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 타이완 희망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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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내가 떠나지 않고 타인의 여행기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제목부터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라고 하니  뭔가 심오함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좀더 집중해서 읽게 만든다. 그가 타이완 여행을 떠난 것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 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나면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하여 아니 그사람에 대한 무언가를 비우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싶다.그사람이 차지했던 공간만큼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그렇게 추억과 기억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하기 위하여 그가 오래전 몇 번 갔던 타이완 여행을 20여년 만에 첫사랑을 만나듯 다시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정말 자고 일어나면 강산이 변하는 세상인데 그동안 타이완은 얼마나 변했을까.그가 이십여년 전 했던 여행의 기억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며 풍경 또한 변하고 나이들어 가고 모든게 변하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있는 듯 하다.글을 읽다보면 그런 부분들도 마주치게 된다. 다른 여행기처럼 타이완의 지도 한 장,그가 여행을 한 곳에 대한 여행지도 한 장 없다. 그리고 여행에 관한 팁 같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그냥 그의 여행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로 꽉 채운 진지한 여행기다.

여행기를 보면 사진과 정보가 주인 여행기가 있는가 하면 여행자의 글이 주를 이루는 여행기가 있는데 이 여행기는 '글' 이 주를 이루는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솔직한 그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알알히 박혀 그의 발걸음처럼 안내하고 있다. 타이완이라는 곳을 가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이 접해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타이완이라는 나라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람사는 곳이고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는 나 또한 간접 여행자가 된다.

그의 글 속에서는 이십여년전의 여행과 비교를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젊은 시절,힘이 넘쳐날 때이고 지금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중년의 나이이다. 여행을 할 때는 정말 체력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여행 작가' 라는 타이틀에서 '여행' 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늘 씩씩하게 다니는 모습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작가' 쪽으로 오면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생활이다. 그 기간 동안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래서 늘 열심히 걷고, 요가도 하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발병하시면서 생활이 많이 흔들렸다. 거기다 솔직히 타이완의 8월 더위는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하물며 난 이제 중년이 아닌가.' 체력이 무너져서 타지에서 혼자 외롭게 몸이 아파 움츠려 있을 때 얼마나 서글플까.그 아픔과 외로움 또한 고스란히 담아 내서 여행이 결코 여유만 있는 것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사진으로 담아내기 보다는 글로 풍경이나 그외 사람과의 인연등 모든 것을 담아내어 더 정감이 간다. 사진을 보다 보면 집중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글을 읽다보니 사진은 그냥 지나쳐버리고 글에 집중하게 되었다. 첫사랑과 같았던 타이완의 숙박지나 그외 추억이 어린 곳들을 찾아가며 실망도 하고 다시금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으로 채우기도 했지만 여행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인 듯 하다. 풍경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과 인연을 만들다 보면 더욱 정감있고 추억이 깊은 곳으로 기억되는 듯 하다. 사람만큼 깊게 기억되는 것이 있을까.'사실 그런 사실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눈빛을 나누며 소통하는 순간을 나는 즐겼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정을 느끼고 싶었다.' 어머니의 상실감을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가득 채우고 나서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된 타이완 여행, 풍경도 좋고 먹거리도 좋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고 싶어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게 여행기를 읽는 맛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바람이 좋은 한적한 바닷가의 민박 카페에서 시간에 쫒기지 않고 앉아 일기를 쓰거나 그냥 한없이 '바다' 만 바라보는, 무상무념의 그 시간이 너무 부러웠다. 누가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 같을지 모르지만 왜 우린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지. 스쿠터를 타고 빠르게 지나쳐 가기 보다는 힘들고 지쳐도 걸어서 여행하며 낯선 것들과 만나고 담고 느끼고 또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을 꼭 꼭 일기에 담아두는 그 여유로움이 너무도 좋았다. 정말 오롯이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온 듯 하여 왜 그렇게 부러운지, 행복해질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행복해 있었고 많은 행복을 누렸으며 행복에 온통 젖어 있는 그가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그것도 첫사랑과 같은 여행지를 다시 여행해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의 타이완 여행은 많은 것을 담아 오고 나누어 주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 처럼 그의 여행이 그런 느낌을 준다. 여름 휴가를 미리 다녀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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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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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단다. 인구비례 출판비율에서는 독서량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중에 한사람, 내가 끼여도 될까. 나 또한 책이라면 미친, 아니 중독자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하루의 시간중에서 눈을 떠서 눈을 감을 때까지 책과 연관하지 않은 시간이 얼마 없는 듯 하니. 그리고 우리집에도 한 권 한 권 책이 늘어가더니 급기야 누군가가 와서 본다면 '야,도서관이다' 라고 외칠만큼의 거실이 서재로 바뀌어 있기에 애서가에서 장서가로 거듭나고 있는 와중에 '도서관' 은 그야말로 꿈의 단어이다.

그렇다면 책벌레인 그대, 어떤 도서관을 꿈 꾸는가? 한동안 티비 모 프로에서 '도서관' 을 전국에 지어주는 프로가 있었고 그런 이유로 책이, 아니 독서과 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어쩌면 우리나라에 꿈의 도서관이 더 다양화 되고 많이 건설이 되었으리라 본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도서관이 없었는데 의미를 갖춘 도서관이 몇 년전에 건립이 되었다.나는 잘 이용하지 않고 있지만. 나 또한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집앞에 도서관이 있었고 애들이 어릴때는 애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놀이터마냥 놀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애들이 커 나가고 나 또한 많은 책을 소장하게 되면서 도서관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환상 도서관>은 그야말로 '환상' 이다. 종이책에서 요즘은 e북으로도 많이 바뀌고 있는 추세에서 나 또한 e북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 더 친근한 것은 '종이책'이다,아직까지는. 그런데 여기 정말 환상속 도서관들이 등장한다.

가상 도서관, 컴퓨터 메일에 넘쳐 나는 스팸메일. 그 중에 한 통의 메일이 눈에 들어온다, '가상 도서관' 어떤 것일까. 가상 도사관이라니. 한번 클릭해서 들어가 보는 작가, 세 권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책을 쓴 작가이기에 자신의 이름과 책을 클릭해 본다. 있다. 그런데 자신은 세 권을 출판했는데 그보다 많은 책을 출판한 것으로 그리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몇 개의 해로 나와 있다. 기분이 나쁘다. 바로 가상 도서관에 메일을 쓰는 작가, 거짓말이겠지 했는데 바로 답메일이 오고 다시 욱하는 마음에 쓴 메일에 답이 오면서 설마 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소송을 걸려고 뒤로가기를 눌렀는데 모든 것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정말 이름처럼 '가상 도서관' 이었던 것일까. 현실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도서관이었다.

집안 도서관, 화요일 우편함을 보던 그는 우편함 속에서 노란 겉표지의 <세계문학>을 발견하고는 꺼낸다. 그리도 다시 우편함에 손을 넣어 보면 <세계문학>이 또 들어 있다. 그러기를 얼마를 반복했을까.정말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층의 집까지 우편함에서 계속적으로 나오는 노란 겉표지의 '세계문학'을 꺼내어 계단을 통하여 날라 집안을 모두 노란 겉표지의 세계문학으로 채운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가재도구들이 아래층 창고로 옮겨진다. 책이 차지한 집, 똑같은 책으로 집안을 빼곡하게 채워 놓은 풍경은 어떨까? 책중독자라면 한번쯤은 꿈 꾸어 봄직한 이야기다. 똑같은 책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 이유로 책을 소장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집안을 서재로 바꾸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책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읽어야 할 것은 너무 많고 내가 읽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날마다 쏟아져 나온다. 집안이 책으로 쌓인다고 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것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고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이 또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다.

야간 도서관,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는 책이 있는데 영화를 보다가 시간을 놓쳤다. 늦게라도 가서 책을 반납하고 주말에 읽을 책을 빌리려 하는데 아뿔싸,문을 닥고 있다. 사서도 보이지 않고 불이 꺼지고 도서관이 문이 잠기는 듯,그런데 눈 앞에서 믿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 사서 자리에 나타나고 불이 켜지고 그리고 여긴 '야간 도서관' 이라고 하는데 그녀를 위한 날이다. 그리고 인생에 관한 책만 빌려주는데 오늘은 그녀의 날인 것이다.그녀는 자신에 관한 인생책을 빌려 읽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모두 담겨 있는 파일을 읽게 되고 도망치듯 도서관을 빠져 나오는데 도서관 안의 시계와 자신의 시계의 시간이 똑같다. 자신이 도서관에 들어간 시간인데. 어떻게 이럴수가.도서관 안에서 한시간도 더 지체를 했는데 그렇다면 그 모든 일들이 거짓인가.아니다. 자신의 우산이 그 안에 있다. 무언가 미스터리 적이며 환상적인 소설이다. 도서관에 가 본 사람이라면 이런 환상에 한번쯤 빠져 봄직하지 않을까.도서관에서 제일 마지막에 문을 나서게 된다면.

지옥 도서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도서관은 정말 말 그대로 '지옥' 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 갖혀야 한다면. 아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프고 띵띵 울린다. 우리가 아는 지옥은 불길이 타오르고 무언가 험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다. 그야말로 '지옥 도서관' 있다. 감옥에서 있던 그,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 내려진 벌은 감성적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곳이 '천국' 이겠지만 말 그대로 책을 싫어하고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던 사람이 감성적인 글을 읽어야 한다니, 추리소설이나 시간이 잘가는 그런 소설도 아니고, 정말 지옥이 따로 없다. 그곳이 지옥이고 감옥이다.

그렇다면 초소형 도서관은 또 어떤가. 책 한 권이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초소형' 이다. 작가지만 글을 못 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맹인 아이스크림 장사 할아버지가 건네 준 책은 '초소형 도서관' 이었던 것. 넘기기만 하면 변하는 소설들을 얼른 복사를 하거나 베껴 쓰면 자신의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고민하며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초소형 도서관에 나오는 소설들은 국립 도서관에도 등록이 안된 것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복사를 해보니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 글이 될 수 있을까.필사를 하듯 공책에 쓰는 그, 그것은 그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데 비유가 멋지다. 겉으로 웃게 하지만 속으로는 울게 한다. 넘쳐나는 출판물이나 글들 중에 자신의 글이 아니면서 남의 글을 자신의 글인양 도배를 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아무리 정보화시대라 해도 지켜줘야 하는 예의가 있고 남이 보지 않는다해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책의 제목처럼 환상 도서관은 어떤가, 하드보드지의 책만 소장하는 그에게 페이퍼백 책이 한 권 끼여 그의 눈을 찌푸리게 한다. 그는 갖은 방법으로 그 책을 없애 보려고 노력하지만 다시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곷혀 있는 '페이퍼백' 어떻게 된 것일가. 분명히 수장도 시키고 갈갈이 찍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던져 버리기도 했는데 왜 다시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환상 도서관' 책을 맛있게 먹어 치운다. 위의 도서관별로 제각기 다른 맛을 내며 먹어 치우고는 마지막 '환상 도서관' 에서 알 듯 말 듯 오묘한 맛에 빠지는 그,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다. 그렇게 먹어치운 환상 도서관 책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 제멋대로 해석이지만 지식은 먹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일까.어찌되었든 간에 정말 기발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하고 재치가 넘치면서 판타지적인 '환상 도서관' 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늘밤 꿈에 내 책들이 무슨 반란을 꿈 꿀것만 같다. 야간 도서관에 갇히는것은 아닐까, 아님 환상 도서관처럼 내다 버린 책이 자꾸만 날 좇아 오는 것은 아니겠지. 암튼 정말 기발하고 기묘하면서도 정말 환상 도서관에 다여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 환상 도서관, 빠른 시간에 재밋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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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너에게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서영조 옮김 / 책만드는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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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으면서 난 무엇을 준비를 했나? 문득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교육이란 것이 내몰리듯 그저 교실에서 국화빵을 찍듯 똑같은 주입식으로 단단히 교육을 받은 아이들, 그런 친구들에게 인성교육이니 학교 공부와 성적이 아닌 그외의 것을 가르침을 준 것이 있나 혹은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시킨적이 있는가 의심이 든다. 그리곤 그런 아이들이 사회에서 무언가 모자란 부분이 발견되면 즉기 '무얼 배우고 왔길래..' 하며 한마디씩 던진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란 것이 정말 자신의 선택보다는 무언가 어른들이 정해 놓은 널뛰기 교육에 편승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기말고사 기간이고 한참 스트레스를 받는 고3이다. 그러니 녀석은 성적과 공부에 대하여 민감하다. 그런 녀석에겐 난 공부도 성적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저 너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먹혀들겠는가.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무어라 할까.

나 또한 세상에 아니 사회에 떠밀리듯 밀려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 책의 첫 글처럼 '겸손' 을 향하기엔 사회란 너무 가혹했다.아니 허영심을 버리고 거짓말을 않고 모두 좋은 말들이지만 그런 것들을 어느 선까지 버려야 할까,문득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양치기의 거짓말처럼 너무 흔하고 뻔한 거짓말은 해가 될지 모르지만 선의의 거짓말은 사람을 구할수도 있다.나 또한 허영심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아니 그런 '척' 하는 사람 또한 싫어한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대로 살고 보여주는 것을 원하지 없어도 있는 척하며 허영에 들떠 사는 친구들을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며 살고 싶을까.

이 책에는 겉모습인 옷차림이나 청결등 그리고 말씨와 태도에 괜한 것들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실례를 들기도 하고 다른 예를 들어가며 좋지 않은 점은 고쳐야 한다고 하는데 그냥 준비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는데 읽다보니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생각이 났다. 시골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이쁜 아가씨였지만 그녀의 말씨와 옷차림 그리고 예절을 가르쳐 놓으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변하고 그녀가 처음에 있던 장소에 가 보았지만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변할수도 있고 겉모습부터 마음가짐 그리고 습관까지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렇게 하여 면허증을 따듯 반듯한 모습으로 사회에,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다면 누구인들 좋아하지 않을까. 다이아몬드도 원석으로 있으면 그 값어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깎아 내리며 멋진 각을 내 주어야만 빛을 발하며 보석으로의 가치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기본적인 예절처럼 밑바탕이 되는 것들을 배우고 익혀 세상에 발을 내딛으라는 좋은 가르침이 되지만 나 혼자 옥석으로 있을 세상일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때론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듯 약간의 흐트러짐도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각을 딱 맞추어 반듯하게 있을 수 있는가. 읽어보면 좋은 말들이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귀담아 듣듯 가슴에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좋은 것을 실천하고 익혀서 나쁠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하고 몸에 베이게 하여 군자로 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세상에 던져디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예절과 기본 밑바탕이 준비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원석으로의 값어치를 발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으로 읽어내려가면 좋을 듯 하다.지금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 라고 할지 모르지만 준비해서 나쁠건 없다. 세상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하여는 첫번째 '면접' 이라는 것도 보아야 하니 그런 기본적인 인성을 준비한다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 것이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싶다면 그대,한번 읽어보시길.

'말씨와 표현은 생각이 입은 옷이다. 사람의 말씨가 단조롭고 조악하고 저급하면, 그 사람의 생각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무리 균형잡힌 몸이라 해도 더럽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으면 추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으른 태도를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평생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상태로 살게 될 것이다. 책에 기록으로 남을 만한 일을 하지도, 사람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가지 중 하나는 삶의 목표로 삼을 텐데 말이다.나는 타내를 일종의 '자살' 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상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살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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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
토미 바이어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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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인생대박' 그런 꿈을 꾸며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인생역전' 의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확률을 통과하여 겨우 잡은 '인생역전' 은 정말 말 그대로 그사람의 인생을 한바퀴 돌려 놓는 경우가 많다. 행복에서 불행으로.왜 인생대박을 거머쥔 사람들이 '인생여전' 이 않되고 한방에 인생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게 될까,돈은 과연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아니 우리 삶에 어떤 존재로 자리하고 있기에 거액의 돈을 거머쥐고도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이 소설 또한 인생역전의 기회를 얻게 된 남자가 그 순간에 아내도 잃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소설이다. 이제 6백만 유로(한화로 약 일백억)의 돈을 로또 당첨으로 받게 되어 아내와 함께 그 행복을 맘껏 누리려 하는데 그전부터 바닥에 의미를 알 수 없이 깔려 있던 냉전의 기류가 스멀스멀 그를 감싸고 돌며 아내가 떠나가게 된다. 이제 모든 것을 맘대로 해 줄 수 있고 평생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왜 그녀가 떠났을까,물론 그녀는 로또 당첨 소식을 모른다. 아니 들을 수가 없다. 그 전에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그렇다면 그녀를 다시 붙잡고 이 행복한 소식을 전해야 할까.아니다 그들은 재산분활청구를 했기에 그녀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유도 아닌 다른 남자가 좋아서 떠난 그녀, 소설은 로또 당첨 그 순간부터 변하여 가기 시작하는 그의 삶을 들여다 본다.

난 이런 행운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복권이나 로또를 구매해 본 기억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꿈이 좋아서 옆사람에게 말했다가 듣는 말,'꿈 대박이네,얼른 로또 사.' 왜 사람들은 꿈이 좋으면 로또를 사라고 하는지. 좋은 꿈을 꾸고 좋은 일이 일어난 경우가 몇 번 있다. 십여년 살던 집을 정리하고 좀더 큰 집으로 옮기기 위하여 분양신청서를 내려 가기 전 날 꾼 꿈은 정말 대박이었다. 일면 화장실 꿈인데 화장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던 꿈,그렇게 하여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당첨이 되었고 그 집에 이사 들어가기 전 또 꾼 꿈이 불꿈과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는데 너무도 생생하여 그냥 재미로 한번 로또를 산 것이 '십만원' 에 당첨이 되었다. 모든 것이 기분이 좋으니 그런 행운도 있었으리라. 그것으로 나의 로또운을 끝,더이상 사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숫자가 몇 개 더 맞아서 정말 로또의 행운으로 '인생역전' 을 거머쥐게 된다면 난 그 돈을 내 돈이 아니기에 전부 '기부' 를 할 것이라고 늘 말한다.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돈은 '화'를 불러 온다. 없으면 없는대로 행복할 수 있고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젠 재산이나 돈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정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듯 하다.

그렇다면 로또의 대박을 맞은 알만은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하였을까,그도 그 많은 돈이 한꺼번에 생기니 그 돈을 어떻게 쓸까? 부터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아내에게 아이팟을 선물하고 소파에 씌울 천을 사고 차를 구매하고 아내의 냉랭한 마음을 돌리고 아내에게 자신이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세미나에 간 아내에게 서프라이즈한 이벤트를 마련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세미나에 갔다고 생각한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함께 당첨된 친구는 아내 몰래 로또당첨금을 빼돌리려 하고 있었으니 돈이 있어도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래도 차근차근 돈을 쓸 방법을 모색하며 처음 로또 당첨 사실을 알려준 여자에게 와인도 선물하고 그녀에게 차가 없는 것을 알고 차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거리의 거지들에게 몇 달러씩 돈을 뿌리듯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할까. 돈으로 행복을 다 살 수 있을까? 거액의 당첨금을 쓸 생각에 빠져들면 행복하다.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음향장비며 있어 보이는 차도 장만하고 남에게 선심을 쓰듯 돈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그런다고 세상이, 행복이 내 편이 될 수 있을까? 옹색한 아버지께 드릴 몇 권의 책을 사지만 아버지 집앞에서 망설이는 그, 자신의 열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모르듯 베스페의 말처럼 '머리' 로만 생각하려 한다.

로또의 대박을 맞긴 했지만 행복이 그렇다고 그에게 순서대로 차례를 갖추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떠나 가고 친구에게 배신을 하듯 친구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보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피자배달원에 의해 살아나게 되기도 하지만 옹색하고 인색하다고 생각한 아버지를 좀더 나중에 찾아가야지 했던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세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들이 무수히 많다. 돈이 아닌 사람속에서 어울리고 부대끼며 얻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의 로또 대박, 만약에 그가 로또대박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거꾸로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떠나가게 내버려 두었을까? 아버지의 집 앞에서도 망설이며 들어가지 못했을까? 친구를 배신했을까...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것이 결코 로또 당첨과 연관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가 행복을 느낀 것은 아주 짧은 순간'로또에 당첨되고 그 돈을 쓸 생각에 머물 때.' 가 아니었을까.

로또에 당첨되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아니 행복은 내가 만들어 나가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베스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스튜디어에도 집에도, 꼭 남의 집에 온 것 같았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거북한 손님, 혹은 집을 지키고 있어도 벽장이나 서랍을 열어봐선 안 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자신의 집이지만 모든 것이 텅 비고 남의 것처럼 느껴지는 알만, 그 빈 허전함을 결코 돈이 다 채워주진 못한다. 돈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그 행복을 비로소 그녀가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지만 이미 그녀는 나의 것이 아니다. 돈으로 어떻게 그녀의 사랑을 되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아내도 아버지도 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돈보다 소중한 행복을비로소 느끼는 알만의 심리묘사를 잘 그려냈다.돈이 주는 행복은 짧지만 사람이 주는 행복은 영원함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로 담담하게 그의 심리및 여행길을 따라 가다보면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 나 지금 행복한가? 흔히 우리는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을 네 잎의 '행운' 에 비유를 한다. 네 잎의 행운을 찾느라 세 잎의 행복을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인생은 역전이 아니라 '여전'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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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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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을 먼저 만난 것은 <2011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물속 골리앗> 이었다. 독특하면서도 재난소설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했는데 구성력도 괜찮고 무언가 확실하게 큰 획을 긋 듯 작품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박혀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작품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 그런지 삶과 죽음에 대하여 더 깊게 생각을 하게 한다. <물속 골리앗> 이란 작품 속에서도 정말 재난의 끝,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가운데 그가 삶을 연장하게 될까? 아니 그에게 희망이란 있는 것일까 하며 마음 졸이며 읽었는데 하늘에 걸린 '반쪽 달' 처럼 반만의 희망이라도 보인 듯 하여 아찔하면서도 현기증이 나듯 흙탕물속을 둥둥 떠다니다 나온 듯 한동안 어지럼증에 헤매이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작품 또한 강하다. 무척 오래동안 작가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첫 장편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열일곱에 가졌는데 그도 지금의 나이가 열일곱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늙은 자식의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믿어지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을까.정당한 이유로 태어난 것일까. 한낱 유희로 잘못 태어난 삶은 아니었는지,혹여 그런 이유로 벌을 받아 자신이 몇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런 희귀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은 비관하거나 비탄에 잠길 수도 있는데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아니 자신이 어떻게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글로 남기려고 한다.

열일곱에 아이를 가지 된 어머니, 그리고 체고를 다니던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 두고 처가살이를 해야만 했다. 외할아버지에 의해 막노동판에 뛰어 들게 되고 세상을 배우게 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삼일도 않되어 배우게 된다. 하지만 열심히 벌어야 아내도 이제 태어날 아이의 분유값도 벌 수 있다. 장인의 도움으로 겨우 막노동판을 나와 스포츠가게를 열기도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세살이 되어 아이에게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부터 그들의 고단한 삶은 이어지게 된다. '조로증'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한 병에 걸린 아이,남보다 몇 배 일찍 늙는 자신의 아이. 아이 부모보다 더 먼저 늙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이 때문에 그들 또한 점점 세파에 시달리며 늙어간다,다른 동년배에 비해 몇 배 초라하게. 그렇다면 이 삶은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는 나이는 열일곱이지만 겉모습은 팔순이 된 아름이의 눈을 통하듯 풀어 나간다. 동네엔 아름이가 형처럼 따르는 큰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장씨 아저씨, 아름이가 티브이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이며 병원에 있을 때에도 가끔씩 찾아와 웃음을 준다. 장씨 아저씨를 통해 어찌보면 세상에 질문을 던지듯 하는 아름이, 장씨아저씨는 환갑이 넘었지만 팔순이 넘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 자식에 불과하다. 철이 덜 든 자식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뭐라 하면 아버지가 하는대로 받아 들인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가,겉모습은 서른넷의 아버지보다 더 늙었지만 나이는 아버지의 반이다. 이 삶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아직 첫사랑도 사춘기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생을 마감해야 할 날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면, 그런 아름이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티비의 희망찾기 프로에 나가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글로써 격려 또한 많이 받는다. 점점 노화가 하루가 다르게 오는 아름이,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같은 나이의 암에 걸린 소녀에게서 편지가 오게 되고 그는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랑' 에 대한 감정을 느낀다. 그동안 세상은 지금까지 느낀 것과는 다르다. 자신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삶에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거짓이었다니...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조차 포장이 된다.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소년은 그저 열일곱 나이로 살고 싶을 뿐인데.아직 열여덟도 되지 않았는데 죽음과 점점 퇴화되어가듯 하는 장기들과 싸워야 한다. 믿어지겠는가,자신의 삶이.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너무 가혹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여 부모님은 늙어가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자식을 보기가 겁이 난다거나 무섭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세상은 또한 자신을 또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한참 사춘기 십칠세의 눈과 마음으로 팔순의 삶을 살아야 하는 나이는 어리지만 늙은 아들이 부모에게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장씨 아저씨의 삶을 빗대어 보면서 자신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귀한 자식임을 보게 되는 아름이, 그가 남긴 마지막 원고에서 자신은 부모님에게서 귀하게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삶으로 세상을 '바람'처럼 살다 간다는 것을 글로 남긴다.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소년의 소원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가 되는 것,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생과 사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 또한 자식을 앞세우는 것을 짐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자신을 베어내고 이제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

열일곱의 눈으로 보면 '두근두근 내 인생' 이지만 팔순의 눈으로 본다면 내 인생은 엉망이다. 부모를 앞세우니 말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가벼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인듯 하다. 삶과 죽음도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아름이의 짧고 긴 인생' 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물속 골리앗> 도 가볍지 않은 소설로 읽었는데 이 소설 또한 그렇다. 무언가 '힘' 이 빳빳하게 들어가 있어 조금 무거운 감이 있다. 좀더 거친 힘이 빠진 소설로 만나고 싶다고 해야 할까,앞으로가 정말 기대된다. 글에서 힘이 빠지고 좀더 독자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소설로 만난다면 정말 좋을 듯 하다. <물속 골리앗>에서도 흙탕물 속에서 그렇게 살아 남으려 발버둥 친 소년이 있었다면 이 소설에서도 절대로 자신의 삶을,태어남조차 용서하고 싶지 않을 터인데 자신에게 맞게 너무도 능청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받아 들이며 거짓으로 밝혀지지만 같은 나이의 소녀와 편지를 나눌때는 그 나이에 맞게,장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에 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띄 듯 변하는 아름이를 잘 그려냈다. 현실은 무척 난처한데 소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희망' 의 태양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밝은 것은 제목의 영향일까,장씨 아저씨와의 대화 때문일까.아름이를 통해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지금 내 삶은 '두근두근' 가슴 띄는 삶을 살고 있는가, 소설은 독자에게 묻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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