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글을 썼다. 10대에는 종잇조각들, 상자, 맥주 받침 뒤에다 끄적거리곤 했다. 공책, 책 앞뒤에 붙은 백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급하게 찢어 낱낱이 흐트러진 종이 쪽지들로 가방이 꽉 차곤 했다. 영수증은 모두 펼쳐서, 납작하게 눌러 뒷면에 반 정도만 알아볼 만한 낙서로 뒤덮었다. 한번은 여성 경찰관에게 붙잡혔는데 그 경찰관이 내시와 운문들을 읽는 부끄러움을 참아야 했는데,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이거 네가 쓴 거니?"라고 물었다. 수치가 증발했다. 비웃을 거라 짐작했다. 대신 그 경찰관이 감동해 나도 감동받았다. 내가 살던 삶이 내게 적합하지 않음을 누군가 생각해줬다는 사실을 알아서 좋았다. (355)

 

 


레이첼 모랜이 언제나 글을 썼다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이 주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정신질환을 앓는 엄마와 가끔 나타나는 우울한 아빠 사이에서 자란 가난한 소녀가 쓰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영수증을 납작하게 눌러 거기에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면서 내 의문은 사실 하나였다. 어제의 글은 이 책에 대한 나의 답이자 결론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다른 거다. 그러니까, 내 질문은. 어째서 어떤 사람은 이 난관을 극복해 내는가? 이다. 어떻게 레이첼 모랜은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탈출했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어떤 여성들은, 그녀처럼 우연한 기회에 혹은 어쩔 수 없이 성매매에 발을 디디고, 다시는 거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녀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 크게 낙담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큰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갈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마저도 용서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포기를, 또 다른 사람들은 도전을 선택하는 걸까.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 했다. 일단 질문을 여기에 써놓는다. 어디선가 해답에 가까운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볼 뿐이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은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내내 그 자리다. 구입한 책 아니면 안 읽었을 분위기다. 정희진쌤이 극찬하셔서 구입했는데, , 진짜 제 스타일이 아니네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참고도서나 기타 등등 자료 가지고 계셔서 뭐든지 가르쳐주실 분, 연락 바랍니다! (이 문장 쓸 동안에는 마음 속에 건수하님 두고 있음^^)

 

<전체주의의 기원>은 밤에 20쪽씩 읽는데 이러다 언제 다 읽나 싶다. 다른 책을 다 미뤄두고 집중적으로 읽어야 할 텐데,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여 내내 미루고 있다. 그대, 아렌트. 아직은 내게 너무 멀리 있네요.

 

<504 Words> 어제 안 해서 하루치 밀리고 오늘도 안 해서 이틀째 밀렸다. 어째 잘 나간다 싶었다.

 














<거짓의 사람들>은 레이첼 모랜 책의 인용구를 보고 어제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받았는데, 시작부터 흥미롭다. 서문 첫 문장.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암요, 그렇구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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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5 16:3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단발머리 님. 아마 페이드 포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점에 놀라고 또 그 점이 궁금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매매로 몰아간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리고 자신을 학대하는 고통스러운 성구매자들을 만났음에도, 분노와 혐오를 품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와 사랑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정말 단단한 사람입니다. 단단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단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분노에 자신을 넘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분노와 타락과 수치, 그 부정적 감정들을 품고있으면 그 감정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간다는 것도 잘 아는 사람이었잖아요. 너무 대단한 사람이고요, 정말이지, 앞으로도 어떤 글이든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레이첼 모랜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출판계는 발빠르게 그녀의 글들을 번역해 내놓아라!!

단발머리 2023-10-27 16:1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그 부분에서 더 생각하고 싶어요.레이첼 모랜을 그 절망과 비극에서 구해준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물론 그녀 내부의 그런 힘이 있었겠죠.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힘을 갖지 못한 걸까. 왜 포기한 걸까. 비록 정신적으로 연약한 분들이었지만 전 모랜의 부모님이 그런 힘을 주었다고 짐작하거든요. 모랜도 책에서 그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구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 그런 생각도 잠깐 했어요. 아프고 부족하고 그리고 자주 화를 내는 부모였지만, 사랑을 줬잖아요. 아... 인생사 참 복잡합니다.

다락방 2023-10-25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포스트모던의 조건> 사두었는데.. 어떡하죠? (그렁그렁)

DYDADDY 2023-10-25 17:02   좋아요 5 | URL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내 식으로 바꾸면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중에서

단발머리 2023-10-25 17:17   좋아요 4 | URL
다락방님/ 다락방님이 좀 읽고 나 좀 갈쳐주세요!! 네? (그렁그렁)

대디님 / 대디님 인용의 말씀 ㅋㅋㅋ 너무 큰 위로가 됩니다! 더 사도 되겠어요, 그죠? 😆

햇살과함께 2023-10-25 20:12   좋아요 1 | URL
저도 샀는데,, 단발머리님이 이해 못하시면 저도 어쩌죠?

단발머리 2023-10-27 16:11   좋아요 1 | URL
햇살과함께님 / 설마 그럴리가요.... 저는 이 쪽은 진짜 영 몰라서 그런 거랍니다. 너무너무 좋은 책,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정희진쌤이 그러셨어요. 햇살과함께님 힘 내주세요!!

건수하 2023-10-25 1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불러주셔서 감사하지만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제가 갖고 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 😃

단발머리 2023-10-25 18:33   좋아요 4 | URL
아........ 아쉽습니다. 근데 표정 ㅋㅋㅋㅋㅋㅋ 아쉬운 표정 맞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10-25 19:03   좋아요 3 | URL
아! 이제 사신다는 뜻?!

건수하 2023-10-25 19:15   좋아요 4 | URL
네….? 단발머리님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책을 제가 굳이…. 🫥

단발머리 2023-10-27 16:12   좋아요 2 | URL
우끼님 / 우끼님도 사신다는 뜻?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님 / 굳이 읽으시길 강권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0-25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째 잘 나간다 싶었다“ ㅋㅋㅋ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지난주부터 계속 바빠서 책 별로 못 읽고 있는데 ㅠㅠ 읽는 내내 레이첼 모랜이 굉장하게 느껴지는 건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어 더 그런 것 같아요.. ㅜㅜ

단발머리 2023-10-27 16:14   좋아요 1 | URL
이번주에는 계속 밀렸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슬픈 소식 아니에요. 그럴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 포기하지 않으나 많이 늦어질 예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이첼 모랜 책 참 좋지요. 바쁘신 와중에 읽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이 책은 특히 더 고생스러움)
영광의 완독 타임 기다립니다^^

은오 2023-10-26 0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각 장 맨 앞마다 붙인 인용구마저 하나같이 다 찰떡에 와닿더라고요. 저도 페이드포 읽다가 눈에 들어와서 <거짓의 사람들> 담아놨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3-11-01 08:52   좋아요 1 | URL
<거짓의 사람들> 다 읽었어요. (은오님에게만 고백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맞춤법 때문에 리뷰를 못 쓰고 ㅋㅋㅋㅋㅋㅋㅋ 은오님 페이퍼 참고하면서 얼른 써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10-26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페이드 포 며칠 째 잡고서 힘겹게 읽고 있는데요. 딱 짚어주신 그 부분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뽁했는가! 계속 그 생각에 머물러 있어요. 저 그거 백자평 쓰려고 했는데 앞서 읽으신 모두들 그 부분을 언급하고 계셔서 참 뭐라고 쓸 말이 없을 듯 합니다.ㅜㅜ
레이첼 모랜은 위인인 것 같아요.
나라를 구해야만 위인입니까?
요즘같은 세상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여 끝까지 잘 이겨내는 개인도 위인인 것 같아요.
레이첼 모렌의 정신 세계는 일반인들의 정신 세계 그 위에 우뚝 서 있지 않나? 그런 존경심이 깃듭니다.

단발머리 2023-11-01 09:07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백자평 너무 좋았어요. 저는 백자평 쓰는게 제일 어려워서 항상 여러권 묶어서 휘리릭 써버리고 말거든요. 저도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낸 레이첼 모랜이 위인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오래 공부하면서 결국 이 책을 써낸 것도, 본명으로 세상에 맞선 것도요. 정말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또 이 훌륭한 책을 이렇게 마무리하네요^^ 어뜩해요, 우리도 훌륭하다, 이렇게 가야합니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