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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에 침묵하는가 - 잔해 속의 그리스도
문터 아이작 지음, 김상기 옮김 / 동연출판사 / 2025년 10월
평점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았다. 휴전 협정이라니? 이들이 언제 전쟁을 했던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가자를 공격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거나 쫓겨난 사건 아니었던가. 여기에 무슨 휴전? 그냥 잠시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었다고 봐야겠지.
공격을 멈추었다는 표현을 이 책을 쓴 문터 아이작이 본다면 어이 없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분쟁'이 아니라, 그러니까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니까.
몇 십 년에 걸친 학살. 하지만 세계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홀로코스트는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극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상하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일들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들은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방어에 나섰다고 옹호하고 있다.
이에 문터 아이작은 몇 십 년 동안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된 일들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한 시점을 분쟁의 시작으로, 아니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방어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라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옹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역시 학살에 동조하는 일이라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되기도 했다. 이 책에 보면 '(2024년)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이 집단학살방지협약을 위반하는 행동을 저질렀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결했다'(162쪽) 그러면서 임시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기가 막힌 일은 다음에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임시 명령이 나온 다음 날,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호주 캐나다 정부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163쪽)니...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 비록 '개연성'이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이 집단학살방지협약을 어겼다는 판결인데,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돕는 기구에 대한 억압에 들어간 것. 그것도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는 나라들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미디어를 움직이고 있고, 또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맺고 있으니... 그 동맹으로 인해 트럼프가 강제하다시피 휴전 협정을 맺었지만,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그러한 공격이 학살임을 증언하고 있는 문터 아이작.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기독교 목회자이다. 그의 종교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다. 그래서 그는 서구의 기독교가 이런 학살에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교리와도 맞지 않는다고, 세계의 기독교가 이러한 학살에 침묵하는 것은 학살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있다. 함께 행동하자고 하고... 단순히 기도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고 성경을 인용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놀랍다. 이슬람을 증오하는 것이야 이해하겠는데, 같은 기독교도들이 살해되고 있는데도 기독교 단체들이 침묵하고 있다니... 아니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민족, 국가가 중요한가? 이들이 어느 민족, 인종,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나? 그러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음을 팔레스타인 목회자인 이 책의 저자 문터 아이작이 말하고 있다.
'너무 오랜 세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동료 기독교인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인간화되고, 심지어 악마화되어 왔다. 우리는 종종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경험이 폄하되고, 존재 자체가 배제되었다.'(230쪽)고 토로하고 있으니... 이건 아니다 싶다.
이런 내용,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이 책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문터 아이작이 하마스를 지지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하마스는 이슬람이고 이 책의 저자는 기독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폭력에 반대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역시 비폭력,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지 않은가. 그러니 기독교도가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폭력도 구분하고 있으니...
하마스를 반대하지만 그런 그이지만 하마스의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마스 역시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시온주의라고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시온주의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침략주의고, 폭력이라고.
분명 학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서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학살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반유대주의로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은 문제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학살에 반대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홀로코스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책에 보면 이러한 반대 운동에 유대인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니, 가자 지구 침공에 반대하는 것을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기독교 단체에서 이러한 학살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성경에도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너희가 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마태복음 25:40, 45)라는 말이 있다. 앞의 문장은 천국에 가는 사람을 의미하고, 뒤의 문장은 지옥에 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도왔느냐, 모른 체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자에 속하는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다면 그러한 기독교인이 어떻게 천당에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꼭 기독교인만이 아니겠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고,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에 조금의 위안을 받기도 했는데...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한다. 살아남기를 선택한다. 존재하기를 선택한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끝까지 주장하기를 선택한다. 우리는 회복할 것이다. 회복의 뿌리를 인내에 두고, 우리 민족을 위한 정의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 (382쪽)
이런 희망, 이런 인내를 그들은 '수무드'라고 한다고 한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팔레스타인이 회복되기를... 종교인들이 이러한 환난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그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저자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사람들과 함께한 '잔해 속의 그리스도'가 많은 반향을 얻었다고 한다. 재난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학살이 없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정보를 다양한 방면에서 얻는 것이 중요하니까.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진 출처 : https://www.instagram.com/p/DQdkMLugZT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