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편지 바벨의 도서관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상훈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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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뒤로 밀리며 내겐 기회를 주지 않는 안타까운 책들이다. 그런데 '바벨의 도서관'에서 새로 나온 책들중에 에드거 앨런 포우의 엄선된 단편들만을 담아 놓은 책은 내 맘을 사로잡았다. 그의 단편들을 읽기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의 '심연의 공포에서 길어 올린 환상' 이라는 에드거 앨런 포우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공포는 독일의 것이 아니라 영혼에 속하는 것이다. 공포는 그의 운명의 일부이기도 했다.' 라는 말이 왠지 '뭉크' 의 그림과 그의 삶을 보는 듯하여 그와 비교하게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우도 불우한 삶을 살았다. 유랑극단의 배우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사업가인 앨런부부에게 맞겨져서 살아가게 되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의 불행한 지난날들이 그의 작품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하지 않았나싶다. 보르헤스의 글을 읽고 포우의 단편을 읽다보니 모든 작품들 밑바탕에는 '공포' 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공포가 다 다른 작품들로 포도알처럼 알알이 달린 작품들은 한 편 한 편 각기 다른 특성에 재밌게 읽었다.

도둑맞은 편지, '과도한 영리함만큼 현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라는 글 시작 전에 쓰인 말처럼 이 작품은 자신을 현명하다고 믿는 그 합리성에 빠져서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들어가지 못한 경찰에 대한 것을 지적한다. 경찰국장 G 씨는 나와 뒤팽을 찾아 온다. 그가 찾아와서 사건을 이야기 한다. D장관은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뻔뻔하게 '편지' 를 보란듯이 바꿔치기를 해간다. 그리곤 그 편지를 감쪽같이 감춘다. 경찰국장은 그가 집에서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가구며 집안 구석구석을 송곳으로 찔러보면서까지 자세하게 찾아 보지만 편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집에 없다면 혹시 그가 몸에 숨긴것은 아닌가 하여 그를 불시에 밖에서 검문검색을 해 보았지만 역시나 그의 몸에서도 편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도둑맞은 편지' 의 행방은 어떻게 된 것일까. 경찰국장 G씨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단 뒤팽은 한달 뒤에 경찰국장이 다시 찾아와 무척 많은 현상금이 걸렸다면서 뒤팽에게 아직도 편지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말을 하는데 뒤팽은 군소리 없이 '현상금 수표'를 써달라고 하고는 '도둑맞은 편지' 를 내민다. 그렇다면 그는 경찰국장도 찾아내지 못한 편지를 어떻게 찾아 낸 것일까.

'창의성을 자기 기준으로만 바라보지. 그래서 뭔가 숨겨진 것을 찾아야 할 때는 오직 자기들이 숨겼을 만한 곳에만 주의를 기울여. 그나마 아귀가 맞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치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이라는 것이 일반 대중의 그것을 충실히 대표한다는 점이겠지....경찰국장이 오랜동안 이 직업에 종사함녀서 축적한 인간 창의성에 관한 일련의 고정관념에 입각한 한 가지 원칙 또는 일군의 수사 원칙을 확대 응용한 데에 불과해...... 실패의 간접적인 원인은 D장관이 시인으로 명성을 획득했다는 이유로 그를 멍청하다고 단정해 버린 데서 찾을 수 있겠군... 논리적 오류란, 모든 시인은 멍청하다고 지레짐작해 버렸다는 사실로 귀결되네.' 장관은 시인이면서 수학자였다. 하지만 경찰국장은 그가 시인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그를 멍청하다고 관주해 버리고는 그가 그동안 사건을 해결해 오던 자신의 고정관념적으로 수색을 한것이다. 자신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한 수 더 위에 있던 D장관은 너무도 쉬운 곳에 교묘하게 편지를 숨겨 놓았다. 송곳으로 찌르고 가구를 모두 파헤치듯 수색을 하지 않아도 될 너무도 쉬운 곳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뒤팽은 경찰국장의 오류와 장관의 오류를 파악하고는 그의 집에서 너무도 쉽게 '도둑맞은 편지' 를 찾아낸다. 이 단편은 '뒤팽' 이라는 인물이 등장을 하여 탐정식으로 일을 풀어나간다. 그의 단편중에는 '뒤팽시리즈' 이야기가 있는 듯 하다. 추리소설 작가들은 자신들이 자주 등장시키는 탐정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여사는 마플여사나 포와로 형사를 등장시키듯이 '뒤팽시리즈' 는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이들이 직업적이거나 자신들이 빠질 수 있는 오류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풀어 놓은 이야기인데 짧으면서도 재밌다. 

'병 속에서 나온 수기' 는 어쩌면 지구가 둥글어서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육지가 나오고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지구를 네모나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항해를 하면 지구 밖으로,바다 그 깊은 속으로 떨어질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의 이야기를 쓴 이야기인듯도 하다. '죽음이 임박한 자가 더 이상 무엇을 숨기겠는가' 라는 첫 글귀처럼 범선을 타고 항해를 하던 이들이 범선의 뜻하지 않던 사고로 인하여 두명만 남고 모두 죽게 된다. 겨우 살아 남았지만 앞날이 까마득한 그들은 그들보다 더 큰 배를 만나게 되고 어찌하여 그 배로 옮겨 타게 된 남자가 그 배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죽음직전까지를 글로 남긴 것이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공포' 보다는 '무지' 가 나은 사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야기는 사실감이 있게 잘 그려져 있다.

밸더머 사례의 진상, 죽음이란 무엇이고 죽음직전 최면이란 무엇인가. 그 최면으로 죽음을 연장할 수 있을까. 죽음이 임박한 밸더머씨를 최면에 들게 하여 죽음과 최면에 대한 것을 실험하는 이야기인데 무척 소름이 돋는다. 그가 진짜 '죽은 것인지, 아님 최면인지' 헛갈리게 하는 밸더머의 말은 그야말로 '공포' 를 자아내게 한다. 자신이 죽음이 임박함을 느낀 밸더머는 최면술에 흥미를 갖고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쓸 것을 승낙한다. 하지만 그가 죽음직전에 최면에 든 것인지 의심이 가기도 하면서 죽음인지 최면인지 모를 공포 속에서 그는 소름돋는 말들을 쏟아 낸다. ''응. 여전히 자고 있어.. 죽으면서' '응.. 아니...나는 자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죽어 있어' '제발 부탁이야! .... 빨리! ...빨리!... 나를 다시 잠재워 줘... 아니면, 빨리!.... 나를 깨워 줘!..... 이봐,나는 죽었어!' 그는 죽은 것일까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음을 상대로 이런 실험은 자행되지 말아야겠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인데 그 죽음을 인간의 힘으로 연장을 하거나 죽음후의 의식에 대하여 인간이 좌지우지할 소지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밸더머의 혀에서 '죽었어! 죽었어!' 라는 말 후에 최면을 풀자 그의 모든 것은 액체화되어 녹아 내리듯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혐오스런 부패물 덩어리로 변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멍청한 실험이란 말인가. 죽음과 최면에 빠진 밸더머가 내 뱉는 말들은 그 자체로 '공포' 를 느끼게 한다. 

'군중 속의 사람' 이란 작품은 철저하게 군중 속에 외톨이처럼 혼자가 된 사람에 대하여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문득 로맹가리의 <그로칼랭>이 생각났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하여 군중속에 있으려 하지만 그 군중과 섞이지 못하는 단 한사람, '저 노인은... 심원한 죄악의 전형이자 본질이었어. 혼자 있기를 거부해. 그는 군중 속의 인간이니까 말이야. 더 이상 쫓아가 봐도 소용없어. 그래 보았자 그나 그의 행동에 관해서는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낮이건 밤이건 군종 속에 있으려 하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 현대인들의 허상을 잘 들어낸 작품이면서 '외로움이란 것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 인지 말해주는 듯 하다.

함정과 진자, 중교재판 고문실에서 고문 기계들 때문에 고도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 스스로 만든 공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위에서는 진자가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내려오고 그는 묶여 있다. 그리고 쥐떼들은 그를 몇 겹으로 둘러 싸고 그를 공격한다. 그런 쥐들이 그에게 살아날 한가닥 희망을 준다. 그가 묶여 있던 것들을 갏아 놓은 것이다. 갇힌 공간인 고문실에서 그가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공포와의 싸움은 처절하다. 어쩌면 공포는 스스로 만드는 감옥과도 같다. 보이지 않는것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곳에 빛이 있다면 그것은 공포가 아닌 하찮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갇힌 공간이고 그 자신 또한 묶여 있고 천장에서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언월도 진자가 내려오고 바닥엔 쥐떼가 들끓는다면 그곳에서 희망이 어디에 있을까. 그가 바닥까지 부딫힌 공포는 그를 더욱 밝은 '삶' 으로 이끈다. 그가 자신의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단말마의 절규를 내 뿜는 순간, 누군가의 구원의 손길이 그를 공포로 부터 구출해낸다. 인간이 죽음앞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극에 달하게 한 작품으로 영화의 한 장면인 '인디애나 존스' 에 나오는 장면인듯 하다.이렇듯 포우는 자신의 작품 밑바탕에 '공포' 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어서일까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삶이 불운했던 그는 죽음 이후에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천재성은 삶이 어느정도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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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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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인의 시집은 처음이다. 하지만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를 읽고나서인지 그의 이름과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낯설지 않다. 그의 전화녹음멘트는 유명하여 다른 책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되었다. 그때마다 그의 시집을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이번 시집과 처음만나게 되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를 읽으며 그가 등장하는 곳곳마다 그의 이야기에 반하게 만들었다고 해야하나, 지리산에서 자연과 벗하며 욕심없이 살면서 버들치를 키우고 있어 '버들치 시인' 으로 알려진 그가 낙오된(?) 동네사람들과 함께 만든 '동네밴드' 에서 그가 여러가지 악기를 가지고 오디션에 참가를 했지만 결국에는 '하모니카' 로 동네밴드에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등등 너무 웃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들에 반하고 '지리산 행복학교'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던 이 시집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이 시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시집치고는 겉표지가 사뭇 밋밋하다. 옅은 귤색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을 의미하는 색인지. 유자차 색일까. 하며 시집을 처음 받아들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사는 집의 황토빛에 가까운 색일지도 모른다는,자연의 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를 펼쳐 들었다.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은 지난 봄에 지리산을 여행하며 지나치기도 한 곳 같기도 하고 어필 본듯도 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알았다면 들러서 잔치국수 한그릇에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알이 통통하게 박힌 칡즙이라도 한 잔 마시고 가는 것인데 하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음 지리산 여행때는 놓치지 말고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에 들러 꼭 잔치국수를 한그릇 먹고 가리라. 

시인은 그곳에서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은 한편의 시로 승화시켰다. 아무것도 없이 낡은 트럭 한 대를 개조하여 자리를 잡고 잔치국수도 팔고 어느정도 빚도 갚아 나가다보니 아내가 암이란 큰 병에 걸리고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그저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것들을 캐다가 달여 먹였는데 남편의 정성덕분인지 아내가 병이 나았단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의 간이 휴게실 옆에  '반짝이 옷가게' 를 차리고 새 삶을 열었다. 그 이야기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동에서 구례 사이 어진 강물 휘도는 길/ 비바람 눈보라 치면 공치는 날이다/ 집도 없고 포장마차도 없는 간이 휴게실이 있지/ 고물 트럭을 개조해 만든/ 재첩 국수와 라면, 맥주와 소주와/ 음료수와 달걀과 커피 등등/ 전망 좋고 목 괜찮아 오가는 사람들 주머니가/ 표 나지 않고 기분 좋게 가벼워지는 동안/ 눈덩이 같던 빚도 갚고 그럭저럭 풀칠도 하는데 빌어먹을/ 그 아저씨의 그 여자는 암에 덜컥 발목을 잡혔다// 소원이 있었댄다 꿈 말이지 웃지 말아요 정말이라고요/ 반짝이는 옷을 입고 밤무대에 서는 가수/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깊이 모자를 눌러쓴 그여자는/ 아저씨를 졸라 간이 휴게소 아래/ 얼기설기 비닐하우스를 지었다/......'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 라는 시는 정말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들의 삶을 전부 담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시는 형식이 아니라 '진솔함' 진실을 담아 내는 것이라는 것처럼 담백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이렇듯 그의 시집은 1부와 2부에 실린 시들은 지리산과 섬진강변에 살면서 자연과 벗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은 넉넉한 그의 삶과 이웃들의 이야기 혹은 동시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담겨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준다.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봄 편지' 라는 시인데 너무 좋다. 연둣빛 고운 봄이 아장아장 걸어 나온듯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만큼 그는 지리산 생활에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일테다. 또 한편의 동시같은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자면 '언 개울물 풀려 흐르자/ 앞산과 뒷산 우르르 겨우내 묵은 때를 씻겠다고/ 달려와 얼굴 비춰보려는데/ 어랏 혼자 다 차지하고 아예 몸을 담그고 있는/ 저 젓- 쬐그만 녀석/ 퐁당 톡 도토리 한 알// '독탕' 이라는 시인데 동시같으면서도 너무 곱고 순수하고 아름답다.도시에서 세속의 때가 묻었다면 이런 시가 나왔을까.지리산은 시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도토리처럼 여물게 했다. 너무 이쁘고 아름답고 순수한 시들이 많다. '.... 어찌하여 향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가// 차를 덖다가 그랬다/ 한 잎 찻잎이 온전히 솥에 던져져/ 초록의 향기로움 세상에 전하듯이/ 사람의 삶도 상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깊어지는가/ 남김없이 수분을 빼앗기고 바짝 뼈마디 뒤틀린 것들이/ 찻물에 띄워지며 새록새록거리는 아기 숨소리/..... / '어린 찻잎' 이라는 시인데 어린 찻잎을 덖으며 '어찌하여 향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가' 시인의 탄식처럼 들린 한마디가 내 가슴을 붙잡는다. 우리는 향기를 고통없이 돈으로 사려고, 아니 손 쉽게 얻거나 드러내려고 하면서 산다. 하지만 어린 찻잎마져 고통을 견디고 난 후에 향기가 더 그윽함을 시인은 맑은 시로 여실히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3부의 시들은 그가 자연가 환경을 지키기 위하여 국토순례를 하면서 오체투지를 하며 지키려 했던 그의 의지가 녹아 있는 '참여시' 들이 또한 발길을 잡는다. 이 이야기 또한 '지리산 행복학교' 에서도 잠깐씩 언급되었지만 그와 다른 스님들과의 오체투지는 유명하다. 그가 그토록 몸으로 지키려했던 자연과 환경, 미물들에 대한 사랑과 작은것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급급한 높은 곳에 앉아 큰소리만 치는 이들에게 그는 피를 토하듯 아름다운 우리 자연에 대하여 줄줄이 풀어낸다. 그가 이 시집 전에는 이와는 조금 다른 시들을 썼다고 하는데 난 이 시집이 참 맘에 든다. 아름다운 지리산과 섬진강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시의 주인이 되고 우리 국토와 자연이 시인의 눈과 마음에서 새롭게 탄생되어 비록 '밥벌이' 에 큰 득은 되지 못하지만 누군가 지키려는 큰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 참 좋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우고 더불어 사는 것' 이란 것을 보여주는 듯 하여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집을 언제곤 내 마음이 혼탁해질때 한번씩 꺼내어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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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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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어떤 것으로 할까,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무엇이 될지 우린 모른다. 아직 마지막 그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마지막 식사를 위하여, 좀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맛의 기억’ 에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요리사 루프레히트의 이야기와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작년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아버지가 마지막 식사로 하신 흰죽을 발인을 끝내고 돌아와서 엄마 몰래 얼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을 보시고 우실까봐 버리며 실은 내가 울었다. 폐암판정을 받으시고 지난 여름에도 일주일을 나와 함께 병원에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올 추석명절 후에도 나와 함께 일주일을 했다.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이 될 듯 하여 날마다 엄마와 함께 먹을 밥을 해서 병원으로 날랐던 난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가 심심하실까봐 군것질 거리도 함께 사다 드리곤 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는 과자라고는 잘 드시지 않으셨는데 정말 아프시고 입맛이 바뀌신 것인지 과자를 너무도 잘 드셨다. 맛있다며 새우깡 한봉지를 혼자서 다 드시기도 하셨지만 다른 과자도 물로 잘 드셨다. 그 아픈 기억에 좀더 잘해드리지 못함이 이 글을 읽으며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신이 큰 병에 걸려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울아버지 또한 당신이 마지막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렵고 무서워 하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편안하게 받아 들인듯 하셨는데 아버지의 상황을 보아서인지 그들의 호스피스에서 함께 한 이들의 맘을 이해할 듯 했다. 환자도 물론 두렵고 불안하지만 옆에서 함께 하는 가족 또한 그 맘은 똑같다. 어찌보면 다른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보다 선택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고통이란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 고통을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줄을 놓기 보다는 어쩌면 반대로 ’살고 싶다’ 는 욕망으로 변한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지? 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에요. 정말로 진심에서 하는 말이에요. 적절한 질문은 ’나라고 그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 있어?’ 하는 것이죠’ 구드룬 피셔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에 나를 포함한 누구나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다른 이보다 편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타나는 듯 하다. 

큰 병에 걸리고 나면 음식이 ’맛’ 조차 잃어버린다. 볼때마다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밥을 도통 잘 못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우린 무엇이든 아버지의 입맛을 돌려 놓기 위하여,아니 병을 좀더 지체시키기 위하여 병에 좋다는 것들을 아버지가 드시게 했다. 그렇게 한 덕분인지 얼마간 정말 잘 드셨다. 당신도 많이 나아진다고 생각하셨고 주위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먹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먹을 수 있는 한, 숨을 쉬고 자신을 느낄 수 있죠. 먹는 것은 우리 실존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예요. 그것은 이 호스피스에서 빠르고 놀랍게 작동해요.’ 음식을 먹지 못하면 그 냄새만으로도 흡족해 하며 추억에 젖고 좀더 여유로워졌던 사람들. ’나는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고자 했어요. 하지만 손님들은 평소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어요. 그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돼지고기 안심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걸 요리하는게 나았어요.’ 병에 좋고 몸에 좋은 것보다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고자 했던 루프레히트,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지금의 한 끼 식사가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어요. 이 음식을 다시 맛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음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요.’ 이승에서 마지막 식사게 늘 될 수도 있기에 음료하나에도 잼 하나에도 그들이 집에서 먹었던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늘 노력했던 요리사, 그가 환자들과 그토록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식당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부터 호스피스에서 요리사로 근무를 했다면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요리사로 기억되는 요리사로 그들의 마음을 읽는 요리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음식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냄새도 그 음식과 함께 했던 추억도 사람도 중요함을 그는 환자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과거에 음식을 함께 하며 나누었던 추억이며 모든 것들을 기억해주고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어 한끼의 식사라도 편안하게, 아니 한숟갈이라도 편안하게 먹게 해 주었던 그야말로 환자들에겐 ’천사’ 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한숟갈이라도 한모금이라도 생에 도움이 되게 더 먹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몸에서 거부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강제적으로 좀더 먹기를 권유하는데 나 또한 아버지에게 그랬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후회되기도 한다. 좀더 편안하게 드시거나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지 못함이 글 구석구석에서 아쉬움으로 눈물짓게 만든다. 

’당신은 오늘 내게 크나큰 선물을 해줬어요.’
맛있는 음식으로 때론 음식이 아니면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 선물을 해 주었던 그가 환자들에게 받는 찬사는 늘 가슴 뭉클하게 한다. 처음엔 환자를 안아도 될까 하고 망설였던 그가 서슴없이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그들 곁에서 손과 발이 되듯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녹여 주었다는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그들이 과거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무던히 애썼던 그,’나는 집에서 만든 잼을 먹고 자랐어요. 어릴 적 늦은 여름에 숲을 누비며 열매를 모았죠. 산딸기, 검은 딸기, 블루베리..... 쉽진 않았어요. 손에 가시가 찔렸죠. 그렇게 수확한 열매를 가지고 집에 들아올 때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뒤돌아 보니 고생도 재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자신의 추억에 비추어 환자 또한 똑같은 과거의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 믿었던 그의 믿음만큼 신선한 잼과 음식들은 그의 마음까지 녹여 주었다. 자신에게 온 크나큰 병을 받아 들이지 못하던 사람들이 점점 루프레히트의 요리에 마음을 열고 죽음을 받아 들이지는 자세가 좀더 여유롭게 편안해졌다는 것이 그런 선택을 받은 이들 또한 행운이 아니었나 한다. 환자를 옆에서 간호하다보면 간호하는 이들이 먼저 지치게 되는데 늘 같은 마음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냈던 요리사 루프레히트,그가 존경스럽다. 그와 환자들이 하나로 조화롭게 어울려 가는 이야기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갔던 이들이 그의 맛있는 음식으로 혹은 음식냄새로 인하여 자신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마지막을 받아 들이며 좀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리다. 다른 이야기보다 ’죽음’ 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 경건하고 가슴 뭉클하게 읽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경험했기에 더 가깝게 받아 들였던 이야기들, 읽는 동안 아버지가 생각나 머리가 무겁고 너무 울어 눈꺼풀이 무거웠다. 먼저 가신 모든 영혼들이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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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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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리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지며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 지리산이다. 요즘은 지리산 둘레길로 한차례 몸살을 앓고 좀더 세상과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사상의 흑과 백이 갈렸던 곳이기도 하며 그곳에서 산다는 것은 현대문명화된 생활에 길들여지고 타의에 의해 길들여진 것에서 벗어나 자생력이 강한 자연친화력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욕심' 을 버려야 비로소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곳인듯 하다. 다른 산들도 그렇지만 어느 계절에 그곳에 가도 정말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포용력이 강해 늘 그곳에 안기고 싶게 만드는 곳이 또한 지리산이다. 그곳에 벚꽃이 만개하고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고 하면 몸살을 앓듯 싱숭생숭하여 한 차례 하얗게 벚꽃으로 피어난 섬진강변을 달려야만 몸살이 가라앉듯 하는 지리산 소식은 그렇게 지난 봄에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하얗게 피어난 매화는 섬진강에 분분이 떨어져 지고 몽실몽실 피어난 하얀 벚꽃들 사이로 가슴을 열어 제치고 맘껏 달려 노란 산수유까지 담았던 가슴에 노고단의 안개까지 품고 오게 만들었다. 그 정상에서의 시원함이란 정말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한그루 나무가 된다 하여도 서럽지 않을 정도로 너무 좋았던 나날이었다.

그런 곳에 꽁지 작가의 친구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욕심이란 욕심은 모두 비워낸 그들,버들치 시인과 낙시인과 그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와 최도사등 문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만의 여유와 행복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지리산인생스토리가 공작가의 입담에 고스란히 녹아나 녹차처럼 맑께 우려나고 섬진강 민물매운탕처럼 칼칼하고 맛깔스럽게 담겨져 있으니 때론 웃으면서 때론 '아하~' 공감을 날리면서 재밌고 칼칼하게 읽을 수 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다 그렇듯 '그들만의 세상' 이 담겨지긴 했지만 인간사가 별거 아니라는 듯 그속에서 들여다보면 희로애락 모두가 지리산 골까기를 흘러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처럼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을 읽기전에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읽어서일까 두 책을 나도 모르게 맘속에서 비교하게 되었다. 수도원기행은 십여년전에 쓰여진 책으로 유럽의 폐쇄된 수도원을 기행하고 쓴 이야기라 조금은 살짝 무언가로 덮여 있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열려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음담패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 우리네 속까지 모두 드러내 놓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오히려 더 작가와 그의 친구들인 그들만의 세상사가 더 인간적이고 칼칼하지 않았나싶다. 

산다는 것 별거 아니란 듯, 연세 50만원에 지리산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와 행복을 맘끽하며 사는 그들만의 낙척전인 여유는 우리가 돈주고도 못사는 별천지 다방의 달달한 꿀피의 맛처럼 달디 달게 가슴에 들어와 별이 되어 박힌다. '내가 왜 시를 못 쓰는 줄 아니? 내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여기 지리산에 온 이후로 그게 자꾸 없어져. 그래서 시가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은 말하지. 그럼 기쁜 이야기를 써라.행복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기쁘고 행복한데 어떤 놈이 시를 쓰겠냐고.' 맞는 말이다. 기쁘고 행복한데 누가 시를 쓰고 누가 시를 읽겠는가. 나부터 시라고 하는 글을 쓸때는 내 마음 한구석이 '슬픔' 으로 가득차 있을 때 더 잘 써지고 더 좋은 표현들이 나왔다. 내가 기쁠때는 글을 많이 쓰지 못한 것 같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고 기쁜데 어찌 좋은 시가 써지랴. 버시인의 말처럼 슬프고 내 한구석이 비었다고 생각될 때 시도 나오고 좀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이 혼자 외로움을 삭이며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점점 하나가 여럿이 되어 가고 있다. 지리산은 그들을 모두 하나로 품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없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를 하며 외롭지 않고 많은 것을 가진사람들로 거듭난 것이다.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어느 누구의 이야기라도 이상향의 이야기처럼 섬진강 물 위에 떨어진 매화꽃잎처럼 아름답게 들린다. 졸졸 작가가 풀어내는 글솜씨 말솜씨도 한 몫을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네로서는 간단하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큰 결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삶이기에 더욱 값지게 들린다. 그들의 삶은 시인의 눈에 비치면 그대로 삶이 시가 되고 사진작가의 눈에 비치면 한 폭의 사진이 되고 자연 또한 음식이 되어 재탄생 된다. 한 낱 지리산의 일개 돌덩이처럼 굴러 다니던 그들이 뭉친 '섬진강 동네밴드' 이야기와 '지리산 학교' 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재밌다. 시를 창작하는 것보다 서로 즐겨는 시간이 더 많은 그들에게선 진정한 삶의 글이 나올 듯하다. 다재다능하게 여러 악기를 다루는 버시인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모두가 모여 하나가 되어 새로운 '하모니' 가 되어 지리산을 더 뜻 깊게 알릴 수 있음이 좋은 듯 하다. 그저 삶이 유희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곳이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지리산이 품은 알토란 같은 그런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도 그곳 '지리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이 아니고 다른 곳이었다면 그곳엣 하나의 소리가 되어 흘러 내릴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품어주고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곳이 바로 지리산인듯 하다.

'이곳에 온 지 10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 시간,시간이었어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이제 제일 큰 변화더라고요. 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팥빙수를 팔고 싶으면 팔고 가게를 닥고 몇개월씩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나죠. 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누가 와도 어울려요. 조선백자처럼요. 조선백자는 베르사유 콘솔에 올려 놓아도 시골집 뒤주에 놔둬도 어울리잖아요. 중국의 자기도 일본의 도자들도 그렇지는 못하죠. 지리산은 백자처럼 누구라도 품는 그런 산인 것 같아요.'

어떤 이가 무슨 이유로 그곳에 왔던 그의 과거를 들추지 않고 그곳에 한자리를 내어 주고 뿌리를 내리고 살게 만들어 주며 품어 주는 곳이 지리산인듯 하다. 위 글에서 얼마나 잘 표현해 놓았는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곳에 나 또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 지난 봄에 그곳에 여행을 가서는 우리도 언젠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자 라는 막연한 말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곳에 가면 누구라도 반하게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품처럼 보듬어 주고 그 속에서 사는 이들끼리 모두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가며 살게 되니 그곳에서 피어난 매화꽃처럼 혹은 하얗게 몽실몽실 피어난 십리벚꽃과 같은 이야기들의 뒷세상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50만원만 있으면 될 거야. 그러면 1년치 집세를 내서 집을 얻고 그리고 젓가락이 있으면 돼...... 술자리의 시작은 성서구절처럼 이약하다. '안주 고르시죠. 여기 메뉴 있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끝은 창대해서 이제 주인도 취하고 객도 취하고 안주는 계산도 없이 넘치고 기타는 울리고 노랫소리는 드높아 밤을 지새우게 된다. 나는 그 모퉁이에 앉아 누군가 해 놓은 낙서를 읽었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기 싫어 나는 도시를 떠났다.' 결코 도시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 그곳엔 있다. 지리산에. 지리산 그곳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세상사 욕심이란 욕심은 다 지나는 바람에 버리듯 자신을 비워 버리고 지리산행복학교에 한자리 내어 정착하고 싶게 만드는 꾸미지 않은 여유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따듯한 이야기에 가슴이 훈훈하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그 욕심을 버리면 행복은 그냥 따라오는 원 플러스 원 제품처럼 '지리산 행복학교' 에 녹아 있다. 나이가 좀더 든다면 나도 전원생활을 해 볼까 하는 로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겉으로 들어나는 부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부자인 것이 새삼 부러우면서도 스멀스멀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든다. 누군가의 삶을 살짝 엿보면서 이런 행복을 맛본다는 것은 내 삶이 더 향기로워질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다시금 그곳을 찾는다면 길가다가 잔치국수 한 대접 혹은 칡즙 한 컵 행복하게 마셔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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