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전은 너무 평범해서 맘에 안 들고 동그랑땡이 좋기는 한데, 한 번도 안 해 봐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꼬치전. 소고기 산적이나 생선 살 같이 넣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손이 많이 가서 패쓰. 재료 준비해놓고 보니 흡사 김밥 모드다. 작년 추석에는 나름 도전적인 요리법을 차용했더니 창의적인 모양이 탄생해 올해는 유투브에서 알려준 그대로 부침가루 한 쪽에만 묻히고 탈탈 털어 얌전히 계란물 입혔다. 나름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중간 크기 접시에 두 번 담아낼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손이 작으냐. 큰며느리 손 크다는 이야기 도대체 누가 지어낸 말이냐. 시댁에서 뚜껑을 열어본 동서(중학교 때부터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형님, 사 왔어?” 물어보길래 이번에는 망치지 않았구나 싶었다.
장을 보고 와서 잠깐, 꼬치전 부치기 전에 잠깐. 후다닥 전 부치고 나서 마저 읽었다. 중간쯤에 잠깐 흐름을 놓쳐 아, 이럴 수가, 하고 스스로 조금 실망했는데, 책 뒤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설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도 이 책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 이렇게 번역까지 했지만, 그런데도 썩 순순히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누가 줄거리를 요약해보라고 하면 꽤나 골머리를 앓는다. 아무리 봐도 나중에 억지로 갖다붙였지 싶은 헐렁한 설명도 있다. 물론 그것이 챈들러 소설이 본디 지닌 맛이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아무튼 성가시다. (해설, 무라카미 하루키, 287쪽)
잘 생겼고 키 크고 머리 회전이 빠르고 비 오는 와중에도 잘 달리고 미인의 유혹에도 의연한 사람을 알게 되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이제 그와의 시간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니, 약간은 두렵고 한편으로는 설렌다. 꼬치전은 추석에나 부칠 테니까 시간적 여유도 생겼으니 차근히 만나보겠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