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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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관한 말들이 많다.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관용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손은 그만큼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손이 차다는 말은 냉정하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고 하면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소설 제목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냉소적인 사회,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소설은 다르게 전개된다.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을 택하고 있다. 소위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형식인데... 소설가인 '나'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앞과 뒤가 소설가가 서술자로 나오고,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에서는 장운형이라는 미술가가 서술자로 나오게 된다.


장운형이 쓴 글 제목이 '그녀의 차가운 손'이다. 그리고 이 소설 제목은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왜 작가는 소설 제목을 다르게 붙였을까? 소설 속 소설에서 그녀는 누구일까? 읽다보면 그녀의 차가운 손(294쪽)이라는 말이 직접 나온다. 소설 속에서는 장운형이라는 서술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 이니셜로 나오기 때문에 이 글 제목이 된 그녀의 차가운 손에서 그녀는 E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소설 속 소설은 총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E는 3부에만 나온다. 이 3부까지 가기 위해 1부와 2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손을 이야기하지만 손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면 되는데...


손가락이 잘린 외삼촌.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또 가족들과 어울릴 생각도 없이 알콜 중독이 된 외삼촌. 이런 외삼촌과 가족들 관계를 통해서 서술자인 장운형은 어린 시절부터 가면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가면을 누구나 다 지니고 있다고 믿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간다. 오히려 손가락이 잘린 외삼촌은 가면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는 가면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남들이 보면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배척당하고 견딜 수 없게 된다. 2부 역시 마찬가지다. L이라는 여인이 나온다. 거구의 몸집을 지닌 여자. 그런데 장운형은 이 L이 손에 매혹된다. 이 손은 따뜻한 손이다. 그럼에도 L은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살을 빼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서... 이런 L과의 생활이 펼쳐지는 2부에서는, 우리가 남들을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L이 살을 빼려고 하는 이유 역시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가면을 쓰게 한다. 견딜 수 없는 식욕, 폭식과 구토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손에 상처를 남기는 L. 그러나 L은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다. L은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신을 받아들인 L이 장운형 곁에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장운형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차가운 손이라고 할 수 있는 E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삶을 사는, 외모 역시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여자. 장운형은 E를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섬뜩함을 느낀다. 무엇일까? 이것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을 알아보는 모습이 아닐까?


2부까지 그렇게 손에 관심을 가졌던 장운형이 3부에서는 이상하게도 손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얼굴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정도라면 E의 얼굴에서 풍기는 어떤 점이 장운형의 관심을 가져갔을텐데... 그것에 대한 추구를 하게 된다. 손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그러다 후반부로 가면 E가 먼저 장운형에게 손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육손이로 태어나 손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수술하고 나서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지내왔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삶에 대해서... 그 말들이 끝나고 나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석고를 뜨는 대상이 되었던 둘이... E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이들 서로에게는 가면이 필요없어졌다.


"네가 날 꺼냈고……또 난 널 꺼낸 건가?" (315쪽)


이 말로 장운형이 쓴 글은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이 석고 조각들을 발로 밟아 자근자근 부숴버리는 장면에서 이들의 가면은 이제 없다고...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가면을 벗어던진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가면을 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표면상 그들은 실종이 된다.


그리고 작가의 에필로그. 한강 소설은 결말이 희망적이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면을 벗은 이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들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둘이 함께... 그 점을 에필로그에서 볼 수가 있다.


그러니 장운형이 쓴 글 제목인 '그녀의 차가운 손'이 제목이 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은 세상과 맞서 살아가고자 애쓴 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손일 수밖에 없다. 감추고 싶었던 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손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알게 되는 순간,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더이상 차가운 손이 되지 않는다.


차가운 손은 바로 '그대'다. 우리다. 남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우리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그 가면을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 속 사람들이 바로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다름에 대한 소설이다. 다름을 받아들이느냐 배척하느냐에 관한. 차가운 손을 지닐 것이냐 따뜻한 손을 지닐 것이냐 하는 그런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이 아니라 '그대의 따스한 손'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가면을 벗어던져야 함을, 우리 모두 진실된 모습을 보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가면을 벗게 해야 한다고, 이 소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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