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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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읽고 쓴다.


 

10편의 논문에서 해러웨이가 말하고 싶은 바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지점은 정체성객관성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분법적 사고 체계와 타자화, 세계와 나를 구별하는 강고한 구분은 존재하는 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근간이고, 인간 문화의 시작점이다. 그중에서 서구 전통은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을 지배하는 논리와 실천 체계를 이분법과 타자화를 통해 제공해 왔다. (321)

 


해러웨이는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고, 동물-인간(유기체)과 기계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물질과 비물질간에도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는 동물 위에 군림했던 인간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이보그로 존재하는 가능성과 현실, 그리고 생명을 담보한 유기체이자 진화 과정의 결정판으로서 인간이 지닌 것으로 추정(?)되던 우주 내 가장 특별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완벽하게 해체했다.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고, 인간과 기계도 그러하고, 물질과 비물질 간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면, 여성과 남성간의 차이는 어떠한가. 해러웨이는 그것 역시 큰 차이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여성은 없고, 여성성은 없고, 여성됨은 없다’(282)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에 대해 다시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전에 써둔 글로 갈음하고 해러웨이에게만 집중하기로 하자. (전략적 본질주의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259889, 저항주체인 여성의 전략적 본질주의: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262820)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인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는 37살이 되는 어느 날 아침, 좌뇌의 정위연합 영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뇌졸증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끝없이 움직이는 유동적 세상에서 내부에 액체가 차 있는 주머니로 인식(59)했다. ‘통합된 자아는 환상이다'라는 최근의 뇌과학 연구 결과 혹은 과학적 해석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가.

 

서구인에게 고유하고 적절한 상태는 자아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마치 재산처럼, 핵심적인 정체성은 소유하는 것이다. (245)

 


를 구성하는, 나를 설명하는 핵심적 정체성은 소유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 ‘내 피부의 경계까지이다. 내 피부의 경계면, 내 몸이 바로 . 하지만.

 


인문과학 영역에서 비페미니스트 이론은 이처럼 '일관적이거나' 주인다운 주체성과의 결별을 '주체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롭게 불안정하고 종속된 타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인종화된/섹스화된/식민화된 발화자들이 '최초로', 다시 말해, 제도화된 출판의 실천과 다른 형태의 자기구성적인 실천 속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대변하는 기원적 저작권(originary authorship)을 주장하려는 바로 그런 최초의 순간에, 그것의 출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런 프로젝트 공식을 거부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주체'의 해체는 근본적인 것이었다. (267)

 


이런 나, 일관적이거나, 주인다운 주체성의 구현자인 , 해체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주체의 발견을 고민하시는 분이시라면 주체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 348, 349쪽 참고하시라 권해드린다)

 


이를 과학적으로설명한 부분이 <10: 포스트모던 몸의 생명정치: 면역계 담론에서 자기의 구성>이다. 몸이 코드화되고, 실험실에서 과학기술적이고 유기적인 각인 장치의 조합과 특징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해체되어 버린 나’,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나를 묘사한 것으로 읽힌다. 인간을 단세포 번식체를 생산하기 위한 다세포 기계로 보는 도킨스의 의견에 해러웨이가 깊이 공명하는 것(399)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백질 덩어리에 깃든 환상이 인간의 의식이라면, 그 용기에 불과한, 곧 해체될 운명을 지닌 우리는, 왜 오늘에도 살아가는가. 살아있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세계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집요하게 노력해야 한다. (337)  

 


나의 노력은 집요했나. 나는 잘 설명했나. 나는 끈질기게 노력했나. 3개의 반성을 곱게 접어두고 다음 책으로 간다. 읽을 것이, 고민할 것이, 생각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어리고, 아직 젊고, 그리고 어쩌면 아직 청춘인지도 모르겠다.

 


어리니까 청춘이다.

많으니까 청춘이다.

모르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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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8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단발머리 님, 읽느라 고생 많으셨고요 이렇게 근사한 글까지 써내시다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한타임 쉬고, 그 후에 다음책 가십시다. 일단 재미있는 책 좀 몇 권 읽으세요. 저는 그러려고 합니다.
저는 이 책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단발머리 님은 이 책을 아주 보람차게 읽으셨네요. 굿잡!!!!!

단발머리 2024-03-28 11:56   좋아요 2 | URL
사실 저.. 어제 머리 부여잡고 이 책 읽다가 졸아서 의자에서 떨어진 뻔.... 진짜 떨어질 뻔했어요 ㅠㅠ 어찌나 졸리던지...
어제 오후 늦게 다 읽고, 비비언 고닉 읽는데 아주 꿀맛이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도 4월 오기 전까지 꿀타임 가지시기 바래요. 그래서 지금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가에서 큐브라떼(아이스임)랑 반찬가게에서 새우튀김 사와서, 김숙의 <여행 고수 김숙 꿀팁> 보면서 막 웃고 있습니다.
음하하하하하하!!!

햇살과함께 2024-03-28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너무 멋져요!! 해러웨이 읽고 이런 글 쓰는 멋진 분!! 모르니까 청춘이다. 저는 죽을 때까지 청춘으로 살 수 있네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고요.. 수고 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4-03-28 11:56   좋아요 2 | URL
저는 청춘(?) 시절을 오히려 밋밋하게 보냈거든요. 아직도 궁금하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서 지금이 제 시절이라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제대로 이해한건지도 모르겠고ㅠㅠ(해러웨이 짱인데 짱어려움ㅠ) 좀 쫄리는 마음으로 올렸는데, 햇살과함께님이 멋지다고 해주셔서 으쓱해지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님!!

공쟝쟝 2024-03-28 1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나는 젊.다!

단발머리 2024-03-28 11:41   좋아요 3 | URL
모르셨을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젊습니다. 생각보다 젊어요. 특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니까 청춘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3-28 11:47   좋아요 2 | URL
10장, 생명정치 푸코다!! (ㅋㅋㅋㅋ) 낼름! 저는 도킨스에 대한 단발님의 질문 포함 ㅋㅋㅋ 요는 그것을 (유전자를 ㅋㅋ) 본질화하거나 규정하는 권력(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기에 내가 아는 앎을 비우는 태도는 얼마나 지성적인 태도인가요. 저렇게 아는 사람도 모른다는 건데 뭘 안다고 떠든 내가 부끄럽다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떠든다 ㅋㅋㅋㅋ 나는 젊으니까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3-29 11:30   좋아요 2 | URL
10장에 푸코 나와서 쓸까말까했는데 기어이 댓글에 (아이구 두야 ㅋㅋㅋㅋㅋ 하염없는 푸코사랑)

도킨스에 대한 저의 질문(해러웨이도 그 쪽이라고 저는 이해하거든요)에서 그것을 본질화하거나 규정하는 권력(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만들어지는 질문은 무척 단순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요. 이건 제가 종교인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일 거구요. 저는, 제 한계를 압니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그래서, 인간은? 우리의 몸은? 영혼은? 죽음은? 라고 묻고.... 제가 아는 답을, 제 손에 든 답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이것은 말이 되는 건가? 내 믿음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요. 저는 그게 우주의 주인이라고 제가 믿는, ‘창조주‘에 대한 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믿는 거 말고요 ㅋㅋㅋㅋㅋ 그 분은 지혜의 하나님이시기에.

모르면서도 이렇게 길게 쓸 수 있습니다. 제가 허가할 일 아니지만, 허락합니다.
쟝쟝님 떠들기를 허하노라!!!
떠드니까 청춘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3-28 11:59   좋아요 2 | URL
인간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종으로 설계한 까닭이 있으시겠고, 저는 믿음 앞에서 겸허합니다. 라캉 좋아하는 이유.
덧붙이면 그 믿음이 깨진 후에도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요. 그러면 끝까지 믿고 주저없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된다. 라고 젊은 우리 모두들에게!!

단발머리 2024-03-28 17:42   좋아요 1 | URL
그 겸허한 마음 존중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아주 귀한 마음이죠.
강신주는 인문학이란 신과의 한 판, 신과의 맞짱이라고 했지요, 꿇지 않겠다는 외침 같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신의 품 속에서의 안전‘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말했다고요^^

우리 사는 사회는 더 안전해져야 하겠지요.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공쟝쟝 2024-03-28 17:38   좋아요 1 | URL
더 젊고 아름다운 따님과 밥상머리 정치토론이 활발하겠군요? ㅋㅋㅋㅋ 저희집은 가부장 아빠가 가장의 권위가 유일하게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비.밀. 투표의 원칙이라ㅋㅋㅋㅋㅋ
그래서 철학이(신) 그런 거였구나… 전 몰랐어요 정말로…. 이제야… 깨닫다 털썩…

잠자냥 2024-03-28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생아 다녀갑니다~

단발머리 2024-03-28 12:33   좋아요 2 | URL
신생아 아니시고 오별냥 완독 잠자냥님이시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신생아는 청춘이다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28 12:43   좋아요 2 | URL
펀딩 후 적립금 욕심에 눈먼 오별냥 미완독 잠자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3-28 12:50   좋아요 2 | URL
앗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반은 읽으셨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립금은 청춘이다
펀딩이라 청춘이다
반읽어서 청춘이다

잠자냥 2024-03-28 12:58   좋아요 1 | URL
아닌뎁쇼... 서문만 읽었읍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3-28 13: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그래요?
서문이라 청춘이다
펀딩이라 청춘이다
신생아라 청춘이다

호시우행 2024-03-2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입니다.

단발머리 2024-03-30 09: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4-04-02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너무 어려워서 문득 글을 쓴다면 어떻게 써내려가는 걸까? 그런 의문점들이 계속 들었거든요.
그걸 단발 님이 과감하게 예시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청춘이어서 좋은 점이 많네요.ㅋㅋㅋ
암튼 잘 읽고 갑니다.
전 완독하려면 몇 달 걸리지 싶어요.
몇 달이 걸린대도 부디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음 좋겠네요.ㅋㅋㅋ
아...해러웨이 님 넘 어려워요.ㅜㅜ

단발머리 2024-04-04 09:35   좋아요 1 | URL
이 책 너무 어렵더라구요. 저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근데 아무것도 안 쓰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
밑줄긋기를 중심으로 대충 요약을 해보았습니다. 과감하다 해 주시니 너무 좋아요. 과감한 단발머리!!
이 책은 정말 각 잡고 딱 집중하면서 읽어도 어렵더라구요. 천천히 읽어도 그것 나름대로 좋을 것 같아요.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하던데, 해러웨이는 진짜진짜 쓴 약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