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엄 사태 때(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1인), 보았던 인터뷰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건, 특수무대 요원의 것이었다. "우리는 1티어다. (난 이 단어를 이때 처음 보았다). 우리의 목표물은 북한의 김정은이나 빈 라덴 정도다. 국회에서 비무장 민간인들을 만나 순간 당황했다." 나는 그날 밤의 그 모든 우연과 사람들의 헌신, 그 절묘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수방사 고위층은 비상 계엄 보안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에 헬기가 서울 항공, 그것도 국회 쪽으로 진입하자 현장의 다른 수도방위 지휘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너, 뭐야? 부터 시작해서 그때부터 설명해야 하는, '지금 비상 상황이야. 계엄 상태라고...' 물론 날씨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오천만이 불러대는 그 노래가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들이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국회 보좌관들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다 사람이다. 중년의 여성들, 엄마 또래의 여성들이 "야, 우리 아들도 군대에 있어! 너, 정신 차려!" 하면서 뺨을 딱 때려치니 최고 수준의 무예를 영화 못지않게 시연가능한 최정예 전투원들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는 거다. 마리아 미즈의 표현을 빌려 '행복한 우연'은 그들 중 누구도 흥분해 총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것. 20대의 혈기 왕성한 군인들이 패딩 입고 욕하면서 밀어대는 민간인들에게 밀려갔다는 것. 지휘관들 역시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서 그런 상황을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 방방 뛰었던 건 윤가와 ㄱ용현이. 다수의 지휘관들이 증언했음에도, 온 국민이 봤는데도, 국회 진입이나 국회의원 체포를 명령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인간들. 이 거짓말쟁이들.
어제는 사물함 앞에 서서 수익책 채점을 하고 있었다. 동그랗고 예쁘고 귀여운 J가 자기 책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 필통을 보게 됐다. 어, 이거 뭐지? 하면서 열린 필통 사이에서 지우개를 꺼낸다. 지우개네, 그러더니.

"이중 하나는 거짓말?"
J야! 어?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 엄마가 읽는 책이에요. 우리 엄마도 그 책 사고 지우개 받았어요. 아, 그래? 고쳐야 할 것이 있는 아이에게 고칠 부분을 일러주고 다시 J에게 말을 건다. (수업 시간에 말걸면 안 되는데,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J야! 부모님이 책 좋아하셔? 네, 엄마는 책 좋아하세요. 아빠는, 아빠는 핸드폰.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를 좋아하다 못해 나는 이제 J엄마까지 좋아할 태세다. J야, 선생님이 왜 놀랐냐면, 일단 요즘에 책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 주위에 별로 없거든. 근데 그 사람이 읽는 책이 선생님이 아는 책일 확률은 엄청 엄청 낮은 거거든. 너무 반갑다, 하하하. 선생님은 김애란 책 사기만 하고 아직 읽지는 않았어. 근데 곧 읽을 거야. 아~~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J는 자기 자리로 간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는 시대를 나는 사랑한다. 김애란이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는데, 오늘 가서 확인해 보니 이 책이 <2024 올해의 책>이라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 작가를 이겼던가. 놀랍다,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편안히 읽는 시대를, 나는 원한다.
어제는 상호대차된 책을 찾아 오는 길에 3층 카페에 들렸다. 내게는 도서관에 관한 추억이 많고 많은데 자주 가는 도서관은 4개 정도이다. 이 도서관은 2번째로 만난 도서관이다. 높이 살다가 조금 아래쪽으로 급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 도서관이 막 신축을 마쳤다. 1층에는 주민 센터, 2층은 주민 복지 시설, 그리고 3층과 4층에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들어왔는데, 그쯤에 우리 집에 어린이는 없었고, 그래도 상호대차 서비스가 있어서 자주 이용했다. 일전에 게일 루빌의 『일탈』을 상호대차로 빌린 적이 있었다. 도서관 사서쌤이 책을 건네주시면서 그러셨다. "참,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사실 나는 그런 편은 아니고, 정확히는 많이 대출하는 편이기는 했는데, 사실 그 책도 다 읽지 못한 채(좀 두껍습니다) 반납한 책이기는 했다. 아니에요. 그냥 많이 빌리는... (말 흐림). 아니에요, 진짜. 이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빌리시는 거 같아요. 그럼, 저 1등인가요? (는 속마음 토크)
겨울 방학, 아이들이 잠들어 깨지 않으면 살포시 집을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1층에서부터 걸어서 3분. 뛰어가면 1분에 주파 가능한 거리의 도서관. 눈 사이사이로 사뿐히 걸어가 상호대차한 책을 대출하고 3층 카페에 들르곤 했다. 그때는 진한 커피를 못 마시던 때라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연하게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커피를 기다리며 책장을 넘겨볼 때의 마음. 하지만 아무도 피하지 못했던 코로나 위기가 닥쳐왔다. 커피에 샌드위치, 쿠키까지 내가 많이도 먹었으나 카페는 코로나 이후 문을 닫고 말았다. 다시 카페가 문을 열었다는 안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는데, 어제는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에 3층에서 내렸다. 새로운 사장님, 아주 젊은 사장님이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첫 장을 넘긴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저, 요즘 고통스러웠어요.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하거든요. 이 책이 이렇게 작은 책이었네. 책이 한 손에... 아...
한 페이지를 읽고 바로 책을 덮는다. 이거 무서운 책이었어요? 잠깐만요, 지은이 소개 다시 읽고 올게요.

김애란을 읽는 시대를, 마리아 투마킨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는 시대를, 그런 시간을 바란다. 한강의 소설을 읽는 시간을, 잭 리처를 읽는 시간을, 그런 시간을 되찾고 싶다. 나라 걱정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