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펙이 주장했던 중년 성인기의 4가지 주요 과제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두 번째 과제가 이거였다. “인간관계에서 있어서는 성적인 관계에서 사회적인 관계로 전환된다.” 중년 성인기는 35세에서 54세까지니, 나는 중년 성년기에 속한다고 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넷플릭스 브리저튼 시즌 2를 보았다. 원작은 쥴리아 퀸의 『The viscount who loved me 』인데 원작과 드라마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암튼 즐거운 정주행의 시간을 마친 후에,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 조나단 베일리(앤소니 브리저튼 역)에게 흠뻑 빠지고 말았다. 기사도 찾아보고 인터뷰 영상도 여러 편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에 헤어날 길이 없던 그즈음, 친구들과 만나 맛난 치킨을 뜯으며, 조나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부족한 영어 실력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조나단 때문에라도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였다. 친구 1이 물었다. “그래서요, 단발님! 만약에 진짜 영국에 가서 조나단을 만났는데, 조나단이 단발님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20년 살았으면 이제 자기 삶 살아야죠. 괜찮지 않아요? 애들도 많이 컸고요.” ‘아, 조나단을 만날 수 있다고요? 조나단이… 조나단이, 저를 좋아한다고요? 에이, 참… 설마 그럴 리가요.’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데,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애들을 거진 (다) 키워놓기는 했죠.”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고 나서, 나는 흩어진 정신을 간신히 수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뭐. 성적 지향(조나단은 2018년에 커밍아웃했다)이라는 것도 있고, 시몬 애슐리(상대역)가 그렇게 이쁜데도 스캔들 안 나고 그렇게 끝나잖아요. 조나단이 아시아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요.” 친구 1과 친구 2가 양쪽에서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쏟아낸다. “그건 모르죠. 그건 모르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거, 그건 딱 정해진 게 아니잖아요. 진짜 모르는 일이죠.” 여러분!!! 에? 뭐라구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고,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똑똑하며,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스마트한 두 사람의 확신에 찬 이 단언의 말씀. 사람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은 ‘조나단이 나를 좋아하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로 바뀌게 된다. 조나단이 내게 선사한 심미적 즐거움과 쾌락을, 내가 조나단에게 줄 수 있을 거라는 아무런 확신이 없는 채로, 나는 가정의 존립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었다. 애들은 많이 컸다. 둘 다 나보다 크니까 다 키웠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남편인데. 까탈스럽고(엄마 표현), 까시렁스러운(시어머니 표현) 두 애들에 더해, 총 네 명의 가족 구성원 중에 남편은 나 빼고 내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이다. 20년을 살았다. 그래, 20년을 살았지. 나 같은 사람을 만나 남편은 20년을 한결같이 유쾌하고 재미있게 보냈을 것이다. 또, 나 같은 사람을 만나 동서양을 아우르는 각종 실험적인 요리의 희생양이 되었지. 아, 이건 너무나 실존적인 고민이다. 너무 어렵다.
조나단을 생각한다. 조나단은, 내가 조나단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주었다.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을. 하지만 나는 조나단에게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없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기에, 나로서는 조나단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내 MBTI의 특징을 읊어주었는데, 나는 몰입을 잘하고 금방 싫증을 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친구 2는 조나단 사랑은 오래갈 거라 전망했다. 친구의 말은 항상 옳다.
내일은 어린이날. 아직도 어린이날 선물을 고대하는 나는, 오늘 아침 진공청소기로 거실 바닥을 박박 밀면서 올해는 무슨 선물이 좋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조나단. 올해의 선물은 조나단이 좋겠다. 나는 정했다. 조나단으로.
조나단.
조나단을 제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