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전은 너무 평범해서 맘에 안 들고 동그랑땡이 좋기는 한데, 한 번도 안 해 봐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꼬치전. 소고기 산적이나 생선 살 같이 넣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손이 많이 가서 패쓰. 재료 준비해놓고 보니 흡사 김밥 모드다. 작년 추석에는 나름 도전적인 요리법을 차용했더니 창의적인 모양이 탄생해 올해는 유투브에서 알려준 그대로 부침가루 한 쪽에만 묻히고 탈탈 털어 얌전히 계란물 입혔다. 나름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중간 크기 접시에 두 번 담아낼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손이 작으냐. 큰며느리 손 크다는 이야기 도대체 누가 지어낸 말이냐. 시댁에서 뚜껑을 열어본 동서(중학교 때부터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형님, 사 왔어?” 물어보길래 이번에는 망치지 않았구나 싶었다.

 


장을 보고 와서 잠깐, 꼬치전 부치기 전에 잠깐. 후다닥 전 부치고 나서 마저 읽었다. 중간쯤에 잠깐 흐름을 놓쳐 아, 이럴 수가, 하고 스스로 조금 실망했는데, 책 뒤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설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도 이 책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 이렇게 번역까지 했지만, 그런데도 썩 순순히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누가 줄거리를 요약해보라고 하면 꽤나 골머리를 앓는다. 아무리 봐도 나중에 억지로 갖다붙였지 싶은 헐렁한 설명도 있다. 물론 그것이 챈들러 소설이 본디 지닌 맛이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아무튼 성가시다. (해설, 무라카미 하루키, 287)

 



잘 생겼고 키 크고 머리 회전이 빠르고 비 오는 와중에도 잘 달리고 미인의 유혹에도 의연한 사람을 알게 되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이제 그와의 시간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니, 약간은 두렵고 한편으로는 설렌다. 꼬치전은 추석에나 부칠 테니까 시간적 여유도 생겼으니 차근히 만나보겠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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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3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이책 레이먼드 챈들로 아닌가요? 필립말로가 제목에 있는데 필립 말로 얘기가 없어서요. ㅎㅎ

단발머리 2021-02-15 10:24   좋아요 0 | URL
아하하...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이고요. 잘생기고 키크고 빗속에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필립 말로입니다^^

난티나무 2021-02-14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동서! 저는 형님과 동기간입니다.^^;;;;;;;

단발머리 2021-02-15 10:24   좋아요 1 | URL
어머낫!!!! 그러시군요. 난티나무님과 저는 할말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치다 타츠루의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은 보라색 표지와 적당한 크기가 딱 내 스타일이라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머리말에서부터 목에 가시가 걸린 듯했다.

 


작년 즈음부터(책 출간을 기준으로) 한일간의 외교 관계가 왜 이렇게 악화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고 적었다. 그리고는 어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해법을 찾으려는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난 단순한 사람이라 명확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사안을 단순하게 보고 판단하려는 태도 자체는 주의해야 한다고 믿기에,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일본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괴뢰 정부가 아닌 민주 정부)와 절차에 따라 위안부 합의를 얻어냈고, 한국 정부의 안일함과 일본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까지 합의문에 넣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한국 정부는 이전 정부의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위안부제도는 일본의 국가 범죄였음을 인정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고, 피해자 당사자인 위안부 여성들의 요구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일본인이라면. 그래, 의아할 수도 있겠다. 정부 간의 합의를 이렇게 뒤집어 버리다니. 일본인의 입장에서라면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겠(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그래도 알만한 분이 이렇게 판단한다는 데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책을 덮어 버렸다. 그래도 전작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가 너무 좋았기에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는 펼쳐보았고, 그리고 다 읽었다.


 

퇴임을 앞둔 시기의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다루는 내용 자체가 쉽지는 않다. 말과 글, 전자책과 종이책,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하루키 문학이 세계성을 확보한 이유 등이 흥미로웠고, 7강 계층적인 사회와 언어 부분도 재미있었다. 인덱스 했던 문단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문단은 여기.

 


지금 우리 주위에 오고가는 언어의 대다수는 전해지는 언어가 아닙니다. ‘평가를 받으려는 언어도 아닙니다. 단지 나를 존경하라고 명령하는 언어입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에는 일정한 비율로 머리좋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은 다양하더라도 메타 메시지는 하나뿐입니다. 바로 난 머리가 좋으니까 날 존경하도록 해라는 것입니다. 메시지 차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또 퍽 훌륭한 내용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메타 메시지는 슬플 만큼 단순합니다. ‘내게 존경을 표하라’. 그것뿐입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306)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렇지 않나 싶다. 인간의 삶이란 인정 투쟁을 위한 긴 여정이지 않은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메타 메시지는 오직 하나. 난 머리가 좋으니까 날 존경하라. 예전에 읽었던 문유석 판사의 글도 기억난다.

 


자학 취미가 있지 않고서야 숨기고 싶은 자기 위선과 추악한 치부 위주로 글을 쓸 사람은 없다. 어차피 글쓰기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인스타에 셀카 올리기, 수컷 공작새의 꼬리 펼치기와 다를 바 없을 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기 장점을 어필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자원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인정욕구와 결부되지 않은 표현 욕구란 없다. 다른 점이라면 그걸 어느 정도로 노골적으로 하느냐, 세련되게 감추며 하느냐가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기가 지금 잘난 척하는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는 있느냐, 그것조차 모를 정도로 바보냐 정도일 것이다. (『쾌락독서』)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 자기표현과 자기 해방의 즐거움을 넘어서서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읽기만 하지 않고 쓰고자 하는 심리의 맨 밑바닥에는. 길게 쓰려고 하고 재미있게 쓰려고 하고, 자꾸 고쳐 쓰는 성실한 습관의 이면에는.

 

메타 메시지가 있다. 나는 잘났고 그러니 나를 존경하라.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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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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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아는 그 무엇을 말하고 있고, 나는 그녀가 뭘 말하는지를 알겠다. 대단한 소설이다.

벳시가 그리웠다. 오늘밤만 그런 건 아니었다. 올리브가 침대에서 코를 골며 누워 있는 동안 그가 앞쪽 포치에 나가 앉은 채 반쯤 취해 울던 밤이 -몇 밤— 있었다. 올리브 대신 벳시와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밤에 올리브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 그는 그게 (전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268

하지만 그런 밤에는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빠져 있는 모습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런데 그건 그가 듣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는가? 그랬다. 잭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면에서 자신이 올리브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밤 이런 슬픔 속에서도 올리브와 결혼한 것은 여러모로 멋진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여자와 노년을 함께 보낸다는 것, 너무도 올리브다운 이 여자와. - P269

"음, 헬렌은 부자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마거릿이 밥을 쳐다보았다. "그게 사람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드니까, 밥. 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어."
"수줍어서 그래, 마거릿. 불안해서."
마거릿이 말했다. "수줍어하는 게 아니야. 부자라서 그런 거지.
나는 처음부터 헬렌을 참을 수가 없었어. 아주 멋지게 매만진 머리에, 금귀걸이를 하고, 오, 밥. 그리고 헬렌이 그 바보 같은 밀짚모자를 꺼냈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밀짚모자? 마거릿, 그건 무슨 소리야?"
"내가 헬렌을 참을 수 없었고 헬렌도 그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거야, 밥. 기분이 끔찍이 안 좋아." - P306

앤드리아는 ‘고백적인 시인‘이었지만, 올리브는 사람에게는 고백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시에 ‘성난 버자이너‘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이 이제 기억났다.) - P320

올리브가 말했다. "내가 그걸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보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건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야.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거지" - 올리브는 아까 커피를 가져온 여자가 있는 쪽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자기가 더이상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엉덩이가 큰 종업원에게 투명인간이 되는 거지. 그런데 그게 자유를줘." 그녀는 앤드리아의 얼굴을 계속 살폈는데, 뭔가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325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그녀는 작은 일인용 침대에 몸을 누이고텔레비전을 보았다. 뉴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그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라 전체가 지독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올리브는 그것에 흥미를 느꼈다. 이따금 이 나라에서파시즘이 대두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어차피 나는 곧 죽을 텐데 무슨 상관이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430

이따금 그녀는 크리스토퍼를 생각하고 그의 아이들 전부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그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결국 모든 게 엉망이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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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08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아끼고 있는데... 아흑. 얼렁 읽어야겠다!

단발머리 2021-02-08 21:59   좋아요 2 | URL
전 스트라우트에게 빠져버렸답니다. 샤라라랑😘😍🥰

다락방 2021-02-09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마니아 1위 누구일까요?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단발머리 2021-02-09 08:53   좋아요 0 | URL
1위는 누군지 알겠고요 으르렁! 2위도 아는 사람이네요 으르렁! 😡😡😡

수이 2021-02-09 14:35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스트라우트를 빌리러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드립니다 오바

단발머리 2021-02-09 14:36   좋아요 0 | URL
뭐뭐 빌렸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바

수이 2021-02-09 14:43   좋아요 0 | URL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 아직 뭐뭐 빌릴지 못 정한 1인이옵니다 오바

수이 2021-02-0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위를 빼앗길 것만 같은 위기감에 얼른 1위로 향해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2-09 13:34   좋아요 0 | URL
제가 단단히 1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움화화화핫

단발머리 2021-02-09 13:42   좋아요 0 | URL
이 분들...부지런한 분들이라 전 3위에 만족해야할 듯 합니다. 언강생심 3위가 어디냐?!? 하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 일단 책 정리부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을 이제 막 읽었고, 몇 년 전에 『에이미와 이저벨』을 읽었다. 『My name is Lucy Barton』은 여기저기 들고 다니고 커피랑 사진 찍고 좋은 시간 함께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고, 『Olive, Again』은 일단 준비해둔 상태다. 그녀의 책은 다 읽을 예정이다.

 

책 뒷면의 소개들이 괜찮다. 쇠락한 육식과 해진 마음에 깃드는 사랑. 아직은 내가 젊다고 생각한다. 머리 중앙에 흰 머리가 수북하고, 종잡을 수 없이 배가 나오고, 근래 눈 밑 주름이 자꾸 거슬리지만, 아직은 젊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픈 데가 없고 무거운 물건을 불끈불끈 잘도 들고, 그리고 빠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첫 번째 남편 헨리와 두 번째 남편 잭을 떠나보낸 후, 올리브는 혼자 쓰러져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난다.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들어가 (올리브가 보기엔) 중늙은이들과 생활하다가 자신보다 훨씬 더 젊은 사람의 죽음과 마주한다. 죽음이 아주 가까이에 왔음을 알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올리브도 죽음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불현듯 깨닫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지금 내게도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메이플트리에서 올리브가 새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학교에 다녔다. 지금 사는 곳도 자란 곳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 친구들까지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경기도권에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1시간 이내에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그런 친구들, 언제든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던 친구들을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건 어떤 걸까.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할 수가 없다. 올리브처럼 내게도, 죽음은 멀리 있으니까. 저기 저 너머에 그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서로 터놓고 말하는 사이는 아닌, 그 정도 사이니까.

 


결혼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올리브가 잭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온전히 그녀의 아들 크리스토퍼가 되어 올리브에게 물었다. 이해가 안 돼요, 엄마. 결혼을 왜 해요? 이 말이 어떻게 들리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하기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해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다. 이미 결혼해 봤다면 그리고 그와 행복하고 즐거운 결혼생활을 누려왔다면, 왜 다른 결혼이 필요할까. 왜 다른 사랑이 필요할까. 일평생 사랑이 단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결혼은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잭과 올리브가 처음 몇 달 동안 밤마다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들고, 함께 8년을 지내고, 피오르를 보기 위해 오슬로행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 올리브가 결혼한 건 정말 잘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부부간에 싸우는 일이란 대개 사소한 일이지만 또 그런 사소한 일에는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으니까. 아무튼, 부모님은 내내 싸우셨다.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예전처럼 활달하게 싸우시지는 못하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다. 요즘에도 종종 싸우시는데, 싸운 다음 날 엄마는 통화 중에 아빠에 대해 험담을 하신다. 생김새와 성격, 인생관이 아빠와 96% 일치하는 사람으로서 찔리는 구석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튼 엄마가 욕하는 사람은 아빠이니 그런가보다,의 심정으로 마음 편히 엄마 편이 된다.

 

시집가서 봤더니 시부모님이 싸우셨다. 우리가 가서 싸우시는 건지, 우리가 갈 때만 싸우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두 분도 자주 싸우셨다. 보통은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인 말이 오가는 정도인데, 아무튼 가까이에서 관찰한 두 가정의 부부들이 성실하게 싸우시는 모습을 확인한 후로, 나는 부부란 자고로 죽는 날까지 싸우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혹은 싸우기 위해 결혼했거나.

 


첫째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시어머니께서 낮에 아이를 돌봐 주셨는데, 아이가 제일 먼저 말한 단어가 아빠였다. 전 세계에서 엄마는 공통어에 가깝다. 엄마(한국), 마마/(영어), 마마(독일어), 마마(중국어), 마마(러시아어). 근데 이 아이는 엄마가 아닌 아빠를 말했다. 나는 아직도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한 아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한 명 그런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집 아이다. (시어머니의 반복 학습 때문일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무튼 아빠가 인생 첫 단어였던 첫째는 제 아빠를 좋아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빠하고 놀고 싶어 해서 내게로 오는 일이 없었다. 참 좋았다. 둘째를 낳았는데, 이 애는 아빠를 더 좋아했다. 말 그대로 아빠에게 딱 붙어 있어서 별명이 아빠 껌딱지였다. 시간이 흘러 총각 소리를 듣는 요즘에도, 두 자리가 나란히 있어도 둘째는 꼭 아빠 위에 앉으려 한다. 둘째도 내게 안 와서, 참 좋았다.

 

둘째가 하도 제 아빠를 좋아하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놀렸다. 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빠, 내가 네 아빠랑 결혼해서 ***(남편)이 네 아빠가 된 거야. 아무 대답도 못 하던 둘째가 제법 머리가 굵어졌는지, 지난번에는 이렇게 응수를 하는 거다. 엄마, 근데 엄마가 아빠랑 결혼 안 했으면 나는 없지. 그래 맞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맞아, 그렇지. 그러니까 나한테 감사해야 해. 내가 네 아빠랑 결혼했으니까 네가 태어난 거야. 그래서 네 아빠가 ***(남편)이 된 거고. 동의해서인지, 어이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둘째는 답이 없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 중에 알라딘 이웃님의 리뷰를 읽었는데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니 너무 좋았다. 인생에 인연이 하나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 내 옆의 이 사람이 그런 소중한 인연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이 구시대의 유물인 것은 확실하지만, 무조건 나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을 얻는다는 건, 또 그 나름대로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딸기는 이미 맛있는데. 알라딘 이웃님은 딸기를 생크림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마트 생크림이냐, 제과점 생크림이냐 물었더니 친절하게 PB 생크림이라 알려준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가 좋아하는 딸기와 생크림을 샀다. 딸기 먹는데 생크림이 왜 필요해? 라고 물을 것이 분명하지만, 내 마음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래서 딸기랑 생크림을 샀다. 딸기를 생크림에 푹 찍어 먹으려고. 딸기를 생크림에 찍을 때는 푹 찍어야 한다. 그래야한다고 한다. 딸기를 생크림에 푹. 푹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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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8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8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8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2-08 1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죠 너무너무!! 너무 좋죠!!
근데 단발머리님 왜케 책 많이 읽어요? 부럽게... 🥺

단발머리 2021-02-08 19:59   좋아요 1 | URL
왜케 많이는 아니에요. 오늘 긴긴 하루해가 가는 동안 전 겨우 이 글 한 쪽 쓴걸요🥺

붕붕툐툐 2021-02-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를 읽은 사람으로서 페이퍼만 읽어도 어떤 느낌일지 감이 오네요~ 잭이랑 또 결혼을 하는구나.. 흐음~ㅎㅎ
단발머리님 행복함이 여기까지 전해져요~ 너무 좋당~😻

단발머리 2021-02-08 21:33   좋아요 1 | URL
원치 않게 제가 스포일러를 했나 걱정되네요ㅠㅠ 전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이제 올리브 키터지로 가려고요. 역주행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2-08 21:36   좋아요 0 | URL
오~ 노노노! 이 책은 내용 알아도 전혀 문제될 거 없을 듯 해요. 또 저는 아마도 안 읽을 거 같기도 하구용~ 왜 좋다는진 알거 같은데 제 스퇄은 아니었어욤^^

단발머리 2021-02-08 21:37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아~~~ 그래요?!? 전 올리브 읽다 포기한 사람이었는데 이 책은 넘 좋았어요. 러브 삼종 나갑니다! 러브러브러브!!!

붕붕툐툐 2021-02-08 21:54   좋아요 0 | URL
앗! 올리브 읽다 포기하셨는데 이 책은 좋으셨다구요? 갑자기 또 귀 팔랑팔랑~👂👂

단발머리 2021-02-08 21:58   좋아요 1 | URL
네네네! 전 올리브 앞부분 읽고 집중이 안 되어서 포기했던 1인입니다. 이 책은 좋더라구요, 저는요.^^

다락방 2021-02-08 22:03   좋아요 1 | URL
단발님 역주행이었어요?!?!?!?!?!?!

단발머리 2021-02-08 22:16   좋아요 0 | URL
네네네! 전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1인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과거라고 할까요? 🙄

psyche 2021-02-09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빠‘를 먼저 말한 아이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ㅎㅎㅎ 어릴 때부터 아빠 딸이더니 지금도 아빠 딸이에요. 내게 안 와서, 참 좋았다는 단발머리님 말씀이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한참 웃었네요.

단발머리 2021-02-15 10:26   좋아요 0 | URL
아니아니아니!! 아빠를 먼저 말하는 그런 친구가 있단 말입니꽈!!!
저의 솔직함에 프시케님 한 번 웃으셨다니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1-02-09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빠˝ 먼저 말한 아이 우리집에 있어요. 우리 큰 아이요. 아이 낳자마자 제가 육아휴직 받아서 제가 주로 돌봤거든요.

둘째가 꼭 아빠 위에 앉으려고 한다는 부분도 우리 둘째랑 같네요. 몇 년 전에 제가 인스타에 그 얘길 올려거든요. 꼭 내 무릎 위에만 앉는다고. 이제 그럴 날이 얼마남지 않았을테니, 조금 불편해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이런 식으로요. 최근에 작은 아이가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고 제가 몇 년간 올린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그 글을 일었나봐요. 지난 주말에 제 무릎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아빠, 내가 왜 맨날 아빠 무릎에 앉는줄 알아? 아빠한테 이렇게 기대앉을 수 있어서 편하거든.˝ 이러면서 저한테 몸을 기대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2-15 11:32   좋아요 0 | URL
저는 ‘아빠‘ 먼저 말하는 아이 저희집 아이 한 명인줄 알았는데, 벌써 프시케님댁이랑 감은빛님댁까지 그런 아이가 세 명이네요. 댓글 읽다보니 아이가 정말 감은빛님을 좋아하네요. 그런 게 막 느껴져요.
무릎에만 앉는 날이 사실 길지 않다는 이야기는, 저도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는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다. 아렌트는 그의 책에서, 아이히만이 잔인하고 악독하거나 혹은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37) 때문에 그토록 끔찍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평가하면서, ‘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 다르게 아이히만은 순진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점을 밝혀낸다. 역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번역이 진부성이나 일상성보다 더 나은 지점을 설명하는데, 나 역시 악의 평범성이라는 번역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법정 정의의 집에서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과 협력은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다른 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74).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으며(74), 자신의 업무는 유대인 학살이 아닌 유대인 이주, 소개(156)였음을 주장한다.

 


아이히만이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을 느꼈다고 회상한 반제회의는 특히 중요하다. 회의의 서기로 참석했던 아이히만은 공무를 담당하는 관청 공무원들이 해결책(유대인 학살)’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183)고 증언한다. 또한 유대 자치기구인 장로회가 각 열차가 수송할 수 있는 인원수에 맞춰 다음에 수송될 유대인 명단을 만들어 주었음을 확인한다. 일부 숨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유대인 특별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185)고 한다.

 

유대인 지도층의 나치 협력.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지점이다. 유대인이었던 아렌트는, 원치 않았지만 시온주의자들의 활동에 협력했던 아렌트는, 수용소에 갇히고 간신히 탈출했던 아렌트는, 결국에는 고향과 고국이라 믿었던 곳을 도망쳤던 아렌트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피해자인 그들의 과실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어떻게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면서 여러 자료를 심층적으로 조사한다. 검사가 주장했어야 했던 내용과 아이히만이 자신의 변호를 위해 신청했어야 했던 증인들에 대해 말하면서, 아이히만의 범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아이히만의 심경 변화가 어떠했는지, 성공에 대한 아이히만의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분석한다. 이후에는 아이히만이 실제로 최종 해결책(유대인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을 한 명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는 주장을 언급하며,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유대인 장로회, 유대인 경찰의 나치 협력.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유대인,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은 이들이다. 먼저는 유대인 관리와 경찰, 유대인 위원회에 속한 유대인들이 살아남았는데, 아렌트는 그들이 동족의 재산을 압수해 자신들의 추방과 학살 비용을 충당했다(188)고 주장했다. 그들이 동족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고 결국 수많은 유대인이 무력하게 죽어갔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사망했고,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 아렌트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유대인 지도층들이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나치와 협력했다.  

 


그러나 모든 진실은 현지 및 국제적 수준에서 유대인 공동체 조직들과 유대인 정당, 그리고 복지 조직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유대인에게는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거의 예외 없이 이들의 리더십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나치스와 협력했다. 모든 진실은 만일 유대인이 정말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들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 500, 600만에 달할 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196-7)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 대해 말했지만, 실제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엄청난 비극의 희생자들이기에 자신들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후에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아트 슈피겔만은 자신의 책 『쥐』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는지 그려냈다. 그의 아버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 어마어마한 노력과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행운에 힘입어 여자 수용소에 갇혀 있던 아내도 도와줄 수 있었다. 착하고 순종적이고 양보했던 이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천천히 자기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거짓말을 하고 요령을 피우고 엄청나게 운이 좋았던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지옥과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은 명백한 피해자이다. 그들은 반유대주의의 희생양으로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에 의해 종족 전체의 전멸을 목표로 진행된 대량 학살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이다.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법정에 세웠던 유대인들로서는 가해자인 독일인과 피해자인 유대인을 극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유럽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에 대해 유럽 전체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렌트는 피해자인 유대 사회의 오류를 지적하고, 완벽하고 오점 없는 모습의 피해자상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피해자인 너희에게도, 죽임을 당한 너희에게도 책임이 있다. 유대 사회가 폭발한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을 반 정도 읽었고, 『한나 아렌트의 말』은 이전에 읽었다. 그래픽 노블이지만 훌륭한 아렌트 안내서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을 읽었다. 나는 아직,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아렌트의 책을 좀 더 읽어 나간다면, 이 페이퍼의 일정 부분이 혹은 상당 부분이 나의 잘못된 이해에 근거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만큼 읽고 느낀 점이라고 한다면, 한나 아렌트는 자신을 여성과 남성 사이에 두었던 것처럼, 자신을 유대인과 독일인의 범주 너머에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의 저자의 페미니즘 모먼트는 경제 활동을 하시던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남자라고 페미니스트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반대로 여성이라고 해서 자연스레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사고의 대부분은 기존의 관념과 문화와 실제를 받아들이면서만들어지고, 내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생각의 많은 부분은 사실 기득권의 이해를 강화하는 쪽으로 구성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대부분의 나라는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한다.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일이 가부장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억지라고 생각되는 일들의 상당 부분이 페미니즘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을 유대인의 카테고리 바깥에 둔 것처럼 여겨진다. 유대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 너머에서 판단했기에 유대인에게 가혹한 진실을 폭로하며, 반유대주의자들 주장의 근거가 될만한 이런 글()을 작성했을 거로 추측한다(물론 그녀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혐오한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일면 이해되는 지점이다. 비판적 사유를 추구했던 정치 이론가, 사유하는 것에 대해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실제로 모든 사유는 엄격한 법칙, 일반적인 확신 등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기반을 약화시켜요. 사유하다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할 대상이 돼요. (『한나 아렌트의 말』, 1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성이라는 범주 혹은 유대인이라는 위치를 넘어서서 사유하고 발언할 때조차, 그녀가 여성이며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녀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로 인한 사회적 제약을 인지하느냐 인지하지 못 하느냐에 상관없이 말이다. 사회과학의 그 지긋지긋하고 지루하며 고전적인 변명인 객관성중립성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한나 아렌트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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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나 아렌트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4 22:06 
    저명한 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에게는 빠지기 쉬운 두 개의 함정이 있다. 한 가지는 이상화(우상화)이고 또 한 가지는 뒷담화. (신기하게도 모두 ‘화’로 끝난다.) 이상화는 과거에 대한 미화, 망자에 대한 연민으로 치우쳐질 우려가 있다. 쉬운 길이다. 뒷담화 역시 마찬가지. 비판이란 행위 자체는 가치 중립적일 수 있지만, 뾰족한 비판으로 자신의 지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멍청한 시도는, 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지독한 유혹이
 
 
청아 2021-02-07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북플 넘 글 잘쓰시는 분들 많아요! 오늘 두번째 소름..이 책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21-02-07 17:40   좋아요 3 | URL
중립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극중주의‘처럼 말이에요. 북플의 무림고수님들에게는 항상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라딘을 좋아하지요.
이 책 다시 읽게 되시면 미미님 감상도 남겨주시어요^^

다락방 2021-02-07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나 아렌트 정말 몇 권 안읽었지만 왜이렇게 좋을까요? 내내 미루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단발님의 페이퍼로 만나니 너무 좋아요. 저는 링크하신 저 세 권 셋트 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단발머리 2021-02-07 18:58   좋아요 1 | URL
일단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아이히만 맨 첫번째 링크된 걸로 읽고 있거든요. 번역 문제는 그거나 두번째 3권짜리 세트나 말이 좀 많기는 하지만... 제가 평을 슬쩍 보았더니, 3권짜리 반양장 가격이 예술이다 뭐, 그런 평이 있더라구요. 나란히 꽂아두면 아주 아름답기도 하구요. 제 생각을 두서없이 말씀드렸지만 다락방님의 갈길을 소신있게 갈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구매!!!

비연 2021-02-07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를.. 지름신 강림의 페이퍼라고.. 허허허허.
마지막 문단 좋아요. ˝사회과학의 그 지긋지긋하고 지루하며 고전적인 변명인 ‘객관성’과 ‘중립성’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한나 아렌트마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다락방 2021-02-08 10:39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여기서 뭘 지르실건가요? 알려주세요.....

비연 2021-02-08 10:40   좋아요 0 | URL
<정치사상 세트>.. 나머지는 원서 빼곤 다 있다는... 아아. 요즘 왜이리 전집이나 세트가 유행인거죠???? ㅜ

단발머리 2021-02-08 11:10   좋아요 0 | URL
전 비연님 이 책 다 갖고 계시리라 예상했었음요 ㅋㅋㅋㅋㅋㅋ역시나 👍🏼👍🏼👍🏼

다락방 2021-02-08 12:17   좋아요 0 | URL
스스로에게 설 선물.. 하실건가요? 저는 어쩐지 명분이 필요해서 설 선물로 정치사상 세트 해줄까.. 싶습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2-09 17:07   좋아요 0 | URL
전 일단 비연님께도 스스로 설선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사실... 저의 설 선물 리스트를 짜고 있거든요 ㅋㅋㅋㅋ 일테면 <다시, 올리브>는 도서관 책으로 읽었지만 소장해야 하고요.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는 도서관 4곳을 뒤졌는데 없더라고요. 그것도 준비해야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척 바쁘네요

비연 2021-02-08 13:15   좋아요 0 | URL
설 선물.. 스스로에게 하긴 할텐데.. 뭘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골랐다 싶으면 이렇게 복병 페이퍼가 등장하는 거죠...;;;;

mini74 2021-02-07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생각나네요. 주기율표만 읽었는데 가라앉은 자도 읽어보고 싶어요 한나아렌트의 그래픽 노블도 읽어보고 싶고,ㅎㅎ 설선물 꼭 주고받아야 한다면 스팸말고 도서상품권 주고 받음 좋겠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1-02-08 11:32   좋아요 1 | URL
전 <주기율표>를 아직 못 읽어서요. 그 책도 항상 저의 ‘읽고 싶어요‘에요.
mini74님 스팸 세트보다 도서상품권 설선물 제안은 정말 좋네요. ㅎㅎㅎㅎ

비연 2021-02-08 13:16   좋아요 1 | URL
<주기율표> 재미있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책들은 자꾸 읽게 되더라는.

단발머리 2021-02-08 18:41   좋아요 1 | URL
아.... 주기율표 인기 급상승하나요? 비연님이 재미있다 하시니 바로 휘둥그레 @@

2021-02-09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9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