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을 읽다 힘들 때마다 쉬운(?) 책을 펼쳤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쉽지 않았다.
1. 해방자 신데렐라
‘해방자 신데렐라’라는 책의 제목과 그림의 조합이 절묘하다. 잘 알려진 이야기를 다시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 분명한데, 리베카 솔닛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책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품 맨 뒤 <작가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신데렐라는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어떤 소녀가 아니라, 바로 얼마 전 이 세상을 살았던 평범한 소녀였다는 것, 많은 소녀가 신데렐라 같은 결말 없이 신데렐라의 삶을 살았다는데 마음이 동했다. 리베카 솔닛의 외할머니, 리베카 솔닛의 할머니와 함께 우리나라에도 숱하게 많았을 부엌데기 신데렐라, 식모 신데렐라, 공장노동자 신데렐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2. Who? 오바마 / 약속의 땅
오바마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나도 딱 그 정도만 알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친아버지는 케냐 출신이고, 새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인이며, 여동생 이름은 마야. 아들의 교육을 걱정한 오바마의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어린 오바마를 깨워 미국의 교과 과정을 직접 가르쳤고, 오바마는 긴 시간 외조부모의 손에 키워졌다는 정도.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건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 살던 오바마가 그곳에서의 생활을 접고 하와이의 조부모에게로 돌아왔을 때 오바마가 열 살이었다는 것. 혼자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에서 하와이까지 날아간 오바마. 오바마 눈이 이렇게 크지는 않다. 만화라서 그런지 유독 크다.
친구들과 함께 『약속의 땅』을 읽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이라 안타깝지만, 외모상으로 완벽하게 흑인인 오바마(언론도 그렇게 보도한다.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백인에 대한 증오심을 발판으로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화합을 이야기한 점이 좀 의아했다.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는 흑인이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길로 가지 않고, 굳이 돌아가려는 오바마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Who? 오바마』를 읽으면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를 사랑해주고 지도해주고 이끌어주었던 세 사람은 모두 백인이었다. 자신의 백인성을, 설사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존중하고자 했던 오바마의 마음이 보였다. 자신 안에 감추어진 백인성, 적어도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지해 주었던 백인성에 대해 오바마는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차별 없는 새로운 세상을 화합을 통해 이뤄가겠다는 그의 희망은, 그 가능성이나 전망 혹은 한계와 상관없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성과에 관계없이. 오바마는, 희망 그 자체니까.
3.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내가 읽었던 모든 학습 만화 중에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슈뢰딩거를 아무리 귀엽게 그려도 이건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 책의 의미는(정확히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의미는) 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다른 영역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데 있다. 결론이 ‘나는 누구인가?’, ‘나란 무엇인가?’ 쪽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다음에는 학습 만화 아닌 슈뢰딩거의 책에 도전해 봐야겠다 결심(?)은 했다.
4. 퀀텀
기록 경신. 내가 읽었던 모든 학습 만화 중에 가장 어려웠다. 위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슈뢰딩거 만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주된 흐름으로 잡고 만화적 요소(우스운 그림이나 가벼운 농담)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데 반해, 이 책은 전하고자 하는 설명 아래의 등장인물들의 농담도 같은 내용을 다른 양식으로 전달한다는 데 있다. 김상욱의 양자역학 강의를 실제로 들었고, 인터넷 강의를 세 번 정도 (다른 곳에서 했던 강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 들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혹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위로하고 싶은데, 소파에 반쯤 기대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아롱이가 ‘엄마, 거기에서 모르는 거 있으면 이따가 나한테 물어봐요!’ 이렇게 말해서 난 무척 어이가 없다.
‘읽고 싶어요’의 시간. 가만히 상상해본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북한 출신의 여성이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메르켈은 무려 16년을 집권했는데, 그걸 상상하는 게 너무 어려운 우리의 현실. 혹은 나의 편견. 메르켈에 대해 검색하다가 메르켈이 양자물리학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놀라운 우연이여.
양자역학의 최고 설명서라고 하니 한 번은 읽어주는 것이 예의다.
나는 믿는 사람인 데다가 쉽게 믿는 사람이라서 이런 책을 꼭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