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 이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뉴 노멀 탐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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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워낙 좋아해서 내가 '집사람'이라고 자주 놀리는 사람이 듣는 강의에서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야기하러 나온 사람이 책을 썼다는 걸 알게 됐다. 유튜브에 강연이 여러 개 있어서 그걸 들어도 되지만, 영상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정말이요?) 굳이 책을 찾아 읽는다.

내 글에 진지한 소중한 친구는 글에 '정치'를 묻히지 말라고 했다. 정치 묻히기 좋아하는 내게는 참 시의적절한 충고가 아니라 할 수 없겠다. 나도 그러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는 내게 중요한 '문젯거리' 중의 '문젯거리'여서, 나는 자꾸 정치에서 멈춰 선다. 이야기하다 보면 자꾸 진영논리로 가게 되고, 손바닥에 왕자 새겨진 걸 다 보고도 윤석열에게 투표한 사람을 약 올리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어떤 사회적 제도나 문화보다 훨씬 더, 정치는 더 적극적으로, 더 직접적으로 우리 삶을 통제하고 규율한다. 내 삶을 제한하는 그런 강력한 권한을 '누구'에게 양도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내겐 그렇다.

2024년 12월 3일 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갑자기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퍼뜩 떠오른다. 만약 그 밤에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민주당 의원들과 일부의 국힘 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정족수가 부족했다면. 특전사 707 부대가 5분 먼저 진입해 국회 전체를 단전시켰다면. 일부, 아니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흥분한 상태에서 국회 내부에서 공포탄을 발사했더라면. 수도방위 사령부 담당관의 서울 상공 진입 불허 때문에 작전이 40분 이상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반팔 위에 패딩을 입고 택시 타고 달려온 시민들이 국회를 에워싸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않았더라면'이 그 반대의 힘으로 '그러했기에' 결국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그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되고 있어 한 고개 지나면 또 한 고개. 그 고개 지나면 또 한 고개의 지루한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의 집권이 계속되는 세계, 윤석열의, 정확히는 김건희의 정적들이 제거되는 세계는 그 힘을 잃었고, 지금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산다. 국민 주권의 실현이, 그 이상적이고 원대하며 고상한 비전이, 우리에게는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현실 속에, 그 이상 속에 산다.

우리의 실천이 성과로 우리에게 닿을 수 있었던 건 '국민 주권'이라는 대의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무력마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통령도, 대통령마저도(대법관들 정신 차려라! 이 나라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시킨 나라다. 니들이 뭐라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경우, 절차에 따라 탄핵될 수 있다. 국민들에게 동의 받지 않은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에서는 정치가 아닌 경제의 힘을 믿는 이들, 즉 일군의 사업가들이 앞으로 미국의 역사를 좌지우지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다. 그때의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국민들에게 동의 받지 않은 권력이며, 그럼에도 국민들을 종속시킬 수 있는 권력이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 틸,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일론 머스크,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이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CEO 알렉스 카프, 트럼프 2기 부통령 J.D. 밴스(알라딘 책소개)가 바로 그들이다.

저자는 이 그룹의 리더를 피터 틸이라고 보았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후, '나는 게이지만 트럼프를 지지한다'라고 말했던 피터 틸은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트럼프의 좌우를 모두 틸의 사단으로 채워나갔다. 좌-밴스, 우-머스크.

체스를 사랑하고, 톨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너무 많이 읽어서 세세한 내용까지도 외우던 소심한 소년 피터 틸은 스탠퍼드 대학 2학년 때, 본인이 편집장이 되어 <스탠퍼드 리뷰>를 창간했다. 편집진은 모두 백인 남자였다.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이들 12명의 남자들은 술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고, 여학생들을 쫓아다니느라 바쁜 신좌파 대학생들을 멸시하면서, 지-덕-체 함양에 힘썼다. 이후 실리콘밸리의 교주로 등극한 틸은 좌파의 문화전쟁 때문에 미국의 미래가 지체되었다고 주장했다.(66쪽) 피터 틸을 비롯한 이들 4인방이 추구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 창업이었던 페이팔부터 틸은 기술과 정치의 결합을 추구했는데, 이는 중앙정부를 통하지 않는 금융혁명의 시작이었다. 대반동 시대의 개막은 틸의 집에 모였던 소수의 사람들 중 커티스 야빈의 『암흑 계몽』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는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주고 그 후 민주주의를 배양한 계몽사상에 대한 비판(76쪽)이다. 이른바 신반동주의다.

신반동주의는 일국일제, 즉 일국가 일체제도 부정한다. 일국사회주의만큼이나 일국자유주의도 배격한다. 그들이 보기에 모든 현대 국가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다. 오로지 하나의 이념과 체제를 국시(國)로 강제하기 때문이다. 고로 일당제와 양당제와 다당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강요하고, 미국은 민주주의를 강제한다. ... 군웅이 할거하는 유사 봉건적인 도시국가 시스템을 국민국가 이후의 질서로 모색하는 것이다. 각각의 작은 도시국가가 하나의 기업처럼 작동한다. 위로는 CEO 군주를 앉히고, 아래로는 일종의 주주로서 주민 사회가 작동한다. 군주는 주주=주민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하여 도시를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은 다른 유능한 군주=CEO가 다스리는 도시로 이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의 거래와도 비슷하고, 유튜브 시장의 구독 모델과도 흡사하다. (77쪽)

'무엇이 진짜 미국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서 새롭게 창조된 미국의 이상이 서구, 백인, 남성, 엘리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들, 극히 소수의 남성들의 담합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럴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쟁이에, 깡패처럼 협박을 일삼는 트럼프는 이런 남성들에게 선택된 사람일 뿐이다. 정치에 개입한 경제 세력은 그들이 가진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무기로 새로운 미국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세상은 투표 없는 세상일 수도 있겠다. 『1984』와 『멋진 신세계』 실사판이 가까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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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10-26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 가끔 페이팔 쓰는데요. 안 써야지....ㅠ.ㅠ 트럼프와 함께하는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이라... 여기서 히틀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달라졌고, 그래서 저런 자들이 준동한다 해도 세상은 자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제 나름의 믿음인데 요즘 세상을 보면 내가 너무 낙관적인가 싶기도 하네요. 오랫만에 알라디 들어와서 처음 읽은 글이 단발머리님 글이라 좋습니다. ^^

단발머리 2025-10-27 09:08   좋아요 1 | URL
<어쩔수가없다>에서 인종에 집착하는 백인남들 나오는데요. 이들의 세계도 백인이 중심인 세계가 맞는 거 같아요. 트럼프 정부의 가혹한 이민자 정책은 그에 대한 착실한 실현이구요. 저도 바람돌이님과 비슷한데요. 이제 쪽수가 아니라 정보, 그 정보를 가공하는 자본이 더 우선시 될 거 같아요. 인공지능 고도화되면 우리 인간은 어쩌나...의 고민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바쁘시죠~~ 너무 오랫만에 오셨습니다. 자주자주 오시어요!!

다락방 2025-10-2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고, 여학생들을 쫓아다니느라 바쁜 신좌파 대학생들을 멸시하면서‘ 추구하는 바가 고작 저거라니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저런 남성들과 뭐 어디서 얼만큼 다른건가요. 하아-
미국에 사는 제 친구는 며칠전 제게 ‘요즘 총을 사야하나 생각중이야‘ 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거기에 그러라고도 그러지 말라고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단발머리 2025-10-27 22:27   좋아요 0 | URL
피터 틸은 스탠퍼드대 나왔는데,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딱 하나의 단어로 자기 소개하라니깐, ‘인텔리전트‘라고 했대요. 나는 그냥 짱이다~~의 결정판이죠ㅋㅋㅋㅋ학점도 만점이었다고 하고요. 신좌파의 68혁명을 비판의 핵심으로 삼았다고 해요. 반전운동, 민권운동, 생태주의, 페미니즘 등등. 기술이 지배하는, 미국이 지배하는 나라를 꿈꾸죠. 그러면서도, 지구 멸망하면 자기는 뉴질랜드의 어느 섬으로 간다고 미리 시민권도 받아두었다고 하고요.

총을 사야하나 고민하는 미국 친구분의 고민을... 우리가 덜어드릴수는 없는데, 사실 좀 고민되는 지점이기는 해요. 내년 중간선거 앞두고 트럼프가 심상치 않습니다.
 


간만에 언니들을 만나서 놀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정신 차리니 여름이 지나 있었고. 완연한 가을은 아니지만, 은행나무 냄새는 고약했고. 반팔 위에 카디건을 덧입어도 바람은 차고, 나도 언니들처럼 카푸치노 시킬 걸 후회를 하고.




언니들과 책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요즘에 제일 재미있는 책은 이 책이라고 추천을 했더란다.







언니들이 네이버를 여시더니 ㅋㅋㅋㅋㅋㅋ 어? 3권도 나왔네? 하시는 거다. 아닌데... 아직 아닌데? 하고 화면을 열고 보니, 아... 3권도 나왔더라. 맥파든의 6번째 한국어 번역서는.











두둥~~ 『하우스메이드 3』. '하우스메이드'에 방점을 찍고 싶어 『하우스메이드 2』처럼 원제를 뒤로하고 『하우스메이드 3』로 제목을 정한 것 같다. 플러팅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1독을 권합니다.

주의 사항, 토 나올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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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0-18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저 ‘더 코워커‘ 도 사놓기만 하고 안읽고 싱에 와버렸네요.
그런데 하우스 메이드 3.. 권이 토.. 나온다고요? 하아- 3권부터 읽지 말까... 하여간 지금은 맥파든의 때인가봅니다. 돈도 잘 벌겠죠, 이정도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5-10-19 18:32   좋아요 0 | URL
플러팅 장인의 플러팅이 과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자기 남편 옆에 두고, 그 남자 아내를 옆에 두고 핫가이에게 플러팅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프리다의 다른 소설을 권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저는 최근에 <Do not Disturb>를 읽었으며 ㅋㅋㅋㅋㅋ그러나 오늘 오후에는 리처를 만났고^^

독서괭 2025-10-19 21:45   좋아요 0 | URL
토나올 정도셨나요 ㅎㅎ 전 꽤 재밌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빨리 읽어버렸어요.. 영어수준이 적당하고 뒤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게 최고 장점인 듯 합니다.
가을풍경이 멋지네요^^

단발머리 2025-10-21 17:17   좋아요 1 | URL
물론~~~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그 플러팅 장인의 손길ㅋㅋㅋ 남의 남자 팔을 쓰다듬는 손길이 참 불편했고. 그게 돈이랑 연결되니깐 더 그렇더라구요.

˝영어수준이 적당하고 뒤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게 최고 장점˝이라는 독서괭님의 의견에 10000% 동의합니다.

그게 제가 맥파든을 계속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하우스메이드 세 권이 나름대로(?) 밝은 분위기였다면, 좀 다크한 분위기의 책들도 몇 권 있습니다. 예를 들면, <The Crash> <Never Lie>. 그건 또 그것대로 재미있고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이쪽의 읽기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지.... 그렇게나 범인을 못 맞춘다는 것입니다. 맨날 틀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흐 ㅋㅋㅋㅋㅋㅋㅋ

icaru 2025-10-22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의 지인언니인 척 이 책 접수하겠슴다!

단발머리 2025-10-25 09:50   좋아요 0 | URL
접수 잘 접수 되었습니다.
icaru님 리뷰를 이제 기다리겠습니다. 우하하!!!
 



추억의 명화 아니고, 추석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너무 쎄서 좋아하지 않는다. <올드보이>, <설국열차>, <아가씨>를 안 봤다. 이영애 나온다고 해서 <친절한 금자씨>를 극장에서 보고 나서, 내가 다시는! 박찬욱 영화는 안 본다! 다짐했는데 <헤어질 결심>은 3번 봤다. <어쩔수가없다>도 보려고 본 게 아니고 공짜표 생겨서 갔다.

따라잡을 수 없는, 혹은 따라잡을 필요 없는 교양의 한 부문이 '음악'이라 생각했던 나인데, 들어가는 음악에서 적잖이 놀랐다. 무슨 음악인지 모르겠는데, 나가면, 이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 꼭 찾아봐야지 싶었는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차르트의 작품이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음악을 모르는데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내내 따라잡을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다시 한번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원하는 곳에 넣을 수 있는 삶. 그 대척점에는 가왕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있다.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이 등장하는 그 장면이 나는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다.




두 번째 영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18살에 내가 사랑했던 레오, <토탈 이클립스>의 레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선가 본듯한 후덕한 아저씨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 속 레오의 삶도 고단한 편이어서 슬픔과 애잔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나의 레오, 나만의 레오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무장혁명단체의 일원이었던 밥(레오)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정한 혁명투사인 퍼피디야(테야나 테일러),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남겨진 아이. 16년 뒤 그들을 찾아온 위협과 탈출의 과정이 미국의 계급, 인종, 총기 문제 등과 어울려 그려진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려지고, 후덕한 레오의 망가진 모습이 비극적으로 동시에 희극적으로 그려진다. 레오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그리고 극장의 관객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의 사항, 잘생겨서 웃는 거 아님.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능한 사람은 퍼피디아(흑인 여성)와 레오 딸의 가라테 사부인 세르지오(남미계 남성/베니치오 델 토로)이다. 중요한 백인 남성 둘 중 하나는 한때 유능했으나 현재는 무능하고 형편없는 삶을 살거나(밥),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지극히 인종차별적이고 사악한 사람(스티븐 J. 록조/숀 펜)이다. 순혈에 대한 백인의 강박, 정확히는 서백남의 강박이 얼마나 강고한지도 주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텐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만의 리그, 소수 정예 인너써클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협소한지 밝혀진다.


한때 세계의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의 몰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착한 척이라도 했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겠다고 했을 때, 이민자 단속과 무역 제제를 통해 혼자만 잘 살겠다고 나섰을 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부르짖을 때, 그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려 하는 서백남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움직이는 힘에 대해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은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서둘러 대출해 두었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렇다.









같이 읽어요 약속했던 잭 리처의 『어페어』

제인 에어 다시 보기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읽어도 읽어도 아직도 많이 남은 배세진의 『금붕어의 철학』









친구가 읽는다길래 따라 사 둔 책은 『Stolen Focus』

내내 읽어도 맨날 맨날 재미난 책은 『The Love Hypothesis』

읽으려고 부릉부릉 준비 중인 책은 『김대식의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인공지능이든 코딩이든 AGI든 아무것도 모르지만, 김대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나.


나, 이런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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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0-17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이 페이퍼도 제가 어제 보았다면... 이병한의 책을 사서 가져갔을 것 같네요. 나는 왜 늘 무겁게 가지고 다니는가..
미국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라고 생각하면 저도 그 중심에 트럼프가 있단은 걸 알지만, 그러나 트럼프 혼자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대체 왜렇게 되었는가 싶어요. 그렇다고보면 역시 이병한의 책을 .. 사야겠군요...

어페어 펜타곤 때문에 도입부분이 너무 힘들어서 ㅋㅋ 다시 못펼치고 있어요. 그 부분만 넘기면 괜찮을것 같은데 말입니다.
단발머리 님, 알리 헤이즐우드 외워버리시겠는데요? 내친 김에 외워버리세욧!!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10-17 18:2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읽어보겠습니다. 이병한은....
이제 우리 나이도 있고 해서요~~ 너무 무겁게 들고 다니면 키 작아져요. 명심해 주세요! 꼭 필요한 것만 들고 다니는 걸로 해요!

저도 앞부분에서 계속 제자리예요. 주말에 좀 몰아서 읽어보려 하는데, 안 되면.... 안 되면 번역본 펴고 읽어야겠어요. 큭큭
지금 날아가고 계신가요, 다락방님? 그 하늘은 파란 하늘인가요, 아님 검은 하늘인가요~~

로제트50 2025-10-18 03:26   좋아요 1 | URL
어페어, 저도 읽고 있어요^^
펜타곤, 군인 계급이 머리 아프고
그 뒤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번역본 없이 읽는데도 빠져들고
있어요,ㅎ

단발머리 2025-10-19 18:33   좋아요 1 | URL
로제트 50님~~ 쭉쭉 읽어가시면서 재미있는 리처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우리 다같이 리처앓이 해보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5-10-1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레오!ㅎㅎ 얼마 전 저도 디카프리오 영화에 대해 언급하는 분을 다른 곳에서 봐서 ‘아 새 영화가 나왔나보구나.‘ 했거든요. 캡쳐 사진 보니 역시 세월은 무시할 수 없나봅니다. 레오하면 역시 저는 로미오만 떠오릅니다.
언급하신 박찬욱 영화 중에 본 유일한 영화는 <설국열차>네요. 지독한 악마적 현실을 그려내니 보기는 힘들었고 찝찝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5-10-17 18:22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님의 레오는 로미오군요. 제 레오는 랭보죠. 레오는 랭보예요. 그러나.... 이제 레오는 빨간 체크무니 셔츠의 아저씨가 되었고.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쓸쓸히 잔소리를 시전하는 아저씨가 되었으며...

저는 <설국열차>는 한 번 보고 싶은데... 찝찝하셨다는 말씀 뭔지 알 것 같아 어쩔까 고민되네요.

책읽는나무 2025-10-17 18:52   좋아요 0 | URL
<설국 열차>는 봉준호 감독 영화인데 이상하다? 싶어 금방 검색해 보니 제작을 했었군요. 거장과 거장이 만나 만든 영화였었네요.
보고 나면 좀 침울해지고 심란한데 그래도 한 번쯤은 보셔야?!^^

단발머리 2025-10-17 18:55   좋아요 1 | URL
앗! 저는 필모 보고 자연스레 <설국열차>도 그런가 했거든요. 그렇다면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 영화로 카운트 해야지요ㅋㅋㅋㅋㅋ ㅋ봉감독 서운해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화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감독이 많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깤ㅋㅋ

책읽는나무 2025-10-17 19:11   좋아요 0 | URL
저는 검색해보다가 <공동경비구역 JSA>도 박찬욱 감독님 영화여서 좀 놀랐어요. 그 영화도 참 인상깊게 봤었는데…
그래도 박감독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헤결입니다. 저는 그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눈물이 뒤늦게 터져서…ㅋㅋㅋ
탕웨이 배우만 보면 헤결 영화로 확 순간 이동되는 듯 하여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요.ㅋㅋ

봉준호 감독의 영화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유명한 것들 몇 편 찾아봤었거든요. <마더>가 가장 인상깊었고 <옥자>영화가 가장 좋았어요. 근데 옥자를 본 이후로 돼지고기를 먹을 때마다 죄책감이.ㅜ.ㅜ
거장들의 영화에는 역시 강렬한 메세지가 있긴 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죠. 그래서 유명한 작품들은 봐둘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영화 보는 걸 그닥 안 좋아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을 줄 알았는데 와…한국 영화라 그런가? 영화 수다가 가능하군요.ㅋㅋ

단발머리 2025-10-19 18:41   좋아요 1 | URL
저도 비슷한대요. 저는 <헤어질 결심> 보고 나서 탕웨이가 달리 보이더라구요. 그 시상식장에서 ‘안개‘ 노래 나올 때 막 울잖아요, 탕웨이가.... 천상 배우가 맞는 거 같고요. 그런 감정으로 산다는 게 화려하고 멋있기는 한데, 예민해지니깐 불편할거 같기도 해요.

생각해보니 저는 봉준호 감독 영화도 다 안 봤 ㅋㅋㅋㅋㅋㅋ 기생충 안 봤고, 마더, 옥자 다 안 봤네요. 제가 본 게 미키 17(최근작)과 괴물(비교적 예전 작품) 이네요. 저는 박찬욱 감독보다는 봉준호 감독쪽이 좋기는 해요. 뭘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헤헤!

책읽는나무 2025-10-17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참…ㅜ.ㅜ
쎄기도 하고 심오하고 침울해져서 저도 안 봐야지. 해놓고선 거의 다 봤네요?😳뭐지?
근데 그 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었어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나왔는데 갑자기 헤결 영화가 생각이 나 오래 전 사다놓고 아직도 읽지 않은 각본집을 곁에 두고 있답니다.ㅋㅋㅋ(실은 각본집을 잘 못 읽는 슬픔이.ㅜ.ㅜ)
영화의 ost가 좋게 들려 나중에 찾아봐야지. 했었는데 까먹었다가 단발 님을 통해 아, 맞다! 그래서 찾아 들어봤네요. 저는 모짜르트 신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이 음악은 누가 만든 곡인가? 싶어 찾아보면 모짜르트 음악가인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역시 음악 천재?! 그리 생각될 때가 있었어요. 모짜르트 음악이 무수히 많아서 그물에 많이 걸려드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암튼 그래서 전 그때 이후 이게 누구 곡일까? 정답은 모짜르트라고 무조건 때려 맞혀보자.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의 음악도 모짜르트의 음악이었다고 하시니 와! 소름! 혼자 놀랐구요.ㅋㅋㅋ
그리고 그 세 명의 배우 액션씬에서의 배경 음악이 고추 잠자리였군요. 조용필 노래였는데? 단발머리구나! 생각했었는데 땡! 틀렸군요. 제가 너무 단발머리 님께 과몰입 중이어서 그런가봅니다.ㅋㅋㅋ
저는 마지막 장면 중 딸이 자작곡을 첼로로 연주하던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그동안 혼자서 예쁘게 색칠하던 그 종이가 실은 악보였다는 게…
어휴…이병헌은 끝까지 회사에 살아남아야 할텐데..어쩌나? 걱정이 앞섰었죠.
이 영화가 그래도 그나마 웃음코드가 많은 코미디 영화라곤 하지만 제겐 조금 공포 영화였었어요. 아무래도 너무 현실을 풍자한 요소들이 많아서 한숨이 좀 나오기도 했었고..

저는 외국 영화를 많이 안 봐서(실은 극장에 가서 영화 보는 게 좀 힘들어 잘 안 보기도 하구요.) 두 번째 영화 이야기 하실 때, 내가 모르는 배우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레오..음..그런가 보다. 그냥 넘어갔거든요.
위에 화가 님 댓글을 보고 확대해서 다시 봤잖아요. 아. 레오? 그 레오!
아니..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는 누구였나요?
음…근데 지금의 레오 모습이 저 영화에 잘 어울렸을 것 같기도 합니다.ㅋㅋㅋ
오늘도 잊을만 하면 늘 링크해 주셔서 또 상기하고 가는 책들 많아서 좋네요.^^

단발머리 2025-10-17 18:30   좋아요 1 | URL
맞아요. <헤어질 결심> 진짜 좋았어요. 저는 각본집 안 샀는데, 사고 나면 제가 매일 그 각본집 끼고 살 거 같은거예요. 좋기는 한데, 막 빠져버릴 거 같은... 그런 느낌이요. 이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도 좀 힘든 장면이 있기는 했지만, 극장을 나오자마자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조만간 다시 찾아서 보려고 합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너무 좋죠~~ 지금 이 댓글의 배경음악도 ㅋㅋㅋㅋㅋㅋㅋ 모차르트라고 하겠습니다. 모차르트 소나타는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이제 쪼금~ 친다~ 할 때 제일 먼저 배우거든요. 제일 귀에 익숙합니다. 베토벤도 몇 곡, 하이든도 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저도 모차르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약간 1번! 아니면 기준! 이런 느낌이라 할까요?ㅋㅋㅋㅋㅋㅋ

제게 과몰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필 노래가 그 장면에서 그렇게 쓰여서 진짜 신기하고 놀랐어요. 저는 사실 진짜 그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레오 나오는 영화도 추천드립니다. 제가 2-3년에 영화관 한 번 가는 사람인데 ㅋㅋㅋㅋㅋ 공짜표 때문에 다음 달에도 1회 방문 예정이거든요. 뭘 추천하고 그럴 입장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평론가들 반응도 관객 반응도 좋다고 하대요. 감독이 유명한 사람이래요. 저는 그 사람 영화를 안 봐서 모르지만요.
타이타닉의 잭이 또 레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님에겐 로미오, 제게는 랭보, 책나무님에게는 잭!!

독서괭 2025-10-1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많이 안 본 사람인데 설국열차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는 봤네요. 주변에서 그렇게들 좋다고 하는 헤어질 결심을 못 봤어요 ㅠㅠ 어쩔수가 없다는 평이 많이 갈린다던데 단발님은 좋으셨나 봅니다.
한때는 너무 잘생겨서 연기대상을 못받는다는 말이 있었던 레오 ㅎㅎ

단발머리 2025-10-19 18:35   좋아요 1 | URL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본게 많지 않아서 비교 평가가 불가했던 면이 있고요. 저는 음악이랑 화면이랑 코미디의 결합이 절묘했다고 보거든요. 한 번 더 보고싶다~~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레오는 외모를 포기한 후에 상을 좀 받기는 했죠. 이 작품에서는 숀펜이 상 받을거 같아요. 레오는 좀 망가지는 캐릭터라서요. 개런티는 많이 받았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10-20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주말에 <어쩔수가없다>를 볼 예정이었어서 이 페이퍼는 다녀와서 읽기로 했었는데...
그리고 오늘 읽었는데... 영화 내용은 별말씀 안 하셨네요? ㅋㅋㅋㅋㅋㅋ🤣

전 그 첫 번째로 죽는 남자의 오디오 시스템 진짜 탐나더라고요.
저런 기기로 들으면 조용필 노래도 저렇게 좋구나! 했다능..
전 중딩때 산울림 노래 참 좋아했는데 오랜만에 산울림 노래 들어서 좋았습니다.

단발머리 2025-10-25 09:52   좋아요 0 | URL
별말씀 하고 그런 사람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아니랍니다. 즐거운 관람 되셨죠?

오디오 시스템 어마어마하죠. 그 집은 장인집이라 팔지도 못하고 ㅋㅋㅋㅋㅋㅋ 남보기에는 세상 팔자 편하지만 본인은 딱히 그렇지 못하구요.
중딩 때 산울림 좋아했던 잠자냥님이라니.... 중딩 때 소방차 좋아했던 단발머리가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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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9쪽)

이전에 읽은 책이 사사키 아타루의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이어서 그랬던 걸까. 첫 문장이 귀에 딱 꽂혔다. 죽음에 관한, 인생을 다룬 지루하고, 자세한 설명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종교, 신화, 소설, 영화, 컴퓨터 같은 이야기들이 인생의 일회성이 주는 불쾌를 잠시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10쪽) 일회용의 인생, 일회성이 주는 불쾌. 만약 인생이 일회용이라면. 우리네 인생이 진짜 일회용이라면.

나는 좀 못된 사람이라 그런가, 인생이 정말 일회용이라면 인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 같다. 낭비하고 오용하고, 남용했을 거 같다. 내게 인생은 소중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 쏘아 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화살 같은 것, 아껴 써야 할 그 무엇이다. (카를로 로벨리 왈,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다시 오지 못할 것이어서 소중한 인생. 되돌릴 수 없기에 귀중한 시간들. 하지만, 인생이 일회용이라면, 한 번 쓰고 말 것이라면, 그렇다면 왜 아끼겠는가. 왜 아껴 쓰려 하겠는가. 지금까지, 경제관념이 없어 무엇이든 잘 아끼지 못하는 베짱이의 한탄이었으며.

작가를 가족으로 두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적잖이 고단하겠다. 최대한 노력해 건조하게 서술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따라 읽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니깐 비난이나 비판이 아니라, 순수하게 '실망'. 다짐하듯 작가가 한 번 더 적어 두었듯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실망시킨다. 내가 내 부모에게서 그러했듯, 내 아이들도 내게 실망했을 것이다. 아니, 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엄마인 나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이 자명한 우주의 원리를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실망의 순간에 느끼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있으니. 작가의 표현대로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이 부분이 내가 말하고 싶은 그 부분이다. 대학원 시절, 작가는 다른 연구실의 조교인 동기를 찾아갔는데, 오페라 아리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작가를 보고 동기가 "응, 잠깐만, 이 곡만 듣고......"라고 말한다. 재킷에 <라 보엠>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곡, 참 좋지 않니?" 작가는 동기가 오페라를 듣고 있었던 것뿐 아니라, 음악을 방해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도 품위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교양 있는 사람'.

우선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았다. 유명한 오페라의 음반부터 듣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음반에 끼워진 부클릿은 소중한 자료였다. 꼼꼼하게 읽고 거듭하여 들었다. 미술도 알아야 할 것 같았지만 실물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으므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통독했다. 그리고 기회가 올 때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 미술관들을 돌아다녔다. 책에서 본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어렵게만 여기고 도전하지 않던 '세계 명작'들도 읽기 시작했고 세계 영화사도 공부했다. 그러나 영화사 책에 언급된 영화, 예를 들어 <전함 포템킨>이나 <시민 케인> 같은 영화를 볼 방법은 없었으므로 그냥 줄거리만 읽고 상상해야 했다.(130쪽)

교양이라고 했을 때,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특정 시대 유럽 서구의 문화와 그 문화의 모방을 의미한다. 작가의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하던 '단정하고 단아한 글자체'는 이전에는 훌륭한 교양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을 테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그 교양은 이제 워드 프로세서의 등장으로 덜 중요한 교양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른 양식의 교양이 필요해졌다. 교양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기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어야 하지만, 뒤늦게라도 혹은 성인이 되어서 '따라' 잡을 수도 있다. '현대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세계 문학 전집', 혹은 '00대가 추천하는 세계 걸작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나, 프랑스어 혹은 영어에 능숙하지 않더라도 한글로 된 글을 부지런히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유추할 수 있다. 미술은 좀 더 따라가기 어렵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작가처럼 하면 된다. 관련서를 찾아 읽고,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며 감상과 감동을 학습할 수 있다.

따라잡기 제일 어려운 분야가 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정 시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그 수많은 곡들을, 협주곡이든 교향곡이든, 혹은 오페라든 그 음악들을 일단 한 번 '들어' 보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 많은 곡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별점을 넘어 감상 포인트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인가. 교양의 정수를 '향유'할 만한 여유로운 시간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소설은 줄거리로,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음악은 인강이 아닌지라 1.5배속 안 되고... 음악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해에 국내 문학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알쓸신잡>의 인기 있는 출연자이고,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잘 ’팔리는‘ 소설가이기에 이렇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교양의 준거로 여겼던 곳에서 책을 출간(134쪽) 한 작가가 되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의 내면에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가 이미 그 상태를 탈출했기에, 이탈에 성공했기에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닿지 않는 그 이상향에 대한 갈구는, 끝모를 갈증은 눈을 감는 그날까지 멈춰지지 않겠지만, 그런 과거를 고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솔직하다는 점에서 나는 그의 이탈이 부럽다. 어쩌면 그의 성공이. 이쯤에서 찾아오는 나만의 개똥철학.

벗어난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어요.

탈출한 사람만이 돌아올 수 있어요.

큰애를 태우고 가는 길에 CD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눌렀다. 조성진의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 지난번에 조성진 쇼팽 실황 (집에서) 잃어버려서 안타까운 마음에 샀는데, 그 시디는 결국 집에서 찾았고. 이 시디를 구입한 특별한 이유는 라벨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라벨을 모르는데 어떻게 라벨을 좋아하겠는가), 표지가 너무 예뻐서. 조성진이 너무 환하게 예쁘게 나와서 샀다. 플레이를 누르니, 다시 1번 트랙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원. 이거 뭐. 뭐라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이 시디에는 페이퍼가 딱 한 개 있는데, 그건 내가 이 시디를 구입했다고 썼던 페이퍼다. 다른 구매자들의 100자 평을 보시라. 참 좋은 음반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세상에, 조성진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정말. 할 말이 1도 없었다. 뒤에 앉은 큰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 우리는 그렇게. 조성진을, 조성진의 라벨을 들었다.

탈출한 자만이 돌아올 수 있다.

벗어난 자만이 고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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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5-10-10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바로 조성진의 라벨 전곡집을 틀었어요. 단발머리님의 철학을 혼잣말로 다시 읽어내 봅니다. ‘벗어난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어요. 탈출한 사람만이 돌아올 수 있어요.‘ 잘 지내시죠?

단발머리 2025-10-10 18:36   좋아요 1 | URL
달자님~~ 아.... 바로 라벨 전곡집 찾아서 들으시는 분~~ 달자님 진작에 라벨 알려주셔야지요. 저는 내내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고요. 달자님 너무 근사하신 거 아니에요?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많이 쌀쌀하네요. 가을이 이렇게 성큼 와버린거 모르고 반팔 입고 까불다가 많이도 추웠습니다. 달자님 계신 곳은 어떤가요? 달자님에게는 따뜻하고 춥지 않은 가을이기를 바래봅니다^^

달자 2025-10-11 22:36   좋아요 1 | URL
저도 라벨 조성진 전곡집나왔을 때 알게됐어요 머쓱; 근데 너무 좋더라구요… 여긴 아마 한국의 지금보다 더 쌀쌀할 겁니다 습하고 추워요 그저께부터 목이 칼칼하고 코가 좀 막히네요ㅠㅠ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단발머리 2025-10-14 21:57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3번 트랙만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당연히 첫번째 CD요. 저도 얼른ㅋㅋ 너무 좋아지길 바라고 있어요ㅋㅋㅋㅋㅋ
한국도 추석 끝나고 나서 많이 춥네요. 어제부터 코가 계속 막혀서요. 달자님, 우리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가뿐히 이겨내자구요. 뽜야!!

hnine 2025-10-11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성진 라벨 전곡집 갖고 있는데 아무때나 들어도 좋은 레파토리는 아닌, 저에게는 그런 음악이거든요. 그나 저나 이영하 작가의 이책 읽어야겠는걸요.

단발머리 2025-10-11 10:23   좋아요 0 | URL
아~~~ 조성진 라벨 가지고 계신 분, 두번째로 발견했습니다!! hnine님의 댓글은, 라벨을 듣고 큰 감흥이 없었던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ㅋㅋㅋㅋㅋㅋ 근데, 김영하 작가예요. 헤헤~~

hnine 2025-10-11 14:10   좋아요 1 | URL
이런…^^

단발머리 2025-10-11 14:11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25-10-11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가 음악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동의합니다-말씀하신 것처럼 언제 다 듣고 따라잡나요..-. 저는 사실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따라잡는다는 말 자체에 나에게 있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잖아요.음악도 미술도 그 예술에 대한 부분은 감상할 줄 아는 눈과 귀를 좀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따라잡는다고 과연 잡히는걸까,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따라잡기가 더 수월하겠지만-갖추기도 수월할테고요- 저도 조성진의 시디가 한 장 있긴 합니다. 있습니다. 그게 답니다.

단발머리 2025-10-14 22:4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따라잡아야한다고 생각하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힘든 일이고요. 저는 그건 가지고 태어나기 보다는 학습에 의해서 ‘발견‘되어져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요. 적절한 예시 맞나요?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항상 관심을 가지는 포인트는 ‘따라잡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요. 거기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난, 조성진의 라벨이 좋더라~~ 그래? 나는 잔나비 좋아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식으로요. 잔나비와 김동률과 이소라와 박효신을 좋아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 를 저는 추구하고 싶거든요. 근데, 모차르트 협주곡 몇 번.... 그러면 그게 또 부럽고.
아무튼 제 포인트는 그겁니다. 부러워하지 않는 것. 않은 척 말고 진짜 안 부러워하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10-11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성진을 좋아하시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저는 조성진도 임윤찬도 거의 못 들어봤네요.. 저도 한번 ‘따라잡고’ 싶어서 미술이나 음악 교양서를 뒤적여보곤 하지만- 대표적으로 난처한 미술 이야기, 음악 이야기 시리즈 -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ㅠㅠ 애들에게는 클래식도 들려주고 미술도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은 케데헌 노래 무한반복 ㅋㅋㅋ 하지만 좋잖아요 골든 ㅋㅋ

단발머리 2025-10-14 22:08   좋아요 1 | URL
저는 시디 두 개밖에 없지만 김선욱을 좋아합니다. 독주회도 다녀왔습니다. 1회지만서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처한 미술 이야기, 음악 이야기 시리즈는 일단 제가 한 번 도서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바를 독서괭님은 이미 실천하고 계시네요. 위 고잉 업업업 잇츠 아우어 모먼, 유노 투게더 위 아 글로잉, 고너비 고너비 골든!!
좋잖아요, 골든!!

책읽는나무 2025-10-13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성진 시디 한 장만 가지고 있는 자!
전 쇼팽의 곡이네요.ㅋㅋㅋ
아마도 경연곡이었던 것 같네요.
조성진이 상 탔어? 하면서 내 아들이 상을 탄 마냥 기쁜 마음으로 시디를 산 듯 합니다.
그러다 임윤찬이 또 상을 탔대서 오옹? 하면서 또 시디 한 장을 샀었구요. 그러다 임윤찬에겐 뭔가 내적 친밀감(왜 그랬는지는 모르겠구요?)이 흐르는 것 같아 리스트 곡을 한 장 더 샀네요. 그러니까 저는 음악가나 음악이 중요해서라기보다 그냥 피아노 연주자가 좋아서 그것도 상을 탔다니까 사는 사람이라 교양 그것 따라잡기는 참 힘들어요.ㅋㅋㅋ
그런데 쇼팽곡을 계속 듣다 보니까 뭔가 좀 좋게 들리기도 하던데…넘 바빠서? 진득하게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는지라…교양 따라잡기 힘들죠.ㅋㅋㅋ 그래도 단발 님은 운전을 하시니 차 안에서 계속 라벨을 들으신다면 곧 교양 따라가실 것도 같겠단 생각이 듭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이 참 부러운 게요. 좁은 공간에서 음악을 틀면 확 파묻히는 기분이 들어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네비 언니가 계속 대화를 시도하니 중간중간 끊기는 게…ㅜ.ㅜ
이 책도 늘 읽어야지. 찜해 두기만 했는데…단발 님의 리뷰를 읽으니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겠단 생각이 드네요.
김영하 작가는 에세이만 읽곤 소설은 정작 몇 권 읽어보지 못했는데도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어서 아주 친숙한 작가란 생각도 들어요. 아마도 미디어 영향이 커서 그렇겠죠.
그래도 때론 90년대 젊었었던 작가들이 꾸준히 왕성하게 글을 써줬음 하는 바람도
있어요. 우리의 젊었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잖아요.^^

단발머리 2025-10-14 22:22   좋아요 0 | URL
조성진 그 쇼팽 콩쿨 시디가 제일 많이 팔린 시디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 다음에 임윤찬이 등장하였고 ㅋㅋㅋㅋㅋㅋㅋ저도 임윤찬 시디 하나 샀죠. 저는 1등해서 ㅋㅋㅋㅋㅋㅋㅋ 장하다, 대한의 아들이여! 이래서 샀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운전을 하기는 하지만, 네비를 켜지 않고 갈 수 있는 곳만 주행이 가능합니다. 일명 마을버스 노선이라고요. 목적지가 정해진 곳으로만 다닙니다. 그래서 운전하면서 들을 수는 있는데 오디오북을 들을 때가 많아요. 가끔 뉴스도 듣고요. 하지만, 이 페이퍼 쓴 뒤로 제가 라벨을 계속 듣고 있다는 신기한 소식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김영하 작가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은거 같아요. 책나무님이랑 찜콩하는 거 많네요! 친숙한 느낌도 찌찌뽕이구요.
작가와 같이 늙어가는 거 좋죠. 좋아하는 작가들은 다 장수했으면, 오래오래 써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맘 들고요^^
 



추석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추억이라고 썼다.

추석이라서 고소하고, 기름진 이야기 써야 할 듯싶은데, 그런 이야기가 없다. 앜ㅋㅋㅋㅋㅋ 동서가 LA갈비 해왔는데, 시어머니가 우리집 육식인간 주라고 하시면서 싸주셨다. 도라지, 고사리나물 감사한데, 감사하기는 한데, 육식 인간은 먹지 않을 것이기에. 고소하고 기름진 이야기는 여기서 끝ㅋㅋㅋㅋㅋㅋ










사사키 아타루의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을 읽고 쓴다.

죽음에 관한 책들에서 여러 번 읽었겠지만, 자꾸 읽어버리는 대목을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에서 다시 확인했더란다. 죽음이란 타인의 죽음이다. 내게 의미 있는 죽음이란 타인의 죽음이고, 나의 죽음은 사실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일이다. 사사키도 이 지점을 지적한다.

정리하자.

죽음이란 늘 '타인의 죽음'이다.

죽음은 불특정한 '사람'에게 찾아온다.

우리가 체험하는 죽음은 늘 '타인의

것'이다.

나에게만 존재하는 '나의 죽음'을 체험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죽음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통해,

타자의 확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86쪽)










요즘에 내가 계속 밀고 있는(내가 안 밀어도 잘나가시는 분인데, 열심히도 밀고 있음) 프리다 맥파든의 『The Housemaid』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앤디였던 것. 하지만, 이제 앤디가 아닌 그 무엇. 앤디가 살았던 그것. 앤디라 칭했던 그 장소. 하지만, 이제 앤디가 아닌 그 무엇. 그 무엇을 앤디라 할 수 없다면, 앤디는. 앤디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려고 한다면, 먼저 '생명/살아있음'에 대해 다뤄야 한다. 자연스레 책은 빅히스토리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시작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의식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면, 뇌과학 역시 빼놓고 갈 수 없기에 논의는 점점 복잡해지고, 책은 점점 두꺼워진다. 인간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주에 대한 이해와 의식에 대한 현재까지의 과학적 성과 또한 알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결론은 사실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할 수도 있겠다. (단순한 거 좋아하는 편) 우주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이 거대한 우주 속 변방 은하계의 구석자리에, 태양계에 속한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지난한 진화의 과정 속에 사피엔스라는 종이 탄생했는데, 이들이 여차저차 이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진화의 과정 속에 종교라는 고도의 정치체를 '발명'해낸 인간은 여러 제의와 의식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공고히 해왔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원시적' 신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으면 전부 다 끝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했던 물질은 분해될 것이고, 그리고 재조립될 것이며, 별의 일부였던 우리는 결국, 별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결론이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원시적' 신념, 이천 년 전에 유대 지역을 순례했던 한 남자를 신이라 믿는 '원시적' 신념을 오늘에까지 간직한 사람이다. 비이성적이라고 한다면,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 없는 게 바로 종교이고, 내가 바로 그 종교인이다. 나는 그 점을 받아들인다. 다만, 궁금한 지점은 여기인 것 같다.

아무것도 허락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태어난다.

살아 있는 이상 언젠가 죽어야 한다.

백 년, 천 년 후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예술을

통해 운명을 '웃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운명을 비극이 아니라 희극으로

만들 수 있다.

명랑하고 쾌활하게, 큰 소리로 웃으면서

운명을 헤쳐 나갈 수 있다. (158쪽)

158쪽의 저 두 문단 사이의 간극을 왜 사사키는 채우려 하지 않는가. 내가 알고 싶은 지점은 바로 그 간극 사이에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동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난 이상 (이렇게) 살고 있으며,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죽게 될 터인데. 내가 이 지구상에서 나를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그 모든 일을 다 한다 해도 결국에 나는 잊혀지고, 지워질 텐데. 그렇다면 왜... 영원히 사멸된 이 '내'가, 예술을 통해 내 운명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말인가.

<작가의 말>에서 사사키는 이렇게 덧붙인다.


삶에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어지지 않았고, 주어지지 않을 테니,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고. 아무리 삶이 의미가 없다손 치더라도, 우리에겐 '의미'를 부여할 힘이 남아있다고.

아.... 없다고 하려면 끝까지 없다고 하시고, 있다손 치려면 처음부터 있다고 하셔야지. 원래 없는데, 있다고 하자니요. 아니, 원래 있다 없다는 중요하지 않으니, 의미를 (있다 치고) '부여'하자니요.

나는 이 부분이 석연치 않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에 세뇌된 종교인의 뇌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지점이다. 기독교에서는 너의 '존재 의미'가 태초에서부터 '있었다'라고 말한다. 시편 139편에서는 '나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나를 보셨으며'라고 쓰여 있다.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이 기독교의 신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어 이 모든 과정 역시 의미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깐 기독교에서는 내 삶에, 내 인생에 처음부터 의미가 있었고, 마지막까지 있을 것이니, 죽음은 현생과 이생을 연결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죽음을 통해 성도의 삶이 견인되고, 완성되기에 오히려 재회의 순간으로 이해될 때도 있다. 기독교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그래서 네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망해가는 미국을 대신해 전 세계의 유일한 패권국가가 될지도 모를 중국의 유일한 지도자 시진핑과 대통령 5번, 국무총리 2번에 빛나는(?) 막강 러시아의 푸틴이 나눴던 대화가 화제였다. 지난 전승절 행사 시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푸틴의 통역사가 "인간의 장기는 계속해서 이식될 수 있으며 당신은 오래 살수록 젊어지고 심지어 불멸에 이를 수 있다"라고 중국어로 말하니, 시진핑이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는 예측도 있다더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가졌으며, 이를 유지할 막강할 권력을 가졌으니, 이제 부족한 건 살아갈 날 수뿐이며, 고민은 오직 노화와 죽음. 방법은 장기 이식 그리고 줄기세포? 그러나, 그대들 역시 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아마도 죽게 되리라.


추석이라 고소하고 기름진 이야기 쓰고 싶었는데, 아니, 알콩달콩 새콤달콤한 이야기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내일 아침에는 다른 책을 찾아보겠다. 일단 오늘밤에는 좀 놀고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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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0-10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진핑,푸틴과 알콩달콩 새콤달콤은 거리가 다소 멀군요 ㅋㅋㅋ ‘앤디였던 것‘도 마찬가지 ㅋㅋ
마저 놀고 돌아오셔서 새콤달콤 부탁드립니다.

단발머리 2025-10-10 18:54   좋아요 1 | URL
두 사람은 진지한 거 같아요. 두 사람 다 무슨 일(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영생 불멸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듯.
많이 못 놀았는데 연휴 끝나가네요. 책도 많이 못 읽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0-11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틴은 어쩐지 계속해서 장기를 이식할 바로 그 사람일 것 같네요. 하아-


이 페이퍼를 읽으니 저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한나 아렌트에 대해 쓴 책이 생각납니다.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 인데요, 거기에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의 한 구절을 인용하거든요. 저는 그 구절을 놓고 가겠습니다.


<세계, 인간사 영역을 그 통상적이고, ‘자연적인‘ 파면로부터 구하는 기적은 궁극적으로 탄생성이라는 사실인데, 그 안에 행위 능력이 존재론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그들이 태어남으로 인해 서 가능해지는 행위인 것이다. 이 능력에 대한 온전한 경험만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모두 무시했던 인간 존재의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질인 믿음과 희망faith and hope 을 인간사에 선사할 수 있다. ... 그것은 바로 아마도 신약 복음서가 선포한 ‘기쁜 소식‘glad tidings 곧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탄생했도다‘A child has been born unto uns라는 몇 마디 속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압축적인 표현을 발견한 세상에 대한 믿음과 그를 위한 희망이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재인용, p.16

단발머리 2025-10-14 22:31   좋아요 0 | URL
푸틴은 다른 사람 장기도 탐낼 사람이죠. 불멸을 꿈꾸는 폭군. 하아~

세상에... [인간의 조건] 재인용이라니요. 너무 고급스러워서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을 닦아내고 있습니다. 저도 저 책 있어요. 책나무님이 선물해 주셨는데.... 미루지 말고 얼른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