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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어떤 특권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우월성의 표식입니다. 타자의 시중을 들기 위해 타자를 돌봐야 하는 혹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직업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과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부와 신분 그리고 출생이 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돌볼 (배려할-옮긴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로 나타납니다. 로마의 오티움orium (교양 있는 여가)이라는 개념이 이와 아주 가깝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교양 있는 여가'는 특히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배려하는-옮긴이)데 보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38쪽)



이런 이야기는 참 필요 없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써 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제목 때문에 구입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 이 부분을 푸코가 프랑스어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껏 흥미를 일으키는 제목인 데다가 책의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과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 색깔로 대결하는. 내용이 어떤지 보지도 않고 구입했는데, 한참 읽고 나서야 전에 읽었던 푸코의 『자기 해석학의 기원』이 포함되는 <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시리즈 중 4번째 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파란책과 나란히 하는 책이라면 사지 않았을 텐데. 그 파란책은 너무나 어려웠고 어려웠으니, 이것저것 찾아보지 않은 나의 불찰입니다.



푸코는 자기 돌봄과 자기 테크닉을 통해 '자기 수양'을 연구하는데, 여기에서 자기 돌봄은 일정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시골에서의 은둔, 명상, 독서 등이 자기 돌봄의 방책들이다. 38쪽의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특권'이라는 말은 바로 이해 가능하다. 명상과 독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 자신과의 관계를 계속 확인하는 이 00는...................................................................





어제밤에, 여기까지 쓰다 잤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에 수험생이 모의고사를 보는데, 예정해 두었던 소고기미역국을 끓인다 하니, 수험생과 재작년 수험생이 반대했기 때문에, 다른 메뉴를 찾던 중에 아쉬운 대로 닭가슴살 양파볶음을 해주기로 했고, 밥도 새 밥이어야 하니, 아침 일찍 기상하여야 하기에....



그래서,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특권이다. 타자의 시중을 들 필요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직업에 전념할 필요도 없는 상태. 우리나라는 노인인구 빈곤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인지라 이런 말의 한 쪽 구석이 비어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만약 노년에 경제적인 압박이 덜하다면 나는 이게 실현 가능한 사람은 '남편과 사별한 60대 후반의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사별한'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한 가지는 남편과 사별했다는 것이고(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노년의 잔소리꾼을 경험한 사람만 알 것이니), 두 번째는 한국에서 '여전히' 정서적, 경제적인 보증이 되는 자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다. '60대 후반'은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이고, 현대의 추세를 고려하건대 이는 80대 초반까지 가능하다. '여성'이라는 건, 남성에게 돌봄, 더욱이 자기 돌봄은 죽음 직전까지도 너무나 어렵고 고차원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중을 들 필요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직업에 전념할 필요도 없는 상태. 거기에 더해 나 자신의 존립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는 상태. 자기 돌봄의 최정점. 나의 이런 생각은 128쪽의 문장들로 확인된다. "노년은 인생의 특권적 시기입니다."




그 자기 돌봄 최정점의 한쪽에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하루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바, 자신이 느낀 바, 자신이 경험한 바, 자신이 읽은 책, 자신이 나눈 대화 등을 메모하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인이 휘포므네마타hupomnémata라 부르는 바, 즉 다시 읽고 기억하기 위한 수첩을 만듭니다. (87쪽)



하루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바, 느낀바, 경험한 바를 적어나가는 일,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일, 자기 자신과의 대화, 타인과의 대화를 메모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던지. 그 중요한 자기 돌봄에서조차 글쓰기는 이렇게나 중요하다.



나는 19년을 전업주부로 있다가 작년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일, 계약 관계에 의거한 일, 눈에 보이는 일, 돈을 받는 일을 하게 되어 기뻤으나, 이런 기쁨과는 상관없이 내 체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져다드리다 보니 어느새 잃어버린 나의 여가 시간. 내게는 무언가를, 어떻게 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희진 선생님은 공부가 필요 없는 계층과 공부할 여력이 없는 계층 사이에 위치한 중산층의 특이성에 대해 설파하시면서, 중립적일 수 없는 지식의 한계, 위치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그러니깐 결국 지식의 생산, 새로운 언어의 창조, 더 넓은 의미에서의 글쓰기는 중산층에게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언제던가, 평일 저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선생님은 청중을 가리켜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올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가지신 분들'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건 참 맞는 말이다. 그러지 못하는, 그럴 수 없는 조건이 훨씬 더 많다.



진실을 지향하는 자기 수련과 관련해 푸코는 자기화, 체현에 대해 말하는데, 그가 예로 든 '계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또 다음 기회를 이용해야겠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오후에는 바쁠 예정이며, 퇴근 후에는 2부가 펼쳐질 것이고, 쩜쩜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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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7-11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바닥의 푸코광인이 기쁨의 내적 댄스를 추며… 이 글을 포풍흡입하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득 ㅋㅋㅋㅋ 제가 예전에 써둔 글을… 여성의 노년과 자기돌봄에 대한 글의 링크를 여기 놓고 가오니…. 한번 읽어주십시오! ㅋㅋ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664706 (이미 여성 노년의 삶에 적응해버린 잔류인구 올림ㅋㅋㅋ)

수이 2024-07-1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전히 제목이 좋아서 샀어요. 마침 표지 때깔도 핑크핑크해서 영롱하기 그지 없었고. 정희진 선생님 말씀은 여러모로 뼈를 때리네요. 천천히 읽으면서 저도 ‘진실‘을 말해볼래요.

공쟝쟝 2024-07-11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읽어도 너무 좋네. ㅋㅋㅋㅋㅋㅋ 좋아요 버튼 1000천개 다른 거 없나요? ㅋㅋㅋㅋㅋ 푸코여서 좋은 거 아니고요 단발님의 푸코여서 좋은 거예여.. 게다가 정희진 샘 이야기 나온 것도 너무 좋고요. 물론. 그날. 그 강연 장에서 단발님이 저한테.쟝쟝님. ㄱ ㅣ억해여!!! 당신 이제. 중산층입니다. 라고 해서 억울했다고… 제가요? 제가.. 제가요?🙄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 세번 부정했습니다.만. 그냥 인정하고 한가한 척하면서 푸코나 읽으면서 지내기로 함.ㅋㅋ 자기돌봄은 여유에서 나온다. 특권이다. 인정인정. 나의 특권.

푸코의 글쓰기로써의 자기돌봄이랑 파레시아랑 저는 연결되는 지점에서 저는 나름 제가 추구하고 있는 실존의 미가 있다고 의미부여 하곤해요. 멍멍! ㅋㅋㅋㅋ

독서괭 2024-07-12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코 읽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선집이 예쁘게 나왔군요…씁(침 닦고)
저 이모티콘 공감이요 ㅋㅋㅋ 에휴 단발님 아침에 요리까지 하려면 더 그렇죠. 전 아침 요리 포기 ㅋㅋ
노년이 인생의 특권이 되는 걸 목표로 살아야겠.. 이라 쓰다 보니 사별이 조건입니까? ㅋㅋㅋㅋㅋ 아 미안 남편.. ㅋㅋㅋ
 












1.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의 세 번째 책이다. 이런 거 다 부질없지만 굳이 매겨보는 나만의 고닉 랭킹. 1. 상황과 이야기 2. 사나운 애착 3. 짝 없는 여자와 도시 4. 멀리 오래 보기(읽는 중). 이 책은 사나운 애착의 다음 이야기 같은 느낌이기는 한데, 워낙 『사나운 애착』이 사나워서, 나름 순한 맛으로 느껴진다. 제일 좋았던 부분은 우정에 대한 글이다.





깐깐하고 까칠하고 쉽게 곁을 줄 것 같지 않고,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아닌데, 고닉이 진짜 좋다. 점점 좋아진다.










2.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그럼 오빠는 왜 싸우는데요?"

세상을 바꾸려고, 라고 그는 말했었다. 학생 시절에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조직에 속해서 가장 험한 현장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이야기를 그는 자주 들려주었고 그래서 내가 언젠가 물어보았다. 세상을 바꾸려고. 그래서 그렇게 싸운 끝에 세상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그가 현장에서 30년을 보낸 지금, 그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자신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나마 바꾸었다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30년이나 지나서, 눈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손목과 어깨와 허리가 수시로 아프게 된 지금에야 말이다. 싸워서 세상을 바꾼다는 건 그런 것이다. 주로 허리와 어깨가 아픈 작업이다.

"안 싸울 수는 없잖아요."

남편이 돌아누워 나를 쳐다보았다.

"열받으니까"

그건 그렇다. 남편이 팔을 뻗어 나를 품에 안았다. (67쪽)

이 책은 쓰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느낌과 감상과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출퇴근의 위력은 가장 큰 변명거리이고, 나는 2주간 감기약을 먹었으며, 2시간 전에도 멈추지 않는 기침, 콜록콜록! 그럼에도 리뷰/페이퍼는 책을 읽는 '중'에 써야 하나보다. 한 가지는 기억이 난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다. 역사와 상황과 처지가 각 개인을 구속하는 양상과 현실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산다. 내 삶의 주연은 나일 수밖에 없고 (이 무슨... 자꾸 자기계발서 도입부와 같아지는..... ?) 결국 내 삶은 내가 꾸려나가는 거다.

글쓰기/책읽기 책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세 권 고르라 하면, 나는 이렇게 3권을 꼽는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 그리고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19쪽)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남성에게도 있겠지. 여성에게는 더 많다. 결혼을 하면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3배, 9배 많아지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여성은 남성보다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그것 그대로 내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내가 원하는 삶이란 뭘까. 내가 바라는 거.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나는, 내가 그걸 원한다고, 그걸 바란다고 '말'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보다는 '그게 안 되는 변명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가. 안 될 이유를 먼저 찾는 나.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나. 내가 원하는 '진짜' 삶은 저기 저 멀리,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는 나.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던 거 같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변명하기도 하고(변명 1), 또 다른 변명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변명 2), 결국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택한 그 삶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위한 사람을 위한 것일 때 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숭상한다.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다른 사람을 돕기로 결정하는 사람. 열받으니깐. 짜증 나니깐. 이건 잘못된 거니깐. 자신의 삶을 보태서라도 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서는 사람. 그 일에 자신의 어깨와 허리를 내놓는 사람. 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러니깐, 외계인이 나오는 이 SF 소설, 정보라의 삶이 촘촘히 보이는 이 소설, 환경 소설이라 불러도 좋을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면, 나는 정보라를, 정보라의 남편을 존경한다는 거다. 나는 그들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숭상한다.











3. 가야트리 스피박, 타자로서의 서구

가야트리 스피박을 읽으려고 『타자로서의 서구』를 먼저 읽었다. 참, 잘한 선택이었다. 그전에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를 읽었다. 참, 좋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이 두 권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가야트리 스피박은 참으로 어려웠고 또 어려웠다. 이건 단순히 내 문제가 아니라 이 시리즈, 이 저자, 이 출판사, 이 번역가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래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서발턴이 말하지 못한 거 아닐까. 이래서 어떻게 서발턴이 당신의 말을 이해하겠냐고요! 라는 공허하고 서글픈 외침이 거실 한 가득 메아리쳤다. 스피박에게는 닿지 못하겠지. 이런 순.

타자비판에 전제되어야 하는 자기비판에 대해 쓰고 싶기는 한데.... 아... 어렵다. 어려운건 패쓰. 내가 주워온 문단은 여기 두 군데다.

페미니즘 이론가에게는 무슨 일이 남아 있는가? 스피박의 대답은 교육에 있다. 만약 문학 교사가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의 욕망을 비강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서발턴 여성의 정신극장을 비강압적으로 재배치하는 방식이 있어야만 한다(Mor-al Dilema' 참조). 스피박이 적극적으로 시골의 교육에 개입하기 훨씬 전에 <국제적 틀에서 본 프랑스 페미니즘>이 규정하듯이,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젠더 훈련'의 대안은 상상이 가능하다. (168쪽)

어쨌든, 그녀는 제가 가르치는 일을 돕도록 했습니다. 당신이 인도에서 느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수입니다. 따라서 채점해야 할 시험지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어머니는 진짜로 저에게 등수를 매기는 법, 채점하는 법, 심지어 그는 서명을 위조하는 법까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머니와의 공모를 통해 어머니의 서명을 위조해가며 가르치는 법을 배우면서 관련 주제론은 아주 풍요로워집니다, 그렇죠? 그게 열한 살 때였습니다. 그 후 열일곱 살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영어 과외를 했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가르쳐왔던 겁니다. (217쪽)


스피박의 어머니는 극빈층 과부들이 취업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었는데, 11살의 스피박은 어머니에게 등수 매기는 법, 채점하는 법, 서명 위조하는 법을 배운다. 17살부터는 돈을 벌기 위해 가르쳤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극빈층 과부를 도와주는 어머니의 딸이 말하는 전지구적 리터러시.

스피박을 더 읽긴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하는데, 하는데, 는데, 데......











4. 테일러 스위프트

아껴 읽는 책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남긴 말을 정리한 이 책이다. 여기에도 심상치 않은 10살 아이 등장한다.

열 살 때는 밤에 말똥말똥 눈을 뜨고 누워서 우레처럼 환호하는 군중을, 무대로 걸어 나가는 저를, 조명 불빛이 처음으로 비추는 저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전 늘 계산했어요. 그러면 어떤 기분일지가 아니라 정확히 어떻게 해야 그 자리에 설 수 있을까 곰곰 궁리했어요.

-2007년 12월 3일, 《컨트리 위클리 Country Weekly> (33쪽)

타고났구나 이런 생각보다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감동은 대부분 그런 사람에게서 온다. 과하다, 하는 정도의 집착과 한결같은 끈질김, 그리고 성실함. 뭘 했어도 성공할 게 분명한 사람들에 테일러를 더한다. 진작에 고닉을 더했고, 2주 전에 정보라를 더했다. 저번 주에 스피박을, 어젯밤에 잭 리처를 더했고, 오늘은 테일러를. 테일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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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7-0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위에 있는 푸코 마니아님.... [충격] 단발머리 공쟝쟝보다 심한 푸코 마니아로 밝혀져.
스피박, 같은 부분에 밑줄! _________________________ ! 그었다는 것을 알립니다! 타자로서의 서구는 서문만 읽었네요 ㅜㅅㅜ 더 읽을 시간을 내야하는 데. 스피박의 어드메 문장이었는데 ˝(읽기를 통한) 욕망의 구조 재배치˝. 저도 여기에 관해서 막 뭐라고 쓰다가. 쓰다가 말았음을 알립니다. 욕망 혹은 쾌락의 구조를 재배치하는 것에 저는 요즘 꽂혀 있습니다. 이런 도파민 홍수 시절에 구태하게도 말이죠 ㅋㅋㅋㅋㅋ 일단은 욕망. 욕망을 잘 알아야겠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샘내는 것. 나 자신이 원하는 것. 진짜 원하는 것. 그걸 일과에서 조금씩 채워가기. 거기에서 쾌락을 찾으며.... 딴 데로 새지 않게 해주옵시며. 내일은 코어 운동에서 욕망과 쾌락을 찾게 해주옵시고...

단발머리 2024-07-01 23:54   좋아요 1 | URL
딴 데가 어디인지에 대해, 거기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 내일 이야기해 보아요. 굿나잇~~ 🌛

다락방 2024-07-02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오늘 이 페이퍼는 읽으니 이만교의 인용문 때문에,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생각이 납니다. 곰스크로 가고 싶었지만 중간에 기차에서 내린 아내 때문에 자신도 곰스크로 가는 대신 중간지역에 정착했다고 아쉬워하는 남자가 나오거든요. 그 때 그 마을의 누군가가 그에게 말해줍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중략)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

덧붙여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서는, ‘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답을 구하게 된다‘는 절대적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전 정말 그렇게 믿어요. 답을 구하고자 하면 구하게 된다는 것을요.

단발머리 님, 굿모닝!
저는 요즘 저를 사로잡는게 달리기라고 생각하는데, 단발머리 님을 요즘 사로 잡는 건 비비언 고닉, 정보라, 테일러, (잭 리처) 이네요. 후훗.

단발머리 2024-07-02 10:49   좋아요 0 | URL
아...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일단 적어 두고요. 다락방님이 인용해 주신 문단 너무 좋네요. 제 페이퍼랑 딱 잘 어울려요. 제가 맘 속에 두었던 말들이 인용해주신 문장 속에 다 들어있어요. 아니, 이 책은 언제 읽으신 거에요?
잠깐만요. 저 가서 표지 좀 보고 올게요.

제목은 한두번 들은거 같은데, 표지 보니 낯선 책이네요 ㅎㅎㅎ
제 맘 속 문장을 찾아내시는 다락방님의 감식안에 기립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꼼짝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운명이 비극적인 경우에요. 저는 이런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근데 결국 바꿀 수 있는건 외부가 아니라 내부이고,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나이고. 내 마음, 내 생각.... 이라는데 다다를 수밖에 없더라구요. 전 반항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빨리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 제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마다 다락방님이 전해주신 이 문장들 잘 기억하고 있을게요.

전 고닉과 정보라, 테일러에 사로잡혔죠, 완전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잭 리처한테는 화가 나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4-07-02 17:42   좋아요 2 | URL
이 책이 내 서재에 있는 책인지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기가 막힌 인용문은 틀림없이 기억하고 찾아내는 사람, 그 이름 다.락.방.

독서괭 2024-07-02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 고닉으로 시작해서 스피박에 마지막은 테일러 스위프트인가요! 요즘 가끔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 랜덤으로 듣는데 좋더라구요. 별로인 노래가 아직까진 없는 듯!
소설가도 하나의 직업인데, 다른 이들이 저렇게 말하면 좀 ..뜨악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찔리네요...
단발님 기침이 아직도?? 아구구~~에구구~~ 어서 나으시길요. 저도 기침 진짜 오래 갔었어요 ㅜㅜ

단발머리 2024-07-10 10:33   좋아요 1 | URL
테일러 스위프트가 제가 제일 말하고 싶은 어떤 지점입니다. 성공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서 그가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해왔는가에 저는 관심이 많고요. 그 동력의 제일 주요 포인트가 작사/작곡 능력이어서 더 멋집니다.
저, 이제 기침은 다 나았어요. 독서괭님도 기침 때문에 고생하셨군요 ㅠㅠㅠ 아... 에어컨 우리의 적.....

수이 2024-07-03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도 더해요. 저기에. 단발머리도 플러스 하자, 마지막 문장 뒤에_ 단발머리도 더하자_ 라고 했습죠.

단발머리 2024-07-10 10:3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도 더하자............는 수이님만 해줄 수 있는 다정한 말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감사감사링!!
 












하나로 길게 엮인 글을 쓰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해서(콜록콜록,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해 둔다.










『폭력의 고고학』에서 삐에르 끌라스트르는 이렇게 썼다.

이처럼 모든 문화는 인류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즉 인간의 대표로 긍정되는 자기들 자신과 거의 인류의 자격을 갖지 못하는 타자들이 그것이다. (64쪽)

나는 이것이 출생 후 인간(인간 아기)이 세계와 자신을 구분해서 인식하는 과정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체로 생각했던 엄마와 자신이 분리가능한 개별적 존재라는 충격적 인식이 호와 불호, 긍정과 부정으로 이어지는 판단의 기초가 된다고 본다. 긍정되는 자기들 자신과 부정되는(열등한) 타자들. 그래서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겪는 남아의 자아 정체감 형성에 비해 여아의 자아 정체감 형성 과정에 여러 난관이 산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다음에(진짜로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자.


1. 혈통과 소속

민족 담론에서 '한 핏줄' 신화는 민족 집단체 구성에 핵심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생김새(차은우를 봐서는 많이 비슷한 거 같지는 않음)와 비슷한 피부톤을 가지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이러한 '단일 민족' 신화가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한 핏줄'이 민족주의 기획에서뿐만 아니라 서구적 유형의 정체성 구성의 한 유형이라고 보는데, 입양되고 인공수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들의 참true 부모 찾기를 그 예로 든다. (60쪽) 자신의 생물학적 혈통을 찾으려는 요구.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집착. 결국 이런 혈통에 대한 갈구는 신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는 외양적 차이가 구별 또는 차별과 연관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타자성

'타자성'이라는 구성체가 불변의 '타자'를 배제하고/하거나 착취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인종차별주의가 발생한다. (94쪽)

'타자'에 대한 신화적 전형은 주로 신체와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1920년대 반유태주의 포스터에는 '유태인의 코'라는 악의적 이미지에 더해 '유태인스러운' 팔꿈치와 무릎도 언급되었다. 그러나 피부색이 인종차별주의의 주된 기표가 되면서 '홍red', '황yellow', '백white', '흑black'이라는 신화적 인종이 성립되었다(95쪽) 한 방울 법칙에 대한 집착과 '흑'을 악, 괴물 그리고 저급한 섹슈얼리티로 연관시키는 지속적인 시도 역시 삐에르가 말한 그대로다. '인간의 대표로 긍정되는 자기들 자신과 거의 인류의 자격을 갖지 못하는 타자들'.

3. 인종차별주의와 섹슈얼리티

인종화된 타자화로 인한 편견은 '이방인=강간범' 신화로 강화되는 한편,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남성들의 섹스관광 산업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신시아 인로(Enloe, 1989: 2장)는 백인 남성들의 성적 쾌락의 장소로 지목되는 아시아의 빈국에서는 이런 섹스 산업이 경제적 생계 수단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지역의 위치는 태국, 남한, 필리핀과 같이 미군의 '휴식과 여가'를 위해 준비된 장소였던 경향이 있다. 가끔 이러한 관계들은 단순한 섹스 관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동양 여성들은 곧 아름답고 온순하며, 근면하고 의존적인 '완벽한 아내'라고 구성된 탓에 우편 주문 신부mail order bride 회사들이 성행했다. (100쪽)

우편 주문 신부에 관한 각주에는 옮긴이의 이런 설명도 추가되어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적으로 우편 주문 신부 시장이 성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본문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섹스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각주에는 우편 주문 신부 시장이 성행하는 지역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 대한민국이.











다른 한편으로는, 우편 주문 신부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Sarah, plain and tall>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 모두 다와 결혼하지 않는 것처럼, 일면 정형화된 방식의 만남 속에서도 사랑을 찾고, 끝내 사랑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4. 다문화주의의 효과

다문화주의의 효과는 여성에게 특히 해롭다. '다른' 문화 전통들이 문화적으로 특수한 젠더 관계의 측면에서 종종 정의되고, 여성들이 스스로, 특히 노년 여성들이 여성 행위의 통제에 참여하고 협조하여 민족 경계의 재생산에 이용되기 때문이다(Yuval-Davis and Anthias, 1989). 이러한 공모 중 한 예로, 영국에서 한 판사는 베일 쓰기를 거부한 후 이란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던 한 이란 여성이 올린 망명 요청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이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이 사건의 설명은 재키 바바Jacqui Bhabha 변호사에게 들었다). (111쪽)


다문화주의가 여성에게 작동되는 방식은 양가적이고 복합적이다. 중국에서 전족의 실행자가 어머니였다는 사실 혹은 여성 할례를 시행하는 사람들이 노년의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여성이 여성 행위의 통제에 참여하며 협조한 사례이다. 전통과 문화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잔인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즉시 중단되어야만 한다.

‘여성성‘womanhood은 관계성의 범주이며 그와 같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민족성nationhood의 구성물들이 대개 ‘남성성‘manhood과 ‘여성성" 모두의 특정 개념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의 인식론적 뼈대는 지식이 상황적이며(Haraway, 1990), 한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지식은 ‘완성되지 못한다(Hill-Collins, 1990)는 인식에 기반한다. (15쪽)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외울것만 같은 해러웨이님의 말씀. '지식은 상황적이다' 되시겠다. 한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지식은 '완성되지 못하며', 나의 자기 인식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만 또 다른 지식의 추구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마무리는 해러웨이님 말씀으로.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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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1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공백 어떻게 없애는 건가요? @@ 나도 몰라요!

다락방 2024-06-25 12:37   좋아요 1 | URL
글쓰기 수정 하신 뒤에 맨 밑으로 가서 백스페이스 엄청 누르면 되지 않을까요?

단발머리 2024-07-01 12:27   좋아요 0 | URL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 쓰고 복사해 와서 그런 걸까요?
빈 칸도 복사하는 마음......... 헐

다락방 2024-06-25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는 이 책 읽고 있지만 정리는 어림도 없거든요. 이해를 못하고 있어서.. 그런데 단발머리 님은 전체적으로 정리 해주셨네요. 넘나 멋져요! 💕

단발머리 2024-07-01 12:26   좋아요 0 | URL
젠더와 민족의 계절이 가고 바야흐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한혜정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눈을 뜨니 새벽 3시. 왜 이렇게 덥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이마에 손을 대보니 뜨겁다. 냉동고에서 아이스팩 하나를 꺼내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시원하니 좋았다. 하지만 손이 시렸다. 아이스팩을 내려놓으니, 이마가 문제. 시린 손으로 다시 아이스팩을 이마에 올려두었다.


이제 새벽 4시. 웬만큼 더워도, 온 세상이 열대야로 들끓어도 한 번도 깨지 않는 내가, 내 속에 가득한 열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앉았다가 모로 누웠다. 아이스팩을 이마에 대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새벽 4시. 주님께 드리는 새벽의 기도, 시편 42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는데, 그날은 새벽에 기도를 했으니, 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양쪽으로 쭉 뻗는다. 그래봤자 110도. 북플에 들어가서는 이런 책을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책 소개, 책 속 문장을 읽게 된 거다.










“다 와서 좀 헤맸어요.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내게 손님은 “이거 단건 배달 아닌가요? 어플로 보니까 박달동 갔다가 오신 것 같던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항의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묶음 배달을 완전히 포기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치킨에 대한 순정으로, 피자에 대한 사랑으로, 수제버거에 대한 로망으로 배달이 오기만을 설레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 집만 가자. 그게 덜 위험하고, 나도 마음 편하다. 나는 고객의 ‘설렘’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 (「한 번에 한 집만」)


인문학 박사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입니다>에서 이미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당 강의료 3만 5천 원에, 신문과 잡지의 고료를 다 합해도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도 또 들어도 뜨헉! 이다.


위에 인용하지 않은 김밥과 떡만둣국 이야기도, 위에 인용한 '한 번에 한 집만' 이야기도, 배달이라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그 특별한 일상의 기록이 이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이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이 고마운 사람들을 하찮게 대한다. 툭하면 협박하고, 툭하면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고된 노동의 대가는 열두 시간 노동에 202,290원. 시집 50권 팔아서 40,240원 수입보다는 낫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위험도나 안정성을 고려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단지 "건강한 몸으로 길 위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작가의 말이 메아리친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뭉클해지는 마음.

그 새벽에는 그랬던 거 같다. 이렇게 열이 치솟고 (감기 걸려도 열 안 나는 타입), 온 몸이 두들겨맞은듯 아프고 휘몰아치는 기침 때문에 허리까지 울리는데도 나는 출근을 해야 하나. 물어보니 답은 '해야 한다' 였다. 나는 계약직에 더해 일용직이고, 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몸을 일으켜 출근해서 '내 몸'을 직장에 갖다 놓아야했다. 어찌 되었든 일단 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출근하려는 나'를 기특히 여기려는 찰나에 내가 읽은 글이 이 책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였다. 다들 열심히 살았고 또 그렇게들 살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내 아픔과 고통이 덜하다는 뜻이 아니라(마이 아파요ㅠㅠ) 각자 어려움과 고통, 실망과 실패를 안고 또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서둘러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친구에게 퇴근의 맛(바람돌이님의 고견) 못지않은 출근의 힘에 대해 말했더니, 친구 왈, '뭔가 짠하지만 ㅜㅜ 세상에 단발님을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테니 저라도 어엿삐 ㅜㅜ 여겨.... 대신 건강주스를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 나를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내 어려움과 고통이 작아서가 아니라, 각자 삶에 드리워진 고생과 고통과 어려움과 난관이 이처럼 다종다양한 것이니.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였고. 내일은 토요일이다.

퇴근의 맛은 일단 이따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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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21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 책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출근을 하였고 내일은 토요일인게 기쁜, 퇴근을 기다리는 1인이 이 페이퍼를 읽고 좋아요를 누른 뒤, 링크된 책을 담아갑니다. 꾹- 땡투도 누르고요.

단발머리 2024-06-25 11:22   좋아요 0 | URL
출근과 퇴근 사이도 명랑 발랄한 다락방님~~ 퇴근을 기다리며 이 댓글을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전)
땡투는 감사드리고요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6-21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아
출근 하지 마오…
아… 물에 휩쓸려 출근하시니…
아 가신 임을 어이할꼬…. 🙄
(ㅋㅋㅋㅋ 바쁜 거 끝나기 무섭게 독서실 와서 앉은 지독한 사람ㅋㅋㅋ 이 부당한 출근에 바치는 노래…)

단발머리 2024-06-25 11:22   좋아요 0 | URL
물에 휩쓸려 출근 2회 더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느라 고생많았고요. 지금부터 퇴근 준비!!

서곡 2024-06-2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음팩을 손수건에 감으시길요 ㅎㅎㅎ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3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여기저기 널린 게 손수건인데 그 때는 생각이 안 나고 ㅋㅋㅋㅋ 아, 손 시려~~
서곡님도 건강하게 이 달 잘 보내시기 바래요. 여름 감기 무섭습니다.

수이 2024-06-2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게 날아온 이 난관을 헤쳐나갈 힘을 주시옵소서!

단발머리 2024-06-25 11:23   좋아요 0 | URL
아멘, 주님! 도와주소서!!!

독서괭 2024-06-21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감기인가요!! 감기 걸려도 열 안 나는데 이번엔 나는 건가요?? ㅜㅜ 어서 나으시길… 단발님, 출근자 친구로서 응원을 날립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5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의 에구구....가 제일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맛에 알라딘에 글 쓰나요? 독서괭님의 ‘에구구‘를 받아듣고 터벅터벅 버섯돌이는 감기 퇴치에 나서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응원 감사합니다!

2024-06-24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5   좋아요 0 | URL
성공적인 런칭을 축하드립니다.
다른 제언 올려드려요.

출근과 퇴근 사이

어떠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플라잉더치맨 2024-06-2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쾌차하길 빕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많이 나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3월의 필독도서는 『안네의 일기』였다. 완독률 100%, 아니지 100은 어디든 불가능하니깐, 97%. 4월의 필독서는 『감자, 배따라기』였고, 5월은 기억이 안 나고, 6월은 『운수 좋은 날』. 그다음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3월이 지나 4월을 통과할 때부터 나는 참 싫었다.



소설을 동화로 착각하고 사는 나. 그런 나의 중1버전으로서 나는 우리의, 정확히는 우리 선조들의, 더 정확히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아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어디 저기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의 다락방에 사는 여주인공(소공녀)은 참아내겠는데, 간도 땅에서, 전라도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읽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를 알아 왔던 친구가 말하기를, 나는 갈등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는 형이라 했다. 그건 참 맞다.




기구한 운명이, 그 운명이 가져온 생활이,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이 나는 싫었다. 나는 그렇게 모든 리얼리즘을 반사하고 싶었고, 멀리하고 싶었고, 그리고 모른 척하고 싶었다. 나는 오래오래 한국 소설을 읽지 않았다. 특히, 단편을. 나는 한국 단편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한다. 바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후대를 위해 보호해야 한다고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라는 러시아 지질학자가 1940년대에 이미 경고했지만 그런 얘기는 아무 소용도 없었고 내가 아무리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바다에 방사능 오염물질을 국가 단위로 쏟아붓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북극해도 발트해도 동해도 모두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코를 골며 잠든 남편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66쪽)



나의 결혼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생활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해야 했다. 남편은 나와 살아온 이력도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남편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남편이 아니라 위원장님이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오밤중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밤새 술을 마시거나 몇 시간씩 뭔가 먹는 습관이 있었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보면 식탁과 거실에 술병이 즐비하거나 정체불명의 해양 수산물 부스러기가 바닥에 잔뜩 깔려 있었다.  ... 어쨌든 남편은 김 가루와 멸치 부스러기(로 판명되었다)를 여전히 흩날리면서도 다 먹고 나면 스스로 치우기 시작했고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그가 자신의 싸움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듯이 내가 나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사실을 인정했다. 그게 어떤 싸움인지 서로 언제나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68-9쪽)




정보라의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다.



내 삶의 일부가, 내 현재의 일부가 정보라와 겹쳐지는 부분에서 마음이 찡하고,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는 정보라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페미니즘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라는 말이 이렇게 진실하게 전해지는 글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 듯해서, 그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러니까, 나는 대부분의 리얼리즘을 반사하고 싶고, 오랫동안 반사해 왔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게 정보라의 리얼리즘은 더 알고 싶다고 한달까. 아무튼 그렇다. 아무튼,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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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2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거 살게요.

단발머리 2024-06-12 16:33   좋아요 0 | URL
앗ㅋㅋㅋㅋ 아무튼, 다락방님!🥰

꼬마요정 2024-06-1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슴 찡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염수 방류, 전쟁 이런 것들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휴...
정보라 작가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어요!!

단발머리 2024-06-14 15:48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가슴 찡할 때가 얼마나 많던지요. 오염수 방류 이야기할 때는.... 우리에겐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가 싶어서 ㅠㅠㅠ 참,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정보라 작가 책, 한 권을 샀지요. 음하하하하하! 우리 오래오래 정보라 작가 응원하기로 해요!!

햇살과함께 2024-06-13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저는 위원장님을 오빠라고 부르는 부분이 너무나 생경... 저에게 오빠는 이제 부르지 못할 호칭이 되어서..ㅋㅋㅋ

단발머리 2024-06-14 11:2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말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위원장님이 여보도 아니고 금방 오빠로 변신 ㅋㅋㅋㅋㅋㅋㅋ
부르지 못할 호칭이죠. 그래도 저는 1년에 몇 번씩은 사용합니다. 부탁할 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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