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른은 가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사당에 모셔지거나 하다못해 신주가 바쳐진다.

온 집안과 온 가족의 신으로 승화하는 계기,

나아가서는 전기, 그게 곧 죽음이고

그에 따른 장례식이다.

나의 죽음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사후 자유롭게 훨훨~ 날길 원한다. 납골당이나 땅에 묻혀 갑갑하게 사후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는 우리 오마니. 할머니와 아빠를 훨훨~ 날려 보내드렸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그렇게 자유롭게 떠돌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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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종말인 죽음을 지레 넘겨다본다.

종말에 서 있는 자신을 미리 넘겨다본다.

죽음이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삶은 죽음을 앞질러서 비로소 삶이다.

가끔 죽음을 생각해 본다. 아이가 다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떠난다면? 눈을 감는 그 순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갈 수 있을까? 등등...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크게 없었는데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죽음'이란 단어 자체가 두렵고 무섭게 느껴진다. 한 번은 누구나 다 죽음의 길을 가게 되지만 언제가 적당한 때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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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결코 죽은 이와 이별하는 절차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상상이나 예상을 초월한 만큼 복잡하다.

그것은 결별의 의식이면서도 재결합의 의식이다.

장례식이라는 의식을 통해 함께 했던 가족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지인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다. 하지만 장례식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영원한 헤어짐은 아닌 것이겠지? 결별의 의식이면서도 재결합의 의식이라는 의미가 그런데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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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자 당사자로서는 피동적으로 불가피하게

선택된 죽음이라면 안락사는 상대적으로

한결 더 적극적으로 선택한 죽음이라고

말할 가능성은 열려 있을 것이다.

뇌사, 안락사 둘 다 내가 아닌 가족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방식 아닌가? 미리 유서 같은 걸 통해 의사를 밝혔다면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메멘토 모리 같은 책은 처음이라 그런지 우울해지기도 하는 건 나만 그런 걸까..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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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또한 만만찮은 죽음의 새 개념이자

새로운 죽음의 종류의 하나다.

사고사 및 질병사, 그리고 자살 등의 여러 개념과

대치하고 있을 이 개념은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개입이 없이,

생명 자체의 물리적인, 그리고 생리적인 차원의 지속성이

자연스럽게 자가 소모된 끝의 죽음을 희구하는 나머지 생긴 것이다.

갑작스러운 돌연사보다 자연사가 낫겠지..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과 인사도 못하고 죽는 것보다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더 낫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진짜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뭐가 더 낫냐 물어보기 힘든 부분이지만 예정된 시간을 알 수 있는 죽음이라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는 가진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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