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움. 해체되어야 합니까?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독특함이다. 저자 이경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딱히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학술서로 보이기도 힘든 이 책은 정신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의 온갖 범주를 넘나든다. (55/624)

 


파농의 정신과 삶은 사망 이후, 그가 선택한 조국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흩어지고 만다. 오히려 파농을 가장 파농답게기억한 곳은 생전에 파농이 가장 싫어했던 미국이라고 하는데, 특히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파농의 부활이 어떤 방식으로든 파농의 순치와 전유를 수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식민지 원주민의 주체 구성을 분석한 것이라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평가는 온당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그것은 백인이 되고자 했던 파농 자신의 열망과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혼재되어 있다. 프랑스를 조국이라 생각하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라 여기며, 아프리카의 흑인을 니그로라고 생각하되 자신은 니그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마르티니크 흑인 노예의 후손과 그 혼혈 가족들. 파농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파농을 이런 층위로만 묶어 두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밑줄을 긋고 그다음으로 넘어간다.

 


나는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현재로서 여성이 선택할 만한 가장 합리적인 위치라고 생각한다. 전략적 본질주의를 한 번 더 인용한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스피박(Gayatri hakravorty Spivak)이 페미니즘의 여성주체 논쟁에서 본질주의의 모순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본질주의를 전유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가령 가부장제의 억압주체 '남성'을 데리다의 해체론을 이용하여 해체하면서 저항주체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요 이론적 허구이지만, 저항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적인 범주를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담론이 아예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농>, 595/624)

 



인류 초기 시대부터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 억압당해 왔음을 인식하는 일, 그러한 자각 없이는 저항 주체 여성이 주체가 된 저항 담론이 불가능하다. 쟝쟝님의 페이퍼에는 이 문장이 굵은 글씨로 표기된다. 근대적 주체성은 젠더화와 동시에 본격화되었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자연, 식민지, 여성이 동시에 타자화되었다는 주장(혹은 그런 주장이라고 여겨지는데)인데,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시작점을 언제로 보는가에 따른 차이는 존재하지만, 근대의 백인-유럽-비장애인-남성이 인간의 표준으로 개념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할 때, 왜 여성은 단결하지 못했나. 혹은 왜 단결하지 않았나. 여성은 같은 성별(이점을 명확히 하려면 조금 더 복잡해질 것이기에, 여기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여겨지는을 뜻한다)의 여성보다 같은 계급의 남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민족이 만들어진 관념인 것처럼, 여성은 관념이고 그래서 진짜 남자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진짜 여자또한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하지만.  

 


아직도 각종 차별과 억압, 가난과 멸시, 감금과 폭력이 종교와 문화, 관습과 사회적 통념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현실 속의 여성들을 생각할 때, 그 여성들의 고통이 여자라는 이유가 아님을 증명하기 어렵다. 여전히 여성들은 억압받는 하나의 집단이다.

 



이를 주체 구성의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 본다면, 나는 제3세계 사람이고, 유색인이며, 게다가 심지어!! 기혼 여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내게 주체의 죽음이 의미 있는 이유는, 주체와 자아에 대한 인식과 해석 없이, 다른 이의 정의와 규정에 매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로서 존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필리스 체슬러에게서 답을 찾는다. 자유로워지는 것. 많은 일들, 많은 생각,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아 정체성은 제한적이고 특정한 타인들을 위한 관심사와 몇몇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여성의 자아 정체성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고 강인한 개인으로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것에 닻을 내려야 한다. 여성은 많은 일들과 많은 생각, 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어떻게든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아 초점을 그처럼 급격하게 옮긴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모든 여성적인신경과 감정이 날카롭게 자극되면서 심각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어떤 여성은 그처럼 급격하게 초점을 이동시킬 때 미쳐버린다. (<여성과 광기>, 526)

 

 


앎비앎 친구님의 이 문단이 인상적이었다. 댓글로 쓰다가 또 길어져서(고질병임) 페이퍼로 썼다. 부지런히 더 읽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명확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이다. 그럴 능력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해볼 수는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허심해지기로 했으니까.

 


아마 나는 아주 엉망으로 개념들을 활용/오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나의 공부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결단한다. 나에겐 내가 쓰는 것의 진위 여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없지만 부지런히 읽었다는 것으로 정당화하련다. 부끄러움마저 책임지고 감당하기로 한다. 해체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허심해지기로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떠들었다면 그건 기꺼이 고치면 된다. 다 허물어도 된다.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자국은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 자신이 구축한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무리 어떤 성을 쌓고 그림을 그린 대도. 바람은 파도는 불가항력

 

- 공쟝쟝, <파도는 덮치고 모래는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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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1-3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헤! 이 글 역시 좋네요. 특히 체슬러 인용된 문장이 다시보니 뼈를 때립니다. 자아에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단발머리님 굿 모닝!!

단발머리 2024-01-31 11:48   좋아요 1 | URL
이북은 엄청 빨리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쉬운데도(?) 진도가 더디네요.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 또 할 이야기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푸코 나온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주에는 모닝이 일찍 시작되어서 지금은 매우 졸리네요. 쟝쟝님, 굿애프터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