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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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그의 웹툰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난 참 무심하게 그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그가 어떤 만화를 그렸는지 어떤 말들을 쏟아 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 흐르고 그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반환점이나 마찬자기인 이 지점에서 무언가 남은 인생을 위한 주문이 필요하다, '앗싸라비아'. 책의 겉표지의 도형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 나 아님 어느 곳인지 모를 '블랙홀' 에 빨려 드는 요지경속 도형같다. 그냥 보면 반짝반짝 은빛인데 이렇게 들어보니 '무지개빛'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그의 인생도 지금 무지개빛...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의 단점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곳' '내가 볼 수 있는 곳' 그 한부분만의 세상을 '똑 떼어내어 볼 수 있다' 는 장점이 있다. 그외 세상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고 싶다면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좀더 넓게 보고 싶다면 원거리 촬영을 하여 찍어 보면 된다. 그렇게 뷰파인더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도 발견하게 된다. 좀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삶에도 물음표를 던지며... 그의 '앗싸라비아' 에서는 왠지 모르게 지금 그가 서 있는 인생의 현재점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를 들여다보는 청사진처럼 내게 다가왔다.

과거, 그 속에서 만난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파 양파 고추 고춧가루 참기름 약간, 잘 익은 김치를 넣고 김치볶음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머니가 해 주신 그 '맛'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레시피엔 없다. 그것은 정성이고 마음이고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고 계시다. 아니 전부를 소거했는지도 모른다. 치매라는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친구 속에는 '어머니의 김치볶음' 맛이 들어있지 않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부분에서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나 또한 아버지를 지난해에 보내 드렸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다.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다정한 웃음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그 모든 행동과 언어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흘러가듯 아버지의 기억도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가 담으려 했던 것은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연습' 인 것처럼 불쑥 불쑥 글과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에 대한 정성과 사랑 속에서 난 내 아버지를 만났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만나는 사진과 공감이 가는 글 속에서 삶에 지쳐 갖지 못했던 '여유와 휴식' 을 잠시 느껴본다. 그러다 돌아서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치듯 읽게 되는 가슴 뭉쿨한 글, 짧은 글에서도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어쩌면 '눈물샘' 을 터트리는 것처럼 점점 늘어나는 눈물을 감당 못 할 때도 있다. 눈이 안 보이는 소년이 연을 날리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소년은 왜 연을 날릴까, 다른 일들이 자신의 연을 보고 '기쁨과 즐거움' 을 느끼니 자신을 위해 날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날리는 소년, 우린 너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점점 이기적이 되어 가고 있는데 문득 그 짧은 글과 사진 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을 다 읽기전 전날 늦은 밤에서 기숙사에 있는 큰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서로 별것도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이고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다 전화를끊고 어젯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보내고 아침을 맞아 바로 딸에게 전화, ' 니가 웃어야 모두가 웃는 것 알지,니가 웃어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이 나는 거야. 웃자.' 하며 좀더 여유를 가진 말들을 해 주었더니 봄 눈 녹듯 내 마음도 딸의 마음도 풀어졌다.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닌데 왜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얻으려 하는지. '오래 엎드려 있던 새는 높이 날 수 없고, 먼저 핀 꽃은 일찍 지니, 이를 알면 발을 헛디딜 염려와 초조한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진과 잔잔한 글 속에서 잠시 내 잃어버린 여유를 찾는다. 그리고 마음의 휴식의 시간을 가져본다. 현재에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고 어쩌면 한템포 늦출 수 있는 '여유' 는 아닐까.

그의 다른 책들을 보았다면 다른 느낌을 가졌을텐데 만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포토에세이' 라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사진 또한 넘 좋다. 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잡아 내기도 하고 순간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담아 내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은 참 좋기도 하고 다시 꺼내어 보면 '물기' 를 머금고 있기도 하다. 지난 것은 어느 것이나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시간 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잡아 내고 기억하고 기록하지만 그것은 바로 순간에 '과거'가 되고 만다. 그 속에서 한 대학에서 존경을 받는 노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늘 학생들에게 반말을 쓴지 않는 교수님 그가 왜 학생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을까, ' 나는 현재의 자네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자네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해서 존경과 경의의 뜻으로 경어를 쓰는 것이라네.'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지. 새삼 반토막 등록금에 않좋은 교육제도들에 흔들리는 교육이야기들에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제자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하여' 라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참교육자의 모습을 본 듯도 하고 밝은 미래를 본 듯도 하고.

그렇다면 그의 사진과 글들이 내게 지금 '수리 수리 마수리' 하면서 '앗싸라비아'라고 주문을 걸어 준 것이 맞는 듯 하다. 잠시 어둡게 내 머리 위에 걸쳐 있던 먹구름을 거두고 밝은 하늘과 무지개를 내려 걸어 주었다. 한 장 한 장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던 뷰 파인더 속의 세상과 행간을 읽게 해 준 '앗싸라비아' 사진과 글이 참 좋다. 마음의 여유가 날 때마다 다시금 어느 페이지든지 펴서 차 한 잔과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너무 깊숙히 모셔두기 보다는 가까이 손 닿는 공간에 놓아 두고 한동안 '오랜 지기' 처럼 두고 싶은 책이다. 한참 고3이라 힘들어 하는 딸에게 한페이지를 펼치고 읽어 주었다. 아니 그 글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좋단다. 서로에게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이 잠시나마 걷혀서 다행이다. 내일 다시 먹구름이 몰려 온다해도 오늘은 오늘의 주문대로 '앗싸라비아' 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또한 딸들에게 엄마의 이런 '포토에세이'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 늘 녀석들의 일상을 담고 사진으로 남겨 두던 지난 날, 어리고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해도 다 묶어 놓으면 추억이고 행복이다. 행복속에는 불행도 기생한다.공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불행한 날이 있다고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기에 행복이 더 간절하고 배로 느껴진다면. '철수엄마' 라는 글에서 청각장애자인 엄마와 아들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지만 그것은 말로 안해도 느낌이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왠지 모를 '사랑' 을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아름 선물 받은 것 같다.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일뿐. 그 사람들과 그곳에서 사연을 만드는 것지.' 정말 사연이 가득한 책이다. 보고 읽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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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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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2010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을 읽었는데 올해 만난 작품들은 왠지 모를 낯설음, 소설을 그래도 조금은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젊은 작가' 들의 작품을 등한시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가의 이름도 내용도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가져 평론을 읽지 않고 읽어보려다 조금 참고를 하며 읽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상이고 작품집이기에 나 또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쭉 이어 책들을 만나고 싶은데 장편만 읽다가 단편을 읽어서일까 낯설다. 하지만 작품들마다 왠지 모르게 '외로움,고독,절망' 속에서도 나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그들의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패기' 를 느껴 희망적으로 책을 놓으며 그들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속 골리앗 - 김애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인생>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물속 골리앗은 정말 재난 소설이다. 일본의 대지진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기에 이 소설이 낯설지 않았을까, 우리의 재개발과 일본의 대지진이 함께 어우러져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평생 용접을 하며 겨우 장만한 아파트, 대출금을 겨우 값고 '내집이다'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것도 모두가 떠나버린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둘이 남아 있는데 거대한 장마가 닥쳤다. 그들은 상중이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재개발시위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평생 불을 가지고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축축하게 물에 적어 있었다. 타워에서 떨어지셨다는데 이유가 뭘까. 아버지의 사유도 재개발이 된다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려해도 그들에겐 더이상 물러설 곳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 집이 그들이 가질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인 것처럼 그들은 집에 갇히고 줄기차게 내리는 장마로 인해 거대한 물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다. 아버지의 묘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니마져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시신을 겨우 문짝배를 만들어 거대한 물살에 띄워 보지만 황톳물은 아버지를 데려 간것처럼 어머니도 데려가 버렸다. 그런 속에서 골리앗을 만나고 아버지의 영혼의 도움으로 먹을 것을 구하게 되어 겨우 살아난 그 앞에 비는 그치고 하늘에 뜬 '반달' 을 보게 된다.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었지만 그 자신만은 재난 끝에서 겨우 살아 남아 반달을 보고 있다.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목숨을 건졌으니. 실감나게 그려지는 일들이 영화 속 장면들처럼 뇌리에 남는다. 표현을 잘한듯 하여 그녀의 다음 작품들이 아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물속 골리앗이 재난소설이라면 김유진의 <여름> 은 무언가 감각적이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진다.개수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벌레와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알 수 없는 여름의 뙤약볕을 방금 지나쳐 온 듯한 순간의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은 몽롱하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는 그런 현실속에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간이 안가는 자전적 느낌까지 '먼 공간을 건너온 것이 아니라 먼 시간을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라는 소설속 문장처럼 그런 느낌이다. 현실이면서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생각' 속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현실적인 '분노' 를 보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지 사무실에서는 꾹 꾹 눌러 참던 그가 왜 밖에서는 살인을 저지르며 알 수 없는 슬픈 분노로 인하여 타인처럼 변해가는지 약간은 판타지적이며 점점 분노의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빨려 들 듯 따라가게 한다. 그녀의 다른 책 <영이 02>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를 좀더 들여다 보고 싶게 만든다.

단편 소설 한 편으로 작가들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허공의 아이들>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증발해 버리고 소년이 소녀를 만나 마트에서 가져온 것들로 연명하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 보는 시간 속에 소녀 또한 증발하고 소년만 남겨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처럼 허공중에 있다. 아, 난감하다.외롭다.쓸쓸하다. 그런 세상이 올까,갑자기 궁금해진다. 물로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중에도 '물속 골리앗' 에서도 한사람이 살아 남았고 '허공의 아이들' 에서도 소년이 살아 남았다. 아담과 이브처럼 있던 그들 중에서 한사람이 사라진 순간에 '뼈가 자라는 소리' 를 듣게 되는 소년, 난 이 소설을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할까.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해도 난 그저 '희망' 을 보았다는 이유로 작품을 접는다. 그렇다면 <너의 변신>은 어떤가, 성형이 만연한 사회,예전에는 일부 연애인이나 그외 자신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 몇이 하는 그런 '변신' 인줄 알았는데 이제 성형은 '일반적' 인 일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느 부위이든 맘에 들지 않으면 고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성을 바꾸는 일도 놀랍지 않다. 세상이 변해가고 환경이 변해가니 이해할만 한데 그 끝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함' 을 추구하여 무엇이 될까. 외모에 그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 내겐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요즘 세태를 나태내고 있는 듯 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소통의 부재를 보다'
그리고 <떠떠떠,떠> 말을 하고 싶지만 그가 내 뱉는 언어는 '떠떠떠..' 남들은 그의 말을 기다리는 순간에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가슴 안에 맺히고 만다. 그런 속에서 한 소녀가 쓰러지고 전학을 가게 되고 사회인이 되어 사자탈을 쓴 청년과 팬더곰탈을 쓴 아가씨가 되어 만났다. 아직도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도 충분히 알고 감싸줄 줄도 알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되려는 순간에 마찰음을 일으키듯 그녀는 발작을 그남자는 '떠떠떠' 말더듬이가 된다. 사랑에도 '소통' 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의 장애로 인하여 '단절' 된다. 어찌보면 단편들은 현대인들이 겪는 '외로움' '고독' '소통의 부재' 를 나타내기도 한다. 물속 골리앗에서는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그만 외로이 '고립' 된다. 그러다 혼자 남겨지게 되는, 그 순간에 세상과 통할 수 있는 무언가 수단이 있었다면 어떻게 소설은 변했을까, 소통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겪는 외로움과의 싸움은 처절하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또한 혼자 겪는 외로움이 더 큰 혼란을 가져오지 않았을까,멀리 이국땅에서. 그렇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슬픈 분노를 남에게 털어 놓았다면,회사에서 억눌린 감정을 옆 동료에게 털어 놓았다면 줄줄이 이어지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발생했을까. '허공의 아이들' 또한 고립이고 외로움이다. 어느 누구도 없다. 세상에 단 둘만 버려진 상황에서 그들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지만 언제 증발하게 될지 모른다. 다른 세상과 소통할 무엇이 없다. 그런 속에서도 자신은 자라고 있다. 아이러니다. 외롭고 고독함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는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흘러가고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랑의 소통이 안되는 순간에도.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스마트시대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개인화와 고립화' 로 이어지는 것 같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시대라고 하지만 언제나 난 혼자인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 하늘에 뜬 반달을 보듯,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 또한 희망을 본다. 작품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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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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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 가정부들 그녀들이 뭉쳐 가슴에 응어리진 '불편한 진실' 을 토해낸다고 십여명의 진실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까. 1권을 정신없이 읽었는데 궁금증에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2권을 집어 들었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앉아서 읽게 되었다. 거침없는 그녀들의 폭로전에 가슴을 졸이며,한편으로는 스키터의 스튜어트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질까 하여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위궤양이라고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스키터의 엄마,결국 암이라 발혀지게 되고 나 또한 암으로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렸기에 그 슬픔에 더욱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좋은 주인을 만난 가정부들은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부를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살얼판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들이 하는 일들이 점점 위험에 처하는 듯 하여 시작은 너무 좋았는데 혹시나 무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졸임에 그리고 미스 홀리가 그녀들을 어떻게 이간질하고 어떻게 휘젓고 다닐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 하나 놓치고 싶은 곳이 없어 얼른 읽게 되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조금 아쉬운 것은 스튜어트가 스키터 그녀에 대하여 좀더 깊이를 더해 주었더라면 그들의 애정전선이 좀더 무지개빛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뭐 어떻겠는가 약자의 목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이, 음지에 있던 유색인들이 양지에서 자신들의 인간다운 자리와 존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지.

그녀들만의 진실을 숨겨야 했던 순간, '여기, 내가 거의 익숙해진 공간에서 나는 기이하게 유별난 존재가 된 것 같다. 혐오와 죄책감이 홧홧하게 치밀어 오른다.' 모두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숨겨야만 하는 아이빌린, 그녀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세상을 움직이는 진실이 될 수 있을까.아니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될까. 누군가는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던 문제 인종차별,하층계급이라 여겼던 가정부들이 입을 열고 그녀들이 모시고 있던 백인주인과의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됨으로 하여 일어나게 될 사회적 파장은. 그것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글이 책으로 출판된다고 보장할 수도 없고 만약에 그 진실이 밝혀진다고 하여도 그녀들의 일자리가 온전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도 인간이다. '누구든 백인 여자가 내 이야기를 읽을 때 이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베푼 것을 기억하며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미스 홀리와 같은 주인만 있을까, 누군가는 선을 베푸는 주인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녀들의 진심은 전해질 것이다. 스키터가 그녀의 가방을 가방을 두고 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그 안에 든 책을 홀리가 보게 됨으로 하여 그녀들과 갈라지게 되는 스키터,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지만 그녀는 당당하다. 그리고 똑똑하다. 또 한가지 그녀들의 일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렇게 하여 그녀들의 질주는 이어지고 아이빌린의 푸근한 유모로의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늘 위태위태하던 미스 셀리아가 미니에게서 미스 홀리와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는 아픔에서 벗어나듯 힘을 얻게 된다. '케익 두 조각' 의 이야기는 그렇게 파장이 컸다. 스키터 역시나 미니의 미스 홀리에 대한 케익 두조각 사건을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넣으려고 한다. 그녀가 백인 주인에 맞서 벌인 '케익 두조각 사건' 은 유색인종이라 그들을 부려먹고 골탕먹였던 이들에게 멋지게 한방 날려주는 이야기 였던 것이다. 그 케익에는 '똥' 이 들어 있었는데 미스 홀리는 맛있게 먹었던 것.그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뿐 아니라 잭슨가의 이야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될텐데 그런 것보다 그들의 아픔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 더 의미깊다. 위태하기만 하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가정부' 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고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책이 나오게 되면서 그녀들의 삶 또한 진실을 숨기고 있던 그 때와는 다르게 변하게 된다. 세상에 좀더 당당하게 나서게 되고 맞서 싸우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스키터 역시나 그곳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펼칠 일자리를 얻게 되고 아이빌린 및 미니 또한 다른 가정부도 그렇지만 모두 해피엔딩이라 마음이 따듯해지는 소설이다.

그녀들이 만약에 움직이지 않았다면 스키터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코 큰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구멍이 저수지의 둑을 허물어 버릴 수 있기도 한 것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며 자신들의 뒤를 한번 돌아보게 한 것이다. 백인 주인들은 자신들이 그 책에 나오는 주인들과 같지는 않은지 그리고 스키터는 콘스탄틴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어찌보면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인데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줄 줄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설이기도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언젠가는 도움을 줄 기회가 오기도 할텐데 그것을 무시하거나 아래사람이라고 얍잡아 보고 막되게 부려 먹어서도 안될 것이다. 언제 어느 다리 위에서 만날지 모르기에. 그런가하면 스키터 엄마가 딸에게 하던 '당당함' 정말 가슴 뭉클했다.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도 당당하며 또한 딸에게도 그 당당함을 잃지 않도록 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가 너를 얼마나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키웠는지 모른다면 스튜어트가 당장 스테이트 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어...... 솔직히 나는 스튜어트가 탐탁지 않구나. 너를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고 있잖니.' 어머니의 당당함이 솔직하고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올바르고 당당한  눈을 키우게 했던 것 같다. 어찌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반기를 드는 소설이 될 수도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는 다른 가정부들의 이야기와 유색인들의 폭로전, 진실은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 오르게 되어 있지만 그 시대 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시대의 우리들에게도 자신의 현재모습을 한번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자신의 색깔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냈던 그녀들,멋지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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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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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는 거짓말을 못하지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백인 가정에 가정부인 유색인들이 그동안 남에게 말 못했던 '불편한 진실' 에 대하여 하느님께는 거짓말을 못 한다는 취지 아래 자신들의 삶이 더 나이지기 위한 것이 아닌 그 다음 세대를 위하여 진실에 대한 입을 열었다.그녀들은 귀딱지가 앉도록 '백인 여자 밑에서 일할 때 지켜야 할 첫번째 규칙은,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는 거다. 백인 여자의 문제에는 참견하지 말고 네 문제로 백인여자에게 찾아가서 울어도 안 된다. 전기세를 못 낸다? 발이 아프다? 한 가지만 기억해. 백인들은 네 친구가 아니야. 네 걱정 다위는 들을 생각도 없어. 백인 여자가 자기 남편과 이웃집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붙잡아도 너는 모른 척해야 한다.' 는 말을 들어가며 백인가정에서 온 몸을 바쳐 아니 인생의 전부를 바치듯 일을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결코 인간답지 못하다. 아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산다.

유색인들과 함께 화장실을 쓰면 병균이 옮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밖의 차고나 창고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거나 그외 밖의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 유색인들은 다름아닌 자신을 젓먹이부터 키워 주고 또 자신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주는 사람들이다. 제2의 엄마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밥고 함께 먹을 수 없고 화장실을 함께 써서도 안되며 모든 것을 다르게 해야 한다. 1960년대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유모가 그렇게 그려졌듯이 그녀들 또한 주인을 위하여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지만 사람대접 인간대접 못 받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좇겨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은 미스 리폴트의 집에서 가정부로 있는 '아이빌린' 과 미스 홀리에게 그 유명한 '케익 두 조각 사건' 을 일으킨 장본인 '미니' 와 목화농장의 딸로 미스 리폴트인 엘라자베스와 홀리와 친구이며 아직 미혼이며 뉴스레터 편집장인 스키터가 남몰래 뭉쳐 그들이 사는 잭슨가가 놀래고 세상이 놀랄 일을 벌여 보기로 한다. 스키터는 남들보다 키가 더 커서 모든 면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여자로 어디 취직자리를 얻으려 해도 마땅한 곳이 없다. 남자와는 너무도 비교되는 수당,그런 그녀에게는 어려서부터 함께 했던 가정부 '콘스탄틴' 이 있었는데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오면서 그녀는 갑자기 딸과 살겠다며 그녀의 집에서 일을 그만두고 떠나게 된다. 그녀와 늘 교감을 나누며 살았던 스키터는 그녀가 몹시 그립고 보고 싶지만 엄마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꺼린다. 거기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 하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가하면 잭슨가의 가정부중 한 사람인 아이빌린은 오십대 여성으로 일이년전에 아들을 잃었는데 죽은 아들을 병원에 짐짝처럼 버리고 간 백인들에 대한 반감이 있다. 똑같은 사람이고 생명인데 유색인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할까, 하지만 그녀가 있는 집의 주인은 딸 하나를 둔 엘리자베스로 홀리의 꼭두각시처럼 그녀가 하라는 대로 움직인다. 그녀들은 늘 모여서 남의 험담을 늘어 놓는가 하면 가정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드려 남들이 그 가정부를 쓰지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나이는 한참 어린 그들은 '엄마' 이기 보다는 있는 자로 행세를 하며 그들을 억압하고 부려 먹는 것에 능통했다. 그렇다면 홀리의 집에서 있던 미니는 어떻게 좇겨났을까. 홀리의 엄마에게 지극정성을 다 했지만 그녀가 먹는 것을 거부하여 음식솜씨가 최고인 미니가 그 무얼해도 먹지 않으니 홀리는 그녀를 도둑으로 몰아 그녀를 내 좇거나 무료로 그녀의 집에서 고용하려고 술수를 썼지만 우리의 대단한 미니는 그녀를 간단하게 음식 하나로 한방 날려 주신다. 그리곤 아이빌린의 도움으로 미스 셀리아의 집에 들어가지만 이 여자는 도대체가 바보 멍텅구리같다. 그녀를 고용했다는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지 않을 뿐더라 그녀에게 음식을 배우지만 소질이 없는 것인지 머리가 빈 것인지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한반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니는 그녀에게서 다른곳보다 두배의 급료를 받고 일을 하고 아이도 없으니 불평을 할 수도 없다.

남의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느 곳이나 잡음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주인을 만나다면 자신의 아픔을 감싸주기도 하고 좀더 인간다운 대접을 해 주기도 하지만 홀리와 같은 막대먹은 주인을 만나면 얼마 견디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에게 마이너스 평만 좇아 다니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대적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생활 상식에 대한 글을 쓰던 스키터는 콘스탄틴과 비슷한 아이빌린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글을 쓰다가 그녀와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가정부들의 아픔에 대하여,숨겨진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녀들에 대한 '인터뷰' 를 하고 싶어 한다. 아니 글을 써 보려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 진다면 밖의 세상에서는 자신들의 목숨도 내 놓아야 하는 시끄러운 세상이다. 그런 흑백이 딱 딱 선이 그어진 세상에서 그녀들이 뭉친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내 건 행위와 같다.

하지만 반드시 진실은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먼저 아이빌린이 스키터의 뜻에 따르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그래도 그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곤 셀리아의 집에서 일하는 미니까지 합세를 하지만 성격이 딱 부러지는 미니는 스키터를 의심한다. 만약에 자신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세상에 알려지만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미래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은 언젠가는 곪아 터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실에 세상에 공표가 되면 어떻게 될까.생각할 수도 없다. '모두 저마다 핑계가 있어요. 하지만 사실은 몹시 두려운 거예요.' 모두가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 가슴에 옹이 몇 개씩 간직하고 있지만 그 옹이를 풀어줄 누군가를 만나도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그러다 그녀들의 마음을 돌리게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고 한 명 두 명이던 것이 점점 늘어나 12명이 된다. 그렇다면 이젠 부딪쳐 봐야 한다.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예스' 할 때 '노'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한사람 바보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한 명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은 그와 같다. 유색인 가정부들이 받는 대우는 모두가 마땅하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또 그렇게 이어져 갈 것이기 때문에 유색인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해도 누가 나서서 법을 고치듯 대항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 용기 있는 한 사람, 바로 스키터가 있다.그녀는 친구와 부모의 눈까지 피해가며 남몰래 유색인 가정부들과 교감을 나누고 흑백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한번 멋지게 홈런을 날려 보자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일은 늘 위험이 따른다. 모두의 눈과 귀를 피해야만 한다. 과연 그동안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불편한 진실' 이 수면위로 떠 오를 수 있을까.그렇다면 그녀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한 백인인 스키터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몹시 궁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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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사계절 1318 문고 68
박선희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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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집 맘에 드는데? 마치 옛날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귀하고 소중한 것일수록 그것을 누리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른다. 그 가치는 다른사람인 타인에 의해 더 드러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소중하게 지은 집이라면 아버지는 고스란히 물려 받았고 오빠 또하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았던 책상이나 책장을 물려 받았지만 오빠 일구는 분가를 하고 만다. 모두가 한가족처럼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찾았던 할머니는 일구 오빠의 분가로 인한 허전함을 '이구'라는 강아지로 그 빈자리를 달랜다.

이 30년된 구라파식 이층집엔 피씨방을 하는 아빠, 아빠는 피씨방에서 열심히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야동을 즐긴다.하지만 피씨방도 나날이 어렵다. 주위에서 돈을 내리니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지만 그런다면 손익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런 아빠와는 어울리지 않게 엄마는 엘레강스하고 에소프레소를 즐기는, 커피 중독자이다. 엄마에게서는 늘 커피냄새가 난다. 그런 엄마가 베토벤을 닮은 아저씨가 하는 카페에 커피를 배우러 다닌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커피 취향이 맘에 들지 않는다. 주방에 멋드러진 커피머신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지만 할머니는 이 집과 어울리는 달달한 노랑봉지 커피믹스를 좋아한다. 왜 엄마는 에소프레소에 중독이 되었는지, 그런 엄마는 에소프레소 한 잔을 내려 블루타일이 깔린 테라스에서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타일이 몽주가 마찾사 친구인 도현과 무열을 데리고 온 날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타일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 30년된 구라파식 이층집에 작은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은.

고등생인 몽주는 할머니 생신에 멋진 마술을 보여 주기 위하여 학교에 '마술동아리' 에 들어 마술공부를 한다. 하지만 마술은 좀처럼 늘지 않고 오빠의 분가로 생긴 커다란 방을 자신이 사용하게 되면서 마찾사 친구들을 불러 마술연습을 종종한다. 엄마가 준 학원비를 몽땅 자신의 통장에 넣게 되고 그녀는 친구 자이를 따라 도서관에 갔다가 꽁지머리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그 아저씨 앞에서 마술을 보이다 꽁지머리 아저씨의 눈길을 끌게 된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커밍아웃을 하게 되고 믿고 따랐던 도현 또한 이혼한 편모 밑에서 엄마의 성을 따라 성을 바꾸게 될 것이며 곧 마술을 그만두게 된다는 말을 하게 되고 무열은 장난처럼 했던 마술에 전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가하면 자이 또한 마찾사회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녀야말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처럼 도현에게서 꽁지머리아저씨 그리고 무열에게로 옮겨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몽주의 가족들,오빠는 결혼 삼년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니 '입양' 을 고려중이다. 하지만 장손이 그가 입양을 한다는 말에 찬성할 어른들이 없다. 그런가 하면 언니는 식구들 몰래 이슬라메드이며 흑인인 남자를 사귀고 있고 그를 따라 캐나다행을 결심한다. 그 모든 것을 언니의 일기를 훔쳐보며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언니 또한 그녀가 볼 수 있게 일기를 오픈한다.

그런가하면 타일에서 마루 계단 세면대 보일러 담장 여기저기 삼십년된 집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서 엄마는 처음 집에 가지게 된 '희망' 에서 벗어나 무언가 '먼 곳' 을 향하듯 하며 이 집에서 떠나기를 희망한다. 이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베토벤 아저씨의 심포니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이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진것을 안다. 엄마가 집을 팔자고 하자 그동안 추억이 많은 집을 팔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할머니는 집을 나가겠다고 하기도 한다. 삼십년된 집에 금이 가듯 가족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몽주가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가족 개개인의 문제와 생각에 깊이 들어가다보니 구라파식 집에 금이 가는 것처럼 가족간에도 삐걱삐걱 어느새 금이 가고 있었으니 이를 어쩐다. 그러다 언니는 미국연수라 하고 모하메드를 따라 캐나다행을 떠나고 행복한 모습의 사진과 글을 보내 온다. 그러면서 몽주에게 거금 백만원을 남겼다는 말을 남긴다.

도현이 마찾사 회장 자리를 무열에게 넘기고 갑자기 마찾사도 해체를 하기에 이르면서 몽주의 마술도 시들해진다. 현실과는 먼, '마술사는 관객을 속이기 위해 속이는 게 아니라 감동을 주기 위해 속이는 거라고 믿고 싶으니까.' 라고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마술' 을 부려보는 것은 어떤가. 현실을 한번 멋지게 마술처럼 변화시켜 보는거다.'하지만 추억은 과거일 뿐이야. 반짝이던 코발트블루 빛 타일이 이렇게 자기 색을 읽고 깨진 것처럼 사람도 변하는 거고..' 집도 사람도 세월에 따라 변해버렸다. 이젠 그 세월에 맡게 가족이 변해야 한다. 집도 변해야 하듯이... 그런 현실적 마술을 몽주는 이 삼십년된 구라파식 집에 한번 멋지게 부려보기로 한다. 친구들의 힘을 빌어. 언니가 캐나다행전에 이체했다는 돈과 학원비를 몰래 넣어 놓은 돈을 합해 160만원, 그 돈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구라파식 이층집에 생긴 금을 없애보기로 한다. 아니 변화를 주어 멋지게 바꾸어 보려 한다. 마술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깨어진 코발크블루 타일은 멋진 색색의 타일로 바뀌고 삐그덕 거리는 계단엔 바이올렛 화분과 나비스티커로 멋지게 변신시키고 왼쪽보행을 하게 만들어 삐그덕 소리를 없애는가 하면 주저 앉은 마루는 애견들의 러브하우스로 변신을 시키고 담장보수및 잔디테라스도 깔끔하게 변신을 해 놓는다.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마찾사' 회원들이다. 마술을 아는 사람들이니 그들의 손에서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은 그들의 협동심과 노력과 땀으로 멋지게 변신을 한다. 구라파식 이층집은 다시금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 손이 가지않으면 집이건 무엇이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주인이 어떻게 가꾸고 관심을 기울이냐에 따라 생명력은 달라질 수 있다. 가족간에 금이 갔다고 생각간 '사랑' 그 또한 다시 찾을 수 있다. 조금도 서로의 입장에서 본다면 입양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고 이슬람 사위를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배려하고 포용력으로 감싼다면 가족이라는 색이 약간은 변해도 새로은 생명력으로 발전하여 깨진 코발트블루 테라스가 무지개빛으로 변하듯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집도 세월이 가면 변하듯 가족도 변하는 것이다.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가족일 수 있고 흩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구라파식 이층집이 부활하듯 그 속의 가족 또한 한번의 부활을 꾀하는,사춘기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 본 따듯한 소설이다. 다시금 구라파식 이층집에는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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