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번에 읽힌다. 아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손에서 놓기가 힘들다. 한강 특유의 짧게짧게 툭툭 치며 나가는 문자들이, 그리고 결코 길지 않게 끊어놓은 단락들이, 마치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올라가듯이, 또는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내려가듯이 소설을 계속 나아가도록 한다.


추리를 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사랑에 관한 면이 주를 이루고, 그 사랑이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는 사랑이어서 더 아련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때 만나게 된 두 친구 정희와 인주. 떨어져 있으면서도 결코 떨어져 있지 못한 친구 관계. 그런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인 인주가 죽는다. 자살이라고 한다. 유고전도 열린다. 평전도 쓰인다. 그런데 유고전이나 평전을 쓰는 사람에게 또다른 친구는 짙은 의심을 지닌다.


인주는 결코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자살이란다. 정희는 평전을 반박하기 위해 죽은 친구인 인주가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이 긴박하게 펼쳐지면서, 평전을 썼던 강석원이라는 인물과 쫓고 쫓기는 갈등 관계가 겹쳐진다. 여기에 인주 엄마에 대한 류인섭의 글에서 인주 죽음의 진실을 밝힐 단서들이 나타난다.


정희는 인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정희와 인주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사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있지 않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있다.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정희와 인주는 오랜 친구다. 서술자인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여기고 인주 죽음의 진실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자신이 인주에 대해서 많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주가 끝까지 정희에게 감추고 있었던 것들. 그것은 인주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정희에 대한 인주의 감정이다.


소설 초반부에 잠깐 인주가 정희에게 지닌 감정이 서술된다.


한 번, 꼭 한 번이었지. 갑자기 네가 내 얼굴을 끌어당기고 입술을 포갰지. 

나는 너무 놀라 네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 

왜 그랬어, 라고 내가 묻자 너는 말했지. 

이해하고 싶어서.

나는 달아오른 뺨과 입술을 두 손으로 가리며 뒤로 물러나 앉았지. 열여덟 살이었지. 삼촌의 빈 작업실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네가 내 입술에 입 맞췄지. 그렇게 된 거였지. (24쪽)


이런 인주의 마음이 소설의 뒤에 가면 인주가 쓴 글을 통해서 한 번 더 나온다. 삼촌에게 독백하듯이 쓴 글에서.


왜 가끔 이렇게 오지 않았어? 아무 말 없이라도 나타나주지 않았어? 그랬다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 텐데. 환멸을. 증오를. 고통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그 여자만큼이나 부서진 정희의 얼굴을. (373쪽)


인주는 정희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지켜볼 뿐이다. 정희가 살아가도록. 이런 인주의 마음을 정희는 알게 되는 걸까? 소설의 막바지에 불이 난 작업실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며 정희는 이렇게 외친다. '살고 싶다'


그렇다. 이 소설은 두 친구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살아내야' 함을 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죽음으로 회피하지 않고 살아서 겪어내야 한다. 


정희가 마지막에 하는 말은 바로 이 결심을 이야기한 것이고, 정희의 이 다짐으로 소설은 결말을 완결짓지 않고 더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결국 인주를 죽인 것은 누구인지 짐작은 하지만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기 때문에 인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 앞으로 정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은 독자의 마음 속에,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독자들이 써내려가면 된다.


이렇게 사랑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그 사람의 고통까지도 사랑하는 관계. 그래서 어떤 말보다도 함께 있어주는 그런 관계. 충고도 조언도 없이 그냥 덤덤하게 함께 있어주는 인주. 그런 사랑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로 읽어도 좋다. 서술자인 정희로 하여금 진실에 한발 다가가게 만드는 단서들을 읽으면서 함께 찾아가는 재미도 좋다.


또한 한강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의 그늘이 개인의 아픔 속에 녹아들어 나오는 면을 찾아 읽어도 좋다. 권력을 통해서 진실을 왜곡하던 시대의 모습 (류인섭이 정희에게 쓴 편지글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정희가 엄마를 도와 일하는 장면에서 남자 형제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등도 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살아냄을 담은 소설이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자살을 시도하는 정희에게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인주, 그리고 인주가 정희에게 하는 말들.


정희야

넌 아마 아주 오래 살 거야.

모든 걸 기억하면서.

지금보다 더 추위를 타면서.

백 살, 백이십 살씩 사는 할머니들 봐.

다 체형이 너 같아. (327쪽. 187쪽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그러면서 인주는 말한다. '난 말이야, 그렇게 늙어갈 거야.'(187쪽)라고. 이런 인주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정희가 인주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려는 것이다. 또한 정희는 오래 살아서 진실을 기억해야 하고.


이렇게 짧은 문장들이 마음을 톡톡 건드리면서 소설의 끝을 향해 가게 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읽을 만한 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도 마음 속에 긴 여운이 남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에 관한 말들이 많다.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관용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손은 그만큼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손이 차다는 말은 냉정하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고 하면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소설 제목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냉소적인 사회,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소설은 다르게 전개된다.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을 택하고 있다. 소위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형식인데... 소설가인 '나'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앞과 뒤가 소설가가 서술자로 나오고,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에서는 장운형이라는 미술가가 서술자로 나오게 된다.


장운형이 쓴 글 제목이 '그녀의 차가운 손'이다. 그리고 이 소설 제목은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왜 작가는 소설 제목을 다르게 붙였을까? 소설 속 소설에서 그녀는 누구일까? 읽다보면 그녀의 차가운 손(294쪽)이라는 말이 직접 나온다. 소설 속에서는 장운형이라는 서술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 이니셜로 나오기 때문에 이 글 제목이 된 그녀의 차가운 손에서 그녀는 E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소설 속 소설은 총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E는 3부에만 나온다. 이 3부까지 가기 위해 1부와 2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손을 이야기하지만 손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면 되는데...


손가락이 잘린 외삼촌.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또 가족들과 어울릴 생각도 없이 알콜 중독이 된 외삼촌. 이런 외삼촌과 가족들 관계를 통해서 서술자인 장운형은 어린 시절부터 가면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가면을 누구나 다 지니고 있다고 믿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간다. 오히려 손가락이 잘린 외삼촌은 가면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는 가면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남들이 보면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배척당하고 견딜 수 없게 된다. 2부 역시 마찬가지다. L이라는 여인이 나온다. 거구의 몸집을 지닌 여자. 그런데 장운형은 이 L이 손에 매혹된다. 이 손은 따뜻한 손이다. 그럼에도 L은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살을 빼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서... 이런 L과의 생활이 펼쳐지는 2부에서는, 우리가 남들을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L이 살을 빼려고 하는 이유 역시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가면을 쓰게 한다. 견딜 수 없는 식욕, 폭식과 구토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손에 상처를 남기는 L. 그러나 L은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다. L은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신을 받아들인 L이 장운형 곁에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장운형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차가운 손이라고 할 수 있는 E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삶을 사는, 외모 역시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여자. 장운형은 E를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섬뜩함을 느낀다. 무엇일까? 이것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을 알아보는 모습이 아닐까?


2부까지 그렇게 손에 관심을 가졌던 장운형이 3부에서는 이상하게도 손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얼굴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정도라면 E의 얼굴에서 풍기는 어떤 점이 장운형의 관심을 가져갔을텐데... 그것에 대한 추구를 하게 된다. 손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그러다 후반부로 가면 E가 먼저 장운형에게 손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육손이로 태어나 손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수술하고 나서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지내왔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삶에 대해서... 그 말들이 끝나고 나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석고를 뜨는 대상이 되었던 둘이... E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이들 서로에게는 가면이 필요없어졌다.


"네가 날 꺼냈고……또 난 널 꺼낸 건가?" (315쪽)


이 말로 장운형이 쓴 글은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이 석고 조각들을 발로 밟아 자근자근 부숴버리는 장면에서 이들의 가면은 이제 없다고...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가면을 벗어던진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가면을 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표면상 그들은 실종이 된다.


그리고 작가의 에필로그. 한강 소설은 결말이 희망적이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면을 벗은 이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들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둘이 함께... 그 점을 에필로그에서 볼 수가 있다.


그러니 장운형이 쓴 글 제목인 '그녀의 차가운 손'이 제목이 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은 세상과 맞서 살아가고자 애쓴 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손일 수밖에 없다. 감추고 싶었던 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손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알게 되는 순간,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더이상 차가운 손이 되지 않는다.


차가운 손은 바로 '그대'다. 우리다. 남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우리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그 가면을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 속 사람들이 바로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다름에 대한 소설이다. 다름을 받아들이느냐 배척하느냐에 관한. 차가운 손을 지닐 것이냐 따뜻한 손을 지닐 것이냐 하는 그런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이 아니라 '그대의 따스한 손'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가면을 벗어던져야 함을, 우리 모두 진실된 모습을 보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가면을 벗게 해야 한다고, 이 소설을 그렇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옷걸이에 걸린 양'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양의 털로 옷을 만드니, 옷걸이에 걸린 양은 옷걸이에 걸린 옷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어반복이다. 옷걸이에 걸린 옷이라고 하면. 옷걸이란 말 자체에 이미 옷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옷보다는 양이 더 좋겠고, 양털은 식물성보다는 동물성을 의미하니, 이때 양을 양털로 만든 옷이 아니라 바로 그 옷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옷걸이에 걸렸다는 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하지만 제약을 받고 있음을 말하고,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결국은 옷걸이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옷걸이는 옷장 속에 있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옷장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는 옷장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옷장 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현대문명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산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사고 쓰고 버린다고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현대문명의 한 부분이 아닐까? 현대문명이 그렇게 할 수밖에 만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시들을 보면. 시들이라고 한 이유는 특이하게도 [옷걸이에 걸린 양]이라는 시집에 같은 제목의 시가 7편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제목의 시를 계속 반복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마치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처럼 돌고돌고 하는 삶일 뿐이다. 옷걸이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다시 옷걸이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삶. 시인은 이렇게 내용을 통해서도, 또 형식을 통해서도 현대문명의 삶은 결국 옷걸이에 걸린 삶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벗어나 살 수 없듯이 결국 시작과 끝이 있는 삶인데,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그 틀 속에서 다른 삶을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다른 삶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시 속에서 찾기 힘들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며 틀 속에 갇힌 삶이긴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두더지 앞니


  앞니의 성장이 멈춘 두더지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산언덕 아래 살았다 마을의 지하 생활자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무료하게 지하 셋방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달빛도 없는 밤 족제비를 피해 바위 아래에서 한없이 자라나는 이빨을 갈아 없애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 두더지는 어느 밝은 대낮 지상으로 나왔다가 눈멀어 잡혔고 장독대의 빈 작은 항아리에서 살다 죽었다 나는 지하의 집과 지상의 집과 항아리의 집에 대한 가치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다만 두더지의 앞니가 계속 성장하기만을 기대했을 뿐이었다.


주창윤, 옷걸이에 걸린 양, 문학과지성사. 1998년. 82쪽


이 시에서 '다만 두더지의 앞니가 계속 성장하기만을 기대했을 뿐'이라는 말... 이는 옷장에 갇혀 있는 삶, 항아리 속에 갇혀 있는 삶일지라도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의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 말로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현대문명에 갇힌 삶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는 희망으로 시집을 맺고 있다. 


한편 한편의 시들이 현대문명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자율성을 지닌 존재,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2-05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장판에서 푸코읽기]에서도 소제목으로 ˝양떼들˝이라는 비유적 단어를 쓰기에 ˝양˝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했었는데 kinye님께서 ˝옷걸이에 걸린 양˝ 뜻풀이 너무나 공감가게 해주셨네요^^

kinye91 2022-02-05 12: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22-02-06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6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며 이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모방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 소설에서 효용성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되지만,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어느 정도 현실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한 작품도 꽤 있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게 하는 작품이 여럿 있었으니, 소설에 그런 기대를 품는다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웬 사진 이야기? 이 소설에서는 개인이 겪는 아픔과 현실에서 벌어졌던 시대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사진을 통해서 그 점을 더 깨닫게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영은 기자인데 사진도 찍는다. 그가 찍은 바다 사진들.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은 바다 사진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 인영이 바다 사진을 주로 찍었는지는 소설 후반부에 가면 이해할 수가 있다.


여기에 사라진 의선을 찾아 가는 핑계 대상이 된 인물도 광산촌, 광부들 사진을 찍어온 장종욱에게서도 사진은 중요하다. 그 역시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이겨나가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자의든 타의든 자신들이 그동안 찍어왔던 사진들이 모두 타버렸다는 데서 둘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찍은 사진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소설 후반부와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게 되는데 장종욱은 다시 광부들의 사진을 찍어 인영에게 보내주는데, 그때 찍힌 사진에는 수줍고 맑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얼굴이 나온다. 이렇게 소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한때 장종욱은 사진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는 사진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는 세계의 내면과 사진기 사이에 놓인 간격을 깨닫고 있었다. 사진기로는 어느 것의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빛에서 시작하여 빛으로 끝나는 것이 사진이었다. 사진기가 포착하는 것은 빛이고, 인화지에 드러난 것도 빛일 뿐이었다. 만지고 냄새 맡고 통증을 느끼고 피를 흘릴 수는 없었다. 그때까지 장은 결코 사진기로 찍어낼 수 없는 것을 인화지에 담아내고 싶어하고 있었다. (411쪽)


사진을 소설로 바꾸어도 말이 통한다. 작가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속 인물인 의선이 자신의 편지를 머리 속에서 정리해서 인영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말로는 완전하게 그려낼 수 없기에 결국 포기하고 있는 장면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진이나 소설이나 세계의 모든 면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작품을 읽고 보고 하는 이유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작품을 통해서 세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언어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그 역할을 한다.


한강은 바로 이 소설을 통해서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 감춰져 있던 진실을 개인의 아픔을 통해서 드러내려 하고 있다.


광산, 막장이라고 불리던, 한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갔던 그곳. 광부들의 삶은 결국 갱도에 갇혀 죽거나 진폐증에 걸려 죽거나 정부 정책으로 폐광이 되어 그곳을 떠나거가 떠날 수 없어서 그 검은 땅에 눌러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폐광촌의 현실을 한강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곳을 주 무대로 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광산촌의 비참한 현실을, 지금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사라진 의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 그렇다고 소설에서 광산촌의 현실이 주를 이루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의선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 둘씩 드러나는 인물들의 고통이다. 의선을 찾아나서자고 제안하는 명윤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그 그림자를 떨치지 못해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명윤. 


광산촌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장종욱. 그리고 대범하고 냉철해 보이지만 언니를 잃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영. 집을 나가버린 엄마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의선의 아빠, 그리고 정신지체인 오빠를 둔 의선.


이렇게 이들은 나름대로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신을 한 구석으로 몰아가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함을 한강은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한강 소설은 대부분 상처 입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상처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보여주는데, 가정에서 상처 입었다는 얘기는, 그 가정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뺑소니 사고로 앓아누운 아버지, 여행을 갔다 죽은 언니, 갱도에 갇혀 죽어 나온 남편을 보고 미쳐버린 아내, 자신을 떠난 아내가 있는 사진사 장씨 등등.


이들 상처는 개인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지만, 한강이 사회의 억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들 상처가 결국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의선이 받은 상처 역시 광산이라는 장소를 떠나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고, 명윤이 굳이 의선을 찾아나서는 이유 역시 자신이 받았던 상처들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의선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고, 그 상처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상처가 사회를 통해 받은 상처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렇게 개인들이 겪는 아픔을 통해서 한강은 소설을 통해 우리가 개인적 상처 저변에 있는 사회적 상처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개인의 상처와 사회적 상처가 맞물리면서 소설은 전개되고, 이런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소설이 현실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더라도 인물들을 통해서 현실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결국 '사진기로 찍어낼 수 없는 것을 인화지에 담아내고 싶어'했다는 장씨의 일념과 같이 소설가 한강은 글로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소설로 드러내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설은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드러낼 수는 있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현실로 눈을 돌리게 할 수 있다. 한강은 그 점에서 성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해져서 자꾸 책장을 덮으려는 마음과 그래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갈등하면서 끝까지 소설을 놓지 않게 했는데...


아마도 끝까지 읽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소설 제목이 된 '검은 사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두 번 나오는데, 한번은 임씨가 장종욱에게 해준 이야기, 또 한번은 임씨가 딸인 의선에게 해준 이야기다.


갱 속 깊은 곳에 사는 검은 사슴 이야기. 늑대처럼 단단한 이빨과 빛나는 뿔을 지니고 있는 검은 사슴. 해를 보고 싶어해서 광부들에게 부탁하지만 뿔도 이빨도 잃고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검은 사슴 이야기. 여기까지만 보면 광산촌 사람들, 또는 힘없는 사람들이 힘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억압당하고 희생당하는 모습으로만 끝나게 되는데... 의선에게 해준 이야기에서는 이 검은 사슴이 죽어 웅덩이를 만들고 이 웅덩이에서 꽃이 핀다는 내용까지 나아간다.


그렇게 한강은 결국 핍박받고 억압받는 존재들, 고통에 몸부림치는 존재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언젠가는 꽃을 피울 때가 있음을, 그 희망을 결코 놓지 말아야 함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수의 사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 첫소설집을 읽는다. 알라딘 온라인중고에서 구입한 책. 최근에 읽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한강 소설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에 읽은 소설이 몇 권 있지만 이참에 한강 소설을 독파해보자 하는 마음.


등단작을 실은 첫소설집이다. 제목은 등단작이 아닌 다른 작품으로 삼았는데, '여수의 사랑'에서 여수는 지역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이나 시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중적인 의미가 소설 본문에서 나오는데, '다만 그녀의 지치고 외로운 얼굴에 여수(麗水)가 아닌 여수(旅愁)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여수의 사랑'. 39쪽)고 하니, 소설 속 인물들은 한 곳에 머물렀어도 머무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인물의 고향이 여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와서 근근이 생활을 해나가는데, 그럼에도 한 인물은 여수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면 다른 인물은 여수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면서 그리워한다. 여수로 가기를 희망하고 표를 끊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날 사라진다. 여수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다른 인물은 그래서 여수로 가는 기차에 타고 여수에 내리게 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여수에서 출발해 여수로 돌아오는 과정, 회귀라고도 할 수 있지만, 회귀라기보다는 옴쭉달싹(옴짝달싹-몸을 아주 조금 움직이는 모양)이라는 부사어에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의 행동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바로 '옴쭉달싹'이라는 말을 들 수 있겠다. 이 말은 뒤에 부정어와 함께 쓰이니,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몸부림치지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참 힘들게 산다. 부모 잃고 경제력 없이 그래도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니 없던 병도 생기게 된다. 인물들은 나름대로 병을 앓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견딜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다. 이런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병이다. 위통이든 신경질환이든, 지긋지긋한 가난과 함께 병을 앓는다.


옴쭉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상황. 독해지고자 해도 독해지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으로 독해지자고 하는 사람들이 병을 앓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나타나는 독한 마음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어둠의 사육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함께 사는 고향 언니에게 배신당하고 더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 인물이 독기를 품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지내온 나날들을 생각할 때 나오는 말.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날에 속살을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어둠의 사육제'. 251쪽)


그래서 이 소설집 인물들은 아프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육체로 자신이 아프지 않으면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다. 자신을 대신해서 아파해야 할 존재들이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삶에는 아픔이 있다. 병이 있다. 이 병을 한강은 우리에게 들여다보라고 한다.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이런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보라고, 눈 감지 말라고.


그렇게 옴쭉달싹 못하는 인물들. 그러나 이들은 움직이려 한다. 남들에게는 비록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움직인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지만 아직 죽음의 세계에 가지 않기 위해. 이 소설집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떠나왔던 여수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그렇다. 다시 돌아온 여수는 예전의 여수와는 다를 것이다. 비록 삶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한강은 이 소설집에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섣부르게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희망보다는 그냥 현실을 보여준다. 현실이 이렇다고.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려 아등바등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아등바등대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고. 그렇다고 이들이 열심히 살지 않냐 하면 아니라고. 또 이들이 비도덕적이냐고? 아니라고. 이들은 누구보다도 더 도덕적이라고. 그래서 삶이 더 힘들다고.


이렇게 애면글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초상, 풍경화라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밝은 색으로 채색이 되지 않은, '저녁빛'에서 재헌이 그리는 그림처럼 어둑어둑한 느낌을 주는 소설. 


그렇다고 사회 비판을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한강 소설에서 사회는 뒤로 물러나 있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물이 인물을 둘러싼 환경에서 자신의 내면에 침잠해 고민하고 대응해 가는 과정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추론할 수 있으니...


한강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과 고민이 이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음을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08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kinye91 2022-03-08 17: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2-03-08 19: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3-08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2-03-08 19:4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kinye91 2022-03-10 01: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3-10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kinye91 2022-03-10 09: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가필드 2022-03-1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당선 축하드려요 😄

kinye91 2022-03-10 21: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