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하는 물음은 엄마 좋아? 아빠 좋아?류의 질문으로서 금방 대답하기 곤란하다. 나는 줄곧 톨스토이였는데, 그건 내가 톨스토이 소설을 하나 읽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는 그런 소설이, 그런 소설가가 가능하리라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밀란 쿤데라가 그랬고, 필립 로스가 그랬고, 아룬다티 로이가 그랬고, 대프니 듀 모리에가 그랬다. 읽기 전에는 내가 읽은 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바뀌는 건 다른 소설, 다른 소설가를 만났을 때 뿐이다.
중학교 2학년 겨울에 내가 만난 건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톨스토이였고, 그 책은 『부활』이었는데, 그래서 한참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부활』이었다. 그러다가 톨스토이는 앞으로도 출현이 가능한 천재형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앞으로 절대 출현이 불가능한 천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도선생을 읽어봐야겠군. 그렇게 결심하고 시작한 책이 열린책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1라운드 KO패. 아, 도선생은 아닌가 봐 절망하려는 찰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죄와 벌』에 도전했다가 깜짝 놀랐다. 재미있어서 놀랐다. 고전인데 이렇게 재미있어도 돼?
실패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문학동네 챌린지로 다시 도전한다. 책을 증정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각자 준비해야 하는데, 도서관에는 모두 민음사판 뿐이라 이틀간 고민하다가 구입했다. 나도 읽고, 너도 읽고, 너도 읽고, 너도 읽어라. 이런 마음으로. 이것은 모두 읽어야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오늘 눈에 띄는 문단.
훗날 이반 자신이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천재적 재능을 지닌 소년은 천재적인 교육자 밑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취한 예핌 페트로비치의 이른바 ‘선행에 대한 열광’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한다. (35쪽)
선행에 대한 열광. 아침저녁으로 선행. 수미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