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무척 재밌고 인상깊게 읽었다. 독특한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미스터리이면서도 그만의 특색을 뚜렸하게 나타낸 작품이 아닌가 한다. 다섯편의 단편과 그 단편들에 대한 '리들 스토리' 가 말하는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쇠락하여 대학교를 포기하듯 하고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고서점에서 일하게 된 요시미츠, 그 일 또한 직업처럼 여기지 않았기에 계산대만 맡아 하듯 하던 그에게 갑자기 커다란 일을 맡길 그녀가 고서점에 나타난다. 카나코, 암으로 돌아가신 평범한 자신의 아버지가 쓴 다섯편의 단편이 있다며 그것을 찾아 달라고 하는 그녀, 큰아버지의 일이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돈이 정말 급박하게 필요하기에 비밀에 부치고 알바생 쇼코와 일을 파헤쳐 나간다.

큰아버지의 고서점도 부동산 버블경기에 오르락내리락 그러다 지금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큰아버지 또한 일에 열정을 일어버린듯 알바생이나 요시미츠에게 일을 맡겨 놓고 빠진코에 가는 것이 낙이며 아내마져 오래전 잃었기에 삶에 낙이 없다. 사회에서 퇴물처럼 버려지듯 인생에 어두운 모퉁이를 돌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합채와 같던 고서점에 카나코가 등장하면서 그나마 요시미츠에게도 삶의 열정이, 서점 일에 대한 열정을 찾게 된다. 다섯편의 단편에는 거액이 걸려 있었던 것, 그것만 찾는다면 다시 복학을 하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아버지에겐 비밀로 하면서 열심히 발로 뛴 덕분에 한 편 한 편 찾아내게 되는 요시미츠, 하지만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단편들 속에서 한 사람의 미완의 삶을 보게 된다. '카노 코쿠뱌쿠' 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썼던 카나코의 아버지의 삶은 그야말로 비밀덩어리, 그를 만나면 한가지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앤트워프의 총성' 이라는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된 사건,그때 카나코의 나이는 네 살이다. 단편을 찾다보니 카노가 앤트워프의 총성에 대한 사고를 빗대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소설이 말하려는 진실은 무엇인지 다가가지 못한다.

'제 생각으로는 환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건,망자가 이승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한편으로 이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르쳐 주십시오. 그곳에서 삶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단편 소설속에는 공통점이 등장한다. 엄마와 아이 아빠 그렇게 등장하면서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로 열린결말을 해 놓았지만 '리들 스토리' 라고 집에는 그가 남겨 놓은 결말이 있다. 단편에 결말을 대입에 보던 요시미츠는 하나의 이야기에 두가지 결말을 대입해도 이야기는 결말이 맞아 든다는 것과 카노와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하여 듣게 되고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다가 다섯편의 단편이 주는 진짜 진실인 결말을 알아내게 된다. 지금까지 단편들이 전해주었던 이야기 속에는 그가 말하지 못했던 진짜 진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야기는 마지막에 반전을 가져다 준다. 소설속에 다섯편의 단편소설이 등장하는 독특한 구성이면서 미스터리이며 단편소설을 남긴 인물의 인생도 그 이야기들을 찾아 헤매는 요시미츠의 삶도 그리고 고서점 또한 모두가 내리막길처럼 어둡다. '하지만 그것은 카노 코쿠뱌쿠의 소설을 찾는 것을 넘어서 키타자토 산고라는 남자의 과거를 캐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랬다. 다섯편의 단편소설을 찾는 것은 한남자,산고의 과거를 추적하고 그가 일생일대의 커다란 오점으로 남겼던 '앤트워프의 총성' 이라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그 사건이후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처음엔 돈에 눈이 멀어 단편을 찾겠다고 하다가 점점 한남자의 과거와 그 가정에 대한 이야기에 빨려 들듯 다가가면서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요시미츠, 소설속 남자의 삶이나 그의 현실의 삶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빨리 그 일을 마무리 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큰아버지의 고서점이 활발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하고 다니는 일을 큰아버지가 아시면서 표를 내지 않고 있었기에 더이상 속이면서 더부살이를 하고 싶지 않은 요시미츠, 마지막 단편을 찾을 힌트를 그녀에게 주고는 한동안 그나마 열정을 쏟으며 어려운 현실에서 잠시 그를 벗어나게 해준 '다섯편의 단편' 들에서 멀어진다. 어려운 현실과 돈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현실이었기에 덥석 물었던 의례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잠시 자신의 현실을 잊었지만 그렇다고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자신이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게 되는 요시미츠의 청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불안한 청춘과 점점 하락해 가는 고서점과 한남자의 불행했던 삶등은 어찌보면 수평적으로 소설의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미스터리의 또 다른 면을 만난듯 재밌게 읽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춘천, 그곳으로 향한 나의 촉수가 곤두선 것은 언제부였을까? 중학시절 국어선생님은 정말 '사운드 오브 뮤직' 에 나오는 마리아처럼 혹은 그녀와 비슷한 외모아 감성을 가진 목소리도 이쁜 여선생님이셨다. 같은 지역에 병원장님 따님이셨던 선생님은 국어책에 나오는 것 외에도 영화나 뮤지컬 그리고 선생님의 추억담을 정말 재밌고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잘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의 입에서 어느날 뜻하지 않게 나온 '호반의 도시 춘천' 과 그에 얽힌 추억 이야기는 뇌리에 깊게 박혔다. 꼭 성인이 되거나 대학생이 되면 경천선을 한번 타봐야 할것만 같은 이야기에 빠져 들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다 여고생이 되었고 중학 국어선생님이 들려 주셨던 이야기속 춘천을 갈 기회가 되었다,수학여행을 여러곳 경우하는 곳 중에 춘천 소양강댐이 있었던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고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니 얼마나 이야기가 많을까. 여고시절에도 국어선생님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추억담 속에서 또 다시 춘천을 만났었고 내가 가지 않았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그곳을 갔다 온것처럼 괜히 물과 산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고 '경춘가도' '경춘선' 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친구들과 수능이 끝나면 꼭 한번 경춘선을 타보자는등 이야기를 하던 중에 수학여행중에 그곳에 가게 되었다. 경주부터 많은 일들을 꾸미고 구경 다니느라 피곤했던 친구들은 춘천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곯아 떨어져 자고 있었지만 난 그곳을 향하는 설레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차창밖 풍경은 정말 멋졌다.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친구들은 더욱 잠에 빠졌다. 나 혼자 '와..와..' 하며 차창밖 풍경을 감탄하듯 바라보게 되었고 소양강호에 내려서도 친구들은 비가 내리기도 하니 별 반응이 없었는데 난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빗속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던지.. 단발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하얀 얼굴의 가냘픈듯 하면서도 뭔가 눈빛이 살아있던 내모습은 지금도 사진 속에서 날 반겨주고 있다. 친구들은 버스에 타자고 했지만 난 나무밑에서서 소양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 하던 내게 소양호는 어머니품처럼 따스하게 내게 다가왔었고 그날의 소양호 자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춘천은 스치듯 내게서 멀어져갈즈음 사회생활을 하며 그곳의 위도로 단체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고슴도치섬이 되었다고 하던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듯 한데 그곳으로 떠나는 단체여행은 여름에 이르어졌다. 사회생활 초년병이었고 내게서는 풋풋함이 묻어나던 이십대의 싱그러움이 돋보이던 때, 친구들과 마냥 즐거움에 그곳으로 향하던 차안에서 또 다시 터진 감탄사, 역시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며 정말 좋아하며 가던 위도. 그곳에서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의 가게 앞에서 무척 굶주린 듯한 연로하신 촌로 한 분이 우유를 하나 사들고 나와서는 빨대를 우유에 꽂기 위해 우유팩을 여는데 여는 곳을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얼른 뺏어 들고 빨대를 꽂아 드렸을터인데 여럿이 줄서 있고 그땐 무척 더워 짜증도 나고 한참 묘한 기분에 쌓여 있어서 구경만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한 친구가 나와 할머니의 손에서 빨대와 우유를 뺏어 들고는 우유팩을 열고 빨대를 꽂아 드리며 '맛있게 드세요.' 했던 것이다. 그 말과 충격에 내 더위는 물러간듯 하였고 위도에 도착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얼른 나서서 해드리지 못했을까.. 할머니를 구경도 못하고 자라서인지 내게는 조금 낯선 단어이며 존재였던 것인데 그 순간에 모든 것들이 한번에 무너져 내린듯 했다. 물론 위도에서는 정말 재밌고 추억의 순간을 모두 저장해 놓을 사진들까지 고스란히 잘 담아 왔다. 춘천과 위도하면 내겐 그 할머니가 늘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빨대와 우유를 들고 당황해 하던 할머니, 지금은 먼 기억속 시간들이라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 생각을 하면 죄송스럽고 괜히 미안해진다. 베푼다는 것은 큰것이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한 것인데 그러지 못한 이십대의 내 얼굴을 보는 듯 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이십대의 춘천이 그렇게 지나고 결혼과 함께 춘천을 다시 가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결혼을 하게 되고 예고도 없이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비행기를 타고 국외로 나갈까 국내 제주도로 갈까 했는데 난 너무 식상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땐 제주도를 가던 시절이다. 남편에게 우리만의 여행이니 추억에 남도록 자유여행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미리 전국지도도 한 장 사 두었지만 남편의 친구들이 결혼식 뒷풀이까지 찐득이처럼 따라와 신혼여행은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출발을 해야 했다. 전국지도 한 장 들고 폐백에서 받은 돈을 모두 챙겨 가방에 넣고 남편의 보약 한 상자 차에 실고는 음료수와 먹기리 간단하게 챙겨 뒷자리에 넣고 우린 그냥 달렸다. 그렇게 간 곳이 부산,그리고는 그다음부터는 우리 맘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쉬며 놀며 그렇게 여행을 했다. 사월 벚꽃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어디를 가도 너무 멋진 계절이고 시간이었다. 신혼여행이란 티를 내지 않고 그저 쉬며 놀며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 바닷가를 구경하며 설악산까지 올라게 되었고 설악에서 다시 내륙으로 들어오며 갈만한 곳을 물색하다 어린시절 추억의 그곳 '호반의 도시' 에 들르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 어느 시장통에 잠자리를 잡고는 '춘천에 왔으니 역시나 닭갈비..' 하며 닭갈비집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닭갈비를 둘이서 맛이게 먹었다. 춘천의 닭갈비가 그리 다르진 않았지만 신혼여행중이었고 일주일여 여행중에 도착한 그곳에서의 닭갈비 맛은 정말 좋았다. 시장통의 소란스러움과 함께.어른들은 일주일여 여행했으면 돌아올때가 되지 않았니 하셨지만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았다. 이십여녀전 이야기이니 얼마나 여행에 굶주렸겠는가.춘천의 닭갈비고 먹었으니 '남이섬' 에도 들려야 한다고 했고 남편은 인근한 곳에서 군생활을 했다며 그곳에도 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하여 '남이섬'에도 가고 그가 군생활을 했다는 근처를 지나기도 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지나쳤던 춘천의 시장통의 소란스러움과 닭갈비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던 설레임이 생각나고 느껴진다. 언제 한번 딸들을 데리고 가봐야지 하는데 그게 안된다.

딸들이 시간적 여유가 나던 몇 년 전에 강릉여행을 가게 되었다. 봄바람이 무척 사납던 봄날에 그곳에 여행을 갔으니 돌아오는 길은 춘천에 들러볼까 했다. 막내가 좋아하는 '춘천막국수'와 큰딸이 좋아하는 '춘천닭갈비' 를 먹고 가자고 하였는데 어찌하다보니 그곳을 들르지 못하고 다음기회로 미르고 말았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춘천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늘 가보고 싶은 '청평사' 다시 맛보고 싶은 신혼여행시절에 먹었던 '춘천닭갈비' 도 다시 먹어보고 싶은데 기회가,아니 여유를 못 내고 있다.그러다 만난 '춘천,마음으로 찍은 풍경' 을 읽다보니 작가들 또한 나처럼 고향이거나 아니면 제2의 고향이 되었거나 그외 어떤 일로 만난 춘천은 그대로 청춘이고 추억이다. 나 또한 내 청춘 한 켠에 춘천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그들의 글을 통해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춘천의 모든 곳과 아름다움 춘천스러운 것을 모두하지는 못했지만 잠시 지나쳤던 청춘의 순간에 춘천이 자리하고 있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음을 본다. 그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춘천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새롭게 경춘선이 놓이고 춘천가는 길은 빨라 졌는데 그만큼 춘천은 내게서 또는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지 않았나한다. 빨리 가는 길이 좋은게 아니라 모든것을 추억하고 느끼며 천천히 되새김질 하듯 추억을 더듬으며 가는 '비들기호' 같은 느릿함이 춘천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느 가수의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말처럼 그곳에 가서가 좋은 것이 아닌 그곳으로 가는 동안의 그 설레임이 더 좋은 춘천은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느껴지며 안개와 호수가 감싸고 있는 아름다움이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만 같다. '고향은 나를 괴롭힌게 아니라 내가 고향을 괴롭힌 것 같다. 이제 춘천은 가을 산길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들국화 같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세월이 이어졌지만 춘천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전원다방에서 시작해 전원다방에서 끝난다. 지금은 사라진 아스라한 공간, 전원.전원다방 흥망사는 곧 내 청춘의 흥망사였다.' 누군가의 흥망사를 흡입하다니 그 속에 내 청춘의 흥망사 또한 자리하고 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운영이라는 작가를 만난 것은 <잘가라,서커스>라는 작품에서다.처음이었지만 그녀의 작품에 빠져 기억에 콕 박아 놓은 듯 그녀에게서 헤어나질 못하고 그녀의 이름 곁에서 뱅뱅 맴돌았다. 그러다 그녀를 겨우 잊고 있었는데 다시 만난 작품 <생강> 은 또다시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의 곁에서 맴돌게 만든다. 생강이란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김치나 음식에는 꼭 필요한 양념이다. 나도 생강의 그 알싸한 맛을 싫어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 맛과 향에 빠져 들고 말았다. 생강이라는 양념은 그 존재를 잊고 있다가 김치를 씹다가 살짝 씹히면 '아..' 하고 그 존재감에 씹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잠시 생강이라는 놈의 매력에 빠져 들다 녀석을 얼른 삼켜 버리게 된다.

선이라는 그녀는 동네 미용실을 하는 엄마와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 들르는 아빠와 살고 있다. 정의로운 일을 하여 훈장을 받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옳바른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쳐 왔기에 지금껏 남의 눈에 나는 일을 하며 산적이 없다. 그녀에겐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녀만의 추억의 장소인 미용실에 딸린 작은 다락방이 있다. 그곳엔 그녀가 그동안 자라오면서 간직한 모든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곳엔 아빠가 직접 전기도 끓어다 전구도 달아주시곤 했다. 그곳은 겨우 앉을 수 있는 정도의 높이라 그녀는 친구 진이와 가끔 그곳에 누워 추억을 되새겨 보는 재미에 빠져 들곤 하는 그녀에겐 정말 소중한 장소이다.

소설은 끔찍할 정도의 고문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그렇다면 고문을 행하는 이는 누구일까, 소름이 돋고 하얀 털이 곤두서게 하는 무서운 힘을 가하는 인물, 그는 다름아닌 안가인 선의 아빠였던 것이다. 가족은 모두 그가 경찰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는 모두가 알아주는 고문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인물이었던 것. 하지만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무서운 행각은 세상에 들어나고 그는 쫒기는 인물이 된 것이다. 딸의 이름이 '선' 이라면 아빠라는 인물은 세상사람들에게 '악' 으로 통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모두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어 가족이 있는 집으로 찾아 들지만 그곳 역시나 믿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하다가 생각해 낸 곳이 바로 선의 '다락방' 이었다. 그녀에겐 너무 소중한 추억들이 모두 담겨 있는 그곳에 세상의 악이라 불릴 수 있는 고문최고인 아빠라는 인물이 괴물처럼 그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녀가 자리할 때는 소중한 장소이던 곳이 아빠라는 괴물이 차지하고 나니 그곳은 다른 장소로 변했다.

선의 엄마는 다시 돌아온 남편이 반갑고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미용실의 다락방에 숨어 지내게 되니 반갑고 정이 새롭다.맛난 것들도 해서 올려 보지만 그도 하루 이틀 지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가 힘에 겹다. 딸 선 또한 학교에서조차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아빠라는 인물은 어느곳에서나 그녀의 발목을 잡고 물귀신처럼 늪에 빠져 들게 한다. 그녀가 세상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살도록 족쇄와 같은 인물이 된 아빠, 그를 다락방에서 내쫒고 싶지만 엄마를 봐서도 그들을 괴롭히는 세상사람들을 향해서도 드러낼 수 없는 오물같다. 다락방을 차지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하여 세삼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씹을수도 없고 뱉을수도 그렇다고 꿀꺽 삼킬수도 없는 생강과 같은 존재인 아빠를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들은 병들어가듯 세월만 축낸다. 아빠 또한 다락방에서 괴물처럼 변해간다. 그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딸과 거래를 하기도 하고 아내의 모든 것들을 간섭하려 한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 아빠라는 인물이 다락방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세상사람들 눈을 속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빠 때문에 대학도 포기하고 늘 보아오던 엄마의 직업을 대물림하듯 미용사의 길을 걷는 그녀, 하지만 그도 힘들다. 세상에 자신 혼자 던져진것처럼 늘 외롭고 힘들고 집에 오면 다시 '아빠라는 다락방 괴물' 과 마주해야 한다. 딸과 아빠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다시 보게 된다. 딸을 이해 못해주던 아빠,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던 아빠를 이제는 애기처럼 시중들어주면서 괴물처럼 여기고 있는데 그녀가 원하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야 한다. 소설은 더이상 아빠라는 괴물을 다락방에 가두어 두지 않는다. 죄값을 단단히 치르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아빠와 아빠로 인해 세상을 삐딱이로 보았던 그녀가 엄마의 미용실을 이어 받아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선과 악이라는 아빠라는 괴물의 죄값이 싸웠지만 그녀가 이겼다. 희망적으로 모두를 보듬고 있다. 고문을 하는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아빠와 선이라는 딸의 양면성의 대립도 잘 그려냈으며 중간자처럼 자리하는 엄마와 늘 가게앞을 지키는 인물등 아직 버무려지지 않은 재료들을 하나의 맛으로 버무려 내기 위하여 그녀만의 촉각은 바짝 긴장하여 있는 것처럼 나의 하얀 솜털까지 모두 세워 놓는다. 독특한 제목과 함께 그리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인간의 선과 악을 통하여 추억과 현재의 마찰까지 잘 그려냈다. 그녀의 이름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 주는 작품으로 기억될 듯 하다. 선이라는 그녀가 다시 희망을 찾아 나 또한 밝게 책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그녀가 만약게 아빠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방황을 했다면 내 마음도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도 선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듯 새로 서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니 다행이다. 그 가족에게 미래는 희망적이니 생강이라는 알싸한 맛이 독특하게 작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너 고문이 뭔지나 알아?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는 게 고문이야. 고문 때문에 이 땅의 청년이 죽었어. 컴컴한 방에서 물을 먹고 죽었다구.지금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아? 고문 조작으로 간첩이 된 사람들이야. 조기나 잡으면서 평범하게 살던 어부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게 고문이야. 술 먹고 말 한번 잘못했따가 끌려가서 간첩이 되는게 고문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들어 읽은 한국소설중에 제일 기억에 남을 그런 소설을 만났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책인 <내 심장을 쏴라> 를 구매해 놓고 읽어야지 했는데 책이 없어졌다. 이중으로 꽂아 놓은 책임도 있지만 딸들이 가져가서 학교에서 읽는다고 한것 같은데 찾아보니 않보인다. 이 책을 읽고나니 더욱 읽고 싶어졌다.'7년의 밤' 7년전 '세령호사건' 이 있던 날 밤이 지나고 7년이 지난 후 다시 시작되는 악몽과 같은 악연의 마지막을 퍼즐을 맞추듯 흩어진 짝들을 찾아 짜맞추어 나가다보니 하루종일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마을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꼭 어디엔가 존재할것만 같고 이미 지나쳐 온 어느 마을인듯 한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사형제도'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존폐를 놓고 찬반 논란이 많은 사형제도가 이 소설속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읽고 나고 알고 나면 정말 죄가 미운것이지 결코 사람이 미운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소설은 첫 시작부터 마음을 콱 조이게 만든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도대체 왜 '나' 라는 인물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어야 했을까.아버지와 나와의 사이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죄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에 아버지가 사형수가 되어야 했을까. 궁금증을 툭 던져 놓고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들은 소설의 첫 문장을 무척 고심하고 공들여 쓴다고 알고 있다. 김훈 작가도 언제가 그런 글을 쓴듯 하고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첫 문장으로 기억되는 그런 소설들이 있다. 이 소설 또한 소설 전체를 암시하는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는 문장 때문에 저 긴장을 하며 읽게 되었다. '세령호의 재앙' 이 잠시 그려지고 이야기는 세령호 사건 이후 서원과 승환이 왜 바닷가 마을을 돌며 정착을 하지 못하고 사는지에 대하여 나온다.그들이 왜 떠돌이가 되었을까.세령호 하건 이후 사형수의 아들인 서원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못 받지만 주목받는아이다. 그의 정체가 들어나면 다시 이동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그의 곁엔 든든한 룸메이트인 아저씨 승환이 있어 버틸만 하다. 세령화 사건이 있고 7년후 그는 소년에서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사형수 아들' 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떠돌이생활을 하다가 어찌하여 등대마을에서는 일년을 정착하며 살게 되었는지 그들도 모른다. 그동안 아저씨에게서 잠수를 배우고 약국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철없는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찾아와 다이빙을 하자고 하지만 아저씨와 서원은 안된다고 말린다. 술이 깬 후 다음날에 해도 늦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은 젊은 객기를 부려 취한 상태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가 나고 만다. 그 사고로 인하여 그들의 정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서원과 승환은 왜 룸메이트가 되었을까. 승환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했지만 그의 뜻과는 맞지 않아 자신의 길을 걷고 싶어 떠돌이 생활을 택했다. 그의 꿈은 작가, 하지만 컴퓨터 화면만 보면 공황장애가 오듯 하여 한줄도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잠수와 구조일이 몸에 베어 저수지관리 보안팀에 근무를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러다 세령호에 오게 되었고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는 전직 야구선수이며 그의 포지션은 포수다. 12살에 구단사람들에게 눈에 띄어 야구에 적합한 체격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월남에 다녀온 상이군인으로 폭군이나 마찬가지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고 고래고래 노래를 하며 집안은 나몰라라 뒷전이고 그 어려운 살림을 어머니가 책임지고 맏이인 현수가 동생들을 거두었다. 그가 살던 동네는 등대마을로 망망대해와 같은 수수밭이 있고 그 수수밭 가운데엔 우물이 있다. 아버지가 미웠던 현수 아버지의 신지도 못할 구두를 우물에 빠뜨리려 갔다가 우물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저 마을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그런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진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불렀던 것, 그렇게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게 되고 그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어 야구를 하다가 팔에 힘을 잃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2군에서 맴돌다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은주라는 어렵게 살았던 여자와 결혼을 하게된다. 이 소설 속에서는 모두 상흔을 가지고 있다. 그 트라우마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트라우마 속에서 허덕이다 결국에는 살인과 광기로 결말을 맺는다.

야구를 그만둔 현수 또한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이 있다가 얻게 된 직업이 저수지보안팀에 들어오게 된 것인데 알뜰한 아내 은주가 대출을 받아 빠듯하게 아파트를 장만하면서 세가족은 세령호로 할 수 없이 내려오게 되고 서원과 승환이 한방의 룸메이트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려오기 전날, 현수가 그야말로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사건은 모두 그날밤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처럼 세령호에서 만나다. 이 부분은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꿈의 도시' 에선 등장인물 모두가 교차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로 인해 정리가 되는데 이 소설은 '세령호 사건' 으로 시작이 된다. 현수의 교통사고, 그는 음주에 무면허에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그것도 12살 자신의 아이와 같은 나이의 소녀를 치었던 것,하지만 그녀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데 현수는 그 괴물과 같은 왼팔로 그녀의 입을 막아 죽게 하고는 세령호에 빠뜨렸던 것, 하지만 그 물 속에는 세령호에 잠든 마을에 궁금증을 느낀 승환이 있었던 것, 승환은 사고의 목격자였던 것이다. 현수가 치어 죽게 한 소녀 세령은 그럼 누구의 딸인가. 그 주변을 쥐락펴락하는 치과의사이며 수목원의 주인인 오영제의 외동딸로 그녀는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다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죽게 한 것은 정말로 누구일까. 그녀를 죽인 진범은 현수일까 영제일까.

12살 소녀와 소년의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서원의 짝이되었을 것이고 이웃의 친구가 되었을텐데 그녀가 죽었다. 누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죽게 하여 세령호에 잠들게 했던 것이다. 영제에게 외동딸인 세령은 '소유물'이다. 자신의 명령과 손짓에 의해 아내도 딸도 모두 그림처럼 박혀 있어야 하고 말을 들어야 한다.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아야 하는데 아내 또한 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상황에서 이혼소속중에 아이가 죽었다. 그의 소유물이 없어진 것이다. 자신의 소유물에 해를 가한 가해자를 교묘하게 찾아가는 영제는 승환인가 하다가 현수임을 알안낸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암시하는지, 서원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히죽히죽 웃는 형광색 해골인형 때문에 영제는 그의 차를 생각해 내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영제는 현수 뿐만이 아니라 그가 노리는 것은 현수와 서원이다. 그에게서 딸 세령을 빼앗아 갔듯이 현수에게서 서원을 빼앗고 그 값을 톡톡히 느끼게 해주려는 잔인한 광기는 서서히 현수의 목을 조르듯 한다.

오영제, 그 또한 누구인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어려움없이 왕자님으로 살아 온 그, 그의것은 아무도 손을 델 수 없다. 망가뜨려서도 안된다. 모든 것들은 그의 소유물이다. 아내 하영 또한 그의 눈을 피해 달아났지만 언젠가는 찾아서 자기 자리에 박아 놓아야 한다. 그의 자인한 광기는 어쩌면 어려서부터 떠받들고 키운 부모에게 있다. 현수도 영제도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끔찍한 결말을 만드는데 현수는 그라운드에선느 그토록 보이지 않고 풀 수 없던 문제를 자신과 서원의 삶에서 이제 마지막 문제를 풀 듯 지난 '7년전 세령호의 밤' 을 더듬고 더듬어 현재 자신의 사형집행일에 벌어지게 될 영제의 반격에 대비한 마지막 게임에 대비한 결말을 준비한다. 그 모든 몫을 승환이 상사의 말을 맏아 행동하게 되면서 소설 속에는 승환의 소설이 등장한다. '고양이는 뭔가를 할퀴어야 하고, 개는 뭔가를 물어 뜯어야 하며, 나는  뭔가를 써야 한다.' 쓰고 싶었지만 작가가 아닌 대필작가에서 지금은 아무것도 못 쓰고 있는 승환이었는데 세령호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그가 트라우마에서 벗아나게 된 것이다. 위 말처럼 할퀴고 물어 뜯고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진실을 밝히고,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라는 것이다. 

'지난 사흘, 그가 꾸었던 꿈은 꿈이면서 꿈이 아니었다. 꿈속의 현실이었다. 현실 속의 꿈이었다. 열두 살 시절 그를 지배했던 우물에 대한 기억이었다.' 현수가 교통사고를 내고 세령호에 머물면서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밤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몽유병자 된다. 그는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그 꿈속에서 자신이 잊고 싶었던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과 세령의 죽음과 맞물려 세령호에 신발을 던져 넣은 일을 밤마다 되풀이한다. 만약 그가 저지른 교통사고가 꿈이었다면 지난시절의 악몽과 같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수수밭과 우물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나약한 순간에 나타나는 용팔이현상, 죄를 담아 두고는 못산다. 언제가 어느 부분에서든 죄는 반드시 수면으로 떠 오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것이 꿈이기를 꿈이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계바늘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현수와 사형집행일에 다시 만나게 되는 영제와 승환과 서원, 그리고 두 형사들은 7년전 세령호사건을 결말 짓게 된다. 그 마지막 게임에서 야구장에서는 그토록 잘 보이지도 않고 읽지도 못했던 용팔이 최현수가 자신의 아들 서원을 위해 승부수를 읽게 되고 악마 영제의 손에서 그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을 승환에게 알려 주어 7년전 세령호 사건은 진실이 밝혀지며 결말을 짓게 된다. 그것도 다름 아닌 용팔이 최현수에 의해.

'오영제와 팀장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위태로웠다오영제는 살해당한 아이의 아빠였다.충졸지점을 향해 폭주하는 자동차였다. 팀장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었다. 두 극점 사이에서 '어떤 일' 이 일어나고 있었다.그게 어떤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아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피해자의 아빠와 가해자가 만났더 그것도 이웃에서. 가해자에겐 피해자가 잃어버린 딸과 똑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다. 만약에 영제가 좀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잔인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것이다. 아니 그 전에 현수가 아마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승환의 기다림처럼 '자수' 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영제의 잔인한 광기가 보태어지고 현수 또한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아버지' 라는 인물과 너무도 똑같이 닮아가고 있는 저 자신의 괴물과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가고 함이 세령호의 안개처럼 모호하게 번져간다. 안개는 사람의 심리마져 이상하게 만드는데 소설은 세령호의 안개와 더불어 흐릿하지만 서서히 안개가 걷혀 가듯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 하나 제자리를 잡아 가면서 '정말 재밌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어찌보면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정신질환' 을 앓고 있거나 그런 아픔의 상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수가 정신과치료를 받았더라면,영제가 겉모습과 다른 인간성을 가져더라면 '마찰' 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극과 극을 향해 달려가던 두 전차가 만나 불이 붙고 그 사고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 세령호 악령, 읽고나면 무언가에 홀렸다가 빠져 나온듯 하다. 잠수와 야구등 전문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어 작가가 어려움을 겪었을것도 한데 정말 세세히 표현을 잘 해 놓았다. 현수가 포수여서인지 이 소설은 야구게임을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이 마지막에 부딪히게 된 사건은 어쩌면 '구회말 투 아웃' 에 다시 시작된 게임과 같다. 하지만 노련한 포수 최현수가 그라운드를 잘 읽어 그들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아무 미련없이. 포수 최현수가 진작 자신의 인생을 잘 읽어 다른 패를 써 보았더라면 이런 잔인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터인데 모든 것은 지나고 나봐야 답이 나온다. 미리 인생의 답을 알 수 있는 해안을 가졌다면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고 시작되지 않고 아마도 12살 두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되어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탄탄한 구성과 세밀한 표현,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 전개등 작가의 저력을 맛보았다. 어디 내 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작품으로 요즘 <엄마를 부탁해>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인데 이 작품 또한 그런 길에 합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했던 작가의 고집과 필력을 보며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스타벅스 커피 매장을 난 한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커피 매장인 엔젤리너스나 카페베네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카페들은 지나다니며 볼 뿐이고 카페베네는 집근처에 있어 한번은 가서 커피를 마셔가며 그 분위기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아직이다. 요즘은 우리 동네 뿐만이 아니라 갑자기 커피 전문 매장이나 커피매장이 무척 많이 생겼다. 얼마전 모 방송에서 '커피스페셜' 을 하는 것은 잠깐 보았는데 커피 수입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몇 번째에 든다는 것을 본 듯 하다. 그만큼 커피 소비가 많은 우리나라, 커피전문매장은 이용하지 않지만 나 또한 커피 애호가이다. 식사후이거나 독서를 할 때는 늘 커피를 곁에 두고 있는다. 그렇다면 커피 한 잔에 담긴 경영은 어떠할까.

미국 뿐만이아니라 세계에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면 '커피 한 잔' 에 대한 경영은 좀더 냉철하면서도 점점 늘어나는 브랜드들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고유의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해외 여행에서 보았던 커피 한 잔으로 나누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대감이 좋아 시작하게 된 경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름의 경영철학이 보태져서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 하지만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스타벅스에게도 위기가 닥친 것이다. 서로 몸집만 불리려고 하다보니 스스로 우물을 판 것처럼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때 냉철한 눈으로 현실을 보게된 그는 위기를 기회로 스타벅스를 다시 일으켜야겠다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를 해야 한다는 냉철함으로 다시 일선에 뛰어 들게 된다. 그렇다고 전직 경영자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바로 지금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점점 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으리란 판단을 내린 그는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간다.

모두가 예스한다고 그게 옮은 것이라 할 수 없을때가 있듯이 한사람이 예스한다고 그게 잘못된 방법이라 할 수 없다. 'Onward'를 하기 위하여 지금,바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발생된 이메일 사건 이후 그는 다시 경영에 복귀하여 정말 스타벅스가 처한 위기가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기업이건 가정이건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정상이라고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하양곡선을 그리게 되어 있다. 정상유지를 이어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하지만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막대한 손해를 감당해가면서 그 위기를 다시 개선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일을 그는 해낸다. 전국의 매장이 하루 문을 닫는다면 얼마의 손해가 오는 것일까. 문을 닫아야 하는 매장 몇 천개를 닫는다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손해란, 공식에 대입하여 손해를 따진다면 문을 닫는다는 것도 매장을 없앤다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더 나은 전진을 위한다면 누군가는 해야 한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였어!' 매장의 몸 부풀리기를 하다보니 원래 가졌던 뜻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처음 가졌던 것을 찾기 위하여 커피 머신을 바꾸어 보고 새로운 맛의 커피도 찾아내게 되고 무엇보다 기초가 되는 바리스타들의 교육부터 다시 시킨다. 잘못되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자세로 모든 것을 새롭게 고쳐 나간다. 매장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면 고객의 의견을 들어 고쳐 나가기도 하고 동종매장과 매출비교를 하여 몸부풀리에 나서기 위하여 팔기 시작한 샌드위치를 과감히 빼야한다는 것도 찾아내지만 그동안 익숙하게 당연하게 생각되어졌던 노른자와 같은 것을 빼낸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었지만 스타벅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하여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스타벅스 안에서도 시끄럽고 밖인 언론도 시끄럽지만 당장은 피를 보게 되더라도 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 나오면 더 단단한 스타벅스를 만나기 위하여는 모두가 이겨내야 하고 지금 당장은 변화된 이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상인이라면, 고객의 마음속에 마법을 부릴 수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늘 마법을 찾아다녔다'.  고객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유동의 고객을 잡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로 여러가지 부분들을 수정해 나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믿음' 이다.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다시금 수익곡선은 올라가지 않았나한다. 폐점된 매장의 직원을 다른 매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고객 한 명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줄 알아 무심히 넘겨 버리기 보다는 고객의 본심을 기억해줄때 매장을 찾는 횟수는 줄어 들어도 잊지 않고 다시 찾을 수 있게 하기도 하며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지구 환경에도 널리 함께 이로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커피 한 잔에 담긴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요즘 '공정무역' 이라 하여 모방송에서 '공정커피' 라는 이름으로 커피 한 잔으로 나누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이 책은 한사람의 마인드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큰 울림을 보게 된 듯 하고 그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비단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어 '자유발상' '자유토론' 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헤쳐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발상의 전환' 이 가져다 주는 무한한 능력이 한 기업을 다시 살려내는 과정을 보면서 실패의 쓴 맛을 경험으로 바탕으로 도전과 혁신을 이어나가 전진을 하는 스타벅스의 힘은 하워드 슐츠 혼자만의 능력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일구워낸 힘임을 본다.

'직원 평가와 임금 인상 역시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교대 일정 또한 융통성이 없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저 바리스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월급쟁이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점장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스스로 매장 운명의 주도권을 쥔 경영자라는 마인드를 심어주려면 적적한 교육 과정과 인센티브 제도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런 내부적인 문제들은 간과한 채 오직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리는 데만 박차를 가했으니, 지금의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 어찌보면 스타벅스는 '질이 아닌 양'으로만 커져나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양이 아닌 질' 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진흙에 손을 넣읍시다' 지금 손에 흙을 묻혀야만 한다. 한사람이 아닌 모두가 진흙에 손을 넣고 함께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하며 함께 힘써야 위기에서 벗어나 기회를 성공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살기 위한 길이 아닌 모두가 살기 위한 길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 기업의 경영에만 해당이 될까, 가정이나 개인의 삶 또한 한번 뒤돌아 보게 한다. 흙에서 시작하여 고객에게 한 잔의 커피로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길을 거쳐오게 되는 커피,그것이 기업윤리 뿐만이 아니라 환경경영까지 참여를 하며 보다 폭넓은 기업마인드로 거듭나기 위하여,불확실한 미래로의 전진을 위하여는 지금 위험요소가 따른다 하더라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을 가지치기를 철저히 하여 위기를 잘 극복한 스타벅스, 책을 들고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셔보며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게 만든다.한편으로는 냉철하면서도 한편으로 인간미를 잃지 않는 그의 경영은 앞으로의 스타벅스를 더 주목하게 한다. 그저 비슷비슷한 커피 매장이 많기에 그런 매장중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위기관리를 철저히 하여 다시 부활한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나니 스타벅스라는 것이 새롭게 각인된다. 하나의 커피향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매개체' 라는 말에 깊게 공감을 하며 그의 도전과 열정을 살짝 훔쳐 내 삶에 적용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