다면 자신과 같은 크기의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면서 정을 나누는 이곳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이 맞는 인자씨와 함께 차리게 된 '영란집' 에서 그녀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골백번 이별해도 이별만은 질이 안 들어.' 라는 말처럼 이별을 딛고 잘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이별은 늘 아쉽고 안타깝고 아픔이 서린다. 나 혼자 고해를 건너는 것이 아닌 누구나 고해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이유를 찾듯 목포에서 새로운 삶으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는 영란, 구수한 목포 사투리가 어우러져 더욱 토속적이고 구수하고 맛깔스럽다. 탁한 막걸에 박박 비벼대고 무쳐낸 간재미회처럼 어우러지고 부대껴야 맛이 나는 것이다. 눈물없이 인생이 영글수 없고 슬픔없이 어찌 인생이 완성될 수 있을까.누구나 가지고 있고 안고 있는 '보편적 슬픔' 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그 슬픔을 딛고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슬픔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 할수록 늪에 더 깊게 빠져든다. 나 또한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지난 겨울은 참으로 힘이 들었다. 밥을 먹으려 하면 줄줄 흘러 내리는 눈물 때문에 혼자 밥 먹기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 남겨진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고 엄마의 슬픔을 생각하니 내 슬픔은 너무도 작아 보여 슬픔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자 어느순간 슬픔은 가벼워졌다. 슬픔은 그리움이 되고 보고픔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잃었던 그 시간보다는 지금이 내 감정에 자유롭고 좀더 깊게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영란, 이제 그녀의 앞에 나타날 정섭, 그 둘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제 그 둘의 앞엔 슬픔이 없고 희망과 웃음만 오기를 바란다. 슬픔 뒤엔 기쁨이 있는 것이다. 늘 슬픔만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지금 당신이 슬프다면 슬픔의 문을 열고 부딪쳐라, 자꾸 사람속에 섞이다 보면 슬픔은 희석되는 것이다. 영란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보니 내 슬픔도 희석이 된 듯 하다. 이젠 희망만 충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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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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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다른 책 <섀도우> 가 있는데 늘 읽는다 하고는 미루고 있다가 올해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하여 궁금함에 얼른 읽게 되었다. 책은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미스터리라거나 추리소설이라면 진도가 빨리 나갔을터인데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순수문학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작품을 만난것 같다. 어찌되었건 내겐 작가의 첫 작품이라 좀더 집중하면서 읽게 되었다. 소라게는 서해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게이다. 바닷가에 가면 아이들이 으례히 작은 소라게를 잡아 장난을 많이 한다. 그러면 소라게는 작은 소라껍질 속에 숨어 나오질 않는다. 그 속에서 끄집어 내기 위하여 아이들은 라이터 불로 지지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들만의 의식을 한다.소원을 빌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소라검님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소라검님에게 무슨 소원을 빌까.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나이 초등 5학년이 신이치는 아빠를 암으로 잃었다. 암은 우리 몸속에서 게의 형상으로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암과 소라게의 공통점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암으로 아빠를 잃어 할아버지인 쇼조와 함께 살기 위하여 이사를 오게 된 신이치는 학교에서 친구가 없다. 그와 비슷한 친구 하루야 또한 간사이에서 이사를 와서 친구가 없었는데 다행히 둘은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각별한 사이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만이 가는 바닷가에 블랙홀에서 패트병을 이용하여 고기나 게를 잡아 놀이를 한다. 그리고 또 한 명 나루미, 그녀는 쇼조의 할아버지가 몰던 배에서 사고를 당해 엄마가 죽게 된다. 엄마를 죽게 한 배의 주인인 쇼조가 신이치의 할아버지니 신이치와 나루미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인데 그들은 우연히 친구가 된다. 하루야는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말은 안하지만 무언가 아버지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숨기고 있다. 하루야와 신이치는 블랙홀에서 잡은 게를 가지고 놀다가 할아버지 쇼조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갔다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게 된다. 한참 사춘기가 오고 무언가 자신들만이 아는 그런 비밀스런 장소를 가지고 싶어하는 나이인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바위를 찾아내고 그곳에 블랙홀에서 잡은 소라게와 그외 고기를 키우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이치의 엄마 스미에의 행동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신이치,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고 일을 나가는 그녀가 다른남자의 차를 타고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엄마에게 남자가 생긴것일까.아님 일을 하면서 우연하게 만난 남자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된 신이치, 하루야와 우연하게 바위를 찾고 그곳에 소라게를 키우기로 하고 소라게를 잡아 불로 지지면서 소원을 비는 의식을 취하던 중, 우연하게 그들이 빈 소원이 이루어진것 처럼 정말 돈을 줍기도 하고 나쁜 친구가 다치기도 하자 점점 소원은 겁잘을 수 없이 끝을 향해 치닫게 된다. 그렇다면 제일 무서운 소원이 무엇일까. 엄마에게는 정말 애인이 생긴 것일까. 하루야는 왜 아빠에게 얻어 맞기도 하고 밥을 굶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나루미는 왜 갑자기 신이치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지.

소설은 서서히 소라게처럼 두 소년과 소녀가 겪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잠깐씩 들어내어 보여준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듯 보이는 그들속에는 소라게처럼 숨어야 할 감추고 싶은 아픔이 있었던 것. 그렇다면 어른들은 아픔이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일까.할아버지 쇼조는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무릎밑으로 절단하게 되었고 신이치의 엄마는 암으로 남편을 잃었으며 나루미의 아빠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그 사고는 물론 신이치네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그렇다고 하루야의 부모는 온전할까,무언가 하루야가 털어놓지 않지만 무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월급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신의 아들을 두들겨 패는 아빠, 문제는 무엇일까.

세 아이의 아픔은 점점 극에 달하듯 한 점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것은 어른들이 죽는 것, 신이치에게 엄마가 없다면 그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 보이는 현상 속에서 어른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보고 있다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결단을 내려고 한다. 신이치의 엄마는 우연하게 나루미의 아빠와 사귀고 있었던것,그것을 미리 알고 있던 나루미 또한 고민 끝에 신이치에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적인 신이치엄마와 아빠가 만나야 옳을까, 아이들의 생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은 어른들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 소라검님에게 소원을 빌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니 말이다. 늘 새로운 소라게로 바위웅덩이를 채워 넣으며 소라게를 잡아 의식을 치르는 그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금이 가고 있다. 하루야는 친구인 신이치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나루미와 하루야가 자신보다 더 친한듯 하여 질투를 느끼는 신이치, 처음엔 미스터리물이 아니던 것이 점점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 든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의식은 점점 전진을 하여 '살인' 을 의식화 하기도 하고 그 속으로 뛰어 들기도 한다. 

'확실하게 엄마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앞에 있는 스미에가 갑자기 모르는 여자로 보였다. 자기 엄마도 아니거니와 죽은 아빠와 결혼한 사람도 아니다. 우연히 지금 이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을 뿐인 여자로 보였다. 집안일이 끝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다른 남자와 지낸다.' 아빠를 암으로 잃었기에 더이상 잃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달라졌다. 그 이유만으로 엄마를 냉대하는 소년, 그래서일까 더욱 나루미를 하루야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데 자신보다 하루야와 더 친해져가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애인이 다름아닌 나루미의 아빠란 것이 믿어지지 않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게와 같은 종양에 빠먹혀 들어가며 죽어갔는데 어떻게 나루미의 아빠와 사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신이치에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아. 어른이 되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만나면 바로 싫어지지만, 어릴 적에 만나는 친구는 그렇지 않아. 그건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쇼조의 말처럼 신이치의 친구인 하루야와는 얼마 가지 않을듯 했는데 그들 사이에 비밀과 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친구로 진행되어간다. 날마다. 자신보다 생각이 늘 앞서가는 하루야, 그의 아픔의 깊이를 전해 듣고는 신이치는 그에게도 소원을 이룰 기회를 만들어 준다. 하루야의 소원은 무엇일까.그 역시나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가 없어지거나 폭력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가 늘 쓰는 글자 '네' 는 '죽음' 을 뜻한다는 것을 읽고는 그 글자 속에 그의 아픔이 함축되어 있음을 본다. 어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휘두를 수 있을것 같았는데 하루야 또한 아버지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어른 또한 '나약한 존재'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만 성장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또한 그들만의 '아픔 혹은 성장통' 있음을 그들도 소라게처럼 숨을 장소가 필요하고 때론 그렇게 나약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엄포물이 필요함을 느끼는 소년들, 그 소년들이 그려나가는 이 소설은 어쩌면 아픈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다. 그 아픔이 어른들이 죽어야 끝나는 것으로 알기에 조금 섬짓함을 전해주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물이 되었지만 어찌보면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들이 겪을 수 있는 성장통을 아름답게 그린 한 편의 동화같다.

자신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아픔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무언가 필요했는데 자신들이 늘 가지고 노는 '소라게' 가 딱이었던 것. 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도 할 수 있지만 라이터불처럼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소라게, 어른이건 아이건 우린 가끔 그런 그늘을 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그늘속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 늘 그늘속에서 숨어 지내다보면 점점 나약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나약함을 벗어나 직접 행동에 옮기는 소년들, 자신에게서 소라껍데기를 벗어 던지려 했지만 어릴때 가지지 않았던 소라껍대기가 왜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필요하게 되는지, 바위 웅덩이에 소라게를 키우며 그들의 성장기를 보면서 자신들의 일생을 보듯 그리고 나약하고 실수투성이인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의 모습을 미리 답습하듯 하는 소년들이 막다른 길에서 그래도 희망을 향하여 달려 가기에 소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덮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 이란 무엇일까. 소라게가 소년들에 의해 바다가 아닌 산의 바위웅덩이로 옮겨지고 그 게들은 바닷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본성은 짠물에서 사는 것이기에 소금물이 없다면 살 수 없는데 소년들이 날마다 바닷물을 가져다 물을 바꾸어 주기에 그곳에서 소라게가 새끼를 낳을 수도 있었고 좀더 자라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신이치가 혹은 하루야가 혹은 나루미가 아빠나 엄마를 잃는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결단을 내어 자신들의 기본 바탕을 없애버린다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소설은 그런 질문 또한 던지는 듯 하다. 요즘은 아니 일본 소설을 보다보면 이런 패륜의 소설도 많고 점점 엽기적이고 패륜을 저지르는 살인과 사고도 많다.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그저 의식으로만 끝났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은 많은 절제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두 소년과 나루미의 미묘한 심리묘사가 잘 묘사되고 전달되어 더욱 소설의 맛을 살려냈으며 그들의 의식속에 자리한 살인을 현실화 하지 않았기에 아픈 성장통으로 끝나버린 시간들, 그 나이는 누군가 밉다며 죽이고 싶고 해를 가하고 싶기도 한 나이다. 그것이 모두 현실이 될 수는 없다. 생각속에서 선을 갏아 먹고 악을 자라게 하는 게와 같은 종양을 키우지 않게 하기 위해 사춘기 딸들에게 좀더 잘해 주어야 할 듯,좀더 관심을 가져 주어야겠다고 느끼며 읽은 소설이다. 소설을 덮고 나니 <섀도우>가 더 읽고 싶어졌다. 다른 책들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를 빨리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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