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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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들 모음집이다. 역시 보니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반전이 일어나는 작품. 그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들어있는 소설들.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에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는데, 그렇다. 우리는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성장, 성장하는 것은 바로 이윤을 남기는 일이고, 이윤은 곧 자본이 추구하는 기본 목표이니, 이러한 자본에 잠식당한 삶은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 소설 '탱고'에서처럼 자본에 둘러싸인 삶들 속에서도 자본이 아닌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습, 그러한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점을 보여주는 소설도 있는데...


다른 소설들보다 마지막에 실린 '사기꾼들'이라는 소설이 마음에 남는다. 사기꾼들. 우리가 생각하는 남을 등쳐먹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다. 두 화가가 등장한다. 한 화가는 보통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또 다른 화가는 평론가들에게 인정받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쉽게 이야기하면 달력에 들어가는 듯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무엇인지 모를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두 화가는 자신에게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좋은 그림이라고 해도, 비평가들이 훌륭한 그림이라고 해도 그들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감춘 것이 바로 사기꾼과 같다고 여기고.


그렇지만 예술이 그러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예술 아닌가. 당신은 왜 저 사람처럼 그리지 않느냐고 하는 말이 통용될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예술가의 세계 아닌가.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지금도 세계에서 뛰어난 화가로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보라.


둘의 사이가 좋았던가. 둘이 서로의 그림을 그렇게 훌륭하다고 인정했던가. 속으로는 인정했을지 모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그다지 좋은 평을 하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으니...


예술은 그러한 것이다. 자기만의 것. 자기만의 표현이 있고, 자기만의 관점과 기법이 있다. 그것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이 사기일 것이다.


표절이 가장 엄격하게 금지되고 처벌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따라서 예술은 다른 사람을 따라해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길, 그 길을 가는 것.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한다. 누가 더 좋은가? 누가 더 잘 그리는가? 문학으로 치면 누가 더 잘 쓰는가?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오히려 이러한 비교가 예술가들을 나락으로 몰지 않는가.


예술가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했을 때 작품은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작품을 사기라고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활동을 한 것이기에.


그 점을 이 소설의 뒷부분에서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신들은 안다. 자신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훌륭함을.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자신들의 작품이 지닌 한계를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굳이 언급하지 않으면 그것을 사기라고 할까?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가 제 작품은 이 점이 부족해요 하면 겸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그러니 굳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지닌 한계, 부족한 점,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 되고, 다른 예술가들이 잘하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비교가 불필요한 곳. 오히려 비교가 작품이나 작가를 망치는 곳, 그곳이 바로 예술이라는 장 아니겠는가. 


이 '사기꾼들'이라는 짧은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보니것 역시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설을 썼다고 생각하고.


이런 예술의 장이니 '표절'이 범죄 취급받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이윤을 위해 남을 따라하고, 그것을 감춘 것이니. 자신의 한계를 말하지 않은 것과는 다른 차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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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0-1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트 보니것, 에세이를 재밌게 쓰던데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군요.

kinye91 2025-10-17 17:51   좋아요 1 | URL
소설도 에세이만큼이나 위트와 풍자가 넘쳐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커트 보니것의 에세이와 소설 둘 다 좋더라고요.

yamoo 2025-10-18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니것 소설 10권 있는데 아직 3권밖에 안 읽었어요! 세상이 잠든 동안...이거 저도 읽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네요..ㅜㅜ 보니것의 대표작 <제5도살장>을 읽어야 하는데...아직까지 못 읽고 있네요..하~

kinye91 2025-10-18 11:56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보니것 소설을 찾아 읽고 있는데 제5도살장 좋았어요.

페크pek0501 2025-10-19 17:01   좋아요 1 | URL
제5도살장, 저 읽었어요. 완독했죠. 그러니까 보니것의 소설을 제가 읽은 거네요.
와!.. 이젠 저자와 책 제목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지점에 제가 온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기억력이 엉망인 것은 너무 책을 많이 알고 있어서라고 애써 합리화, 해 봅니다. 합리화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바보 같아서...ㅋ

kinye91 2025-10-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책을 너무 많이 읽으신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가끔 읽은 책 또 읽는 것은 아닌지... 저는 그런 의심이 들 때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