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롱이와 이사 전에 살던 동네의 초밥집에 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에 파티하는 느낌으로 간 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어서. 전날부터 아롱이를 살살 꼬드겼다. 연어초밥! 너도 연어초밥 좋아하잖아! 세트니까 우동 나와. 너는 모밀로 바꾸면 되고. 자기도 연어초밥 좋아하면서, 아롱이는 같이 가준다는 사실에 얼마나 으스대던지. 피나는 연습생 생활을 거쳐 성공적으로 데뷔하고, 중간정산이 들어간다는 7년차 이후,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엄마에게 집을, 아빠에게 차를 사주는 아이돌 감성으로, 아롱이는 같이 초밥집에 가 주었다. 고마워요, 당신.
시험이 어땠냐,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게 상책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말았고, 아롱이는 ‘그냥…몰라’라고 1초만에 대답하고는 다시 게임에 매진한다. 공부하겠다,는 각오로는 수능 100일 앞둔 고3에 못지 않았지만,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롱이를 곁눈질하며 잔소리 하지 않으려 나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잔소리 하지 않아야 훌륭한 부모니까. 나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하니까. 참고 인내하며 그렇게 며칠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으니. 나는 꼭 먹어야겠다, 연어초밥.
읽고 있는 책은 대프니 듀 모리에의 『희생양』.
“당신은 세상의 모든 행운을 다 지녔으면서도 만족하지 않는군요. 부모님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요. 당신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당신은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혼자 깨어나 먹고 일하고 잠들 수 있지요. 당신이 누리는 행운을 생각해보십시오.” (31쪽)
외로움에 텅 빈 거리를 헤매던 ‘나’는 식당에서 자신을 살짝 건드리는 손길에 무심코 돌아보다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상대의 얼굴과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하다. ‘나’는 프랑스인 ‘장’이 되어 그의 성으로 돌아간다. 누가 아내고, 누가 애인인가.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말하는 ‘왕자와 거지’ 이야기. 기대해도 좋겠다.
『인형』, 『나의 사촌 레이첼』, 『레베카』, 『자메이카 여인숙』을 읽었고, 『희생양』, 『새』, 『대프니 듀 모리에』가 남았다. 내 딴에는 아낀다고 아끼고 있는데, 살금살금 줄어든다. 연어초밥도 그랬다. 어제 연어초밥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